삶의 원칙(2)
정현수
세상에 독불장군 없듯 누구든 행복과 불행의 씨앗(운명)을 동시에 품고 산다. 노력과 시간을 아끼지 않으며 자기 삶에서 이성(理性)에 바르고 주체적 행동을 하는, 그걸 갈고닦음에 얼마만큼 충실했냐에 따라서 행, 불행이 결정지어지는 게 아닐까?
행복을 느끼며 산다는 것, 한마디로 정의하기엔 참 어려운 철학적 난제 같다. 꺾여 저 내려가 자기 운에 도달하는 사다리 타기도 아니고 엿 장사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어떤 정황의 흔적이기도 하다. 단언컨대 거기엔 현실성이 있는 적절한 주장도, 비판적 자기 사고의 아량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한 사람이야말로 서로 이해하며 무한 깊이의 양보와 끊임없는 사랑을 내 보이는 보편적인 눈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건 정말 행복한 듯 말도 안 되는 뜬금없는 자기 과시다. 행복한 사람인 양 자기 혼자 축복을 받은 것처럼 적당한(?) 행복에 도취되어 거기에 만족해하며 위선적 삶을 사는 것이다.
반면 불행한 사람은 얼굴 가득히 힘듦과 고통에 절은 일종의 패배감을 안고 찌든 삶을 살아간다. 자기 삶에 악순환의 혹이고 때론 떼어져 버리는 살점일 수 있다. 그 악순환이 자기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잠재적 핸디캡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의 정신적 신념이 와해됨은 물론 묘한 감정의 뉘앙스로 불행한 이들을 따라다닐 수 있다. 그로 인한 불행을 명확히 구분 못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이렇듯 서로 상반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에 인간은 도리 없는 딜레마에 빠지고 만다. 즐거움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은 인간 최고의 행복이라 누군가는 말했고, 삶의 과정에서 평안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것은 인간이 추구해야 할 희열이다. 매 순간 새롭게 짜임이 되는 일상에 행복을 느끼며 산다는 건 삶에 만족을 느낀다는 것이다. 하지만 잘난척하며 오랫동안 시끄러운(불행) 삶에 젓은 사람은 자신의 감정에만 몰입해 여러 문제와 사실들을 간과할 수 있다는 걸 모르고 있다.
서로 공감해야 할 삶에 상대를 배려하지 않거나 짜증을 낼 때, 또는 비난하거나 할 때 그것은 함께하려는 선함(행복)을 빼앗아가는 악의적 행위이다. 남을 탓하기보다 감싸는 배려가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사랑, 그것은 우리가 서로 아우르려는 삶에 중요한 철칙이다. 긍정적 자아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배려이고 행복이 아닐까?
이곳으로 이주해 처음으로 동네 마을회관의 모임에 참석했다. 임기가 다 된 마을 이장을 다시 뽑아야 하는 중차대한(?) 일이다. 같은 번지에서 사는 사람의 당연한 요청으로 참석해 내 중요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 마을을 위한 생산적 일이라 할 수 있고 마을 주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선출한 사람은 마을을 대표해서 적절한 행동을 하고 결정하며 마을 모든 이들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 일이다. 관공서에 대한 주민을 대표하는 대변자이며 주민 편의와 이익을 위하는 일이다.
누군가와 만남에서 좋은 마음으로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기쁘게 하는 건 그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만남의 근원적 개념인 행복이다. 그건 수평적 관계로 이어져야 하며 그 인연의 과정을 중히 여겨야 한다. 행복은 너와 내가 함께 공존하듯 견실하게 맺어져 서로 존중해야 한다. 한데 중차대한 일에 이기주의 본연을 보듯 좋은 말과 행동으로 하는 상호부조는 실종해 버렸다. 짜증을 내거나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행위, 더더욱 폭력(불행)이 난무했다. 만남의 의미, 대화의 깊이가 사라져 버리고 내가 이장이 돼야 하고 다른 이는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서로 부정하며 고집으로 일괄할 때 바르게 일깨워 주는 설득이 필요한데 각자의 타협 없는 주장은 한 번 더 생각해야 하는 맥락에서 벗어나는 어리석음일 뿐이다. 상대를 무시하는 마음은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행복을 앗아가는 행위이다. 폭력이 난무하고 경찰이 오고 소방서 앰뷸런스까지 오는 사태까지 다다랐다. 그런 그들 일부 당사자들의 말과 행동은 엉뚱하고 편파적이었다. 그런 것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불편도 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동네 작은 단체의 불협화음을 봤지만 어떤 정치적 현실을 보고 있는 듯 어정쩡하고 모호할 뿐이다. 서로 포용이 되는 삶을 살아간다는 건 그들 자신의 바름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다투거나 서로 불쾌해하는 것은 마음이 그만큼 닫혀 있다는 것이다. 마음을 열어야 한다. 어쩌면 사람들은 미워하고 싫어서 싸우는 게 아니고 서로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하거나 사랑을 하려고 기를 쓰는 행위일 수 있다. 주어진 삶에 순응하며 지금 난 어떤 삶을 살고 있나를 한 번쯤 되돌아보는 건 어떨까? 우리 각자의 삶이 허투루 살지 않아야 하는 게 당연지사가 아닌가! 누구든 나일 먹는 데는 장사 없다. 하나같이 고만고만한 나이에 내 차례는 언제일까? 하는 생각에 전전긍긍하지 말고 무언가(욕심)에 얽매이지 말고 하루를 살더래도 보람되고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이해하지 못하고 참뜻을 저버리는 자기 일방적 주장은 절대 행복할 수 없다. 편견에 빠지는 교만(불행)은 버려야 한다. 서로 무조건 거부하지 말고 사실을 인정하고 상대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다 해결책이 있기 마련이고 다 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 애틋한 정과 순수한 이상에 가치를 두어야 한다. 누군가를 변화시키기 위해 자기 자신이 먼저 변화해야 된다. 나를 알고 있다는 게 행복이 아닐까? 삶의 원칙에서 벗어나지 말자.
2024. 3.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