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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하나님
(고린도후서 1장)
성경을 배우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주님의 뜻에 맞는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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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란
사람의 생각, 사람의
시각을 하나님의 생각,하나님의 시각으로 바꾸어 가는 것입니다.
믿음이 병들면
병든 삶을 살게 되고,
믿음이 건강하면 건강한 삶을 살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바뀌고
시각이 바뀌면, 생활이 바뀌고,
실패가 성공으로 바꾸어지는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고난은 누구에게나 찾아 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사람도 고난에서 예외된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도 많은 고난을 당하셨고
사도 바울과 같은 신앙의 위인도 심한 고난을 당했으며
예수님의 제자들과 믿음의 모든 선진들이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복음을
증거 하다가 고난이 넘쳤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일을
감당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위로도 넘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환난을 당하는
성도들을 위로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환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위로를 체험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고난과
환란 중에 있었던 성도를 위로하신 이유는
고난과 환란을 당한 사람을 위로 하라고 위로해 주신 것입니다.
환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한 사람만이 환난 당하는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세상 어려움 속에 던져진 우리,
낙심하고 절망하고 상처입고 삶이 버거운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끊임없이 격려와 사랑의 위로를 보내십니다.
1. 환난 중에 위로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고린도후서 1 :1-20
바울은 자신의
뜻이나 결심으로 사도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전에 예수님을
핍박하고 하나님을 대적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뜻을 따라 강권적으로 그를 부르셨고 이 길로 이끄셨습니다.
그는 복음 전파를 위해
그리스도 예수의 보냄을 받았습니다.
복음을 위해 택함을 입었고 복음을 전하게 하려고 보냄을 받았습니다.
바울에게는 ‘형제 디모데’가 있었습니다.
그는 주 안에서의 형제요 바울의 조력자였습니다. 디모데는 자식이
아버지에게 하는 것같이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해 수고한 자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헤와 평강이 함께 하기를 간절히 간구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
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9고린도후서 1 :3-40
이 세상은 고통과 환난, 낙망과 슬픔이 많은
세상이기 때문에 위로가 필요합니다. 사람의 위로는 한계가
있지만.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위로는 무한한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에
평안과 용기를 주실 뿐만
아니라 그의 뜻을 따라 능력으로 환경을 변화시키기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환난 중에 위로하신 것은 환난
중에 있는 다른 이들을 위로하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고난 중에 하나님의 위로를
체험한 자마다 고난당하는 다른 성도에게
하나님의 위로를 전해주고 위로하며 격려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9고린도후서 1 :5)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들을
넘치게 경험했지만, 동시에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즉 그리스도께서 공급하시는 위로도 넘치게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뜻 가운데 고난들도 허락
하시지만, 결코 자기 백성을 미워하시거나 방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정하신 때에 풍성한 위로로
그들을 위로하십니다. 고난도 받고 위로도 받는 것은
신앙생활에 유익할 뿐 아니라, 특히 남을 돕는 데 유익합니다.
"우리가 환난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된 것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고린도후서 1 :6-7)
사도들이 환난 중에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던 것같이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환난 중에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위로로 말미암아 그들은
어떠한 고난도 견딜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환난 중에 사도들을 위로하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오늘도 우리에게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하다”는 말씀은 환난받는
성도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있을 것이라는 소망이 확실함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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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도우심과 구원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시시때때로 고난이 있으나 하나님의 위로도 확실히 있을 것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1 :8-9)
바울은 그와 디모데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언급합니다.
그들은 힘에 겹도록 심한 고생을 했고 살 소망까지 끊어졌었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문앞에까지 간
환난이었습니다. ‘이제는 죽었구나’ 하는 절망의
때였습니다. 그것을 바울은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표현하였습니다.
바울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고 때때로
성도들에게도이런 극심한 고난이 닥쳐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적 모든 기쁨과 위로의 줄을 다 끊어
버리시고 오직 하나님 앞에 일대일로 서게 하시는 때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고난에는 몇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고난은 성도의 인격을 거룩하게 만듭니다.
고난은 성도를 겸손하게 만듭니다.그러나 고난의 주요한 목적은,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성도의 믿음은 많은 고난들을 통해 강해지고 견고해지는 것입니다.
2. 주 예수의 날에 얻을 자랑.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1 :10-11)
과거에 함께 하신 하나님,
지금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미래에도 함께 하실
것을 확신하며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가 오늘 우리 곁에 계십니다.
성도들은
복음사역자들을 위해 기도와 간구로 협력
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방법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
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고린도후서 1 :12)
바울은 세 가지 자랑이 있습니다.
첫째는 세상과 구별된 거룩함입니다. 세속화 되지 않았습니다.
죄를 짓지 않고 거룩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경건이요.
윤리적으로 순결한 것입니다. 신앙 생활에서 핵심은 거룩입니다.
둘째는 진실한 것입니다. 성공한 것이
자랑이 아니라 진실한 것입니다. 가난한 것이 죄가
아니라 진실하지 못한 것이 죄입니다. 공부못한 것이 죄가 아니라
게으른 것이 죄입니다. 자녀에게 정직함을 유산으로 주어야합니다.
셋째는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않고 은혜로 행한 것이
자랑입니다. 그는 세상의 지혜를 버리고 은혜의 복음만을
전했습니다. 보상과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오직 은혜로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알아주고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초라하고 추한 것입니다. 오직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감옥에 가는 것도 풍랑을 만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울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소중한 자랑입니다
육체의 지혜는 간교하고 기회주의적이며
위선적입니다. 그것은 자기에게 유리한 대로
처신하며 겉보기는 그럴 듯하나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진실한 척하나 진실이 없고,
의로운 척하나 의롭지 못하고, 사랑하는 척하나 사랑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행동 원리는 다릅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간교하거나 기회주의적이지 말고
이중적이거나 위선적이지 말고 사람의 꾀나 세상적 수단 방법으로
하지 말고 단순하고 솔직하며 진실하고 신실하게 처신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행해야 합니다.
'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끝까지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너희가 대강 우리를 아는 것같이 우리 주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것이라"
(고린도후서 1 :13-14)
바울의 심정은 편지로 다 표현되었습니다.
그들이 읽고 아는 것이 바울의 마음 전부이었습니다.
숨겨진 다른 마음은 없었습니다. 이것이 솔직하고 진실함입니다.
오직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교인들의 자랑이 되는 것을 원했습니다. 진실한
성도들은 마지막 날에 전도자들에게 영광과 자랑이 될 것입니다.
3.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너희를 지나 마게
도냐에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보내 줌으로 유대로 가기를 경영하였으니 이렇게 경영할
때에 어찌 경홀히 하였으리요 혹 경영하기를 육체를 좇아
경영하여 예 예 하고 아니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었겠느냐"
(고린도후서 1 :15-17)
바울의 본래의 여행 계획은
고린도에 갔다가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고린도에
가서 유대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이런 여행
계획은 쉽게‘예’하고 쉽게 ‘아니오’하는 경솔한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육신적, 인간적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또 말합니다.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고린도후서 1 :18-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그는 하나님께서 믿음직하시며
신실하시듯이 자신의 말도 경솔함이나
불신실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신실함에서 나온 것이라고 증거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전파한 예수님의 경우에도
적용됩니다. 예수님은 경솔하게 예 하고 아니오 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는 불신실하신 분이 아니셨습니다.
‘저에게는 예만 되었다’는 말은 ‘오직 저에게는 예가 있었다’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예’ 하시고 끝까지, 죽기까지 그것을 지키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고린도후서 1 :20)
하나님의 약속’은
구원의 약속 곧 사죄와 칭의의
약속이며 천국과 부활의 약속입니다. 그것은 영육의 복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으로 성취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이며
아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고린도후서 1 :21-22)
사도바울을 고린도
성도들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
튼튼히 서게 하시고,또 바울에게 사명을 맡기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를 자기의 것이라는 표로
도장을 찍으시고, 그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신 표시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목자로 삼으신 표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는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산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뜻에 아멘해야합니다.
"내가 내 영혼을 두고 하나님을 불러
증거하시게 하노니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고린도후서 1 :23-24)
기쁨을 더하여 주고.고린도 교회가 기쁨을 잃지 않도록 돕고자 합니다.
고린도교회에
방문하지 않고자합니다.
바울의 덕성이 나타납니다. 바울은 이들을 아끼려 한다고 합니다.
신앙을 잃어버릴까봐 비판하는 체질이 될까봐
가지 않습니다. 분쟁하다 보면 단점만 봅니다. 비판적
시각이 점점 발달합니다. 혹시라도 손해가 되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합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많습니다.
좀더 선한 사람이 많아진 후에
방문하고자 합니다. 많은 사람이 죄인들과
어울리는데 사도 바울이 가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을 책망해야 합니다.
바울은 그들을
아끼려고 합니다.
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비판보다 화목을 원합니다.
바울은 스스로 해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회개하고 스스로 화해하기를 원합니다. 바울은 그후에
기쁨을 더하여 주고.고린도 교회가 기쁨을 잃지 않도록 돕고자 합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세상 어려움 속에 던져저 낙심하고
절망하고 상처입고 삶이 버거운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끊임없이 격려와 사랑의
위로를 보내 주시는 줄 믿고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체험한 자만이 고난에 처해있는
이웃을 위로할 수 있는 줄 믿사오니
아버지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하시고
그 능력을 힘입어 이웃을 위로할 수 있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될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1. 1. 20. -샬롬- 예수님 사랑합니다.
카나다 캘거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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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생각, 사람의 시각을
하나님의 생각,하나님의 시각으로 바꾸어 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