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인데.. 나가 아니다.
어제의 나는 글을 쓰려 마음을 먹으면 글이 나왔다고 할 수 있는데..
오늘의 나는 글을 쓰려하면 시작부터 힘이 들고..
어쩌다 쓴 글을 다시 읽으면 맘에 들지 않아 지운다.
이런 나가 보기 불편해.. 박 선배님과 바람이나 쐴 겸 메릴랜드로 떠났다.
메릴랜드는 차로 하이웨이를 달려 4시간 반 가량 걸리는 거리이니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해서 일박할 준비까지 하고 아무런 목적 없이 떠나긴 먼 거리이니..
블루 크랩을 먹으러 가자며 길을 나선 것.^^.
나이가 들면.. 반드시 그런 것만이 아니겠으나..
함께 여행을 떠난 박 선배님은 정말 아는 게 많아 많은 걸 배우니.. 좋아하면서 존경하는 분이다.
그러니 네 시간 이상 차를 타고 가면서 얼마나 흥미진진한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나와 생각하는 결이 같은 방향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예를 들어 정치적인 주제가 나오면.. 나는 민주당쪽이고 선배님은 공화당쪽이라 할 수 있으니..
그 쪽 주제는 시한폭탄처럼 예민하게 맞서는 입장이다.
다만 공자는 40이면 불혹(不惑), 60이면 이순(耳順)이 하셨듯이..
60이 훌쩍 넘은 선배님이나 나는 인생관이나 세계관이 바뀌지 않는다[불혹]는 것을 서로 자알 알고 있다는 점.
그러나 귀가 순해지지는 않아서.. 생각이 크게 다를 경우 격렬하게 부딪치지만..
어느 격정적인 순간에 이르면 거기서 스톱하고 슬쩍 주제를 바꾼다.
박 선배님은 당연히 역사에도 밝아.. 차 안에서 들은 얘기 가운데..
일본의 천황제 본격적인 시작은 6세기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 무령왕 동생이 천황이 되고
그 전에 일본에 들어와 다스리고 있던 가야왕족이 천황 비로 결합하면서 부터라고 직시하고 있으면..
일본의 천왕과 귀족은 백제와 가야, 신라를 부모나 큰 형님 나라로 섬기고 있어..
백제나 가야, 신라가 고구려에 침략을 받으면 왜는 목숨을 걸고 도우러 오는 관계가 지속되고 있었다..
5세기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백제 등을 침략했을 때.. 왜를 다스리던 세력 역시 가야 왕족과 백제, 신라 계였는데..
왜가 한반도 남동쪽 해안을 침략해 백제와 신라(가야)를 자기의 신민으로 삼고 있었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임나설을 인정하는 현재 우리 국사계의 식민사관을 비판한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를 학창시절 공부는 안 하고 반정부 데모 활동이나 하던 주사파로 빨갱이 정부라고 하는 말에
나는 문재인 대통령은 소수권력집중에 맞서 민주 시민이 앞장서는 정부를 지향한 정부라 하여..
설왕설래하다.. 그만 301번 도로를 놓치고 13번 도로를 제법 달려온 불상사가 발생했다^^..
박 선배님은 나의 큰형님과 비슷한 나이로 친구분들은 6.25 전쟁이 터진 1950년에 대여섯일곱 나이였다.
그러니 3년 전쟁 동안 치른 그 고통을 뼛 속에 새기고 있는 이들이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그들이 본 참혹한 전쟁 참상을 이승만 정권은 이북 김일성 공산당 빨갱이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했다.
그러니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그 때 어린 시절을 보낸 칠십이 넘은 이들은 '뺄갱이' 말만 나오면 손사래 치며 뭉게려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
더 나아가 이승만과 박정희 정부는 자기를 반대하는 진보적인 민주 세력과 정치 세력을 박해하여
그들은 공산당 빨갱이와 연결되었다는 거짓 자백과 증거를 만들어 대문짝만 하게 뉴스로 보도하니..
다수의 국민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형편이다.
그것은 박정희 정권을 이은 소위 보수라 불리는 정당은 주류가 되어..
그들은 엄청난 부정부패만 저지르지 않고.. 남북 군사적 대립이 사라지지 않으면..
일본의 자민당처럼..
대한민국은 길이길이 보수 정당이 집권할 수밖에 없는 지형을 만들었다.
그런데 엘리트주의로 미화된 소수권력집중제가 민주화의 꽃인가?.
아니지. 그것이야 말로 민주제 피를 빨아먹는 악의 꽃이 아닌가..
민주화는 소수 권력에 지배를 받고 있는 시민의 저항의 피를 먹고 꽃을 피운다고 했듯이..
민주화를 향한 보살의 길은 진정한 목사의 길처럼 피를 흘리는 고통과 형극의 길이 아닐 수 없다.
보살은 항상 강자나 권력에 눌려 자기 이익과 권리를 빼앗기고 사는 어리고 약한 자 편에 서기에..
그런데 주위를 보면..
승려나 보살이라 하면서.. 목사라 하면서..
권력이나 부귀를 누리는 자들이 적지 않다.
그와 같은 소수권력집중을 옹호하는 당이 자유당이요, 공화당이요 지금 국힘당이라고 나는 보는데..
선배님은 그런 보수당 편에서 고개를 끄덕이니 부딪칠 수 밖에..
대한민국과 미국 역사뿐 아니라 미국에 살면서 필요한 법과 의학 상식.. 박 선배님은 은퇴한 의사이니^^..
우리가 알아야 할 이런저런 말을 하시던 선배님이 보수의 눈으로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는 얘기로 빠지니..
나는 참지 않고 반응하여..
차 안이 갑자기 시끄러워졌고.. 아니나 다를까..
차는 메릴랜드로 가는 301번 도로를 놓치고, 델라웨어 해변 도시 도버를 향한 13번 도로를 한참 달리고 있었다..ㅎㅎㅎ^^..
반 시간 정도 달린 시골길..
주로 옥수수가 눈이 갈 수 있는 끝까지 심어진 농장 길은..
바로 내가 그리던 그곳으로 눈은 물론 마음도 편하게 한다.
나뿐 아니라 짝님이나 선배님도 좋아하고 마음의 편안을 주는 것으로 보였다.
마음이 편해지니.. 어떤 이야기가 나와도 편하게 눈과 귀에 들어온다^^. (사진이나 하나 담아둘 껄)
헤맴은 있었지만.. 고마운 지피에스 덕분에.. 목적지인 크랩 하우스에 무난히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는 주로 주말에 왔기에 사람으로 붐빌 때가 많았는데..
목요일인 오늘은 사람이 별로 많지 않다.
정박된 요트를 구경하며 음식 오더를 했다.
선배님은 고향이 인천이듯 게를 참 좋아하신다.
나는 큰(large) 사이즈 크랩 한 더즌을 오더하겠다고 하니.. 한 더즌은 혼자서도 먹을 수 있다고.. 큰소리치신다^^.
웃으며 한 더즌 반을 주문했다.
작년에 볼티모아에 와서 이곳에 짝이랑 둘이 왔을 때..
큰 사이즈 크랩 반 더즌에 옥수수 하나 씩을 먹으니..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하여 셋이서 한 더즌을 오더하려 했던 거였는데.. 따라서 사이드 오더는 하지 않았다^^.
선배님 조카가 시카고에 사시다 얼마 전 한국으로 완전 귀국을 했단다.
싱글로 살면서 오랜 간호사 생활을 하다 은퇴했는데..
치매 증상이 보이더니.. 조금씩 심해지더니..
어느 날부터는 그렇게 잘하던 영어를 멈추고 오로지 한국말만 사용하고, 한국 방송과 한국 신문만 보더라고..
걱정이 되어 한국으로 보내려 하니..
본인은 왜 날 한국에 보내려 하느냐고 투정을 했지만.. 한국에서 여생을 보내는 게 편할 것이라는 판단으로..
겨우 설득했단다.
미국 시민권자였기에 국적 회복 등 복잡한 서류 문제가 있었지만 다행히 보낼 수 있었다고..
말하는 도중 한국의 왕따 문화 얘기도 나왔는데.. 그게 장난이 아니라고..
미국에 완전 정착하기 전.. 암 전문 닥터인 선배님도 한국 귀국을 심각하게 고려한 적이 있었다고.
그런데 거기서도 왕따를 각오하고 들어오라는 말에 고민하다 미국에 살기로 했다고..
완전 귀국을 고민하는 이들이 주위에 제법 있다.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는 게 문화적 차이라는데.. 그 내면엔 왕따 문화가 있는 게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미국인인가 한국인인가?.
당근으로 나는 한국사람이다.^^.
미국이 어찌 되는 것보다 한국이 어찌 되는 게 더 큰 관심이다.
그런 내가 한국에 귀국을 한다면.. '미국에 산' 한국인이란 빈정이 섞인 딱지는 무덤까지 가겠지..
그래도 어쩔 건가.. 난 한국인인걸..
여기서 방송하는 한국 방송 뉴스에서 어느날..
미국과 한국이 축구하면 어디를 응원할 것인가?.. 하고 묻는데..
이민 1세는 무조건 한국이다.
양키팀 골수 팬이라 해도 한국인 선수 한 명이 포함된 팀이 원정 경기 오면..
양키팀을 배반하고 원정팀을 응원하는 게 우리다.^^.
우리 민족만 그런 게 아닐껄!..
일곱여덟마리 게를 거뜬히 드시는 선배님을 보며.. 짝이 왜 게 다리는 잡숩지 않냐고 하니.. 웃음으로 답하시는 데..
우리는 갈매기가 그러듯이 몸체와 게 다리까지 다 깨뜨려 속살을 먹는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대로 남들도 그리 하기를 바란다.
왕따를 하는 이유도 우리들과 무언가 다르게 행동하기 때문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류인 보수가 소수의 진보적인 행동을 고깝게 보는 것 역시 그들이 다르게 행동하는 게 싫어서가 아닐까..
그러나 물이 고이거나 머물면 썩듯이..
변화하지 않으면.. 진보적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늙고 병이 든다.
몸이 늙어도 마음이 늙지 않는 것을 잊으면.. 마음 역시 늙고 병듦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
대부분이 할머니인 이십명 이상 단체 손님이 평소 우리가 즐기던 자리로 우르르가 앉는다.
여기도 어덜트 케어라 하여 노인 단체가 있는가 보다.
젊은이는 젊은이끼리. .노인은 노인끼리 어울리는 게 편할 때가 많다. 스스로의 생활을 서로 잘 이해하기에..
눈이 가려워 거울을 보니 오른쪽 눈이 많이 충혈되어있다.
피곤하다는 뜻.
일박하고 가려 했는데.. 선배님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계획을 바꾸어 뉴욕으로 오늘 돌아가야겠다고 했다.
돌아가는 길은 제대로 301 도로를 따라 올라갔는데..
시간은 절약되었지만..
내려갈 때 실수로 달리던 농촌 길의 한적하고 편안한 그 맛이 없다.
네다섯 시간 여행길이라면.. 약 반 시간 정도 한적한 시골길이나 작은 타운 길을 달리는 걸 염두에 두는 것도 좋지 않을까..^^..
선배님 왈..
해외를 포함한 타지에서 맛집 찾는 방법은 인터넷 검색이나 비지트 샌터에서 묻는 것 보다..
그 동네 마켓 같은 곳에 가서 그곳 주민에게 묻는 게 최고라고.^^.
나는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건내는 것을 꺼리는 데.. 선배님은 아무에게나 스스럼 없이 친하듯 말을 건낸다.
여행을 즐기려면 쭈삣(shy)이즘나 에고 마스크를 벗어 던져라.
여름휴가철 시작점이어서 인지..
도로는 뻥 뚫려있다.
가는 길도 그랬지만 돌아오는 길도 조 다리에 이르도록 막히지 않았다.
저녁은 순두부집으로 갔는데.. 배불리 점심을 먹었으면.. 저녁은 한식을 먹는 게 좋을 듯.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식은 구수하면서도 다이어트 식에 가까워..
먹고 나면 속이 개운하다.
선배님을 집 앞까지 모셔다 드리니..
마치 큰 일 하나 마친듯 흐뭇하다..^^..
좋은 밤 즐기십시요..^^()..
보통 여행을 하면 여러 사진을 담는데.. 이번에는 달랑 두 장 뿐.
평상심으로 돌아가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