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에세이
천 개의 바람
(이 글을 세상에 모든
엄마들에게 바칩니다)
발아래 세상을 자식위한 마음 하나 가지고 살 수 있다는 엄마는
단 한 번의 따사로움으로 봄이 오지 않듯이 고달픔조차 내 딸을 키우기 위해 달게 삼키며
그 흔한 미장원 한 번 가지 않고 평생을 쪽머리로 사신
그런 어제의 물음에서 시작된 엄마와 나의 이야기를 써보려 합니다
“엄만 왜 꼭 내 손을 잡을 때 늘 두 손으로 포개어 잡아?“
“내 새끼 날아갈까 그라제”
바람 불면 날아갈까 엄마의 두 손을 포갠 사이에 내 손을 꼭 끼워 넣어놓곤
내 새끼 모습 잊어버릴까 봐 엄마는 잠들어도 눈을 감지 않는 거라며
세상에 굴러다니는 온갖 생각들로 밤을 새운 엄마는 산 시간을 딛고 간
어느 생각 하나와 마주치고 있었나 봅니다
“ 니 기억나냐? 엄마한테 장독대 깼다고 혼난 거?“
“혼날까 봐 개집에서 잠든 내가 깰까 봐 개집을 들어 안방 아랫목에 놓아뒀잖아“
"엄마 눈엔 뭘 해도 이쁜 우리 딸이었제“
“엄마가 살면서 가장 힘들 때는 언제였어?”
“이 엄마는 내 새끼가 힘들어할 때가 제일 힘들었제”
세월마다 죄지은 듯 숨죽이며 살던 엄마는
그렇게 오랜 기억을 끄집어내고 있었지요
“대학 다닌다고 서울서 혼자 밥해 먹고
댕기는데 엄마라는 게 챙겨주지도 못하고 너만 보면 제일로 그게 미안타“
“미안하다는 소리 좀 그만해 엄만 그 말 밖에 몰라“
자신을 엄마라고 불러주는 딸이 있는 한 물 위에 바람이 일듯이
나에게 믿음의 나무가 되어 주시던 엄마를 더 기억하고 싶었나 봅니다
“어릴 적에 학교 끝나면 늘 엄마가 있는 선착장으로 가서 엄마를 찾곤 했었지“
“ 니 학교 보내놓고 삶은 국수를 광주리에 이고 펄펄 끓는 멸칫국물을
주전자에 담아 선착장으로 장사 댕겼었제….“
“그때 내가 배고프다며 울었던 것도 기억나?“”
“ 내가 미친년이지..
돈이 좋다고 내 새끼 먹을 것도 안 냉겨놓고 다 팔아버리는 엄마가 어딨겠냐“
스스로와 부딪치는 절규의 하루살이가 거미줄에 걸린 바둥거림 같았지만
자식을 위해 밥 짓고 빨래하고 허드렛일까지 스스로 고통스러워하는 일이
삶 속에 심호흡 한번하고 부르는 노래가 된 지 오래였던 엄마가
갯바람 목에 두르고 새벽을 열고 나온 하루를
두 손 만으로 살아낸다는 게 어떤 거란 걸 몰랐던 나는
질투 난 바람만이 서성이는 거리를 따라
저녁놀을 등진 그림자를 끌어안고 울면서
집으로 오던 기억을 떠올려 보고 있었습니다
엄마라는 이유로 세상에 서서 세상이 모두 내게 등을 돌려도
내 편이 되어줄 단 한 사람
그 사람이 엄마이기에 자식은 내 안에 부르지 못한
노래가 된 엄마의 삶엔 무엇하나 자신이 먼저인 적이 없이
자식 앞에 엄마의 삶은 늘 덤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전에 나라에서 받았던 건강검진 거기에서 서류가 날아왔는디
도통 글자가 작아서 보여야 말이제“
“다음 달에 내려가면 내가 봐 줄게”
영원히 아침이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모진 하루를 보내는 엄마의 일생은
모르고 살았어도 되었을 것들을 알아가야만 했나 봅니다
해 질 녘 지친 몸으로 들어서는 보금자리조차 힘든 엄마에겐
“여기가 바닥이겠지”
할 때마다 일그러진 아픔들이 얼굴을 들고 따라 나온 것도 모자라
초가집 옆에 붙은 텃밭 하나 딸랑 남겨놓고 땅 팔아 오빠 주고
내겐 준 게 없어 늘 미안하다며 자식에 대한 열정 하나가
팔십이 다 되어가는 나이를 잊게 만들었기에
고추장...김치….된장장아찌들을 이고 지고 와서는
“올해가 마지막인겨“
라는 말을 9년째 하시며 슬픔이 없는 사람처럼
내미시는 건강검진 종이를 읽어가던 나는
“엄마한테 부탁할 게 있어 ”
“뭔디?“
“다시 태어나면 엄마 같은 거 절대하지 않기로 약속해”
“엄마는 다시 태어나도 니엄마 하고 잡은디..."
엄마라는 아름다움은 세월이 지날수록 지금도 자라날 수 있는지
엄마가 아픈 이유를 읽어가는 내 눈이 흔들리는 걸 보며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회라며 말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고통은 산자의 몫이라며….
하늘 문이 열린 자리에 노랗게 익어가는 홍씨 하나를 보며
“저걸 따서 울 엄마 입에다 넣어줄까“
라는
자식 재롱에 웃음꽃 피우던 얼굴엔이젠 주름 꽃이 피웠고
해마다 담아 보내주시는 김치와 함께 엄마의 사랑도
그렇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엄마.. 내일 아침에 내려가“
“토카이랑 돼지 새끼들 밥도 줘야 해서 나 갈란다“
한사코 혼자 간다며 길을 나서는 엄마 뒤를 몰래 따라나선 내 눈에
엄마는 밤새 슬픔에 기대어 선 사람처럼
대합실에서 별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부지런한 계절이 몇 번 바뀌는 동안
“우리 엄마처럼 착한 마음 갖게 해달라고 기도했어“
슬픔이 따뜻할 순 없는 건지
슬픔으로 슬픔을 쓰다듬기엔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엄마는 자신이 죽고 난 뒤 울고 있을 딸이 마음 아파
딸과 찍은 사진 속 얼굴을 까만 매직으로 지우고는
물속에서 나를 보는 얼굴이 있듯
생의 마지막 과제 죽음이 혼자만의 슬픔이 아니길 기도하며
천개의 바람이 되어 떠나갈 밤하늘을 올려다보다
바람이 누워 잠든 자리 코끝에 매달린 슬픔으로
지난 삶을 남겨둔 채
바람이 남긴 지문을 더듬어 지는 노을로 물든 눈물이
부르다만 엄마의 계절은 사랑이었습니다
엄마라는인연이 준 기억에 끝에서...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