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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그리스도인이 될까?
베드로후서 3:11-18 2025/1/19 주현 후 제2주
3: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3: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3: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3: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3: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평안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우리 자녀와
고난 받는 이웃들에게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교회력으로 오늘은 ‘주현 후 둘째 주일’입니다.
주현절
교회는 전통적으로 12월 25일 성탄절을 기준으로 12번째 되는 날을 주현절로 기념했습니다. 그러니까 지난 1월 6일 월요일이 2025년 주현절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둘째 주가 되는 오늘, 우리가 주현 후 둘째 주일 예배를 지금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주현主顯(Epiphany)
우리의 주님이신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영으로 계신 하나님이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이
어떠한 것으로도 형상화 할 수 없는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이 역사에 출현出現:나타났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주현절을 그리스어 epiphaneia(나타남)을 강조해서 ‘현현顯現절’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메시야가) 공식적으로 나타났다고 해서 공현公現절(성공회)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또 갓 태어난 예수님에게서 신성이 나타났다고 해서 신현神現절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특이한 것은 ‘정교회’라고 불리는 ‘동방 그리스도교’는 주현절이 시작된 날을 ‘성탄절’로 지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정교회 러시아정교회 시리아정교회 아르메니아정교회 이집트정교회 에티오피아정교회 등 동방그리스도교에 속한 모든 정교회는 서방그리스도교와 달리 성탄절을 12월 25일이 아니라 그로부터 12번째 날인 1월 6일을 성탄절로 지킨다는 것입니다. 좀 복잡하지요.
중요한 것은 오늘 우리가 동방교회든 서방교회든
교회의 아주 오래된 전통 중에 하나인 주현절을 지키는 이유입니다.
주현절을 지키는 이유
바울을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오늘 우리가 교회의 아주 오래된 전통 중에 하나인 주현절을 지키는 이유 그것은 그리스도의 예수의 마음을 품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좀 더 풀어서 설명을 드리면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보여주신 태도, 순종이겠지요.
그 ‘순종하는 태도’를 배우는 절기가 바로 주현절입니다.
그래서 새 번역 성경을 이 두 가지의 의미를 모두 담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빌2:5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또는 '여러분은 이런 태도를 가지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께서 보여주신 태도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교회가 아주 오래 된 전통 중에 하나인 주현절을 지키는 이유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자 ‘그리스도 예수께서 보여주신 태도’는 무엇일까? 그 실체를 바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새)빌2:6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2:8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2: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2:10 그리하여 (사45:23의 말씀이 이루어 진 것처럼)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2:11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다시 요약하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자 ‘그리스도 예수께서 보여주신 태도’의 특징은
첫째 6절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셨다.
둘째 7-8절입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을 뿐만 아니라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다.
셋째 9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의 마음, 순종의 태도를 보여주신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예수님께 주셨습니다.
넷째 10절입니다.
(그러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순종의 마음, 순종의 태도를 보여주신 예수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순종’이라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보여주신 ‘순종의 태도’를 따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야한다는 것입니다.
(새)빌2:12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언제나 순종한 것처럼, 내가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이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 더 순종하여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
그런데 초대교회 성도들의 순종
그 순종의 마음과 태도를 위협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재림의 지연이었습니다.
재림에 대한 예수님의 약속이 점점 지연되었다는 것입니다.
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3절 말씀이었습니다.
(새)4:3 내가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나에게로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겠다
하지만 이 희망의 약속이 점점 더 버거웠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에게 향했던 조롱과 박해가 이제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다시 말해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향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조롱과 공격이었습니다.
벧후3: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3: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는 재림의 약속은 어디 있는가?’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만물은 창조 때부터 그러하였듯이 그냥 그대로 있다’
그러자 굳건했던 초대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그리고 하나님께 순종했던 성도들의 태도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래서 이 문제를 놓고 고민 끝에 글을 쓴 사람이 있었는데
교회의 반석이라고 부르는 베드로였습니다.
베드로는 우선 초대교회가 처한 가장 큰 숙제를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재림의 지연 문제였습니다.
이 근본적인 문제를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에게 설명하지 않고는 세상의 거짓과 세상의 악과 세상의 유혹과 맞서 싸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재림의 지연 문제를 오늘 본문 앞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왜 우리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는가? 베드로의 설명입니다.
벧후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성경으로 예를 들자면, 베드로 후서 2장입니다.
홍수 시대
하나님의 정의를 부르짖던 사람 노아와 그 가족 일곱 사람만이 멸망하지 않았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다 노아와 그 가족 일곱 사람처럼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림의 날 심판 날을 하나님이 계속 유예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노아처럼 모두 다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인애(긍휼/자비)하심 때문입니다.
따라서 재림의 날 심판의 날이 유예가 된 긍휼하신 이때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베드로가 제시한 첫 번째 해답은 이것이었습니다.
벧후3: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이 부분을 새 번역 성경은 이렇게 풀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삶 속에서
3:12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 날을 앞당기도록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슨 말입니까?
재림의 지연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지연된 그리스도의 재림을 앞당기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삶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것이었습니다.
재림의 날 심판의 날이 유예가 된 이 긍휼한 시간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하는가?
벧후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새)3:13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따라 정의가 깃들여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셋째 재림의 날 심판의 날이 유예가 된 이 긍휼한 시간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하는가?
벧후3: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티도 없고 흠도 없는 사람으로, 아무 탈이 없이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 있도록 힘쓰십시오.)
넷째 재림의 날 심판의 날이 유예가 된 이 긍휼한 시간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하는가?
벧후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말씀을 마칩니다.
찬송가 279장은 이런 가사를 담고 있습니다.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가비오니
죄인오라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주여 주여 내가비오니
죄인오라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그 때 우리가 준비해야할 마음가짐과 태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삶 속에서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 날을 앞당기는 그리스도인(3:11-12)
둘째 주님의 약속을 따라 정의가 깃들여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3:13)
셋째 티도 없고 흠도 없는 사람으로, 아무 탈이 없이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 있도록 힘쓰는 그리스도인(3:14)
넷째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그리스도인(3:18)
여기에 다시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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