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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 하 제 37장. 狂者과 獧者과 鄕原
(중요 내용)
君子反經而已矣。 經正, 則庶民興。 庶民興, 斯無邪慝矣.
(군자반경이이의。 경정, 칙서민흥。 서민흥, 사무사특의 )
→經변하지 않는 常道. 邪慝 요사스럽고 간특하다.
군자는 변하지 않는 常道로 돌이 갈 뿐이다. 상도가 바르면 서민이 일어날 것이다. 서민이 일어나면 이것은 사특함이 없는 것이다.
(대강의 내용)
萬章이 물었다。 "孔子께서 진陳나라에 계시면서 '어찌 돌아가지 않으랴!(돌아가련다!) 내 고향의 선비는 뜻이 크고 단순하고 진취進取하려 하고, 그 초지初志를 잊지 않는다' 라고 하셨는데, 孔子께서 진陳나라에 계시면서 어찌 노魯나라의 광사狂士들을 생각하셨습니까?"
맹자가 말했다.
"孔子께서 '中道의 인재를 얻어 가르치지 못하게 되면, 반드시 뜻이 높고 고집 센 사람(광견狂獧)을 찾으리라。 광자狂者은 진취進取적이고, 견자獧者는 지조志操(所不爲)가 있다' 라고 말씀하셨다。 孔子께서 어찌 中道의 인재를 바라지 않으셨겠는가? 마땅히 얻을 수 없기에 그 다음(차次)을 생각하셨다。"
"어떠해야 뜻이 높은 지(狂) 감히 여쭙습니다。"
"금장琴張ㆍ증석曾晳ㆍ목피牧皮 같은 사람들이 孔子께서 말씀하신 뜻이 높은 사람(狂)이다."
"어째서 광狂이라고 합니까?"
"그 뜻이 크고 주장이 커서 '옛 사람이여, 옛 사람이여! ' 하는데, 평소에 그들의 행동을 살펴보면 그 말을 따라가지 못하는 者이다。
광자(狂者)도 얻지 못하면, 불결不潔을 달가워하지 않는 선비士를 얻어서 가르치고자 하셨으니, 이들이 견(獧)-고집 센 사람이다。 이 또한 차선책(次)이다。"
"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집 문 앞을 지나가면서 내 집안에 들어오지 아니할 지라도, 내가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사람은, 오직 향원鄕原뿐이다。이 향원鄕原들이 德을 해친다' 라고 하셨는데, 어떠하였기에 향원鄕原이라고 했습니까?"
"'어찌하여 이리 뜻이 크고 말이 큰지! 말하는 것이 행동을 돌아보지 않고, 행동하는 것이 말하는 것을 돌아보지 않으면서도, ‘옛 사람이여, 옛 사람이여!’만 되뇌인다。 하는 짓이 쌀쌀하면서 또 친근할 수 없는가? 세상에 났으면 이 세상에 맞게 살면 된다。 이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만 하면 되는 것을' 이라고 말하면서 자기의 속생각을 숨기고 세상에 아첨하는 者가 바로 향원鄕原이다。"
만장萬章이 말했다。 "한 고을 사람이 모두 원인原人이라고 일컬으면 어디를 가더라도 원인原人이 아닐 수 없는데, 孔子께서 '德의 적賊'이라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비난하려 해도 들어서 지적할 만한 것이 없고, 공격하려 해도 공격할 것이 없다。 유속流俗과 동조하고 더러운 세상과 합류하며, 居함에 忠信한 듯하며, 行함이 청렴결백한듯하여 뭇 사람들이 좋아하고 자기 스스로도 옳다고 여기는데, 요순堯舜의 道에 함께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러므로 '德의 적賊'이라고 말씀하셨다。
孔子께서 '사이비似以非(비슷하나 아닌 것)한 者를 미워하나니, 가라지(수莠)를 미워함은 그 곡식의 싹(묘苗)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함이요, 말을 잘 둘러대는 자(녕佞)를 미워함은 그 義를 어지럽힐까 두려워함이고, 구변(口辯)만 좋은 자를 미워함(오리구惡利口)은 그 신용(信用)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함이다。정鄭나라의 음탕한 음악을 미워함은 아악雅樂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함이요, 자줏빛(紫)을 미워함은 그 붉은빛(朱)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함이요, 향원鄕原을 미워함은 그 德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함이다' 라고 하셨다。
君子는 상도常道(經)를 회복回復할 뿐이다。 상도常道(經)가 바르면 서민庶民이 일어나고, 서민庶民이 일어나면, 이에 사특邪慝이 없어진다。"
윤씨 "君子가 광견狂獧을 취한 것은, 대개 광狂한 자는 뜻이 커서 道에 나갈 수 있고, 견獧한 자는 하지 않는 바가 있으나 더불어 할 수 있지만, 향원鄕原은 미워하고 심히 끊으려했던 것은, 옳은 것 같되 그릇되어 사람을 현혹惑함이 심하여, 이것을 끊는 술책은 다른 것이 없다. 또한 말하기를 ‘떳떳한 道를 회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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盡心章句下 三十七章
(진심장구하 삼십칠장)
萬章問曰 [孔子在陳曰 {盍歸乎來! 吾黨之士狂簡, 進取, 不忘其初.} 孔子在陳, 何思魯之狂士?]
(만장문왈 [공자재진왈 {합귀호내! 오당지사광간, 진취, 불망기초.} 공자재진, 하사노지광사?]
→盍덮을합. 어찌-하지않느냐. 簡대쪽간.
만장이 물어 말하기를, “공자가 진나라에 있을 때 말하기를,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나와 같이 했던 선비들은 광간했고, 진취적이었고, 初心을 잊지 않았다.’ 공자가 진나라에 있었을 때, 어찌 노나라의 狂士를 생각했습니까?” 하였다.
盍, 何不也. 狂簡, 謂志大而略於事. 進取, 謂求望高遠. 不忘其初, 謂不能改其舊也. 此語與論語小異.
(합, 하불야. 광간, 위지대이략어사. 진취, 위구망고원. 불망기초, 위불능개기구야. 차어여논어소리.)
→略다스릴략, 지혜, 슬기.
盍은 ‘어찌 아니 하느냐’의 뜻. 狂簡은 품은 뜻이 크고, 일을 슬기롭게 처리함을 이른다. 進取는 ‘높고 멀리 바라보며
구함’을 이른다. 不忘其初는 ‘옛일을 고치지 않함’을이른다. 이 말들은 논어와 조금 다르다.
孟子曰 [孔子 不得中道 而與之必也狂獧乎! 狂者進取, 獧者有所不爲也. 孔子豈不欲中道哉? 不可必得, 故思其次也.]
맹자왈 [공자 불득중도이여지, 필야광견호! 광자진취, 견자유소불위야. 공자개불욕중도재? 불가필득, 고사기차야.]
→獧성급할견.
맹자가 말하기를, “공자가 中道한 자를 얻지 못하고, 반드시 狂獧한 자와 함께 하였다. 狂者는 진취적이고, 獧者는 실천하지 않음이 있는 자이다. 공자가 어찌 中道를 원하지 않았으리오? 반드시 얻을 수 없으니, 고로 그 차선책을 생각한 것이다.”하였다.
不得中道, 至有所不爲, 據論語亦孔子之言. 然則孔子字下當有曰字. 論語道作行, 獧作狷。
(불득중도, 지유소불위, 거논어역공자지언. 연칙공자자하당유왈자. 논어도작항, 견작견.)
→狷성급할견.
不得中道부터 有所不爲까지는 논어에도 역시 공자의 말이라 거론했다. 그런 즉, 孔子라는 글자 아래에 당연히 曰자
가 있어야 한다. 논어에는 道를 行이라 쓰고, 獧을 狷이라 썼다.
有所不爲者, 知恥自好 不爲不善之人也。 孔子豈不欲中道以下, 孟子言也。
(유소불위자, 지치자호, 불위불선지인야。 공자개불욕중도이하, 맹자언야.)
실천하지 않음이 있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알아, 스스로 좋아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임을알아, 옳지 않은 일을 하지 않
는 사람이다. 孔子豈不欲中道 이하는 맹자의 말이다.
[敢問何如斯可謂狂矣?] 萬章問。
([감문하여사가위광의?] 만장문)
“어찌 이러한 것을 狂이라 하는지 감히 묻습니다.” 만장이 물었다.
曰 [如琴張 曾晳 牧皮者, 孔子之所謂狂矣.]
(왈 [여금장 증석 목피자, 공자지소위광의.] 晳밝을석.
말하기를, “琴張 曾晳 牧皮 같은 사람을 공자는 狂이라 일컬었다.”하였다.
琴張, 名牢, 字子張。 子桑戶死, 琴張臨其喪而歌。 事見莊子。 雖未必盡然, 要必有近似者。曾晳見前篇。
(금장, 명뇌, 자자장。 자상호사, 금장림기상이가。 사견장자。 수미필진연, 요필유근사자。증석견전편)
→牢우리뢰,감옥.
琴張의 이름은 牢이고, 자는 子張이다. 아들 桑戶가 죽자, 琴張은 상에 임하여 노래를 불렀다. 이 일은 莊子에 나타난
다. 비록 반드시 그렇게 다하지 못했어도, 반드시 비슷한 사람이있었다. 曾晳은 전편에 나타난다.
季武子死, 曾晳倚其門而歌, 事見檀弓。 又言志異乎三子者之撰, 事見論語。 牧皮, 未詳。
(계무자사, 증석의기문이가, 사견단궁。 우언지리호삼자자지찬, 사견논어。 목피, 미상)
→撰지을찬. 일.
季武子가 죽자 曾晳이 문에 기대어 노래를 불렀다. 이 일은 檀弓을 보라. 또한 말하기를뜻이 세 사람의 일과 다르다
하니, 이 일은 논어에 나타난다.
[何以謂之狂也?] 萬章問。
([하이위지광야?] 만장문)
“어찌하여 광이라 하였습니까?” 만장이 물었다.
曰 [ 其志嘐嘐然, 曰 古之人, 古之人 。 夷考其行而不掩焉者也。
(왈 [ 기지효효연, 왈 고지인, 고지인 。 이고기항이불엄언자야) →嘐뜻클효, 소리교.
말하기를, “그 뜻을 크고 주장을 크게 하여 고지인, 고지인 하였다. 행동을 고르게 살펴 덮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嘐嘐, 志大言大也。 重言古之人, 見其動輒稱之, 不一稱而已也。 夷, 平也。 掩, 覆也。言平考其行, 則不能覆其言也。
(효효, 지대언대야。 중언고지인, 견기동첩칭지, 불일칭이이야。 이, 평야。 엄, 복야。언평고기항, 칙불능복기언야)
→ 輒문득첩, 번번이.
嘐嘐는 뜻이 높고, 주장이 큼. 古之人을 두 번 말한 것은 행동을 따로 말한 것으로한 번만 말한 것이 아닐 뿐이다.
夷는 평평한 것. 掩은 덮는 것이다. 행동을 고르게 보는 것은, 그 말을 덮지 못한다는 말이다.
程子曰 [曾晳言志, 而夫子與之。 蓋與聖人之志同, 便是堯舜氣象也, 特行有不掩焉耳, 此所謂狂也. 狂者又不可得, 欲得不屑不潔之士而與之, 是獧也, 是又其次也] →便 곧, 즉.
(정자왈 [증석언지, 이부자여지。 개여성인지지동, 변시요순기상야, 특항유불엄언이, 차소위광야. 광자우불가득, 욕득불설불결지사이여지, 시견야, 시우기차야)
→掩가릴엄. 屑가루설. 달갑게 여길 설.
정자가 말하기를, “증석이 뜻을 말하니, 부자가 같이 하였다. 대개 성인과 뜻을 같이 하면, 곧 이는 요순의 기상과 같고, 특히 행동의 숨김이 없을 뿐이니, 이를 狂이라 한다. 광자를 또 얻지 못하면, 불결함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선비를 얻어, 같이 하려하니, 이를 견獧이라 하고, 이는 또 차선이다.”하였다.
此因上文所引, 遂解所以思得獧者之意。 狂, 有志者也。 獧, 有守者也。 有志者能進於道,有守者不失其身。 屑, 潔也。
(차인상문소인, 수해소이사득견자지의。 광, 유지자야。 견, 유수자야。 유지자능진어도,유수자불실기신。 설, 결야)
이는 윗 글을 인용함으로 인하여, 마침내 견자獧者의 뜻을 얻을 생각을 하는 것이다.광은 뜻이 있는 자이다. 견은
지킴이 있는 자이다. 뜻이 있는 자는 능히 道로 나아가고, 지킴이 있는 자는 그 몸을 잃지 않는다. 설은 깨끗함이다.
[孔子曰 { 過我門而不入我室, 我不憾焉者, 其惟鄕原乎! 鄕原, 德之賊也.} 曰 何如斯可謂之鄕原矣?]
([공자왈 { 과아문이불입아실, 아불감언자, 기유향원호! 향원, 덕지적야.} 왈 하여사가위지향원의?]
→憾한할감, 서운함.
“공자가 말하기를, ‘내 집 문 앞을 지나며 내 방으로 들어오지 않고 가더라도, 내가 서운해 하지 않는 자는 오직 향원鄕原뿐이라! 향원은 德의 賊이다.’하였으니, 이르기를 “어째서 이를 향원이라 이를 수 있습니까?”하였다.”
鄕原, 非有識者。 原, 與愿同。 荀子 原慤字 皆讀作愿, 謂謹愿之人也。 故鄕里所謂愿人,謂之鄕原。
(향원, 비유식자。 원, 여원동。 순자 원각자 개독작원, 위근원지인야。 고향리소위원인,위지향원)
→愿삼갈원, 공손하다. 慤성실할각.
鄕原은 배움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原은 愿과 같다. 순자는 원래 각愨자를 모두 원愿이라 읽고, 삼가고 공손한
사람을 이른다. 고향 마을의 원인愿人을 향원이라 이른다.
孔子以其似德而非德, 故以爲德之賊。 過門不入而不恨之, 以其不見親就爲幸, 深惡而痛絶之也。萬章又引孔子之言而問也。
(공자이기사덕이비덕, 고이위덕지적。 과문불입이불한지, 이기불견친취위행, 심악이통절지야。만장우인공자지언이문야)
공자는 덕과 비슷함은 덕이 아니라 하여 , 고로 德의 賊이라 한다. 문 앞을 지나면서 들어오지않음을 서운해 하지 않으
니, 친히 찾아와 보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기니, 크게 미워하고 뼈에 사무침이다. 만장은 또 공자의 말을 인용하고 물은 것
이다.
曰 [ { 何以是嘐嘐也? 言不顧行, 行不顧言, 則曰 古之人, 古之人. 行何爲踽踽凉凉? 生斯世也, 爲斯世也, 善斯可矣.} 閹然媚於世也者, 是鄕原也.]
(왈 [ { 하이시교교야? 언불고항, 항불고언, 칙왈 고지인, 고지인. 항하위우우량량? 생사세야, 위사세야, 선사가의.} 엄연미어세야자, 시향원야.]
→踽홀로갈 우. 踽踽凉凉 홀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모습. 혼자 외롭게 생활하다.閹然 몰래, 媚아첨할미,
말하기를, “ ‘어찌하여 이렇게 뜻이 크고 주장이 큰가요? 행동을 둘러보지 않고 말하고, 말을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니, 즉 말하기를 고지인, 고지인 하였다. 어찌 혼자서 외롭게 행동하였나? 이 세상에 태어나 세상을 위하여 착하게 사는 것이 가하다.’하니, 몰래 아첨하는 자이니, 이를 향원이라 한다.”
踽踽, 獨行不進之貌. 凉凉, 薄也, 不見親厚於人也. 鄕原譏狂者曰 何用如此嘐嘐然, 行不掩其言, 而徒每事必稱古人邪?
又譏狷者曰 何必如此踽踽凉凉, 無所親厚哉?
(우우, 독항불진지모. 량량, 박야, 불견친후어인야. 향원기광자왈 하용여차교교연, 항불엄기언, 이도매사필칭고인사?
우기견자왈 하필여차우우량량, 무소친후재?)
→譏나무랄기,원망하다.
踽踽는 홀로 행하여 나아가지 않는 모습. 凉凉은 가벼운 것. 사람들에게 친하고 후덕한 모습을 보지 않은 것, 향원
은 狂자를 나무라며 말하기를, 어찌 이와 같이 크고 커서, 말을 가리지 않고 행하고, 무리가 매사 古人이라 칭하는가?
또 견자를 나무라며 말하기를, 어찌 반드시 이렇게 외롭게 행동하여 친후함이 없는가?
人旣生於此世, 則但當爲此世之人, 使當世之人皆以爲善則可矣, 此鄕原之志也. 閹, 如奄人之奄, 閉藏之意也. 媚, 求悅於人
也. 孟子言此深自閉藏, 以求親媚於世, 是鄕原之行也.
(인기생어차세, 칙단당위차세지인, 사당세지인개이위선칙가의, 차향원지지야. 엄, 여엄인지엄, 폐장지의야. 미, 구열어인
야. 맹자언차심자폐장, 이구친미어세, 시향원지항야.)
사람이 이미 이 세상에 났으면 당연히 세상 사람을 위해야 하고,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선하게 함이 가하다 하니,
이는 향원의 뜻이다. 閹은 奄人의 奄과 같고, 닫고감춘다는 의미이다. 媚는 사람에게서 즐거움을 구하는 것이다. 맹자가
말하기를, 이 깊게 닫고 감춤은 세상에 친미를 구하는 것인데, 이것이 향원의 행동이다.
萬章曰 [ 一鄕皆稱原人焉, 無所往而不爲原人, 孔子以爲德之賊, 何哉? ]
(만장왈 [ 일향개칭원인언, 무소왕이불위원인, 공자이위덕지적, 하재? ]
만장이 말하기를, “한 마을이 모두 원인이라 칭하면, 가는 곳마다, 원인이 되지 않음이 없거늘, 공자는 덕의 적이 된다고 했는데, 어쩐 일입니까?” 하였다.
原, 亦謹厚之稱, 而孔子以爲德之賊, 故萬章疑之。
(원, 역근후지칭, 이공자이위덕지적, 고만장의지)
原은 역시 謹厚를 칭하는데, 공자는 德의 賊이라 하니, 고로 만장이 의문을 가진다.
曰 [ 非之無擧也, 刺之無刺也。 同乎流俗, 合乎汚世。 居之似忠信, 行之似廉潔。 衆皆悅之, 自以爲是, 而不可與入堯舜之道, 故曰德之賊也.]
(왈 [ 비지무거야, 자지무자야。 동호류속, 합호오세。 거지사충신, 항지사렴결。 중개열지, 자이위시, 이불가여입요순지도, 고왈덕지적야)
말하기를, “비난하려해도 예를 들 것이 없고, 풍자하려해도 풍자할 것이 없다. 세속에 동조하고, 오염된 세상과 하나가 되었다. 사이비 忠信에 머물고, 사이비 廉潔을 행한다. 대중이 모두 기뻐하고, 스스로 이를 위하여, 스스로 요순의 도와 함께 할 수 없으니, 고로 德의 賊이라 한다.”
呂侍講曰 [ 言此等之人, 欲非之則無可擧, 欲刺之則無可刺也.]
(려시강왈 [ 언차등지인, 욕비지칙무가거, 욕자지칙무가자야.]
여시강이 말하기를, “이러한 등의 사람은, 비난하려 해도 (예를) 들 것이 없고, 풍자하려 해도 풍자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流俗者, 風俗頹靡, 如水之下流, 衆莫不然也。 汚, 濁也。 非忠信而似忠信, 非廉潔而似廉潔。
(류속자, 풍속퇴미, 여수지하류, 중막불연야。 오, 탁야。 비충신이사충신, 비렴결이사렴결)
→頹靡무너짐.
流俗者는 풍속의 무너짐이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고, 대중은 그러하지 않음이없다. 汚는 흐린 것이다. 忠信이 아니
고 似而非 忠信이고, 廉潔이 아니고, 사이비 廉潔이다.
孔子曰 { 惡似而非者 惡莠, 恐其亂苗也。 惡佞, 恐其亂義也。 惡利口, 恐其亂信也。 惡鄭聲, 恐其亂樂也。 惡紫, 恐其亂朱也。 惡鄕原, 恐其亂德也.}
(공자왈 { 악사이비자 악유, 공기난묘야。 악녕, 공기난의야。 악리구, 공기난신야。 악정성, 공기난낙야。 악자, 공기난주야。 악향원, 공기난덕야)
→莠강아지풀류, 추하다, 잡초. 利口교묘한 말.
공자가 말하기를, “사이비를 미워하고, 잡초를 싫어하니, 씨앗을 어지럽히는 것을 두려워한다. 망녕됨을 미워하고, 의로움이 어지러워짐을 두려워한다. 교묘한 말을 싫어하고, 믿음이 어지러워짐을 두려워한다. 정나라의 음악을 미워하니, 음악이 어지러움을 두려워한다. 자색을 싫어하니, 붉은 색이 어지러움을 두려워한다. 원향鄕原을 미워하고, 덕이 어지러워짐을 두려워한다.”하였다.
孟子又引孔子之言以明之。 莠, 似苗之草也。 佞, 才智之稱, 其言似義而非義也。 利口,多言而不實者也。
(맹자우인공자지언이명지。 유, 사묘지초야。 녕, 재지지칭, 기언사의이비의야。 리구,다언이불실자야)
맹자는 또 공자의 말을 인용하고 밝혔다. 莠는 잡초와 비슷한 것. 佞은 재주와 지혜를 이르는데, 그 말은 사이비 義이
고, 義가 아니다. 利口는 말이 많고 내실이 없는사람이다.
鄭聲, 淫樂也。 樂, 正樂也。 紫, 間色。 朱, 正色也。 鄕原不狂不獧, 人皆以爲善,有似乎中道而實非也, 故恐其亂德。
(정성, 음낙야。 낙, 정낙야。 자, 간색。 주, 정색야。 향원불광불견, 인개이위선,유사호중도이실비야, 고공기난덕)
鄭聲은 음란한 음악이다. 樂은 정악이다. 紫는 붉은 색과 비슷한 간색이다. 朱는 붉은 정색이다. 향원은 狂도 아니고,
獧도 아니며, 사람이 모두 좋아하지만, 중도와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아니며, 고로 덕을 어지럽히는 것을 두려워함이다.
君子反經而已矣。 經正, 則庶民興。 庶民興, 斯無邪慝矣.]
(군자반경이이의。 경정, 칙서민흥。 서민흥, 사무사특의.] )
→經변하지 않는 常道. 邪慝 요사스럽고 간특하다.
군자는 변하지 않는 常道로 돌이킬 뿐이다. 상도가 바르면 서민이 일어날 것이다. 서민이 일어나면 이것은 사특함이 없는 것이다.
反, 復也。 經, 常也, 萬世不易之常道也。 興, 興起於善也。 邪慝, 如鄕原之屬是也。
(반, 부야。 경, 상야, 만세불역지상도야。 흥, 흥기어선야。 사특, 여향원지속시야)
反은 돌이키는 것이다. 경經은 항상을 의미로, 만세토록 변하지 않는 상도이다. 興은선함이 일어나는 것이다. 邪慝은
향원이 이에 속한다.
世衰道微, 大經不正, 故人人得爲異說以濟其私, 而邪慝幷起, 不可勝正, 君子於此, 亦復其常道而已。
(세쇠도미, 대경불정, 고인인득위리설이제기사, 이사특병기, 불가승정, 군자어차, 역부기상도이이)
세상이 쇠하고, 도가 미미해지고, 큰 상도가 바르지 못하니, 고로 사람마다 다르게주장하여 사욕을 채우고, 사특함이
일어나지만, 바름을 이길 수 없으니, 군자는 이러함에 역시 다시 상도를 돌이킬 따름이다.
常道旣復, 則民興於善, 而是非明白, 無所回互, 雖有邪慝, 不足以惑之矣。
(상도기부, 칙민흥어선, 이시비명백, 무소회호, 수유사특, 불족이혹지의)
상도가 이미 돌이켜지면, 백성의 선이 일어나고, 옳고 그름이 명백해지고, 서로 돌아감이 없으니, 비록 사특함이 있어
도, 의문을 가짐이 족히 없는 것이다.
○尹氏曰 [ 君子取夫狂獧者, 蓋以狂者志大而可與進道, 狷者有所不爲, 而可與有爲也。 所惡於鄕原, 而欲痛絶之者, 爲其似是而非, 惑人之深也。 絶之之術無他焉, 亦曰反經而已矣.]
(윤씨왈 [ 군자취부광견자, 개이광자지대이가여진도, 견자유소불위, 이가여유위야。 소악어향원, 이욕통절지자, 위기사시이비, 혹인지심야。 절지지술무타언, 역왈반경이이의)
윤씨가 이르기를, “군자가 무릇 광견狂獧자를 취함은, 대개 광狂자는 뜻이 크고, 더불어 도道로 나아갈 수 있고, 견狷자는 실천하지 않음이 있으나, 더불어 함이 있는 것이 가하다. 향원을 미워하는 바와, 통절하고자 하는 자는 사이비 옳고 그름으로, 사람의 의혹은 심해진다. 끊는 방법은 다른 것이 없으니, 역시 常道로 돌아가는 것 뿐”이라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