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지정된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인 광릉숲에 포함되어 있는 광릉수목원과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인 광릉(조선왕릉)을 방문했다. 두 장소는 남양주시와 포천시의 경계를 가른다. 그 사실은 광릉수목원에서 광릉으로 가는 길에서 자연스레 알게 된다.
몇 발자국 걸어가면 2021.9.15~24일까지 '우리꽃전시회'가 열린다는 팻말이 보인다. 광릉숲 내부의 산림박물관 앞에서 열린다.
광릉숲은 중부지방에서 유일한 극상림이다. 극상림이란, 기후 조건이 가장 적합하고 안정된 지역에서 극상에 이르렀다고 간주되는 숲을 지칭한다고 한다.
국립수목원 서강욱 임업연구사에 따르면 “이곳 광릉숲은 활엽수 극상림을 이루고 있다”, “처음 숲이 생성될 때 침엽수가 먼저 성장하지만 이후 활엽수가 성장하며 빛을 가려 침엽수의 성장을 방해하는데, 이 때문에 광릉숲은 활엽수 극상림을 이루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덩굴식물과 수국원' 지대에 들어왔다. 덩굴이 자라도록 둥그런 조형물에 덩굴식물이 칭칭감겨 있다.
아래는 '수생식물원'이다. 한반도 모양의 연못인데 사진에서는 지도 모양이 뚜렷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물의 깊이에 따라 거기에 맞는 다양한 수생식물을 심어 놓았다. 물의 깊이에 따라 다른 식물을 심었다는 것이 새로웠다. 대부분은 수련으로 채워져 있다.
한국과 일본에 분포하는 실화백(Oriental arborvitae)이다. 파란 하늘과 햇빛에 비춘 연두색이 너무 아름답다.
피라미드 모양의 '난대온실'이다. 남해안과 제주도에서 자생하는 온대남부와 난대식물의 보전을 목적으로 생육환경을 고려해 유리온실로 지어진 공간이다.
'콩짜개덩굴'이라는 이름이 생소했다. 생소 혹은 특이하다는 생각은 순전히 주관적이고 개별적이다. 나는 모르지만, 아른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관람을 마치고 다시 자연으로 나왔다. 사진으로 보이는 '난대온실'을 지나 '소리정원'으로 들어간다.
'소리정원'은 팻말이 없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시각적으로는 그냥 풀숲과 물이 졸졸 흐르는 냇물의 광경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리정원'이라고 하니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제서야 흐르는 물, 지저귀는 새,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들이 들여온다.
'세계의 한계'가 '언어의 한계'라고 했던가. 언어로 표현되지 않으면 인식하기 힘들다.
입구에서 봤던 '우리꽃전시회' 장소에 도착했다. 10일간 열리는 행사인데, 우리야생화와 분경전시 등이 펼쳐지고 있었다.
'분경'을 영어로 하면 'miniature garden', 'tray landscape'이라고 표현하는데, 어떨 때는 영어 표현이 한글 설명보다 더 이해하기 수월하다^^
아래는 분경 대회 대상작이다. 손효상 작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꽃배가~>으로 힘든 코로나 시기를 이겨나가자는 마음을 이순신 장군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제작했다고 한다. 작품 뒤에 산림박물관 건물이 보인다.
광릉수목원 내에 위치한 '산림박물관'은 총 5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식물관련 뿐 아니라 인간 생태를 포함한 전시물이 풍부하며, 동물과 식물의 진화 과정 학습을 위한 교육장이다.
'배짓기'를 하는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광릉숲도 조선시대 국가에서 사용하는 나무 생산하고 왕실 가족의 사냥 및 활쏘기가 이루어진 강무장 역할을 하면서 조성된 곳이다. 1468년 세조의 능인 광릉 조성 이후 엄격하게 능림으로 관리되어 오늘에 이른다.
'지붕 잇기 과정'을 재현해 놓았는데, 반대편에 거울을 배치하여 관찰학습을 할 수 있다.
산림박물관 중정이다. 다시 말해 중정을 둘러싸고 4면에 전시실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열대식물자원연구센터' 건물이다.
위의 유리건물 앞 연못에 있는 수련이다. 때때로 연꽃과 수련이 홍동되기도 한다^^
'희귀, 특산식물보존원'에 도착했다. 그 중에서 '백두산(고산) 및 고층습원'이라는 곳이다.
'전나무숲' 팻말과 함께 1.2km라고 쓰여 있다. 왕복 2.4km이다. 고민하다가 일단 들어갔다. 가다보니 아래 사진처럼 전기차를 타고 가는 무리가 보였다. 이럴수가... 정보가 힘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터벅터벅 걸어간다.
땅바닥을 촬영한 것은 나의 시선이 아래를 향했기 때문이다. 너무 힘들면 땅만 보고, 주변을 살펴보기 힘들다.
다시 올려다 본다. 그래서 너무 힘들면 쉬었다 가던지, 아니면 되돌아와야 할 때도 있다. 선택을 하되, 자기 선택에 후회만 하지 않으면 된다.
광릉숲 나머지도 보고, 광릉에도 가야 하는 등의 여정이 남아 있어 나는 되돌아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광릉숲의 '육림호'로 향했다.
'고사목'도 생태의 일부이다. 균류와 곤충의 서식지와 먹거리를 제공하고, 그 곤충을 먹기 위해 새들이 모이고, 새들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한다.
'육림호'에 도착했다. 주변에 휴식할 수 있는 카페가 있다.
아래 지도를 보면 '광릉수목원'에서 '광릉'을 도보로 갈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644m밖에 안된다. 그러나 출차를 하여 광릉을 향해야 한다. 거기에 새로 주차하고 새로 입장하라는 가이드를 받았다. 몇백미터 차이로 광릉은 포천시가 아니라 남양주시이기 때문이다.
몇백미터 가는 길에 포천시에서 남양주시로 바뀐다. 소속이 다르면 관리주체도 바뀐다. 역사적으로 지배국에 의해 같은 민족임에도 임의로 그어진 선으로 분리된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의 수십개국이 생각났다. 아래 광릉 지도를 보면 세조와 정희왕후 부부의 묘는 나란히 옆에 위치하지 않고, 가운데 큰 계곡으로 갈라져 있다. 동원이강식이다.
'광릉 재실'이다. 왕릉을 지키고 관리하는 참봉이 상주하던 곳이다.
재실을 지나 능으로 향하는 길이다. 앞에 4명의 젊은친구들이 걸어가고 있다. 왕릉에 놀러왔나 보다. 건전하다^^
'홍살문'을 지나 정자각이 보인다. 왼쪽에 수라간과 오른쪽에 수복방이 있고, 그 위로 세조와 정희왕후의 능이 모셔져 있다.
정자각 뒤쪽이다. 아래 사진의 언덕 왼쪽에 세조능, 오른쪽 언덕 위에 정희왕후의 능이 있고, 가운데 계곡이 자리한다. '동원이강식'이라고 부르는데, 세조의 능이 처음이라고 한다. 광릉은 사적 제197호이다.
언덕 위에 세조의 능이 자리한다.
왼쪽부터 정자각, 언덕 위에 정희왕후 능, 비각(능주인의 행적을 기록한 신도비), 그 오른쪽에 수복방(능을 지키는 수복들이 머무르는 방)이 놓여 있다.
앞의 사진에 능으로 향하던 4명의 젊은 친구들은 수다 삼매경이다. 즐거워 보인다.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홍살문'으로 다시 나오며 오늘 탐방을 마친다. 숲과 역사가 어우러지는 대한민국, 역시 좋은 나라이다~
'광릉' 가까이 세조를 기리는 '봉선사'가 위치한다. 사실 이곳의 방문은 얼마 전 '봉선사'에 갔다가 꼬리물기를 한 결과이다^^ 연결짓기로 여행계획을 짜는 것도 재미있다. 앞으로 종종 연습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