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 금수강산으로 / 안순희
황량해진 들녘에 커다란 짚 더미가 농부의 치열했던 여름을 증명하고 있다. 쌀이 모자라 바다를 막아 만든 드넓은 간척지가 기름진 곡창지대로 가꾸어지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 비좁은 땅에서 나는 곡식은 턱없이 모자랐기에 단위 면적당 수확량을 늘리는 노력으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서 성과도 만들어냈다. 쌀 한 섬 값이면 큰 잔치도 치를 만큼 귀하던 것이 하루치 품값만도 못한 지경에 이르니 곳곳에 노는 땅이 늘고 있다. 농업기반공사가 세워지고 농지 관리 정책으로 농지은행을 만들어 은퇴한 농민의 땅을 사서 청년 창업농에게 팔면서 싼 이자로 대출을 해주거나 임대 해주는 사업은 농업에 뛰어든 젊은이에겐 매력 있는 정책이었지만 거기에 붙는 단서 조항이 큰 걸림돌이다.
임대농지는 5년, 매수농지는 2년간 벼농사를 하지 않고 밭작물을 심거나 휴경을 하라는 건데 물 빠짐이 나쁜 논에는 밭작물을 가꿀 수가 없어서 사료용 벼를 심었지만 수확할 대형 기개를 못 구해 늦가을 여문 낱알들이 고스라진 광경에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규칙을 어겼다간 대출금 회수에 들어간다니 그냥 갈아엎는다며 일손을 도와달라는 요청이 왔다. 땅값에 거의 반을 자부담으로 샀지만 이자가 싸다는 이유로 직불제도 주지 않으면서 기반이 없는 초보 농부에게 과한 부담을 지운다는 생각이 든다. 쌀 한 톨이 버려지면 사흘을 운다는 말을 믿으며 금처럼 아끼던 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눈에는 저리 쉽게 땅에 묻히는 4500평 논의 낟알이 모두 우는 것 같았다. 굼주린다는 이북 동포도 콩 한줌을 얻으려고 온종일 일하는 맨발의 아프리카 소녀도 스쳐 갔다.
한동안 온 나라가 들썩였던 요소수 파동을 보자니 아찔했다. 요소수 부족으로 일부 차량이 멈출 수도 있다면서 그 때문에 일어날 일들을 짚어가며 호들갑을 떠는데 저것이 한낱 공업용 재료가 아닌 사람의 먹을거리였다면 어찌 되었을까? 세계가 열려서 나라 밖의 싼 재료는 사오고 우리의 비싼 물건은 팔아서 이득이 많은 쪽을 선택하던 시대도 저물어가는 것 같다. 우리 농업은 경제 논리에 희생된 측면이 크다. 내 처녀 적 참깨 한 되 값이 2만 4천 원이었다. 40년도 지난 지금도 깨값은 3-4만 원이다. 돈의 가치로 치면 비교할 수 없는 차이다.
그 덕에 우리 국민은 더 싼 먹거리를 얻을 수 있고 풍성 해졌지만 농지는 황패 해졌다. 비좁은 땅 어렵게 일군 작은 밭들은 품 값이 안 되니 그냥 묵혀 있고 넓은 밭은 고구마 영농조합에 넘어가서 개인의 밭농사 기반은 거의 무너져간다. 어느날 갑자기 전쟁이 나거나 이상기후로 곡물의 수급에 변수가 생긴다면, 한낱 요소수가 아닌 사람의 먹을 거리가 무기가 되어버린다면, 그보다 끔찍한 일은 없을 것이다. 눈앞의 이익만 쫓다 우리의 생명줄인 논밭을 묶히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일손은 귀해지고 덩치 커진 농기계 값은 대부분 억 소리가 넘어가니 갈수록 농업도 기업화가 되어 간다. 우리 법에 경자유전이라는 조항이 있으나 문서화 된 법일 뿐 현실은 전혀 다르다. 대규모 간척지는 예전에 대자본의 몫이 되었고 온갖 편법을 동원한 자본의 농지 잠식은 오늘도 진행형이다. 예전의 소작농과는 다르지만 초보 창업농은 여전히 임대농지에 의존하는 비중이 크다. 군대군대 대형 축사가 세워지고 건너 쪽은 들이 통째로 태양광 단지가 되어있다. 쌀농사는 단위면적 당 소득이 낮으니 적은 규모는 생계비가 되지 못해 덩치를 키워가야 하는데 농업 정책마저 자본의 논리로 돌아가니 농업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신혼 때 귀농하여 사 모은 농기계 값 갚고 나니 기계도 사람도 함께 늙어 회갑이 되었다는 어느 농부의 푸념은 그나마 성공한 농부의 엄살이다. 뜻있는 청년의 창업은 점점 기회가 줄어든다. 한정된 땅은 경쟁자가 늘어 값만 뛰고 그나마 팔겠다는 사람은 없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보는 외국의 농사 현장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끝이 안 보이게 펼쳐진 지평선, 그 위에서 마음껏 춤추듯 내달리는 거대한 기계의 질주가 비좁은 땅에서 복작거리는 우리에겐 부럽기도 하지만 너무 지루해서 질리기도 할 것 같았다. 예전에 조선족 동포들이 우리나라로 돈 벌로 오던 때가 있었다. 그분들이 부러워했던 것은 집 뒤에 예쁜 언덕과 숲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자기가 사는 동내는 가도가도 끝이없는 들판에 경사가 없어서 웅덩이마다 고인 물이 썩어 냄새가 난다며 깨끗한 물과 공기를 무척 신기해했다. 산자락마다 마을이 있고 신비스런 전설이 있는 곳 철마다 빛깔이 다른 우리나라는 곳마다 무릉도원이다. 이 아름다운 낙원이 잡초로 덮혀간다.
”나에게 대통령의 권한이 주어진다면 국토를 지키는 일에 버금가는 식량주권을 지키는 데도 힘을 쏟겠습니다. 기후 변화가 불러올 필연으로 곡식의 생산량이 줄고 수출하는 나라가 곡간을 잠근다면, 훼손된 농지는 중단되었던 요소 공장처럼 금방 고쳐 쓸 수 없기에 더 이상 망가뜨리지 않고 보전하는 정책을 펴겠습니다. 국토를 지키는데 군인이 필수이듯 농토를 지키는 데도 농군이 필요합니다. 저 거대한 농업 선진국들과의 경쟁을 농민에게만 맡기지 않고 확실하게 뒷받침하겠습니다. 우리 세대와 달리 지금의 젊은이들은 똑똑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단체를 만들어 몸집을 불려도 외국의 농장 주 한사람과도 견줄 수가 없는데 몇몇의 법인이나 농업 회사에만 몰아서 투자하는 데는 기대만큼 효과는 신통치 않고 농업에도 기득권층이 생길 수 있으니 대안도 찾아야 합니다.
농촌이 좋아서 전원생활을 꿈꾸는 젊은이에게 직업군인처럼 일정한 생활자금을 주어서 정착을 돕겠습니다. 각자 생활 터전을 예쁘게 가꾸어서 전 국토가 관광지가 되게 하겠습니다. 저마다의 능력을 쏟아 주변을 가꾸는 책임을 지워서 대한민국 방방곡곡이 찐 금수강산이 되게 하겠습니다 묵혀있는 작은 텃밭에서 잡초 아닌 향그러운 체소가 자라고 풀이 무성한 언덕빼기도 살뜰히 개발해서 콩 팥 녹두등 우리 땅에서 난 곡물로 각종 매장을 채우게 하겠습니다. 우리땅 곳곳을 가꾸면 곡식의 자급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들이 자라면서 보이는 오색 연출이 그 자체로 관광 상품입니다. 식량 자급률이 30%에도 못 미치는 나라가. 유일하게 남는 쌀의 생산을 줄이려고 여러 억제 정책을 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여름이면 길에서 가까운, 잘 다듬어진 들이 온통 유채꽃이 일렁이고 메밀꽃이 만발하여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도 하는데 아름답다기보다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기름진 땅에 쌀농사를 지어 가난한 나라에 나누어 준다면 꽃을 보며 얻는 기쁨보다 훨씬 큰 기쁨을 얻을 수 있을 것을, 하는 아쉬움에 씁쓸한 감상에 젖는답니다. 우리도 어려울 때 무상 원조를 받았듯이 아직도 굼주리는 지구촌의 이웃에게 나누어 준다면 훗날 반드시 보람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비좁은 땅이라도 놀리지 않고 알뜰히 가꾼다면 식량 자급도 이룰 수 있고 이웃에 나눌 수도 있는데 당장 눈앞에 이익만 쫒는다면 수입품에 밀려 우리 땅은 대책없이 훼손되고 말 것입니다
울타리 밖으로 뻗어나온 능소화를 아름답게 가꾸어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전 국토 관광지화 사업을 벌이겠습니다. 대한민국은 어디를 가나 비단 같이 고운 경치와 거울 같이 맑은 물이 있어 가치를 알려 주기만 하면 모두가 환호할 것입니다. 내 유년의 추억 한 토막을 오늘로 불러와도 충분히 경쟁력있는 관광 상품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눈 속에서 꿈꾸던 산마을에 봄이 오면 창공에 드높이 종달새 뜨고 처마엔 재비 둥지가 새 공사를 합니다. 재비 새끼가 빨랫줄에 앉을 즈음에 황소가 무논을 갈고 보리밭의 초록이 금빛으로 물들어가면 마을앞 무논에선 밤새워 맹꽁이가 울었습니다. 들은 거짓말처럼 초록으로 일렁이고 꼬부라진 다랭이논 두렁엔 아이들이 긴 강아지풀 줄기를 뽑아 들고 매뚜기랑 방아개비를 잡느라 뛰었습니다. 찬 바람이 불면 물도랑마다 수초에 쌓인 도랑 새우가 뜰채 가득 털렸고 물이 고인 논에는 붕어며 미꾸라지가 오글거렸습니다.’
동화처럼 아름다운 시절이 과거가 아닌 현실로도 다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어느방송 예능 프로에서 보았습니다. 삼시 세끼나 산골 체험 같이 놀이로 개발하면 그래서 일상이 놀이처럼 즐거울 수 있다면 전원생활을 꿈꾸는 젊은이에게 그 임무를 맡기면 뚝딱 우리 강산을 누구나 가보고 싶은 놀이터로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산간 어촌이 모두 깨어나서 젊은이가 모이면 아이도 늘어나서 곳마다 비워 있는 폐교에서도 노랫소리가 들리게 하겠습니다. 그러려면 책임만큼 보상도 주겠습니다. 이 나라를 골고루 잘살게 하려면 합당한 책임은 나라가 지겠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 금수강산은 지구촌의 놀이터가 될 것입니다.“
”글에서라도 아름다운 꿈을 그려보았습니다. 결석을 많이 해서 죄송합니다.
첫댓글 안순희 선생님!
선생님의 글 읽으면 행복해집니다.
이번에도 동화같은 시골살이를 그려 주셨네요.
식량 주권,
저도 써보고 싶은 주제였는데 이렇게 구체적으로 쓰시니 정말 설득력이 있네요.
좋은 글 읽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내 유년의 추억 한 토막을 오늘로 불러와도
울타리 밖으로 뻗어 나온 능소화
밤새워 맹꽁이가 울었던
꿈꾸던 산골 마을에 봄이 오면
생각만 해도 즐겁습니다. 아름다운 전원에서 잘 놀다 갑니다. 고맙습니다.
안 작가님! 글 많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언제쯤 이런 글을 쓸 수 있을지 고민이 깊어지네요.
글벗님들 고맙습니다. 서툰 글 읽어주시고 걱려해 주신 선생님 따뜻한 배려에 많이 부족하고 성의없이 굴어서 미안합니다. 한 일 없이 종강이라니 더 아쉽습니다. 고맙습니다.
가을걷이 하시느라 바쁘셨지요?
글 많이 기다렸어요.
작가님 글은 아름다운 한폭의 수채화 같아서 덩달아 마음이 맑아지는 걸 느낍니다.
글 읽으며 행복했어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글을 읽으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고 마음은 행복해집니다.
귀한 글 읽을 수 있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어떤 분이 쌀값은 40년 전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는데 대학 등록금은 껑충 뛰었다고요. 농민이 귀한 대접 받을 수 있게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꼭 필요하지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