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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계획은 '안흥2리 버스정류장 → 전재 → 매화산 → 천지봉 → 치악산 비로봉 → 곧은재 → 곧은재 탐방소 → 버스 정류장'의 18.9km, 7시간 코스를 Plan A로, '안흥2리 버스정류장 → 전재 → 매화산 → 천지봉 → 천지봉 서북릉 → 헬기장 → 718.3 → 이흥동 고개 → 구룡교 → 신흥주차장'의 9km 코스를 Plan B로 상황에 따라 선택할 예정이었다. 물론 Plan C도 고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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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산[梅花山]
높이: 1,083m
위치: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매화산은 1,085m의 꽤 높은 봉우리로 꼭대기에서 서남쪽으로 능선이 이어져 치악산과 합쳐지며, 동쪽으로는 백덕산과 마주 보고 있다. 이웃한 치악산의 명성에 가려 일반 등산객들의 발길이 뜸한 산으로 치악산에 반해 그윽한 여성미를 자랑한다.
예전에 신선이 살았다고 해서 지금도 주민들은 신선봉이라 부른다. 872m의 고갯길을 지나 참나무류와 잡목이 우거진 능선길을 헤치고 올라가면 꼭대기에 이르게 되며, 봄철의 철쭉, 진달래꽃이 가위 장관이다.
볼거리
간현국민관광지, 백덕산 - 한국의 산하
천지봉
높이: 1,085.7m
위치: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원주시 소초면과 횡성군 안흥면의 경계를 이루는 치악산과 매화산 천지봉 산행은 구룡사 매표소에서 청소년 수련장이나 세렴폭포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2개의 코스가 있다.
구룡사에서 남쪽 구공사 앞을 지나 40분 거리에 이르면 사다리병창 시발점인 세렴폭포 입구에 닿는다. 계곡을 따라 5분가량 들어서면 절벽 아래의 모듬터가 나타난다. 모듬터를 뒤로 하고 계류를 따라 10분 거리에 이르면 쏟아져 내리는 작은 폭포. 왼쪽 바위 지대를 휘돌아 30분가량 올라가면 두 계류가 합쳐지는 합수점에 닿는다.
합수점을 뒤로 하고 북쪽 계곡으로 10분가량 올라서면 건천으로 이어진다. 건천 계곡을 따라 다시 30분 정도 올라가면 숯가마 터에 이른다. 동쪽으로 15분 정도 올라가면 뚜렷한 능선길이 있는 주 능선에서 북쪽 능선길을 따라 20분쯤 올라가면 정상이다.
정상의 남쪽으로 치악산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사다리병창 능선이 시야에 들어오고, 서쪽으로는 쥐너미재, 삼봉, 투구봉, 토끼 능선이 멋진 스카이라인을 이룬다. 북으로는 횡성군과 홍천의 경계를 이루고 높고 낮은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에서의 하산은 북쪽 능선으로 내려서면 사거리를 이룬 안부가 나타나고 여기서 서쪽 계곡 길을 따라 청소년수련장으로 하산하면 된다. 산행 거리 약 12km로 산행 시간은 약 4시간 30분 정도 - 한국의 산하
대개 산행 2~3주 전에는 토든 일이든 산행지를 결정하는데, 2021년 설 연휴 기간 중 갈 산행지를 결정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다. 코로나와 설 연휴라는 시기적 이유 때문인지 각 산악회의 대부분 산행계획은 성원을 채우지 못할 확률이 높았고, 그나마 성원을 채울 수 있는 몇몇 산은 관심 밖의 산이었다. 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산이라도 가야 하나 고민하던 중 오랜만에 사회대 친구 넷이 설 연휴 전 주 토·일 1박 2일 눈 덮인 함백산에 오르기로 했다[산행기]. 토요일 오후 각자 점심을 먹은 후 강남역에서 만나 당일 숙소인 태백 펜션으로 달릴 때 고속도로 주변 산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런데 거의 모든 산에서 눈을 볼 수 없어 우리의 목적지 함백산에도 눈이 없을까 봐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차가 고속도로로 원주를 지나 태백을 향해 신나게 달릴 때 왼쪽으로 하얀 눈에 덮인 거대한 산줄기가 보였다. 치악산이다!
그때 떠오른 산이 갈만한 산이 없을 때를 위해 남겨둔 치악산과 연결되는 강원도 원주의 매화산이다. 매화산과 연결되는 치악산은 작년 이맘때인 2월 8일 단독으로 토끼봉에서, 투구봉, 삼봉을 거쳐 비로봉까지 갔었다. 애초 계획은 천지봉까지 달린 후 하산할 예정이었으나 예상하지 못한 심설로 체력소모가 심해 비로봉에서 사다리병창으로 하산했었다[산행기]. 당시 천지봉을 포기했던 이유 중 하나가 매화산에서 천지봉을 거쳐 비로봉으로 달리는 산행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무리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마치 의도한 것처럼 치악산 주변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방문하고 있다! 매해 비슷한 시기(겨울)에 치악산을 방문하고 있는 건 치악산 하면 겨울이라고 스스로 세뇌했기 때문일 수도.
뭐, 어쨌든 오래전 계획했던 치악산 옆 매화산을 이번 설 연휴 기간에 오르기로 했다. 매화산(梅花山)이라는 이름만 보면 꽃 피는 춘삼월에 오르는 게 마땅한데, 매번 치악산행은 눈 산행을 즐겼으니 연결된 매화산에서도 춘화(春花)가 아닌 설화(雪花)를 즐기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거 같기도 하고. 그래도 춘삼월 철쭉이 어떤지 궁금해 마지막까지 산악회를 주시했으나, 매화산을 대신할 산을 찾지 못해 눈물을 머금고 강행하기로 했다. 작년과 같이 올해도 단독 산행이라 배낭은 최대한 가볍게, 해서 점심은 간단하게 컵라면으로, 카메라도 가벼운 거로 그리고 꼭 필요한 게 아니면 들고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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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산악회가 아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산행이지만, 동서울터미널에서 7시 안흥행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7시 양재역을 출발하는 산악회 시간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 고로 5시에 기상해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고 미리 준비한 배낭을 둘러메고 집을 나선 시각이 5시 50분경이다. 기상청 산악기상예보에 따르면 치악산이 영상의 온도라 겨울 등산복에 바람막이만 입었다. 물론 비상시에 대비해 패딩도 잘 싸서 배낭에 넣었다. 불광역에서 6시 6분 지하철을 타야 그나마 동서울 터미널에서 약간의 여유를 부릴 수 있으나 그다음인 6시 12분 차를 타면 정신없이 뛰어다녀야 한다. 해서 좀 일찍 나왔다. 물론 을지로 3가에서 2호선으로 갈아탈 때 주어진 시간이 3분에 불과해 3호선과 2호선 탑승장 사이를 뛰어야 하지만!
동명탕 버스정류장에서 초조하게 버스를 기다렸으나, 6시가 넘어 도착했다. 분위기상 6시 6분 차를 타기는 힘들어 보였으나, 속으로 "빨리, 빨리!"를 외치며 응원하자 내 마음을 아는지 6시 4분에 불광역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서둘러 버스에서 내려, 정류장부터 뛰기 시작해 탑승장까지 뛰어 막 도착한 6분 차를 탈 수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더 숨이 가쁜 상태에서 지하철 내에서 4번 차량을 향해 앞으로 갔다. 3호선과 2호선 환승에 주어진 시간이 3분에 불과해 바로 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는 출입문에 대기하고 있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깨달은 사실은 차량 내부에서는 몇 번 차를 타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거다. 있는데 발견 못 했을 수도! 어쨌든 감으로 4번 차라고 생각한 차량의 마지막 출구 옆에 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책을 보기 시작했다.
을지로3가역에 도착하기 직전 문이 열리면 바로 뛰어갈 수 있도록 문 앞에서 대기했다. 문이 열리고 바닥을 보니 내가 생각했던 4-4가 아니라 5-4다. 평소보다 더 멀어진 거리를 만회하기 위해 2계단씩 뛰어올라 2호선 라인에 도착해 열차 상황을 보니 좀 전에 전역을 출발한 거로 나와 뛰던 걸 좀 빠른 걸음으로 바꿨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 터널이 길어 아직 20여 미터 남았는데, 지하철이 도착하고 문이 열리고 있었다. 정신없이 뛰어 열린 문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빈 자리에 앉아 가쁨 숨을 몰아쉬며 진정했다. 시간에 늦지 않게 지하철을 타기 위해 두 번이나 뛰어야 했던 새벽이다. 그렇게 숨 가쁘게 뛴 덕분에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한 시각이 6시 46분으로 여유가 있었다. 먼저 터미널 발매소로 가 무인발매기로 타고 가야 할 버스 예매 현황을 확인했다. 혹시 옆자리에 누군가 예매를 했다면 배낭을 짐칸에 넣고 아니면, 배낭을 들고 타기 위해 미리 확인하는 과정이다. 다행히 옆자리가 비어 배낭을 들고 버스에 타, 자리를 잡고 앉은 시각이 6시 52분이다.
7시 정각 동서울터미널을 출발한 버스는 중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를 달려 7시 20분경 안흥에 도착했다. 배낭을 둘러메고 버스에서 내리자 뭔 말을 꺼내기도 전에 대기하고 있던 택시 기사가 타란다! 사실 안흥에 도착해서 매화산행 들머리인 전재까지 어떻게 가야 할지 고민이었다. 걸어서? 택시를 불러? 걷기에는 좀 먼 거리고 택시를 부른다면 버스 정류장까지 오는 소요 시간 때문이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버스정류장에 택시 사무실도 같이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른 면 단위 택시 사무실도 버스정류장과 같이 있었으나, 바쁜 시간에 도착해 택시가 없었던 거! 설 연휴 아침 8시 20분이니 택시가 기다리고 있는 게 당연했다. 어쨌든 택시 기사에게 얘기해 기사용 화장실을 이용한 후 그 택시를 타고 전재로 갔다. 4~5분 달린 후 막다른 길에 도착했는데 전재다. 택시 요금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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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타고 전재로 오며 기사와 매화산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고, 전재 즈음에서는 저 앞에 보이는 눈이 조금씩 보이는 산이 매화산이라고 알려줬다. 그리고 목장은 사유지라 못 들어가서 다른 등산객은 도로 옆 능선으로 올라가더라고 얘기해줬다. 이미 산행기에서 본 내용이지만,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 해서 목장 입구에 있는 벤치에 배낭을 벗어두고 등산화를 똑바로 신는 등 등산 준비를 마치고 8시 32분에 목장 쪽으로 들어가며 오른쪽 산기슭에서 길을 찾는 거로 이번 매화산행을 시작했다.
오른쪽 길가를 유심히 살피며 목장 쪽으로 5~6m 올라가자 사람이 밟아 마른 풀이 쓰러진 곳이 보이고 그 위로 목책과 멀어 내용 확인이 힘든 입간판이 보였다. 등산로를 제대로 찾았다. 하지만 입간판에 뭐라고 쓴 건지는 모르겠으나 내용이 우호적인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하며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내용을 보니 미처 생각지도 못한 거다. 여기가 국립공원 경계로 전재에서부터 수레너미재까지 '영구 출입 금지'라는 내용이었다. 기간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영구! 전혀 예상외다. 구글링해도 산행기가 적었던 이유다. 물론 산행기가 없다고 등산객이 매화산을 찾지 않은 게 아니라는 건 산꾼이면 누구나 아는 거다. 당연히 들어가지 못하도록 쳐놓은 목책과 방해물을 우회해 앞선 등산객이 만든 길이 있었다.
망설임 없이 앞선 많은 등산객이 다녀 만들어진 길을 따라 능선에 올랐다. 능선 위에는 예상외로 잘 다듬어진 등산로가 나 있었다. 한두 사람이 다녀 만들어진 길이 아니다. 그런데 저 앞 길목에 경고의 빨간 입간판이 보인다. 등산로를 따라 그 입간판에 접근해서 보니 '출입 금지 구역을 100m나 들어왔다.'라는 경고였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곳을 다녔으나 이런 경고문은 처음이다. 해서 기념으로 사진 한 장 남기고 등산로를 따라 매화산으로 향했다. 그런데 등산로는 정확히는 능선이 목장과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목장이 능선 아래 있다는 얘기다. 해서 폰을 꺼내 등산 앱으로 등산로를 확인해 보니, 애초 비법정이긴 하지만, 등산로(정확히는 방화선)는 목장을 가로지르고 있었고, 등산객이 목장으로 들어갈 수 없어 목장과 나란히 달리는 능선으로 다녀 길이 만들어진 거였다. 전기 목책 너머에는 가축용 저수지도 있는 게 전형적인 목장이다.
속으로 "목장길 따라"를 흥얼거리며 전기 목책을 따라 오르니 목책이 끝나는 곳에 도착하고 길은 오른쪽으로 꺾이고 있었다. 정확히는 딱 보기에 그렇다는 거다. 해서 그 길을 따라 전진하니 작은 계곡이 나오고 과거 좀 규모가 있는 화전민촌이었는지 여기저기 돌벽을 쌓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어디도 길 같아 보이지 않고, 나뭇가지에는 리본 하나 보이지 않는 거였다. 다시 등산 앱으로 확인해 보니 방화선은 왼쪽에 있었고, 지금 있는 계곡을 따라 계속 가도 등산로와 만났다. 그래도 초행길 상태도 모르는 계곡을 따라 오르는 건 부담이라, 방화선과 만나기 위해 일부러 좌 편향으로 전진했다.
그렇게 10여 분을 지나 마지막 급경사 언덕을 오르니 앞에 있는 나무에 빨간 물체가 보였다. 궁금해서 접근해 보니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철선을 고정하는 도구였다. 고로 아까 목장이 끝났다고 생각했으나 아직 목장은 능선을 따라 계속 올라가고 있었고, 그에 따라 인공목책 또는 생나무목책이 전기 철선을 잡아주고 있었다. 그리고 방화선은 전기 철선 너머에 있었고, 그 방화선에 접근할 수 없는 등산객이 다니며 만들어진 등산로는 인공목책과 생나무목책에 의지하고 있는 전기 철선을 사이에 두고 방화선과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목장길 따라"를 흥얼거리며 전기 철선을 따라 매화산 정상을 향해 가다 생나무목책을 보고 생나무를 목책으로 이용하는 건 불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나무가 얇은 철선이 파고들어 상처가 나 있었다.
노래도 흥얼거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전기 철선을 따라 올라 9시 32분 드디어 방화선이 목장을 벗어났다. 대략 한 시간 정도 목장 울타리를 따라왔으니 생각보다 큰 목장이다. 물론 그 목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등산로는 능선을 이어가고 목장은 계곡으로 내려가 서로 헤어졌을 뿐. 능선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그 능선 위에 있는 등산로도 당연히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오르다 보니 주변이 온통 철쭉이다. '한국의 산하' 매화산 소개에 춘삼월 철쭉과 진달래가 장관이라고 했는데, 맞아 보였다. 아직 꽃이 피지 않아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주위의 나무만 봐서는 장관일 거 같았다. 그리고 드는 생각이 너무 일찍 왔다는 거!
보이는 거라고는 철쭉밖에 없는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 보니 갑자기 눈앞이 뻥 뚫린다. 헬기장이다. 그 시각이 9시 51분이다. 헬기장에서 보니 매화산 정상이 코앞이다. 주변에 다른 건 볼만한 게 없어 매화산만 사진으로 남기고 정상을 향해갔다. 꽃이 만개했을 때를 상상하며 철쭉나무 터널을 지나자 등산로에 그동안 보이지 않던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보였다. 그리고 그 눈 위에는 짐승의 발자국이 뚜렷이 찍혀 있었다. 발톱 모양이나 크기로 봐서는 호랑이 발자국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아직 녹지 않은 눈 위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기며 호랑이는 정상을 향하고 있었다. 과연 그 호랑이의 목적지가 어딜까 추측하며 발자국을 따라갔다.
매화산이 아무리 흙산이라도 역시 한국의 산인 이상 마지막 깔딱은 피할 수 없었다. 아직 녹지 않은 눈과 얼음이 깔린 급경사를 아이젠도 없이 올라가는 건 고역이었다. 여러 차례 미끄러지며 간신히 네발로 기어 10시 29분에 정상에 도착했다. 삼각대를 꺼내 다양한 자세로 인증을 찍고 주변을 둘러봤으나, 대부분 산이 그렇듯이 앙상하지만 울창한 나뭇가지가 방해해 눈에 보이는 주변을 정확히 사진으로 남길 수는 없었으나, 그래도 뭐라도 남겨야 할 거 같아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치악산 비로봉을 사진으로 남기고 정상을 떠나 다음 목표인 치악산 천지봉으로 향했다.
정상은 삼거리로 미처 지도를 확인하지 않고 감으로 수레너미재로 향하는 길이라 생각되는 길로 걸어가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해서 폰의 등산 앱 지도를 확인하니 걸어가고 있는 방향으로는 길이 없었다. 그런데 길 상태는 아주 좋아 끝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 계속 갔다. 그렇게 50여 미터를 가자 암봉이 나타났다. 전망대다! 약간 위험해 보이는 암봉 전망대에 오르자 수레너미재 너머 치악산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다음 목표인 천지봉은 코앞에. 특히 수레너미재로 향하는 길이 있을 거로 보이는 능선을 주의해서 살펴본 후 전망대를 떠나 다시 정상으로 갔다. 정상에서 폰을 꺼내 지도를 확인했다. 지도에 의하면 수레너미재로 향하는 길은 정상에서 천지봉을 향해 바로 계곡으로 나 있었다.
정상에서 천지봉으로 향하는 계곡은 인간이 갈 수 있는 경사가 아니어서(사실 비법정 구간에 등산로란 게 있을 수 없고, 지도상에 길처럼 보이는 건 방화선이다!), 전망대 반대편으로 난 길로 10여 미터 가자 갈림길이 나타났다. 삼거리에서 밑으로 떨어지는 길이 수레너미재로 향하는 길이다. 길은 상태가 좋았으나, 바로 첫 번째 고비가 나타났다. 소나무가 멋있는 암봉을 간신히 내려가자 단독으로는 오르기 힘든 암릉이 이어졌다. 해서 주변을 둘러보니 급경사로 내려간 흔적이 있어 낙엽에 주저앉아 미끄러져 내려갔다. 계곡에 도착 후 길을 찾아봤으나 길 같은 게 보이지 않아 폰을 꺼내 지도를 확인하니 등산로처럼 보이는 방화선은 능선에 있었다. 해서 다시 쌓인 낙엽에 미끄러지며 능선에 올라보니 길이 나타났다. 결국 암릉을 우회한 거에 불과했다.
그런데 수레너미재로 향하는 하산길은 가면 갈수록 험해 설악산 큰귀때기골[산행기]을 연상케 했다. 전재에서 정상까지는 전형적인 흙산으로 한국의 산하 소개 그대로 여성미를 가지고 있었다면 반대편의 하산길은 전형적인 악산의 모습이었다. 원래 하산이 힘들지만, 더 위험해 발걸음 하나하나를 조심해야 했다. 와중에 아직 녹지 않은 눈과 얼음, 햇볕이 들어 따뜻한 곳은 그게 녹아 더 미끄러운 진흙! 생존을 위해 조심조심, 가끔은 의도적으로 엉덩이로 미끄럼을 타며 급경사를 30분가량 내려오니 길 같아 보이는 게 나타났다. 그리고 그 길목에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보도블록이 놓여 있는 구간도 있었다. 보도블록이 깔린 길을 지나 2분 정도 더 내려가자 저 멀리 뭔지는 모르겠으나, 동물상이 보였다. 수레너미재다! 그런데 그 동물상은 언뜻 보기에는 호랑이 같아 보였는데, 여기에 웬 호랑이? 비록 내가 고양잇과 동물 발자국을 보며 호랑이 발자국이라고 장난스레 언급했지만, 고개에 호랑이는 의외였다.
처음에는 옛날 한반도에 호랑이가 많이 살았고 그 호랑이에 의해 희생한 자의 무덤 호식총도 오지 고개에 많아, 이 고개도 그중 하나라 호랑이에 희생된 사자를 위로하고 호랑이가 출몰했던 지역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호랑이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길에 접근할수록 그 상이 뚜렷이 보였는데, 생각지도 못한 개구리였다. 개구리? 그 개구리가 있는 고개를 넘는 길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철망과 나무로 막은 곳을 넘어야 했다. 철망에 가까이 접근해 보니 굳이 월담할 필요 없이 갈 수 있는 옆길이 있었다. 그 길로 재에 도착해 왜 개구리인지 확인했다. 느린 우체통이다. 왜 개구리가 상징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비법정을 탈출하는 거로 철쭉과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지 모르는 거로 유명한 원주와 횡성의 매화산행을 마쳤다. 여기서부터 치악산행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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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너미재에서 왜 개구리가 '느린 우체통'의 상징인지 단서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를 뒤졌으나 정보가 전혀 없었다. 해서 느린 것과 개구리의 연관성, 또는 편지와 개구리의 연관성이 뭐가 있는지 기억을 더듬으며 치악산 천지봉으로 향했다. 문제는 이 구간이 미처 예상 못 한 비탐방 지역이라는 거였다. 수레너미재에서 천지봉까지 통제구역이었다. 정확히는 비로봉을 중심으로 좌·우로 뻗은 능선이 전부 통제구역이다. 구룡사에서 봤을 때 우의 쥐너미 고개부터 삼봉, 투구봉, 토끼봉 능선, 좌의 배너미재부터 천지봉에 이르는 능선. 물론 매화선 전지역도.
개구리에게 작별을 고하고 천지봉으로 향했다. 그 시각이 11시 22분이다. 해발 529m의 전재에서 해발 1,084m의 매화산 정상까지 올랐다가 해발 730m대의 수레너미재로 내려와 다시 해발 1,087m의 천지봉으로 올라야 한다. 1일 2산이다. 보이는 거라고는 새순을 준비 중인 앙상한 나뭇가지가 다인 급경사의 산기슭을 헉헉대고 오르는데, 어디선가 나무 쪼는 소리가 들렸다. 딱따구리다! 해서 소리의 방향을 추적해 딱따구리를 찾았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나무를 쪼고 있어 그 모습을 동영상으로 남겼다. 딱따구리를 찍는 동안 잠깐 휴식 후 다시 급경사를 올랐다. 그렇게 30여 분을 오르자 치악산의 북서사면답게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가 관심을 기울인 건 그 눈에 찍힌 발자국! 매화산에서는 호랑이가 길을 따라 흔적을 남겼다면, 천지봉을 오르는 길 위의 눈에는 인간이 남겼다. 산행 시작 후 처음 본 인간의 흔적이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천지봉을 바라보며 정상을 향해 오르는데 그 길 주변 또한 매화산과 다름없이 온통 철쭉이다. 수레너미재에서 천지봉에 이르는 능선을 '진달래 능선'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철쭉? 진달래? 군락을 지나 고도가 높아질수록 녹지 않은 눈이 길을 덮고 있고, 그 눈 위에는 인간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아무리 봐도 오늘 찍힌 발자국이다. 두 명 정도가 올라간 거 같은데. 나보다 앞선 등산객이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나와 거리가 어느 정도나 떨어져 있을까 추측하며 앞만 보고 오르니 어느 순간 천지봉 정상이다. 그 시각이 12시 36분이다. 12시 도착이 처음 목표였는데, 30분가량 늦었다.
들고 오기는 했으나 배낭에서 꺼낼 일이 없을 거 같았던 의자를 꺼내 펴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실 의자가 필요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들고 온 게 아까워 꺼낸 거다. 그리고 점심을 먹기 위해 보온병과 컵라면 등을 꺼내 정상 삼각점 주변에 펼쳐놓았다. 일단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별도로 가져간 오미자청이 들어 있는 보온병에 나머지 뜨거운 물을 부었다. 이 말은 여기까지 오는 동안 물을 포함 먹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는 거다. 라면이 뜨거운 물에 익는? 붇는? 동안 천지봉 정상석이 아닌 표지판을 배경으로 인증을 찍었다. 이후 익었다기보다는 불은 라면을 열무김치와 먹고 조금 전에 만든 오미자차로 입가심하는 거로 점심을 마쳤다.
점심을 먹은 후 인간이 있었다는 모든 흔적을 인멸 후 비로봉을 바라보며 어느 길을 선택할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우로 가면 구룡사 방향으로 주차장까지 2시간 정도 걸릴 거로 보였다. 좌로 가면 비로봉으로 가는 길로 하산 방향은 비로봉에서 상황을 보고 결정해야 했다. 천지봉에 오른 거로 치악산의 주요 봉우리는 다 올랐으니 굳이 비로봉까지 능선을 이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대간을 연결하듯이 치악산의 주요 봉우리를 능선으로 연결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거 같아 시계를 보니 1시 정각이다. 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능선을 따라 비로봉으로 향했다. 사실 망설였던 이유 중 하나가 앞에 보이는 비로봉의 날카로운 모습에 위축된 것도 있었다. 여기가 천지봉 정상인데, 그보다 훨씬 높고 날카롭기 그지없는 비로봉에 오를 생각을 하니 암담했다. 하지만, 비로봉으로 연결된 (작년에 올랐던[산행기]) 삼봉능선을 보며, 비로봉을 중심으로 삼봉능선과 천지봉능선을 연결하고자 하는 의욕이 비로봉에 올라야 하는 공포를 많이 덜어주어 비로봉으로 향할 수 있었다.
이번 산행 들머리 전재에서 매화산, 수레너미재를 거쳐 천지봉 정상까지 이르는 길은 해발 500여 미터에서 1,000m를 오르내리는 산행이라 높은 고도에서 가끔 눈을 보는 정도였다. 하지만 천지봉부터는 거의 모든 능선 및 봉우리가 해발 1,000m가 넘어 햇볕이 아주 잘 드는 남동사면이 아니면 얼음과 눈의 한겨울이었다. 능선 위의 대부분 봉우리는 눈이나 얼음이 없어도 오르기 쉽지 않은 암봉이었다. 와중에 죽죽 미끄러지는 상황이라 아이젠을 꺼내 착용할까 생각하며 주변 상황을 다시 살펴본 후 그냥 네발로 기어가기로 했다. 아이젠을 착용한다고 별 도움이 안 되는 환경이라는 게 결론이었다. 그렇게 봉우리 서너 개를 넘고 나자 지칠 대로 지쳤고 배도 고파왔다. 비록 컵라면에 불과하지만, 점심 먹은 지 2시간 정도 지났을 뿐인데. 해서 햇볕 따뜻한 양지바른 곳에 퍼질러 앉아 늘 가지고 다니는 소림 대환단을 꺼내 오미자차와 같이 먹었다. 그 시각이 2시 34분이다. 천지봉을 떠나며 비로봉 도착 목표 시각을 3시로 잡았는데 불가능이다. 해서 30분 늘려 3시 30분으로 변경했다.
약간 그늘진 곳은 눈과 얼음, 햇볕 따듯한 양지는 그 눈과 얼음이 녹은 진흙! 산행하기 가장 나쁜 해빙기다. 눈과 얼음에서 미끄러지면 엉덩이 툭툭 털면 그만인데, 진흙에서 미끄러지면 툭툭 털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미끄러지지 않도록 초긴장 상태로 갔다. 그리고 미끄러지면 엉덩이가 아니라 손을 먼저 뻗어 양손이 엉망이었다. 고로 시간은 계속 지체됐다. 처음 산행계획을 세울 때 Plan A는 '곧은재까지 달린다!'였으나, 만약에 대비해 Plan B로 주 계곡을 통해 구룡사로 하산하는 계획도 마련했다. 그런데 이런 상태로 가다가는 구룡사에서 서울로 가기는 시간이 늦어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염두에만 두고 있었던) 그보다 더 짧고 원주 시내에서 가까운 황골로 하산하는 길을 택했다. 시간이 지체되면 거리를 줄여야!
코스를 변경하는 결정을 내리며 길을 가 배너미고개에 도착할 즈음에 가까운 곳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구룡사 쪽에서 계곡을 타고 헬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산에서 헬기 보는 거야 늘 있는 거라 그러려니 했는데, 헬기 밑에 무언가 달여 있었다. 혹시 사고 때문에 구조 장비를 달고 있는 게 아닌가 해서 유심히 살피니, 소방용 물주머니다. 아니 산불?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봤으나 불이 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때 갑자기 헬기가 내가 있는 쪽으로 방향을 틀더니 아름다운 여성 목소리가 "산불 조심" 안내 방송을 했다. 분위기를 보니 불이 나서가 아니라 혹시 불을 발견하면 바로 물을 뿌리기 위해 물주머니를 달고 다니는 거 같았다. 헬기가 봉우리 너머로 사라지는 걸 보고 비로봉을 오르는 마지막 깔딱을 향해 갔다.
눈 덮인 암릉을 기어오르는 건 죽을 맛이라 마치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거 같은 착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입은 바짝바짝 마르는 데 마실 거라고는 청이 너무 많아 다디단 오미자차가 다라 어쩔 수 없이 먼지 조금 쌓인 눈의 윗부분을 걷어낸 후 깨끗한 눈을 뭉쳐 먹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눈에 찍힌 앞서간 발자국이 오늘이 아니라 며칠 전 거라는 사실이었다. 분명히 천지봉까지 앞섰던 발자국이 아니었다. 해서 내린 결론은 그들은 천지봉에서 구룡사로 내려갔고, 지금 보이는 발자국은 며칠 전에 왔던 산꾼의 것이라는 거다. 주변 상황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가는데 목은 계속 마르고 입술은 탔다. 눈을 뭉쳐 먹어봐야 그때뿐이었다. 그래도 당장 목을 축일 수 있는 건 눈밖에 없어 계속 먹으며 비로봉을 향해 눈 덮인 암봉을 기어올랐다.
봉우리에 오르자 갑자기 눈앞에 뿔 달린 도깨비가 나타났다. 평소 우리가 멀리서 보던 비로봉이 앞면이라면 지금 보이는 괴물은 비로봉 뒷면이다. 아무나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그런데 그 괴물을 찍고 있는 시각이 3시 59분이었다. 비로봉까지는 아직 멀었는데, 3시 30분은 이미 지났고 4시 도착도 불가능이다. 해서 4시 10분 도착으로 다시 시간을 변경했다. 걸음을 재촉해 가다 보니 앞에 금줄이 있고, 뒷면이라 뭐라고 적혀 있는지 알 수 없는 경고판이 걸려 있었다. 물론 꼭 봐야 아는 건 아니고 비탐방로라는 경고일 거다. 역으로 금줄을 넘으면 밝은 세계라는 거다. 역시 밝은 세계는 따뜻한 남쪽 나라라 금줄을 넘는 게 무서울 정도로 길이 완벽한 진흙탕이었다. 지금까지 잘 버텨왔는데 여기서 미끄러지면 끝이라는 생각에 옆으로 보이는 내가 온 천지봉 능선과 매화산을 감상하며 조심조심 올라 4시 17분에 치악산 비로봉에 도착했다. 2020년 2월 반원을 그렸고, 2021년 2월 나머지 반원을 그려 원을 완성하는 순간이다.
비로봉을 네발로 기어오를 때만 해도 정상에 도착해서 등산객에 물을 구걸해 마셔야지 했는데, 막상 도착하니 그럴 분위기가 아니라 황골에 있는 입석사에서 마시기로 했다. 해서 일단 삼각대를 펼쳐 인증을 찍은 후 주변을 둘러보며 경치를 감상했다. 지나온 매화산과 천지봉을 사진으로 남기고 4시 27분 비로봉을 떠나 황골탐방지원센터로 향했다. 그런데 계곡 삼거리를 향해 계단을 내려가는데 길이 온통 얼음판이고 앞서가는 남녀 한 쌍이 아이젠과 스틱을 챙기는 걸 보니 그냥 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계단에 주저앉아 아이젠을 꺼내 착용하고 스틱은 조립했다. 가장 힘든 비로봉에 오를 때는 꺼낼 생각도 안 했던 걸 거의 산책로 수준의 등산로에서 꺼냈다!
뒤에서 보면 뿔이 두 개고 앞에서 보면 뿔이 세 개인 도깨비를 사진으로 남기고,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핥으며 물이 기다리는 입석사를 향해 달렸다. 작년 2월 어두운 삼봉능선 산행 후 밝은 세계로 나왔던 장소의 사진을 한 장 찍고 계속 달려 5시 2분에 황골 갈림길에 도착했다. 탐방지원센터까지의 거리는 2.8km, 생명수가 기다리는 입석사까지는 1.2km다! 입석사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며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방향이 남동이라 빙판이나 눈이 있을 거 같지 않고, 비로봉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이젠 착용한 걸 후회하고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계단에 주저앉아 아이젠을 벗어 손에 들고 갔다. 급경사의 계단을 15분가량 내려가자 쉼터가 나왔다. 내가 쉼터를 발견한 순간 등산객 한 명이 쉼터를 떠나 하산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 쉼터가 있는 이유를 안건 낙석지대 급경사를 내려가면서다. 이 길을 올라온 등산객이라면 그 자리에서 쉬었다 감이 당연했다. 그런데 쉼터에서 떠났던 등산객은 미처 보지 못한 일행으로 보이는 등산객을 부축하고 급경사 너덜을 내려가고 있었다. 덩치는 내 두 배 정도의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친구가 부축을 받아 다리를 절며 낙서지대를 내려가고 있었다. 그들을 추월해 30여 미터를 내려가자 앞으로 엄마와 딸로 보이는 한 쌍이 앞장서고, 그 뒤 20여 미터 떨어진 곳에 비만으로 보이는 아들을 격려하며 내려가는 아버지 한 쌍이 보였다. 그들을 보는 순간 뒤의 두 남성을 포함해 모두가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남 1녀의 가족. 막내인 딸은 초등학교 4~5학년 정도로 보이는. 유감스럽게도 그 모두가 등산 준비가 안 된 상태로 낙석지대 급경사의 너덜을 내려가고 있었고, 둘째와 셋째로 보이는 친구는 지칠 대로 지친 모습이었다. 일몰이 멀지 않았는데, 제일 뒤의 두 아들? 은 일몰 전에 입석사까지 오기가 힘들어 보였다. 해서 비상용으로 들고 다니는 랜턴을 주고 갈까도 생각해봤으나 그 랜턴을 들고 그 친구에게 가져다줄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닫고 불안하지만, 그들을 뒤로하고 내 갈 길을 갔다.
그나마 다행인 거는 모녀가 막 도착한 계단에서 4분만 더 가면 입석사라는 거다. 입석사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한 일이 생명수를 찾아 음수대로 가는 거였다. 한겨울답게 생명수를 뱉어내던 거북이 입에선 물이 끊긴 지 오래되어 보였고, 그 물을 받던 돌 수조는 꽁꽁 얼어있었다. 그럼에도 요란한 물소리에 주변을 둘러보니 그 거북이에게 물을 공급하던 파이프가 하수도로 보이는 곳으로 바로 연결되어 있었다. 입술이 바짝 마르는데 이거저거 따질 때가 아니라, 그 파이프를 꺼내기 위해 하수도를 덮고 있던 기와 너덧 장을 한쪽으로 치우고 있는데, 저쪽에서 30대로 보이는 중이 나타났다. 그를 보자마자 식수가 있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식수는 없습니다. 계곡물이라 마실 수 없습니다!"였다. 바로 "누구는 해골 물도 마시는데 계곡물이라고 마실 수 없겠습니까?"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으나 참고 "알겠습니다!"하고 기와를 다시 덮고 아스팔트를 따라 내려갔다. 내려가며 대웅전과 기립해 있는 바위가 있는 대(臺), 입석대를 기록으로 남겼다. 물론 입석대에 올라서 있는 돌을 보고 싶었으나, 늦은 시간과 갈증, 배고픔이 그 호기심을 눌렀다.
작은 계곡, 황골을 따라 나 있는 급경사의 아스팔트를 따라 내려가며 계곡을 주시했다. 물론 물을 마실 수 있는 환경이 있는지 보기 위함이다. 그렇게 1분 정도 내려가니 계곡이 있는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급하게 그쪽으로 달려가 보니 좀 전 원래 거북이 똥꼬에 꼽아 입으로 물이 나오게 했던 파이프를 바로 하수구로 연결해 갈증 해소를 못 했던 그 파이프가 돌출된 곳이었다. 이거저거 가릴 것 없이 바로 엎드려 입을 대고 물을 흡수했다. 갈증이 다소 해소된 거 같아 일어났다가 뭔가 부족한 느낌에 다시 엎드려 물을 빨아들였다. 그렇게 두 번 물을 흡수해 기분이 좋은 상태로 황골탐방지원센터로 내려가며 '원주드림콜택시'에 전화해 현재 내 위치를 알려줬다. 그러자 좀 있다가 기사에게서 5분 정도 후에 도착한다고 전화가 왔다. 내가 원하는 바였다. 이 속도로 내려가면 5분 후에 탐방센터 도착이다. 낙조를 감상하며 내려가다 저 아래 탐방센터가 보이고 200여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탐방센터로 접근하는 택시가 보였다. 절묘한 타이밍이다!
3
아직 짐 정리가 안 끝난 상태에서 도착한 택시를 타고 고속버스터미널을 외쳤다. 그러자 기사가 집이 어디냐고 물어 서울이라고 했더니, 기차를 타는 게 낫지 않냐고 했다. 물론 설 막바지 연휴니 도로가 아니라 철로로 가는 게 빠르다는 건 알지만, 매진이라 고속버스터미널로 간다고 하자, 다시 기사가 그럼 문막은 어떠냐고 물어 앱으로 열차 상황을 확인해 보니 거기는 모조리 매진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기사에게 터미널까지 얼마나 걸리냐고 묻자 20분 정도 예상해 30분 후의 원주발, 고속터미널행 6시 40분 차를 예매했다. 달리는 택시 안에서 등산 장비 정리를 끝내고 초조하게 교통 상황을 살피고 있는데, 버스 출발 5분 전에 원주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처음 생각은 터미널에서 시원한 생수를 사서 마음껏 마시려 했는데, 시간이 없어 바로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탔다.
6시 40분 예정된 시각에 버스가 출발했다. 내 바람은 비록 총 운행 시간이 1시간 30분에 불과하지만, 중간에 휴게소에 정차하는 거였다. 그래야 물도 마시고 볼일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가능성이 '0'에 수렴하는 희망이라는 걸 잘 알았다. 가능성이 '0'에 수렴하는 내 바람과는 달리 한 번의 휴식도 없이, 그리고 설 연휴 막바지라는 지체 요소에도 막힘없이 예정된 시각 8시 10분에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볼일을 본 후 편의점으로 가 한 병의 보리차를 샀다. 그 자리에서 반을 마신 후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9시 15분경 집에 도착해 아지트 화장실에 씻기 위해 옷을 벗고 보니 등산복 하의가 장관이었다. 일단 깨끗이 씻은 후 삼겹살, 어묵탕 등의 안주와 빨갱이 반주로 저녁을 먹는데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너무 피곤해 먹을 수가 없는 상태였다. 억지로 몇 잔 마시고 숟가락을 놓았다. 최근 몇 년 내 산행 후 이런 경우는 오랜만다.
처음 계획과는 달리 Plan C인 '전재 → 헬기장 → 매화산(1,084) → 수레너미재 → 966봉 → 천지봉(1,086) → 배너미재 → 부곡골 갈림길 → 비로봉 → 비로봉 삼거리 → 황골삼거리 → 낙석지대 → 입석대(입석사) → 황골탐방지원센터'의 17.7km(트랭글 기준), 9시간 40분의 매화산, 천지봉 등의 오지를 탐험했다. 이동 9시간 6분, 휴식 34분!
‘해발 1,000m가 넘는 매화산을 목표로 치악산 천지봉에 들린다!’는 생각의 산행이었으나, 주객이 전도되어 치악산 천지봉, 비로봉 구간이 주가 되고 매화산이 객이 되는 탐험이었다.
'치를 떨고 간다!'는 치악산 본모습을 2020년 토끼봉, 투구봉, 삼봉, 쥐너미재, 비로봉 구간에서 1차로 맛보고[산행기], 이번 수레너미재, 천지봉, 배너미재, 비로봉 구간에서 절감했다.
치악산 국립공원의 주요 봉우리와 재, 계곡은 거의 다 방문했으니 당분간 치악산 갈 일은 없을 듯하다.
철쭉으로 유명한 매화산은 전재에서 시작해 수레너미재에서 마감하는 또는 그 역으로 하는 등산방 철쭉꽃놀이 산행도 좋을 듯!
첫댓글 이틀이 지났건만, 지금도 치가 아니라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이 떨린다!
영월지맥 치악산 구간이란 건 오늘(2022.6.21)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