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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법(麤法)은 금경(今經)이 아니로다, 금경(今經)이 아니면 방편(方便)이며 권문(權門)이니라. 방편권문(方便權門)의 교(敎)란다면 성불(成佛)의 직도(直道)가 아니고, 성불(成佛)의 직도(直道)가 아니면 다생광겁(多生曠劫)의 수행(修行)을 거쳐도 성불(成佛)되는 것이 아니므로 일생성불(一生成佛)은 이루기 어려우니라. 그러므로 묘호(妙法)라고 부르고 렌게(蓮華)라고 읽을 때에는 나의 일념(一念)을 가리켜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이름한다고 깊이 신심(信心)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대저 무시(無始)의 생사(生死)를 멈추고 이번에 결정(決定)코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증득(證得)하려고 생각한다면 모름지기 중생본유(衆生本有)의 묘리(妙理)를 관(觀)할지어다. 중생본유(衆生本有)의 묘리(妙理)란·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 이것이니라. 그러므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한다면 중생본유(衆生本有)의 묘리(妙理)를 관(觀)하는 것으로 되느니라."구원실성(久遠實成)의 석존(釋尊)과 개성불도(皆成佛道)의 법화경(法華經)과 우리들 중생(衆生)의 셋은 전(全)혀 차별(差別)이 없다고 깨달아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바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이라고 하느니라."(어서 1337쪽)중생(衆生)의 마음이 더러워지면 토(土)도 더러워지고 마음이 깨끗하면 토(土)도 청정(淸淨)하다고 해서 정토(淨土)라 하고 예토(穢土)라 함도 토(土)에 둘의 차이(差異)가 없으며, 오직 우리들의 마음의 선악(善惡)에 의(依)한다고 쓰여 있다.
중생(衆生)이라 함도 부처라 함도 또한 이와 같으니 미혹(迷惑)할 때는 중생(衆生)이라 이름하고 깨달을 때는 부처라 이름했느니라.
비유컨대 암경(闇鏡)도 닦으면 옥(玉)으로 보이는 것과 같다. 지금(只今)도 일념무명(一念無明)의 미심(迷心)은 닦지 않은 거울이며, 이를 닦으면 반드시 법성진여(法性眞如)의 명경(明鏡)이 되느니라.
깊이 신심(信心)을 일으켜 일야조모(日夜朝暮)로 또한 게으름 없이 닦을지어다.
어떻게 닦는가 하면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을 이를 닦는다고 하느니라대저 묘(妙)란 무슨 뜻이뇨. 오직 나의 일념(一念)의 마음이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묘(妙)라고 하며 불가사의(不可思議)란 마음도 미치지 못하고 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즉 일어나는 바의 일념(一念)의 마음을 찾아보면 있다고 말하려 하면 색(色)도 질(質)도 없고, 또한 없다고 말하려 하면 갖가지로 마음이 일어나니, 유(有)라고 생각할 수도 없고 무(無)라고 생각할 수도 없느니라. 유무(有無)의 두말도 미치지 못하고 유무(有無)의 두 마음도 미치지 못하며, 유무(有無)가 아니면서도 또한 유무(有無)에 두루 미치어 중도일실(中道一實)의 묘체(妙體)로서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묘(妙)라고 이름하고, 이 묘(妙)한 마음을 이름하여 법(法)이라고도 하느니라.
일생성불초(一生成佛抄) 가마쿠라에서 39세에 술작 383~4쪽말법(末法)에 태어나서 법화경(法華經)을 홍통(弘通)하는 행자(行者)는 삼류(三類)의 적인(敵人)이 있어 유죄(流罪)와 사죄(死罪)에 이르리라. 그러할지라도 참고 견디어 홍통(弘通)하는 자(者)를 옷을 가지고 석가불(釋迦佛)이 덮어 주실 것이로다.
제천(諸天)은 공양(供養)을 할 것이로다. 어깨에 올려 놓고 등에 업을 것이로다, 대선근(大善根)의 자(者)로다, 일체중생(一切衆生)을 위(爲)해서는 대도사(大導師)일지니라고. 석가불(釋迦佛) 다보불(多寶佛)·시방(十方)의 제불(諸佛)·보살(菩薩)·천신(天神)·칠대(七代)·지신오대(地神五代)의 신(神)들·귀자모신(鬼子母神)·십나찰녀(十羅刹女)·사대천왕(四大天王)·범천(梵天)·제석(帝釋)·염마법왕(閻魔法王)·수신(水神)·풍신(風神)·산신(山神)·해신(海神)·대일여래(大日如來)·보현(普賢)·문수(文殊)·일월(日月) 등(等)의 제존(諸尊)들에게 칭찬받음으로써 무량(無量)의 대난(大難)마저도 참고 견디었느니라. 칭찬을 받게 되면 자신(自身)이 손상(損傷)되는 것도 돌아보지 아니하며 비방(誹謗)을 당할 때는 또한 자신(自身)이 파멸(破滅)됨도 알지 못하고 행동(行動)하는 것은 범부(凡夫)의 예상사(例常事)니라.
제법실상초 諸法實相抄 사도에서 52세에 술작 1359~1360쪽비유품(譬喩品)에 가로되 「만약 그 죄(罪)를 설(說)한다면 겁(劫)을 다해도 진(盡)하지 못함이라」고 함은 이것이니라. 또한 니치렌(日蓮)을 공양(供養)하고 또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弟子檀那)가 되심은 그 공덕(功德)을 부처의 지혜(智慧)로써도 다 헤아리지 못하느니라. 경(經)에 가로되 「부처의 지혜로써 주량(籌量)할지라도 다소(多少)의 그의 변(邊)을 알지 못함이라」고 하였느니라니치렌(日蓮)을 공양(供養)하고 또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弟子檀那)가 되심은 그 공덕(功德)을 부처의 지혜(智慧)로써도 다 헤아리지 못하느니라.
말법(末法)에 태어나서 법화경(法華經)을 홍통(弘通)하는 행자(行者)는 삼류(三類)의 적인(敵人)이 있어 유죄(流罪)와 사죄(死罪)에 이르리라. 그러할지라도 참고 견디어 홍통(弘通)하는 자(者)를 옷을 가지고 석가불(釋迦佛)이 덮어 주실 것이로다.말법(末法)에 와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를 홍통(弘通)하는 자(者)는 남녀(男女)를 가리지 말지니라.
모두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출현(出現)이 아니고서는 부르기 어려운 제목(題目)이니라.
처음엔 니치렌(日蓮) 한 사람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불렀으나 이인(二人)·삼인(三人)·백인(百人) 이렇게 차례로 불러서 전(傳)하느니라. 미래(未來)도 또 그러하리라, 이 어찌 지용(地涌)의 의(義)가 아니리오.
더구나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때는 일본일동(日本一同)으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게 될 것은 대지(大地)를 과녁으로 하는 것과 같으리라.
어떠한 일이 있을지라도 법화경(法華經)에다 이름을 세우고 몸을 맡기시라. 어떠한 일이 있을지라도 법화경(法華經)에다 이름을 세우고 몸을 맡기시라. 석가불(釋迦佛) 다보불(多寶佛)·시방(十方)의 제불(諸佛)·보살(菩薩)·허공(虛空)에서 이불(二佛)이 서로 수긍(首肯)하여 정(定)하신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오로지 말법(末法)의 영법구주(令法久住) 때문이니라. 이미 다보불(多寶佛)은 반좌(半座)를 나누어서 석가여래(釋迦如來)께 드릴 때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기(旗)를 꽂아 나타내시고, 석가(釋迦)·다보(多寶)의 이불(二佛)이 대장(大將)으로서 정(定)하신 일이 어찌 헛되리오. 이는 오로지 우리들 중생(衆生)을 성불(成佛)시키고자 하는 담합(談合)이시니라.
제법실상초(諸法實相抄) 사도에서 52세에 술작 1360쪽대저 이 법화경(法華經)을 펴서 배견(拜見)하노라면 「여래(如來)는 즉 그를 위해 의복(衣服)으로써 이를 덮어 주시고 또한 타방(他方) 현재(現在)의 제불(諸佛)이 호념(護念)하는 바가 되리라」 등(等) 운운(云云). 경문(經文)의 뜻은 동서남북(東西南北)·팔방(八方)· 및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의 외(外)·사백만억나유타(四百萬億那由佗)의 국토(國土)에 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이 잇따라와서 충만(充滿)하시었다, 하늘에는 별과 같이·땅에는 도마(稻麻 : 벼와삼)와 같이 열(列)지어 계시며,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수호(守護)하시는 것을 비유하면 대왕(大王)의 태자(太子)를 모든 신하(臣下)가 수호(守護)하는것과 같다. 단(但) 사천왕(四天王)의 동류(同類)가 수호(守護)하여 주시는 것도 황송한 일인데, 일체(一切)의 사천왕(四天王)·일체(一切)의 성수(星宿)·일체(一切)의 일월(日月)·제석(帝釋)·범천(梵天) 등(等)이 수호(守護)하시니 만족(滿足)해야 할 일이니라. 게다가 일체(一切)의 이승(二乘)·일체(一切)의 보살(菩薩)·도솔내원(兜卒內院)의 미륵보살(彌勒菩薩)·가라타산(伽羅陀山)의 지장(地藏)·보타락산(補陀落山)의 관세음(觀世音)·청량산(淸凉山)의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등(等)·각각(各各) 권속(眷屬)을 구족(具足)하여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수호(守護)해 주심으로써 만족(滿足)해야 할 것인데·또한 황송하게도 석가(釋迦)·다보(多寶)·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이 친(親)히 자진(自進)해서 내림(來臨)하시어·주야(晝夜) 십이시(十二時 : 24시간)동안 수호(守護)해 주심에 대한 황송함은 말로 다하지 못하노라.
우에노전모친답서(上野殿母親答書) 미노부에서 59세에 술작 1570쪽, 별칭 : 中陰書청량산(淸凉山)의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등(等)·각각(各各) 권속(眷屬)을 구족(具足)하여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수호(守護)해 주심으로써 만족(滿足)해야 할 것인데·또한 황송하게도 석가(釋迦)·다보(多寶)·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이 친(親)히 자진(自進)해서 내림(來臨)하시어·주야(晝夜) 십이시(十二時 : 24시간)동안 수호(守護)해 주심에 대한 황송함은 말로 다하지 못하노라.
우에노전모친답서(上野殿母親答書) 미노부에서 59세에 술작 1570쪽, 별칭 : 中陰書제목 : 제가 남묘호렌게쿄 제목을 봉창할 때 거의 매일 읽고 힘을 내고있는 어서말씀인데 중차대한 이때에 맞취 다시 함께 배독코자함.
《 본문어서 》
대저 이 법화경(法華經)을 펴서 배견(拜見)하노라면 「여래(如來)는 즉 그를 위해 의복(衣服)으로써 이를 덮어 주시고 또한 타방(他方) 현재(現在)의 제불(諸佛)이 호념(護念)하는 바가 되리라」 등(等) 운운(云云). 경문(經文)의 뜻은 동서남북(東西南北)·팔방(八方)· 및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의 외(外)·사백만억나유타(四百萬億那由佗)의 국토(國土)에 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이 잇따라와서 충만(充滿)하시었다, 하늘에는 별과 같이·땅에는 도마(稻麻 : 벼와삼)와 같이 열(列)지어 계시며,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수호(守護)하시는 것을 비유하면 대왕(大王)의 태자(太子)를 모든 신하(臣下)가 수호(守護)하는것과 같다. 단(但) 사천왕(四天王)의 동류(同類)가 수호(守護)하여 주시는 것도 황송한 일인데, 일체(一切)의 사천왕(四天王)·일체(一切)의 성수(星宿)·일체(一切)의 일월(日月)·제석(帝釋)·범천(梵天) 등(等)이 수호(守護)하시니 만족(滿足)해야 할 일이니라. 게다가 일체(一切)의 이승(二乘)·일체(一切)의 보살(菩薩)·도솔내원(兜卒內院)의 미륵보살(彌勒菩薩)·가라타산(伽羅陀山)의 지장(地藏)·보타락산(補陀落山)의 관세음(觀世音)·청량산(淸凉山)의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등(等)·각각(各各) 권속(眷屬)을 구족(具足)하여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수호(守護)해 주심으로써 만족(滿足)해야 할 것인데·또한 황송하게도 석가(釋迦)·다보(多寶)·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이 친(親)히 자진(自進)해서 내림(來臨)하시어·주야(晝夜) 십이시(十二時 : 24시간)동안 수호(守護)해 주심에 대한 황송함은 말로 다하지 못하노라.
우에노전모친답서(上野殿母親答書) 미노부에서 59세에 술작 1570쪽, 별칭 : 中陰書유배(流配)의 몸이지만 희열(喜悅)은 한량(限量)없도다. 기뻐도 눈물이오, 괴로워도 눈물이라, 눈물은 선악(善惡)에 통(通)하는 것이니 저 천인(千人)의 아라한(阿羅漢)들이·부처님의 일이 생각이 나서 눈물을 흘렸고, 눈물을 흘리면서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라고 부르시니, 천인(千人)의 아라한(阿羅漢) 중(中)의 아난존자(阿難尊者)는 울면서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고 대답하시었다. 나머지 구백구십인(九百九十人)은 눈물을 벼루의 물로 하여 또 여시아문(如是我聞) 위에도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라고 써 두었느니라. 지금 니치렌(日蓮)도 그와 같도다. 이와 같은 몸이 된 것도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 칠자(七字)를 홍통(弘通)하기 때문이로다. 석가불(釋迦佛)·다보불(多寶佛)이 미래(未來)의 일본국(日本國)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을 위(爲)하여 남겨 놓으신 바의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이와 같이 나도 들었기 때문이니라.현재(現在)의 대난(大難)을 생각하는데도 눈물이오, 미래(未來)의 성불(成佛)을 생각하여 기뻐함에도 눈물을 막을 길이 없느니라.
새와 벌레는 울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데 니치렌(日蓮)은 울지 않지만 눈물이 마르지 않느니라.
이 눈물은 세간(世間)의 일이 아니라, 다만 오로지 법화경(法華經) 때문이로다. 만약 그렇다면 감로(甘露)의 눈물이라고도 해야 하리라.
일염부제(一閻浮提) 제일(第一)의 어본존(御本尊)을 믿으실지어다. 기필(期必)코 기필(期必)코 신심(信心)을 강성(强盛)히 하여 삼불(三佛)의 수호(守護)를 받도록 하시라.
행학(行學)의 이도(二道)를 힘쓸지어다. 행학(行學)이 끊어지면 불법(佛法)은 없느니라. 나도 행(行)하고 남도 교화(敎化)하시라. 행학(行學)은 신심(信心)에서 일어나는 것이로다. 힘이 있는 한 일문일구(一文一句)라도 설(說)할지니라일염부제(一閻浮提) 제일(第一)의 어본존(御本尊)을 믿으실지어다. 기필(期必)코 기필(期必)코 신심(信心)을 강성(强盛)히 하여 삼불(三佛)의 수호(守護)를 받도록 하시라. 행학(行學)의 이도(二道)를 힘쓸지어다. 행학(行學)이 끊어지면 불법(佛法)은 없느니라. 나도 행(行)하고 남도 교화(敎化)하시라. 행학(行學)은 신심(信心)에서 일어나는 것이로다. 힘이 있는 한 일문일구(一文一句)라도 설(說)할지니라,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공공근언(恐恐謹言).
제법실상초(諸法實相抄) 사도에서 52세에 술작 1361쪽묘각(妙覺)의 석존(釋尊)은 우리들의 혈육(血肉)이니라. 인과(因果)의 공덕(功德)은 골수(骨髓)가 아니겠느뇨. 보탑품(寶塔品)에 가로되 「대저 능(能)히 이 경법(經法)을 호지(護持)하는 자(者)는 즉 이는 나와 그리고 다보(多寶)를 공양(供養)함이니라, 내지(乃至) 또 모든 여기에 오신 화불(化佛)의 모든 세계(世界)를 장엄(莊嚴)하고 광식(光飾)하시는 자(者)를 공양(供養)함이니라. 석가(釋迦)·다보(多寶)·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은 우리들의 불계(佛界)이니라. 그의 뒤를 계소(繼紹)하여 그 공덕(功德)을 수득(受得)함이니 수유(須臾)도 이를 들으면 즉(卽)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구경(究竟)할 수 있음」이란 이것이로다.
관심의 본존초(觀心本尊抄) 사도에서 52세에 술작 246~7쪽부처가 입멸(入滅)하신지는 이천(二千) 이백이십여년(二百二十餘年)이라·대(代)는 말세(末世)가 되어 지인(智人)은 차츰 숨어 버리니, 산(山)이 낮아짐과 같고·풀이 작아짐과 같다. 염불(念佛)을 부르고 계(戒)를 갖거나 하는 사람은 많지만 법화경(法華經)을 믿는 사람은 적도다. 별은 많으나 대해(大海)를 비추지 못하고·풀은 많으나 대내(大內)의 기둥으로는 되지 못하며, 염불(念佛)은 많으나 부처가 되는 길은 아니로다. 계(戒)는 갖는다 해도 정토(淨土)로 가는 종자(種子)로는 되지 못하느니라.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칠자(七字)만이 부처로 되는 종자(種子)인데, 이것을 말하면 남들은 시샘하여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고우에노전(故上野殿)은 믿으셨기 때문에 부처가 되셨느니라. 여러분은 그 자손(子孫)으로서 이 뜻을 이루심인가. 용마(龍馬)에 붙은 진드기는 천리(千里)를 날고, 소나무에 걸린 댕댕이덩굴은 천(千)길을 기어 오른다고 함은 이것일까, 각각(各各) 고인(故人)과 동심(同心)이니라, 흙떡을 부처에게 공양(供養)한 사람은 왕(王)이 되시었다. 법화경(法華經)은 부처보다 뛰어나신 법(法)이고 보면, 공양(供養)하시고서 어찌하여 금생(今生)에서도 이생(利生)을 받고 후생(後生)에서도 부처가 되시지 않을손가, 게다가 가난한 몸으로서·하인(下人)도 없으며, 산하(山河)는 다니기 고통(苦痛)스러워서 가령 뜻이 있다 해도 나타내기 어려운데, 지금 성의(誠意)를 나타내시니 잘 알았소이다. 예삿일이 아니로다, 반드시 법화경(法華經)의 십나찰(十羅刹)이 수호(守護)하시리라고 믿음직스럽게 여기나이다, 말로 다하지 못하겠소, 공공근언(恐恐謹言).
우에노전답서 上野殿答書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 1554~5쪽천태대사(天台大師) 가로되 「살(薩)이란 범어(梵語)이며 여기서는 묘(妙)라고 번역(飜譯)함이라」 등(等)운운(云云). 사사(私私)로이 회통(會通)을 가(加)한다면 본문(本文)을 더럽힘이 되리라. 그러나 문(文)의 참뜻은, 석존(釋尊)의 인행과덕(因行果德)의 이법(二法)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에 구족(具足)하였다. 우리들이 이 오자(五字)를 수지(受持)하면 자연(自然)히 그의 인과(因果)의 공덕(功德)을 물려주시느니라. 사대성문(四大聲聞)의 영해(領解)에 가로되 「무상보취(無上寶聚)·불구자득(不求自得)」 운운(云云). 우리들의 기심(己心)의 성문계(聲聞界)니라. 「나와 여(如)히 동등(同等)케 하여 다름이 없노라. 나의 옛날의 소원(所願)과 같이 지금은 이미 만족(滿足)하였으니, 일체중생(一切衆生)을 화(化)하여 모두 불도(佛道)에 들어가게 하노라」 묘각(妙覺)의 석존(釋尊)은 우리들의 혈육(血肉)이니라. 인과(因果)의 공덕(功德)은 골수(骨髓)가 아니겠느뇨. 보탑품(寶塔品)에 가로되 「대저 능(能)히 이 경법(經法)을 호지(護持)하는 자(者)는 즉 이는 나와 그리고 다보(多寶)를 공양(供養)함이니라, 내지(乃至) 또 모든 여기에 오신 화불(化佛)의 모든 세계(世界)를 장엄(莊嚴)하고 광식(光飾)하시는 자(者)를 공양(供養)함이니라. 석가(釋迦)·다보(多寶)·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은 우리들의 불계(佛界)이니라. 그의 뒤를 계소(繼紹)하여 그 공덕(功德)을 수득(受得)함이니 수유(須臾)도 이를 들으면 즉(卽)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구경(究竟)할 수 있음」이란 이것이로다.
관심의 본존초(觀心本尊抄) 사도에서 52세에 술작 246~7쪽니치렌(日蓮)이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인가 아닌가는 이것을 가지고 보시라. 이렇게 말하면 국주(國主)등(等)은 이 법사(法師)가 겁을 주는 것인가 하고 생각하겠지만 결코 미워서 하는 말이 아니로다, 대자대비(大慈大悲)의 힘으로 무간지옥(無間地獄)의 대고(大苦)를 금생(今生)에 소멸(消滅)케 하려는 것이니라. 장안대사(章安大師) 가로되 「그를 위해서 악(惡)을 제거(除去)함은 즉 이는 그의 어버이니라」 등(等) 운운(云云).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국주(國主)의 부모(父母)·일체중생(一切衆生)의 스승이니라.기원(祈願)이 이루어지지 않음은 활은 강(强)한데 활줄이 약(弱)하고 대도검(大刀劍)일지라도 쓰는 사람이 겁장이인 것과 같은 것이외다. 결코 법화경(法華經)의 잘못이 아니로다.
후생(後生)은 차치(且置)하고라도 금생(今生)에 법화경(法華經)의 적(敵)이 된 사람을 범천(梵天)·제석(帝釋)·일월(日月)·사천(四天)이 벌(罰)을 주시어 모든 사람의 본보기로 되게 하라고 말해 놓았소이다.
니치렌(日蓮)이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인가 아닌가는 이것을 가지고 보시라. 이렇게 말하면 국주(國主)등(等)은 이 법사(法師)가 겁을 주는 것인가 하고 생각하겠지만 결코 미워서 하는 말이 아니로다, 대자대비(大慈大悲)의 힘으로 무간지옥(無間地獄)의 대고(大苦)를 금생(今生)에 소멸(消滅)케 하려는 것이니라.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국주(國主)의 부모(父母)·일체중생(一切衆生)의 스승이니라.어떠한 병법(兵法)보다도 법화경(法華經)의 병법(兵法)을 쓰실지어다. 「제여원적(諸餘怨敵)·개실최멸(皆悉摧滅)」의 금언(金言)은 헛되지 않으리라. 병법(兵法) 검형(劍形)의 대사(大事)도 이 묘법(妙法)으로부터 나왔느니라, 깊이 신심(信心)을 취(取)하시라, 결코 겁이 많아서는 불가능(不可能)하니라.마사카도(將門)는 무장(武將)으로서의 이름을 떨치고 병법(兵法)의 대사(大事)를 궁구(窮究)하였으나, 왕명(王命)에는 패(敗)하였으며, 번쾌(樊噲)·장량(張良)도 소용(所用)이 없었으니, 다만 마음만이 중요(重要)하니라, 아무리 니치렌(日蓮)이 기원(祈願)을 한다 해도 불신(不信)한다면, 젖은 부싯깃을 대고 부시를 치는 것과 같이 될 것이니, 더욱 면려(勉勵)하여 강성(强盛)하게 신력(信力)을 다 내도록 하시라. 지난 번의 존명(存命)은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고 생각하시라, 어떠한 병법(兵法)보다도 법화경(法華經)의 병법(兵法)을 쓰실지어다. 「제여원적(諸餘怨敵)·개실최멸(皆悉摧滅)」의 금언(金言)은 헛되지 않으리라. 병법(兵法) 검형(劍形)의 대사(大事)도 이 묘법(妙法)으로부터 나왔느니라, 깊이 신심(信心)을 취(取)하시라, 결코 겁이 많아서는 불가능(不可能)하니라. 공공근언(恐恐謹言).
시조깅고전답서(四條金五殿答書) 미노부에서 58세에 술작 1192~3쪽 별칭 : 법화경병법사(法華經兵法事), 검형서(劍形書)이 니치렌(日蓮)은 수제(首題)의 오자(五字)를 그대에게 수여(授與)하니, 법화경(法華經) 수지(受持)의 자(者)를 수호(守護)하는 것은 의심(疑心)할 바 없느니라.
지금(只今)도 일념무명(一念無明)의 미심(迷心)은 닦지 않은 거울이며, 이를 닦으면 반드시 법성진여(法性眞如)의 명경(明鏡)이 되느니라.
깊이 신심(信心)을 일으켜 일야조모(日夜朝暮)로 또한 게으름 없이 닦을지어다.
어떻게 닦는가 하면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을 이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 니치렌(日蓮)은 그 사자(使者)는 아닐지라도 그 시각(時刻)에 맞을 뿐만 아니라, 의외(意外)로 이 법문(法門)을 깨달았으므로 성인(聖人)이 나오실 때까지 먼저 서분(序分)으로 대략(大略) 말함이라. 그런데 이 법문(法門)이 출현(出現)하면 정법(正法) 상법(像法)의 논사(論師)·인사(人師)가 말씀한 법문(法門)은 모두 해가 뜬 후의 별의 빛이며 장인(匠人)의 솜씨를 보고난 후에 졸렬(拙劣)함을 알게 됨과 같으니라. 중생(衆生)의 마음이 더러워지면 토(土)도 더러워지고 마음이 깨끗하면 토(土)도 청정(淸淨)하다고 해서 정토(淨土)라 하고 예토(穢土)라 함도 토(土)에 둘의 차이(差異)가 없으며, 오직 우리들의 마음의 선악(善惡)에 의(依)한다고 쓰여 있다. 중생(衆生)이라 함도 부처라 함도 또한 이와 같으니 미혹(迷惑)할 때는 중생(衆生)이라 이름하고 깨달을 때는 부처라 이름했느니라. 비유컨대 암경(闇鏡)도 닦으면 옥(玉)으로 보이는 것과 같다. 지금(只今)도 일념무명(一念無明)의 미심(迷心)은 닦지 않은 거울이며, 이를 닦으면 반드시 법성진여(法性眞如)의 명경(明鏡)이 되느니라. 깊이 신심(信心)을 일으켜 일야조모(日夜朝暮)로 또한 게으름 없이 닦을지어다. 어떻게 닦는가 하면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을 이를 닦는다고 하느니라.법문(法門)의 일은 사도지방(佐渡地方)에 유배(流配)되기 이전(以前)의 법문(法門)은 다만 부처의 이전(爾前)의 경(經)이라고 생각하시라.
나의 멸후(滅後)·말법(末法)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이 대법(大法)을 말하지 말지니라
니치렌(日蓮)은 그 사자(使者)는 아닐지라도 그 시각(時刻)에 맞을 뿐만 아니라, 의외(意外)로 이 법문(法門)을 깨달았으므로 성인(聖人)이 나오실 때까지 먼저 서분(序分)으로 대략(大略) 말함이라.
이 때에는 정상(正像)의 사당(寺堂)의 불상(佛像)·승(僧) 등(等)의 영험(靈驗)은 다 소실(消失)되고 다만 이 대법(大法 : 남묘호렌게쿄)만이 일염부제(一閻浮提)에 유포(流布)하리라고 쓰여 있느니라.
여러분은 이러한 법문(法門 : 남묘호렌게쿄)에 인연(因緣)이 있는 사람이기에 마음 든든하다고 생각하시라.
지난 문영팔년구월십이일(文永八年九月十二日)밤 다쓰노구치(龍口)에서 목이 잘려지려 했을 때부터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노라. 나를 따르는 자(者)들에게 참된 사실을 말하지 않았구나 하고 생각하여 사도지방(佐渡地方)에서 제자(弟子)들에게 은밀히 말한 법문(法門)이 있노라. 이는 부처 이후(以後) 가섭(迦葉)·아난(阿難)·용수(龍樹)·천친(天親)·천태(天台)·묘락(妙樂)·전교(傳敎)·기신(義眞) 등(等)의 대논사(大論師)·대인사(大人師)는 아시고도 그러나 마음속에 감추어 두시고 입 밖에는 내시지 않았느니라. 그 까닭은 부처님께서 제지(制止)하여 가로되 「나의 멸후(滅後)·말법(末法)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이 대법(大法)을 말하지 말지니라」고 있기 때문이로다. 니치렌(日蓮)은 그 사자(使者)는 아닐지라도 그 시각(時刻)에 맞을 뿐만 아니라, 의외(意外)로 이 법문(法門)을 깨달았으므로 성인(聖人)이 나오실 때까지 먼저 서분(序分)으로 대략(大略) 말함이라. 그런데 이 법문(法門)이 출현(出現)하면 정법(正法) 상법(像法)의 논사(論師)·인사(人師)가 말씀한 법문(法門)은 모두 해가 뜬 후의 별의 빛이며 장인(匠人)의 솜씨를 보고난 후에 졸렬(拙劣)함을 알게 됨과 같으니라. 이 때에는 정상(正像)의 사당(寺堂)의 불상(佛像)·승(僧) 등(等)의 영험(靈驗)은 다 소실(消失)되고 다만 이 대법(大法)만이 일염부제(一閻浮提)에 유포(流布)하리라고 쓰여 있느니라. 여러분은 이러한 법문(法門)에 인연(因緣)이 있는 사람이기에 마음 든든하다고 생각하시라.
미사와초(三澤抄)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 1489쪽이 경(經)이야말로 실어(實語) 중(中)의 실어(實語)이외다. 실어(實語)의 경(經)은 정직(正直)한 자(者)가 심득(心得)하신다. 지금 당신은 실어(實語)의 여인(女人)이신가. 마땅히 알지어다, 수미산(須彌山)을 이고 대해(大海)를 건너는 사람은 볼 수 있을지라도 이 여인(女人)은 볼 수 없느니라. 모래를 쪄서 밥으로 만드는 사람은 볼 수 있을지라도, 이 여인(女人)은 볼 수 없느니라. 마땅히 알지어다, 석가불(釋迦佛)·다보불(多寶佛)·시방분신(十方分身)의 제불(諸佛)·상행(上行)·무변행(無邊行) 등(等)의 대보살(大菩薩)·대범천왕(大梵天王)·제석(帝釋)·사왕(四王) 등(等)·이 여인(女人)을 그림자가 몸을 따르듯이 수호(守護)하시리라. 일본(日本) 제일(第一)의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인 여인(女人)이로다. 그러므로 이름을 하나 붙여 드려서 불경보살(不輕菩薩)의 의(義)에 비유하리라·니치묘성인(日妙聖人) 등(等) 운운(云云).
소슈(相州) 가마쿠라(鎌倉)로부터 북국(北國) 사도(佐渡)의 지방(地方)·그 중간(中間)이 일천여리(一千餘里)나 됩니다. 산해(山海)는 아득하니 떨어지고 산(山)은 아아(峨峨)·바다는 도도(濤濤)·풍우(風雨)는 때를 따르는 일이 없다. 산적(山賊)·해적(海賊)이 충만(充滿)하고, 숙박(宿泊)하는 곳마다 민심(民心)은 호랑이와 같고 개와 같다. 현신(現身)으로 삼악도(三惡道)의 고(苦)를 겪음일까. 게다가 당세(當世)는 세상(世上)이 어지러워, 거년(去年)부터 모반자(謀叛者)가 나라에 충만(充滿)해서 금년(今年) 二月 十一日 합전(合戰), 그로부터 금오월(今五月) 말(末)·아직 세간(世間)은 안온(安穩)하지가 않다. 그러나 한 유아(幼兒)가 있는데 맡겨 둘 아버지도 믿음직스럽지 아니하며·이별(離別)한지 이미 오래이니라.
여러가지로 붓으로도 다할 수 없거니와, 마음도 스산하기 때문에 이만 그치나이다.
니치묘성인어서 日妙聖人御書 사도에서 51세에 술작 1217쪽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무진의(無盡意)란 원융(圓融)의 삼제(三諦)이니라, 무(無)란 공제(空諦)·진(盡)이란 가제(假諦)·의(意)란 중도(中道)이니라. 관세음(觀世音)이란 관(觀)은 공제(空諦)·세(世)는 가제(假諦)·음(音)은 중도(中道)이니라.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란 묘(妙)는 공제(空諦)·호렌게(法蓮華)는 가제(假諦)·쿄(經)는 중도(中道)이니라. 삼제법성(三諦法性)의 묘리(妙理)를 삼제(三諦)의 관세음(觀世音)과 삼제(三諦)의 무진의(無盡意)에 대(對)하여 설(說)하셨느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무진의(無盡意)이니라. 결국(結局) 무(無)란 우리들의 사(死)의 상(相)이고, 진(盡)이란 우리들의 생(生)의 상(相)이며, 의(意)란 우리들의 명근(命根)이니라. 그러므로 일체(一切)의 법문(法門)·경지명합(境智冥合) 등(等)의 법문(法門)은 의(意)의 일자(一字)에 이를 섭입(攝入)하며, 이 의(意)란 중도법성(中道法性)이고, 법성(法性)이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란 묘(妙)는 공제(空諦)·호렌게(法蓮華)는 가제(假諦)·쿄(經)는 중도(中道)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무진의(無盡意)이니라.
결국(結局) 무(無)란 우리들의 사(死)의 상(相)이고, 진(盡)이란 우리들의 생(生)의 상(相)이며, 의(意)란 우리들의 명근(命根 : 생명의 근원)이니라. 지금 당신은 실어(實語)의 여인(女人)이신가. 마땅히 알지어다, 수미산(須彌山)을 이고 대해(大海)를 건너는 사람은 볼 수 있을지라도 이 여인(女人)은 볼 수 없느니라. 모래를 쪄서 밥으로 만드는 사람은 볼 수 있을지라도, 이 여인(女人)은 볼 수 없느니라. 마땅히 알지어다, 석가불(釋迦佛)·다보불(多寶佛)·시방분신(十方分身)의 제불(諸佛)·상행(上行)·무변행(無邊行) 등(等)의 대보살(大菩薩)·대범천왕(大梵天王)·제석(帝釋)·사왕(四王) 등(等)·이 여인(女人)을 그림자가 몸을 따르듯이 수호(守護)하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