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도전기 / 최종호
탁구장에 다닌 지 7개월째다. 그 전에는 지방직 행정 공무원으로 퇴직한 친구의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시설을 몇 번 이용했다.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공이 나와 연습할 수 있는 탁구대와 게임용 하나가 준비되어 있었다. 시설이 깨끗하고 방해도 받지 않아 좋았다. 단식과 복식 경기를 하며 건강도 챙기고 우의도 다질 수 있다며 모두 만족했다. 그런데 얼마 뒤, 민원이 들어왔다며 곤란스러워했다. 주민 복지 차원에서 마련해 놓았는데 외지인이 사용한다고 경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다른 대안이 필요했다.
어느 날 그 아파트 단지 밖에 있는 탁구장을 발견하고서 알아보러 갔다. 레슨비와 이용료를 합쳐 14만원이란다. 토요일과 일요일도 칠 수 있다고 했다. 휴일에는 회원들이 관리한다는 것이다. 탁구장을 나서며 며칠 여유를 두고 다니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하지만 둘은 조금 늦출 태세였다. 그런데 “언제부터 다닐 것이냐?”며 한 친구가 전화로 독촉했다. 용감하게 내가 먼저 등록했다. 날짜 간격은 있지만 모두 뒤를 따랐다.
들락거린지 얼마 되지 않아 회원들이 우리를 보면 웃었다. 손님을 받아들이는 시각부터 끝나기 전까지 머무른 데다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으니 그럴 만했다. 게다가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자주 나갔다. 레슨을 받으며 실력이 조금씩 나아지고 경기력도 좋아져서 재미있었다. 복식 조는 고정해 놓았다. 상대를 자꾸 바꾸면 실력이 모자라는 친구가 기분 나빠할 것 같아서다. 서로 비슷해서 지지 않으려고 같은 편끼리 연습을 많이 했다. 살이 빠져 고민이었지만 달아오른 열기를 나 때문에 식게 만들 수는 없었다.
늘 일정하게 유지되던 몸무게가 5kg 이상 빠지자 얼굴에 확연히 드러났다. 만나는 지인마다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물었다. 그렇잖아도 마른 편인데 거울을 볼 때마다 뼈와 가죽만 남은 것 같았다. 조금 느슨하게 다니자는 요량으로 친구들에게 “팬티도 커서 못 입을 지경이여.”라고 속사정을 전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급기야 지난 2월, 학부모를 대상으로 고흥교육청에서 강의하는 날이었다. 나를 보고 “작년의 그분이 맞아요?”라며 농담까지 했다. 힘도 없고 현기증마저 느껴졌다. ‘다른 원인이 있는 것이 분명해!’ 하지만 어느 병원으로 갈지 고민이었다.
며칠 뒤, 안동에 사는 대학 친구와 통화했다. 자신도 같은 증상으로 동네에 있는 내과에서 갑상선항진증 진단을 받고 나은 경험이 있단다. 그러면서 당뇨병도 살 빠지는 것과 관계가 깊다고 했다.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다음날 용기를 내서 집 앞에 있는 병원에 갔다. 의사는 병원에 온 이유를 묻더니 간호사를 불렀다. 그녀는 손가락에 침을 쏘아 혈당을 체크했다. 진료실을 나와 채혈실에서 피를 뽑고 집으로 왔다.
월요일에 검사 결과를 보러 갔다. 의사는 모니터를 살피더니 갑상선호르몬 수치가 정상 범위보다 낮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백혈구 수치도 미치지 못한단다. 약을 쓸 정도는 아니니 2주 후에 다시 한 번 추이를 검사해 보자고 했다. 크게 염려할 정도는 아니라니 일단 안심이 되었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갑상선호르몬 쪽에 가족력이 없는데 낮게 나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푸념했다.
엊그제 두 번째 검사를 했다. 결과는 정상이었다. 걱정이 떠나질 않았는데 이제야 마음이 놓였다. 지금은 보통 저녁에만 탁구장을 이용한다. 가는 날도 일주일에 서너 번이다. 다른 친구들도 주로 그 시간을 이용한다. 열기는 처음보다 못하지만 게임을 즐기는 것은 그대로다. 지난달까지 6개월간 레슨을 받았다. 지금은 자유롭게 게임만 한다.
살도 조금 올랐다. 의사에게 몸에 이상이 없다는 얘기를 들어서인지 컨디션도 좋은 편이다. 실력도 왕초보는 면했다. 처음에는 기존의 회원들과 차이가 많이 나서 게임하기가 두려웠다. 하지만 이제 같이 웃고 즐기는 수준은 된다. 결석이라도 하면 그들이 먼저 안부를 묻는다. 이제 네 명은 탁구장의 핵심 회원이 되었다. 그동안 시간과 노력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 보람도 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듯이 그들과 함께했기에 가능했다. 퇴직하고 함께할 수 있는 이들이 있어 좋다.
첫댓글 이제는 탁구까지 석권하시겠군요. 응원합니다.
한 수 가르쳐 주시길 청하나이다. 하하.
할 일이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살살 하셔요. 탁구는 에너지 소비가 많은 운동이잖아요.
정상이리니 마음이 놓였습니다. 주위에 갑상선 항진증, 저하증으로 약 먹는 사람이 많아요. 심한 운동은 독이라는 생각도 늘 하시면서 건강 잘 챙기십시오. 좋은 글 고맙습니다.
최 교장선생님과 탁구가 너무 잘 어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