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일 왕피천 트레킹과 죽변 등대길
<2014년 8월 17일 왕피천 트레킹 울진 해파랑길>
▶ 여름이 끝자락을 보내기 아쉬운 듯 정수리에 쏟아지는 태양의 열기가 만만찮은 아침에 이번 휴가기간 대망의 코스인 왕피천으로 가는 길은 오금이 저리도록 아슬아슬한 절벽길을 산행 버스를 타고 돌면서 힘겹게 찾아든다. 수중트레킹 준비를 철저하게 당부한 이 흥엽 대장의 설명이 엄포가 아닌 현실로 닦아오는 것 같아 내심 걱정이 될 지음 버스는 일방통행의 오지마을 때를 벗은 펜션이 언덕 높이 반듯하게 자리 잡은 왕피천 수중트레킹 시발점인 굴구지마을 주차장에 도착한다.
▣ 왕피천[王避川]
왕피천은 경상북도 영양군 수비면 본신리에 솟아난 금장산(849m) 서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흐르다가 신원리에서 물길을 북동쪽으로 바꾸어 장수포천(長水浦川)이라 부르며 울진군 서면 왕피리를 지나면서 왕피천이라 불린다. 실직국(悉直國) 왕이 이곳으로 피난해 숨어 살았다고 하여 마을 이름은 왕피리, 마을 앞 흐르는 냇물은 왕피천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하천의 상류나 중류는 산간협곡을 이루어 평지가 거의 없으나 광천과 매화천이 합류하는 하류에는 비교적 넓은 충적평야가 펼쳐져 있다. 왕피천과 매화천이 합류되는 근남면 구산리에는 울진의 성류굴(천연기념물 제155호)이 있으며, 그밖에 군립공원인 불영계곡과 구룡폭포·불영사 등이 있다.
왕피천은 맑은 물의 대명사다. 이 땅의 이름난 물줄기들이 개발바람에 휩싸여 하나둘씩 오염되어 갈 때 혼자 독야청청 맑은 물을 흘려보낸다. 물줄기가 시작된 곳부터 이 산 저 산, 이 골짜기 저 골짜기의 물을 보태 몸이 제법 튼실해질 때도 강물은 산속으로만 숨어서 돈다. 이 때문에 은밀한 강은 유리알처럼 투명하다. 강이 흘러가는 대부분이 마을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길도 없다. 강물이 길이다. 강물을 거닐어 저벅저벅 걸어갈 수밖에 없는 곳이 널려 있다. 사람의 발길이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이는 왕피천이 계속 청정하게 흐를 수 있게 하는 큰 힘이다.
▣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계곡 트레킹 코스
(왕피천 굴구지마을 ~ 용소 구간)
왕피천 중간 지점에 위치한 울진군 근남면 구산3리 굴구지마을은 왕피천 하류의 성류굴에서 아홉 구비 산자락을 돌아가야 나온다고 해 붙여진 이름으로 울진에서도 오지로 꼽힌다.
왕피천 계곡 트레킹은 굴구지마을회관 앞에서 왕피천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용소까지 계곡 옆 생태탐방로를 이용해 마을로 돌아오는 코스다. 특히 용소로 가는 길목 상천초소 아래로 이어지는 좁은 길을 내려가면 밀림을 연상케 하는 울창한 숲길이 펼쳐지며 이 길을 지나는 동안에는 상쾌한 공기와 함께 온갖 야생초들이 시야를 즐겁게 해 준다. 숲길이 끝나는 지점의 큰 바위를 지나 계곡물을 헤치며 걷다 보면 깎아지른 듯한 협곡 절벽 사이에서 절경을 품은 용소를 만날 수 있다.
왕피천 계곡 트레킹은 산이나 둘레길을 도는 일반 트레킹보다 훨씬 힘들다.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오르는 데다 강바닥에 박힌 미끄러운 강돌 때문에 균형을 잡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어떤 때는 길을 가로막은 큰 바위를 타고 넘어야 하고, 깊은 소를 만나기라도 하면 상류로 올라가는 수고를 더해야 한다. 하지만 걸음을 뗄 때마다 나타는 자갈밭과 모래밭, 그리고 물길이 휘어지는 수직절벽에 뿌리를 내린 금강송이 걸음을 재촉한다.
바위구간을 지나 산모롱이를 돌면 계곡이 점점 험해진다. 버드나무를 비롯해 잡풀과 잡목이 많아 걷기도 불편하다. 이때는 과감히 계곡으로 내려와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게 편하다.
계곡 트래킹의 묘미는 길이 없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새로운 길을 만나는 것이고, 길이 없으면 계곡을 길로 삼으면 그만이다. 이따금 손가락만 한 물고기들이 신기한 듯 주둥이로 종아리를 툭툭 건드린다. 그렇게 산굽이를 몇 번 돌고 나면 드넓은 강바닥이 여인의 피부처럼 하얀 강돌로 이루어진 구간이 드넓게 펼쳐진다. 상천초소에서 내려온 생태탐방로와 연결되는 지점으로 용소는 모래톱이 끝나면서 물길이 휘어져 끝이 보이지 않는 협곡 속을 흐른다.
용소는 여느 계곡과는 생김새부터 다르다. 좁은 협곡을 이루고 있는 바위는 눈부실정도로 하얀 데다 다이너마이트로 발파를 한 듯 거칠다. 영양 수비계곡에서 울진 끝 마을인 용피리 속사마을을 거쳐 흘러온 왕피천은 이곳에서 용트림을 한다. 깊이가 5m가 넘는 용소의 물빛은 심연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검은색을 띠고 있어 공포감마저 느끼게 한다. 왕피천 계곡 트래킹은 용소에서 마무리하는 게 좋다. 구명조끼와 튜브를 갖춘 마니아들은 헤엄을 쳐서 용소를 통과하지만 장비의 도움 없이 용소를 건널 수 없다. 하지만 산란 중인 은어처럼 입을 벌리고 무섭게 요동치는 용소를 한눈에 보고 싶다면 생태탐방로로 우회해 학소대에 오르면 된다. [경북매일에서]
◆ 트레킹 풍경
▶ 느긋한 여행이 아닌 오지 트레킹으로 서둘러 챙긴 시간 아침 7시 50분 왕피천 굴구지마을 주차장에 도착 산과 계곡, 물과 바위, 금강송과 자갈 모래가 환상의 조화를 이룬 왕피천 트레킹을 시작한다.
왕피천, 가을
김 미정
돌아오는 길은 되레 멀고도 낯설었다.
북위 삼십 칠도, 이정표 하나 없고
피멍 든 망막 너머로 구절초 곱게 지는데.
귀 익은 사투리에 팔다리가 풀리면
단풍보다 곱게 와서 산통은 기다리고
한 세상 헤매던 꿈이 붉게 붉게 고였다.
숨겨 온 아픔들은 뜯겨나간 은빛 비늘
먼바다를 풀어서 목숨마저 풀어서
물살을 차고 오르는 연어들의 옥쇄(玉碎)행렬
건 듯 부는 바람에도 산 하나가 사라지듯
끝없이 저를 비우는 강물과 가을사이
달빛에 길하나 건저 온몸으로 감는다.
▶ 굴구지 마을은 산골 농촌의 전형을 안고 태어났으나 천혜의 자연이 주는 혜택으로 2007년 산촌생태마을로 조성되면서 입소문이나 관광객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마을협동으로 숙박시설을 갖추고 순박한 농심에 친절을 가미하여 적극적으로 손님을 맞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 명산대첩을 언제나 함께하는 고을아제 부부의 모습이 산행인들의 귀감으로 새겨 든다.
▶ 마을을 지나고 왕피천 협곡의 절벽 언덕 위 험하지 않은 길을 따라가면 로변에 늘어선 금강송이 붉은 얼굴을 건강하게 내밀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았다.
▶ 굴구지마을 주차장을 출발하여 평탄한 둘레 길을 지나 물길이 휘어 돌아가는 절벽언덕을 넘고 미끄러운 물속 바윗길을 조심스럽게 건너 4km 거리의 천혜의 절경을 머릿속으로 헤아리며 조약돌이 넓게 펼쳐진 개울 막다른 곳에 지금까지 산행서 둘러본 계곡의 청소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대리석 조각으로 절벽을 장식하고 수심 5m 파란 물속이 섬뜩하게 느껴지는 용소에 닿는다.
▶ 당초 계획은 용소를 지나 부원마을까지 탐방하고 돌아오는 것으로 되었으나 우회로가 없는 깊은 물속을 건너서 바위 벼랑을 오르는 위험한 코스를 이 흥엽 대장이 로프에 몸을 맡기고 선두에 나섰다.
그러나 아뿔싸!!!
산에서는 해박한 지식과 수많은 실전 경험으로 막힘없는 리더로 통하였지만 키가 잠기는 물속에서는 헤어 날길 없는 맥주병 신세가 되고 마는 현실 앞에 모두가 더 이상 전진은 무리가 따른다는 판단으로 포기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리고 만다.
▶ 연어가 회귀하는 맑은 물속에 심해의 인어처럼 몸을 담그고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세속의 잡다한 인정은 잠시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 해파랑길 27 코스 죽변등대(竹邊燈臺) 길
▶ 감동의 왕피천 트레킹은 충분한 휴식으로 머릿속에 깊이 묻어두고 오후 3시 이번 휴가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죽변등대길에 올랐다.
▶ 키가 잠기는 대나무 숲이 죽변이라는 이름을 대변하는 듯 절벽 해변에 가득하고 울릉도와 가장 가까운 동해안 중심 항구 조상들이 왜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하여 성을 쌓고 대나무 화살을 쏘았다는 죽변항, 반도를 침탈한 일본이 러시아의 침공을 감시하기 위하여 등대를 세운 죽변, 1910년 11월 대한제국의 이름으로 불을 밝힌 죽변등대, 주변 풍광이 낭만을 잉태한 사색의 공간이요 전망이 탁월한 이곳에 세월의 흐름을 반영하는 드라마 세트장으로 젊은이의 각광을 받는 "용의 꿈길"로 발길을 따라간다.
▶ 드라마 "폭풍 속으로"의 촬영 현장으로 드라마를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해변 언덕에 볼품없는 건물이지만 지방자치단체의 경제 활동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 더욱 실감 있게 닦아 오고 건너편 해안선이 하트 모양을 닮아서 이곳에서 사랑을 고백하면 뜻이 이루어진다는 낭만이 깃든 장소로 기억하고 싶어 진다.
▶ 죽변등대 트레킹을 끝으로 여행 일정을 마무리하는 회식을 죽변수산물시장 생선회집에서 허리띠를 풀고 푸짐한 생선회에 소주잔을 겹치며 즐거운 휘나래를 장식하였다.
◐ 하계휴가특별산행으로 이름 지어진 이번 행사에 참여하여 안개비 뿌리는 내연산 청하계곡 폭포의 향연, 영덕 블루로드 B코스의 생동감 있는 해변 전경, 신선한 옥계계곡과 땀 흘린 보람을 안겨준 팔각산, 때 묻지 않은 자연경관의 왕피천 협곡 백패킹, 죽변등대의 낭만 등 짧은 일정에 기억에 남을 풍광을 알차게 실천으로 옮겨준 신나라산악회 최 길순 회장님과 선두에서 몸을 아끼지 않고 헌신한 이 흥엽 대장 및 집행부 여러분들의 노고에
감사를 드리며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공유하여 준 산우 여러분 모두 고마웠습니다. 풍성한 명절 한가위를 가족과 함께 화목하고 건강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