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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特輯) 고난주간(苦難主間, Holy passion week) 3/30-4/4
눅23:1-17절) 빌라도의 법정(法定)에 서신 예수님
법정(法定)은 정의(正義)를 위해 존재(存在)합니다. 즉 죄(罪)지은 사람은 지위고하(地位高下)를 막론(莫論)하고, 죄(罪)의 심판(審判)을 받고, 죄(罪)를 짓지 않은 사람은 죄(罪)가 없다는 것을 확정(確定)해 주는 곳이 법정(法定)입니다.
그러나 법(法)이라는 것이 항상(恒常) 공정(公正)한 것은 아닙니다. 즉 힘이 있는 자(者)가 죄(罪)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법정(法定)에 세우지 못하는 경우(境遇)도 있습니다. 반대 (反對)로 죄(罪)가 없는 사람인데도 힘이 없거나, 권력자(權力者)들과의 불의(不義)로 인(因)해 유죄(有罪)가 판정(判定)받는 경우(境遇)도 종종 있습니다. ☞(오늘날 사법거래(私法去來). 그래서 ☞*유전무죄(有錢無罪),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류(人類) 역사상(歷史上) 가장 불의(不義)한 재판(裁判)은 곧 예수 그리스도에 대(對)한 유죄판결(有罪判決)입니다. 유대 종교지도자(宗敎指導者)들은 예수님을 밤중에 붙들려오기는 했지만, 당시 로마의 통치(通治)를 받던 유대인(人)들은 사람을 사형(死刑)할 수 있는 권한(權限)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유일(有一)한 방법(方法)은 스데반 집사(執事)를 처형(處刑)했던 군중(群衆)들을 선동(煽動)해서 돌(石)로 쳐 죽이는 방법(方法)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 종교지도자(宗敎指導者)들에게 있어서 그 방법(方法)은 대단히 부담(負擔)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로마의 법정(法定)으로 넘겨서 로마인들의 손에 죽도록 계획(計畫)을 세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유대 종교지도자(宗敎指導者)들은 로마 총독(總督)이 죄(罪)도 없는 예수님을 사형(死刑)할 것을 알았을까? 유대 종교지도자(宗敎指導者)들은 최대(最大) 명절(名節) 유월절(踰越節)의 분위기(雰圍氣)를 이용(利用)하기로 생각(生角)한 것입니다.
유월절(踰越節)은 최대(最大) 명절(名節)로서 각처(各處)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人)들이 수백만 명이 예루살렘으로 모이는데, 이때 로마 총독(總督)은 민란(民亂)이 일어나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人)들은 이런 분위기(雰圍氣)를 이용(利用)했습니다.
그들은 마치 민란(民亂)이 일어날 것처럼, 군중(群衆)들을 충동질(衝動質)할 계획(計畫)을 세웠습니다. 이러한 상황(狀況)에서 빌라도 총독(總督)은 민란(民亂)이 일어나는 것보다는 별 볼일 없는 유대인(人)한 명(예수)를 죽이는 것을 선택(選擇)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 종교지도자(宗敎指導者)들은 예수님이 유죄(有罪) 판결(判決)을 받도록 두 가지 불법적(不法的)인 방법(方法)을 사용(使用)했습니다.
①죄목(罪目) 변경(變更)입니다. 원래(原來) 그들이 예수님을 처형(處刑)하기로 한 죄명(罪名)은 *신성모독(神性冒瀆)'죄(罪)*였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독(冒瀆)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신자(不信者)인 로마인(人)들에게는 *신성모독(神性冒瀆)*이 사형(死刑)에 해당(該當)하는 죄(罪)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 종교지도자(宗敎指導者)들은 예수님을 로마 당국(當局)에 고발(告發)할 때, 죄명(罪名)을 *신성모독(神性冒瀆)' *죄(罪)*에서 로마에 대(對)한 *반역죄(反逆罪)'로 바꾸었습니다.
또 그들이 불법적(不法的)으로 사용(使用)한 것 중(中), ②군중(群衆)의 동원(動員)이었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宗敎指導者)들은 성난 군중(群衆)을 동원(動員)하여 빌라도의 마음에 압박(壓迫)을 주었고, 예수님에 대(對)한 사형(死刑) 판결(判決)을 유도(誘導)한 것입니다.
불신자(不信者)인 빌라도는 예수님을 아주 우습게 생각(生角)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기분(氣分)을 상(傷)하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한 사람(예수)을 죽이는 것이 정치적(政治的)으로 더 유리(有利)하다고 생각(生角)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本文)을 보면, 빌라도가 예수님의 재판(裁判)을 맡기는 했지만, 할 수만 있으면, 재판(裁判)을 포기(抛棄)하려고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빌라도 역시 노련(老鍊)한 정치가(政治家)였고, 누구보다도 유대인(人)들의 습성(習性)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빌라도는 모든 유대인(人)들이 로마에 대(對)하여 결코 우호적(友好的)이지 않고, 할 수만 있으면, 반역(反逆)하려고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人)들이 로마에 대(對)하여 반역(反逆)할 사람을 자기(自己)네 손으로 넘겨 줄 이유(理由)가 절대(絶代)로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빌라도가 판정(判定)하기에 예수는 유대 내부(內部) 사정(事情)에 의(意)하여 미움을 받은 사람인 것이 분명(分明)했습니다. 빌라도는 자기(自己)가 유대인(人)들을 다스리는 입장에 있는 사람인데, 유대인(人)들의 내부(內部) 문제(問題)에까지 휩쓸려 이용(利用)당할 이유(理由)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빌라도로 하여금 유대인(人)들에게 말려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인데, ①빌라도의 정의(正義)롭지 못한 자세(姿勢)였습니다. 빌라도는 정직(貞直)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지 협상(協商)이 가능(可能)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언제든지 강(强)한 쪽으로 기울 수 있는 간사(奸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②유월절(踰越節)이라는 분위기(雰圍氣)였습니다. 많은 유대인(人)들이 모이는 대(大)명절(名節) 유월절(踰越節)이 아니었더라면, 빌라도는 예수님을 재판(裁判) 할 이유(理由)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유대의 군중(群衆)들을 두려워해서 원(願)치 않는 재판(裁判)을 맡았고,
유대 종교지도자(宗敎指導者)들이 원(願)하는 대로 사형(死刑)을 판결(判決)하고, 그대로 집행(執行)했습니다.
Ⅰ.예수님의 재판(裁判)(상)
예수님은 유대인(人)들의 미움을 받아 로마인(人)의 법정(法定)에서 재판(裁判)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문제(問題)는 불신자(不信者) 로마인(人)들의 문제(問題)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로마 법(法)을 어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對)한 유대 종교지도자(宗敎指導者)들의 미움과 증오심(憎惡心)이 너무나 강(强)했고,예수님을 죽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인(人)의 손에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총독(總督) 빌라도의 법정(法定)으로 끌고 온 것입니다.
23:1-2절)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고발(告發)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百姓)을 미혹(迷惑)하고, 가이사에게 세금(稅金) 바치는 것을 금 (琴)하며, 자칭(自稱) 왕(王)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여기서 우리는 유대 종교지도자(宗敎指導者)들이 예수님을 그토록 미워했던 이유(理由)가 무엇인지를 생각(生角)해 볼 필요(必要)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重要)한 것은 그들의 종교적(宗敎的)인 교만(驕慢)이었습니다. 즉 자기(自己)들은 하나님의 율법(律法)을 갖고 있고, 또 그것을 잘 알고 있다는 교만(驕慢)이, 그들의 의견(意見)에 대(對)한 어떤 반대(反對)도 용납(容納)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원래(原來) 하나님이 주신 율법(律法)은 사랑이 넘치는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 사랑, 이웃사람* 그래서 이 율법(律法)을 올바로 배운 자(者)들은 절대(絶代)로 예수님을 미워할 수 없고, 오히려 예수님의 율법(律法)에 대(對)한 올바른 지식(智識)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대 종교지도자(宗敎指導者)들의 율법(律法)은 죽은 율법(律法)이었습니다. 이 죽은 율법(律法)은 유대 종교지도자(宗敎指導者)들을 극도(極度)로 교만(驕慢)하게 만들었습니다. 본래(本來) 율법(律法)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關係)를 깨닫게 하기 때문에,
율법(律法)을 배우면 배울수록 겸손(謙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은 율법(律法)은 하나의 지식(知識)에 불과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비교(比較) 하여 교만(驕慢)하게 합니다. 유대 종교지도자(宗敎指導者)들은 너무나 교만(驕慢)한 나머지 다른 의견(意見)을 들으면, 분노(憤怒)가 치밀(緻密)어 올랐습니다. 이것은 *무식(無識)이가 용감(勇敢)한 증거(證據)*입니다.
이들은 얼마 있지 않아, 자기(自己)를 따르던 유대인(人)들이 예수님의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生角)했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은 진리(眞理)의 말씀이었고, 진리(眞理)가 자유(自由)하게 했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을 *옳다*고 믿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유대인(人)들이 예수님의 제자(弟子)들을 핍박(逼迫)한 이유(理由)도 예수님의 제자(弟子)들에게는 돈도 없고, 세력(勢力)도 없지만, 사람들의 영혼(靈魂)을 변화(變化)시키는 능력(能力)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유대 종교지도자(宗敎指導者)들을 더욱 분노(憤怒)하게 했던 것은 경제적(經濟的)인 이유(理由)였습니다.
그들은 유대 성전(聖殿) 제사(祭祀)를 통(通)해 엄청난 금전적(金錢的)인 수입(收入)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전세계(全世界)로 흩어진 유대인(人)들은 로마가 세계(世界)를 통치(痛治)하자, 예루살렘 성전(聖殿)에서 유월절(踰越節) 예배(禮拜)를 드리러 몰려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부흥(復興)의 기회(期會)였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宗敎指導者)들은 제사용(祭祀用) 소(牛)와 양(羊)을 팔아서 엄청난 금전적(金錢的)인 수입(收入)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의 성전(聖殿)에서 장사(商業)하는 것을 정죄(定罪)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있으면, 그들의 돈벌이가 방해(妨害)를 받으니까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의(正義)를 외치며, 자신(自身)들은 대단히 정의(正義)로운 것처럼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이면(裡面)에는 금전적(金錢的)인 관계(關係)가 있다는 것을 발견(發見)하고, 그들이 얼마나 치사(恥事)한지를 알게 됩니다.
또 종교지도자(宗敎指導者)들 스스로는 알지 못했지만, 그들 배후(背後)에서 사탄(詐誕)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유대 종교지도자(宗敎指導者)들의 마음을 충동질(衝動質)한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 종교지도자(宗敎指導者)들은 예수님을 죽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예수님을 미워했던 것입니다.
유대 종교지도자(宗敎指導者)들은 자기(自己)들의 교만(驕慢)과 욕심(慾心)과 시기심(猜忌心)때문에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은 이 세상(世上)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여러 가지 비유(比喩)를 통(通)하여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눅20:9-18절 예수님은 포도원(葡萄園) 주인(主人)이 포도원(葡萄園)을 농부(農夫)들에게 세(稅)를 주었는데, 농부(農夫)들이 그 포도원(葡萄園)을 빼앗기 위해 아들을 포도원(葡萄園) 밖으로 끌고 나가서 죽이는 비유(比喩)'를 말씀하신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유대 종교지도자(宗敎指導者)들에게 자신(自身)을 22:69절)...이제부터는 인자(人子)가 하나님의 권능(權能)의 우편(右便)에 앉아 있으리라”는 것과 22:70절)...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느니라*고 분명(分明)히 밝히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人間)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면, 어떻게 될까? 감(敢)히 하나님과 전면전(全面戰)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만약(萬若) 일본(日本) 천황(天皇)의 황태자(皇太子)가 우리나라를 방문(房門)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를 잡아 죽인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전쟁(戰爭)이 일어날 것입니다. 세계(世界) 1차(次) 대전(大戰)이 그렇게 해서 터진 사건(事件)입니다.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라아 황태자(皇太子)가 총(銃)에 맞아 죽는 사건(事件)으로 인해 전쟁 (戰爭)이 터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인정(認定)하지도 않고, 하나님과 대적(對敵) 관계(關係)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예수)을 공개적(公開的)으로 처형(處刑)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알았든, 몰랐든, 하나님의 아들을 공개적(公開的)으로 처형 (處刑)함으로써 이 세상(世上)과 하나님 나라는 본격적(本格的)인 전쟁(戰爭) 상태(狀態)에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나, 이방인(異邦人)(로마)들이 예수님을 죽인 것은 하나님에 대(對)한 반역(反逆)이요, 대적(對敵)하는 행위(行爲)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人間)들은 하나님의 분노(忿怒)의 심판(審判)을 받더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慈悲)하심은 인간(人間)들이 하나님을 반역(反逆)했고, 그 아들(예수)을 죽였는데도 불구하고 그 아들(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罪)를 대신(代身)하여 죽었다고 믿는 우리들을 모두 죄(罪)에서 구원(救援)하시고, 하나님의 자녀(子女)로 삼아주시는 것입니다. 찬송가 233장 *자비(慈悲)로 그 몸 찢기시고*
또 하나님의 가장 큰 은혜(恩惠)는 인간(人間)들의 가장 큰 죄악(罪惡)에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참 사랑과 놀라운 은혜(恩惠)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고발(告發)한 죄명(罪名)은 새 가지였습니다.
①백성들을 미혹(迷惑)한 것. ②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백성들을 가르친 것. ③자칭(自稱) 왕(王)(그리스도)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유대 종교지도자(宗敎指導者)들이 예수님을 로마에 대(對)해 반역자(叛逆者)로 거짓 고발(告發)한 내용(內容)들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로마에 위험(危險)한 인물(人物)이었을까? 사실(事實)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로마에 대(對)해 적대적(批判的)이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로마에 대(對)해 적대적(敵對的)이지 않으시고, 오히려 부패(腐敗)한 유대 종교지도층(宗敎指導層)에 대(對)해 비판적(敵對的)이셨습니다.
그 이유(理由)는 종교지도자(宗敎指導者)들이 올바르면, 하나님의 은혜(恩惠)가 이 세상(世上)에 흐르게 된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關係)가 올바르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恩惠)와 축복(祝福)이 우리를 통(通)해 이 세상(世上)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믿는 우리들이 비판(批判)을 받아야 하고, 교회(敎會)의 지도자(指導者)들이 더욱 깨끗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世上)이 썩었다고 비판(批判)하기 이전(以前)에 우리들이 먼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순종(順從)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을 통 (通)해 찾아보고, 그것을 먼저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초기(初期)에는 사람들이 복음(福音)을 이해(理解)하지 못했기 때문에 핍박(逼迫)이 있었습니다. 즉 기독교(基督敎)가 그 사회(社會)의 미풍양속(美風良俗)을 파괴(破壞)시킨다고 생각(生角)했습니다. 그래서 복음(福音) 전도(傳道) 초기(初期)에는 복음(福音)을 전(傳)하는 자(者)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이 박해(迫害)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은 그리스도인들 수(數)가 많아지면서 교회(敎會)와 세상(世上)이 평화(平和)롭게 되었습니다. 즉 세상(世上)은 그리스도인들을 사회(社會)의 일원(一員)으로 인정(認定)하고, 신앙(信仰)을 인정(認定)합니다. 그리고 서로가 각자(各自)의 삶을 인정(認定)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이 세상(世上)에도 유익(有益)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 중(中)에 성실(成實)하고, 정직(正直)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自己) 분수(分受)를 지키지 못하고, 교만(驕慢)하거나, 자신(自身)을 신격화(神格化)할 때, 그리스도인들과 이 세상(世上)은 갈등(葛藤)하게 됩니다.
즉 사람들에게 우상숭배(偶像崇拜)를 강요(强要)한다든지, 어떤 사상(思想)을 강요(强要)할 때입니다. 이때, 그리스도인들은 절대(絶代)로 우상(偶像)을 섬기지 않기 때문에, 사회(社會)로부터 핍박(逼迫)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의 왕(王)으로 이 세상(世上)에 오셨습니다. 즉 자기(自己) 백성(百姓)들을 구원(救援)하기 위해 왕(王)이 직접(直接)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붙들리신 것입니다.
원수(怨讐) 마귀(魔鬼)는 하나님의 아들만 죽이면, 이 세상(世上)이 완전(完全)히 자기(自己)의 것이 될 줄 알고,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법정(法定)에 세운 것입니다. 사탄(詐誕) 마귀(魔鬼)가 하나님의 아들을 법정(法定)에 세워서 사형(死刑)시킨 것은 사상(事象) 최대(最大)의 영적(靈的) 전쟁(戰爭)입니다.
로마의 천주교(天主敎)는 종교(宗敎) 개혁자(改革者) 마틴 루터의 신앙(信仰)을 빼앗기 위해, 보름스 회의장(會議場)에 소환(召喚)하여 심문(審問)했습니다. 이때 사탄(詐誕)은 루터 한 사람을 죽이면, 모든 사람들의 종교(宗敎)의 자유(自由)를 빼앗을 수 있을 것으로 착각(着角)했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보름스 회의장의 기왓장이 모두 마귀(魔鬼)라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겠다'면서 *주여! 나를 도우소서'라고 기도(祈禱)했습니다. 그(마틴 루터)가 작사(作詞) 작곡(作曲)한 찬송가 : 585장 *내 주(主)는 강(强)한 성(城)이요*
| 오늘의 묵상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避難處)시요, 힘이시니, 환난(患難) 중(中)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變)하든지, 산(山)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山)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셀라)(시46:1-3) |
💖진리의 복음*축복의 통로💖
†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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