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올린 글을 최근 파문으로 번지고 있는 타이릭 힐 사건과 연관지어 다시 정리해본다.
미국프로풋볼(NFL) 마이애미 돌핀스의 와이드 리시버 타이릭 힐(30)이 지난 8일(현지시간) 잭슨빌 재규어스와의 시즌 개막전에 늦지 않으려고 운전하다 경찰관들에게 당한 일은 넷플릭스 영화 '레블 리지'(Revel Ridge, 제레미 솔니에 극본 연출 편집)의 첫 장면과 상당히 닮아 보인다.
힐이 별 것도 아닌 일로 경찰관들과 입씨름을 하다 자동차에서 끌려 내려와 길바닥에 엎드려지고 뒤로 수갑이 채워진 일은 경찰 보디캠에 그대로 담겨 10일 영상으로 공개돼 적지 않은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고 영국 BBC가 보도했다. 미국 CNN도 힐과 그의 변호인을 연결해 파문을 자세히 소개했다.
하드 록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시즌 개막전을 몇 시간 앞두고 벌어진 일이다. 마이애미 데이드 경찰은 이 사건에 연루된 경관 한 명이 행정 업무를 하며 수사를 받는다고 밝혔다.
보디캠 동영상은 경관이 힐의 자동차를 정차하라고 지시하면서 시작한다. 여러 경관이 다가가는데 한 경관이 창문을 노크한다. 창문을 내리란 것이었다. 힐은 응하지 않다가 내린 뒤 "그런 식으로 내 창문 두드리지 마"라고 여러 차례 말한다. 그 경관은 "왜 안전 벨트 매지 않는 거냐?”고 묻는다. 짧게 얘기가 오간 뒤 힐은 “딱지나 떼요. 브로(Bro, 형제), 그러면 난 갈게요. 늦겠어요"라고 말한다. 그 뒤 창문을 올리는데 그 경관이 다시 노크를 하며 창문을 내리라고 한다.
그 경관은 “창문을 내려두지 않으면 난 널 차에서 끌어낼 거야”라고 말한 뒤 “팩트 자체로 차에서 끌어낼 거다”라고 덧붙였다. 그러곤 경관들은 힐을 포장도로에 엎드리게 했다. “우리가 너 보고 뭔가를 하라고 말하면, 하면 돼, 이해해?”라고 말하면서 수갑을 채운다. 힐이
“미친 것처럼 내 창문을 두들겼잖아”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경관들은 그를 일으켜 앉혔다. 힐은 경관들에게 "방금 무릎 수술을 받았어요. 브로”라고 말한다.
힐의 팀 동료 디펜시브 태클 칼라이스 캠벨과 타이트 엔드 조누 스미스도 봉변을 당했다. 같은 도로를 달리다 힐이 당하는 것을 보고 끼어들어 만류하려다 수갑이 채워졌다고 캠벨은 어이없어했다. 모두 얼마 뒤에 풀려나 개막전에 출전하긴 했다. 힐은 터치다운에 성공한 뒤 수갑을 차고 달리는 세리머니를 했다.
지난 6일 공개돼 10일 현재 로튼 토마토 지수가 95로 매겨진 '레블 리지'의 첫 장면은 퇴역 군인 테리(애런 피어)가 사이클을 타고 가다 경찰 순찰차에 들이받혀 고꾸라지면서 시작한다. 흑인인 그가 백인 경관들에게 어처구니 없이 당하는 봉변이 숨막힐 듯 그려진다.
분노 지수가 팡팡 올라가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인데 피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고 죽은 사람 한 명 없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실화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실감 나는 각본을 쓰지 싶었는데 아니란다. 오리지널 각본으로 이렇게 현실적이며 고발성 짙은 액션물을 만들 수 있는지 존경스러울 정도다.
솔니에 감독은 '늑대의 어둠'과 '그린 룸'을 연출했으며, '포'와 '브라더'의 애런 피어, '킬러의 레스토랑'의 돈 존슨, '소울 서퍼'와 '컨스피러시'의 안나소피아 롭이 상당히 인상적인 연기 앙상블을 펼친다.
시쳇말로 '순삭할 수 있는' 몰입도 높은 오락 영화인데 미국 지방정부의 쇠락을 지켜보는, 서부극 시대나 골드 러시의 끄트머리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액션이 과하지도 않고 절제되어 있어 오히려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는 평가가 벌써 줄을 잇고 있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처럼 미쳐 날뛰는 살인마를 우리는 너무도 쉽고 안일하게 제작하고 감상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막판 반전이 있긴 했지만 그리 놀랄 수준은 아니어서 '뭐 평이하네' 이럴 수도 있겠다 싶고, 어차피 권선징악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볼 수 있겠는데 주인공에 감정 이입돼 나라면 어떨까 싶어 정신없이 얘기를 따라가게 된다.
영화는 셸비스프링스란 마을에서 펼쳐지는 일로 설정돼 있는데 굉장히 사실적이어서 실제 존재하는 곳인지 많이 궁금해들 하는 것 같다. 가공의 공간이다. 로케이션은 뉴올리언스 등 루이지애나주의 여러 곳에서 촬영했다. 영화에 "배 타고 떠나라"는 비아냥도 등장하고 남북전쟁 때 남부 군 참호로 쓰인 곳인가 싶은 곳을 배가 지나가는 장면도 나온다. '저항의 능선'이란 이름도 남부 군이 장악하던 곳이란 이미지를 부가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미국처럼 잘 사는 나라에서 아무리 시골 깡촌이라고 저럴까 싶기도 한데 미국 언론을 보면 지방정부의 셧다운 사례, 공무원들 월급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해 공공기관 문을 닫는 일이 드문 일이 아닌 것을 보면 과장과 억지가 있을 수 있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여겨진다. 우리도 순천시 승주면 소재지의 쇠락 사례에서 보듯 지방 재정이 엉망인 곳이 많아 경찰서장이 모든 것을 쥐락펴락하며 만만한 흑인 청년 하나쯤은 현금 갈취 대상으로 여기는 일이 가능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테리는 사촌 동생의 보석 증거금을 갖고 시청 청사를 찾아가던 길이었다. 경찰은 테리의 사촌 동생이 대마초 소지 혐의로 붙잡힌 점을 트집잡아 3만 6000 달러를 보관할테니 나중에 마약과 무관하다는 점을 법정에서 증명한 뒤 찾아가라고 한다. 테리는 어떡해서든 사촌을 구하려고 애쓰지만 결국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온다. 테리는 분노에 눈동자가 불타오른다.
그래도 테리는 해병대에서 전술 무술을 가르치던 교관이었다. 일당백 기백이 살아 있었다. 그는 서장 샌디(돈 존슨)가 촘촘히 관리하고 통제하는 경찰들이 의도적으로 힘없는 이들을 엉뚱한 혐의로 붙잡아 돈을 합법적으로 빼앗은 뒤 90일이 지나면 석방하곤 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샌디 서장을 제압하고 들어간 창고에서 수두룩한 현금 다발과 쟁여 놓은 무기들을 발견하다. 이웃 경찰들에게 무기를 아웃소싱하기까지 한다고 했다.
이유는? 지방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지 않아 샌디 서장이 이런 식으로 돈을 융통해 경관들 월급을 지급하고 법원 판사 월급도 주고 공무원 사회가 돌아가 이 시골 구석이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다시 붙잡힌 테리에게 순찰차 조수석에 앉은 샌디 서장이 뒤를 돌아보고 뇌까린다. "우리도 가끔 일하는 낙이 필요하거든. 거기 있는 것들로 지금껏 버텼지."
딸을 빼앗기고 법원 서기로 힘겹게 살아가며 경찰의 부패한 냄새를 맡아 증거들을 수집해 온 서머(안나소피아 롭)와 그녀와 양심적인 고민을 함께 나눈다는 '서피코'(테리가 붙여준 별명이었다)의 도움을 얻어 샌디 등 악당들과 맞선다. 90일이 왜 석방 기한이 됐는지 파악하는 것이 관건이며 사건을 해결하는 열쇠인데 결국 주 경찰이 끼어들어 서장 등을 검거하며 일단락된다. 흑인이라 늘 당하기만 했던 테리가 결정적 증거가 담긴 SD 카드로는 모자라 순찰차 트렁크를 열어 랜치를 이용해 하드드라이브를 통째로 떼내는 마지막 장면이 꽤 강렬하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영국 배우 애런 피어가 새로운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다며 새로운 본드의 출현이라고 흥분했다. 1994년 런던에서 태어난 그는 2017년 ITV의 프라임 서스펙트 1973으로 데뷔했다. 그 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의 TV 각색물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와 M 나이트 샤말란의 '올드'(2021)에 얼굴을 내밀었다. 그의 목소리는 디지털 애니메이션 '무파사 라이언 킹'의 주인공으로 오는 12월 20일 공개된다.
그는 최근 뉴욕 타임스의 프로파일 인터뷰를 통해 “난 스스로를 진지하게 포장하지 않지만 내 역할에 극도로 진지하게 임한다”고 털어놓으면서 '레블 리지' 준비에 대해 “열심히 훈련했다. 난 레슬링을 했고 복싱도 했다. 스파링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스스로를 표현하는 데 가깝도록 이 모든 일을 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