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배려하는 기사로 생명존중 우수보도상 수상
기자 편의대로 쓰는 자살보도의 파괴성 경고
자살보도 가급적 지양해야, '자살' 대신 '사망' 표현 쓰기를
김효정 주간조선 기자는 '20대 여성이 위험하다! 자살률 급등의 이유' 기사로 지난 8월 생명존중 우수보도상을 수상했다. 생명존중 우수보도상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과 한국기자협회가 자살예방에 기여한 언론보도를 선별해 분기별로 수여하는 상이다. 수상을 계기로 지난 9월부터 김 기자는 언론진흥재단 수습기자 교육에서 '자살보도와 취재윤리' 강의를 하고 있다.
'OECD 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안고 있는 한국에서, 언론의 자살보도는 '안녕'할까. 자신을 '완벽하지 못하지만 고민하는 기자'라고 소개한 김효정 기자를 지난 7일 합정역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자살 유가족의 마음 경험해, 그들 입장 고려해야”
김 기자는 자살 문제에 관심 갖게 된 계기를 털어놓았다. 대학교 봉사 때 만나 친해진 학생이 스무살이 되던 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4년 넘게 교류하며 마음을 쏟았기에 충격은 더 컸다.
“대학 다닐 때 성폭력 피해 아이들을 돕는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었다. 거기서 친해진 아이가 한 명 있었는데 쉼터에 의탁하면서 여러 번 가출을 하던 아이였다. 춘천에서 가평까지 가출 길을 같이 걸을 정도로 마음을 쏟았는데 그 아이가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검정고시도 합격하고 이제 전문대를 준비시키면 되겠다며 나 혼자 의욕에 넘쳐 있었는데, 유서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아도 나는 그때 '자살 유가족'이 됐다고 생각했다.”
생명존중 우수보도상을 수상한 '20대 여성이 위험하다! 자살률 급등의 이유' 기사는 일반적인 자살보도와 다르다. 하루에 몇 명이 죽고, OECD 순위가 어떻게 되는지 등 딱딱한 숫자 대신 실제 가족을 잃은 유가족 인터뷰로 기사가 진행된다. 동생을 잃은 언니의 심정과 후회가 자살이 심각한 사회 문제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한다.
“아이를 직접 낳고 기르는 동안 마음을 쏟았던 그 아이 생각이 많이 났다. 언젠가는 자살 문제를 짚어야겠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했다. 그러다가 그 아이 주변에 자살 유가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게 기사를 썼다. 쓰면서 몇 번이나 유가족에게 '이렇게 써도 괜찮느냐, 상처받지 않겠느냐'고 확인했다. 유가족의 마음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유가족을 최대한 배려하며 기사를 작성한 것이 수상에 주요했다고 들었다.”
기자 편의대로 작성하는 자살보도 관행
김 기자가 처음부터 유가족을 배려하며 기사를 쓴 것은 아니다. 그도 유가족에게 상처를 주고 비난을 들었던 경험이 있다. 기사를 쓰는 '기자' 입장에서 자살을 바라보는 것이 그에게도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기자들의 마음을 다 안다. 항의 전화 받는 것이 반복되면 저절로 영혼 없이 응답하게 된다. 하지만 자살보도 문제를 그렇게 응답하면 정말 후회를 많이 한다. 나도 유가족이 울면서 '제발 이거 쓰지 말라 그랬는데 왜 허락도 안 받고 쓰냐'고 항의 전화를 했을 때 감정적으로 대응했던 적이 있다. 항의 내용을 사전에 듣지도 못했고, 이미 다른 언론에도 나온 내용이라 '뺄 수 없다'고 반복했다. 그쪽에서 화를 내니 나도 화를 냈는데 전화를 끊고 나서 내가 지금 무슨 기사를 쓰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비난이 맘에 남아 그 이후로 유가족에게 몇 번이고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유가족 입장에서 기사를 쓰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자살보도는 유가족을 고려하지 않는다. 기자 편의대로 기사에 도움이 되는 자극적 부분을 끌어다 쓰기 마련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지난 9월 사망한 가수 정중지 사망 보도다. 언론은 아들이 사망했다는 어머니의 SNS를 보고 기사를 썼다. 경찰서에서 확인한 사실관계가 아닌, 어머니가 올린 사진과 트위터 글이 기사의 전부다. 고인의 인권을 무시하는 태도도 있었다. 서울신문은 24일 '사망한 정중지 SNS에 올라온 글 “난 범죄자 아냐…조작된 루머”' 기사를 냈다가 삭제했다.
김 기자는 “SNS를 보고 바로 기사를 쓰다 보니까 그 어머니가 실제 정 씨의 어머니인지, 정 씨가 사망한 것이 맞는지 확인할 시간도 없이 기사가 올라왔다. 기본적인 팩트체크가 부재했다”며 “또한 SNS에 올린다고 해서 모두에게 알리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유가족에 물어봤어야 한다. 이것은 취재윤리의 문제”라고 말했다.
동정심 유발하는 '자살 미화', 자살 부추길 수도
한국 자살보도의 또 다른 문제는 '자살 미화'이다. 자살을 안타까운 일로 묘사하고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로 인식하게 한다. 김 기자는 6월 무등일보의 “무사히 돌아오길 바랐는데…하늘에선 행복하길” 기사를 예로 들었다. 실종 30일 만에 완도 앞바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조유나 양 일가족을 다루는 기사로, 일가족의 주변인들을 인터뷰했다. 기사를 관통하는 분위기는 애통함, 안타까움이다.
“이 기사는 취재를 굉장히 많이 한 기사다. 하지만 자살보도 권고기준 상으로는 완전히 잘못된 기사다. 처음부터 끝까지 동정심을 유발하는 기사이기 때문이다.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안타깝다. 코인투자, 빚 등 어려운 일이 정말 많았구나, 우리가 추모해주자' 라는 식의 기사를 쓰는 것은 '너무 힘들면 자살을 선택해도 되겠구나'하는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다. 심지어 이 기사는 조유나 양의 초등생 친구에게까지 가서 물어본다. 아이가 얼마나 상처받았을지에 대한 고려 없이 단지 기사를 위해 상기시킨 것이다.”
언론의 자살보도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이미 수많은 연구들로 증명돼 있다. 김은이 인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2013년 논문 '신문의 자살보도가 자살 관련 인식에 미치는 영향'에서 “자살 보도량은 자살 검색량에 1주일 시차를 두고 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며 “자살 이유 언급이 많을수록 검색량도 늘어난다”고 했다.
“자살보도가 만연하면 자살이 마치 게임처럼 느껴진다. '그냥 전원을 끄면 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 중 충동적인 자살이 많다고 들었다. '약을 먹고 나아져야지'가 아니라, '너무 힘들어서 못 이겨내겠다. 확 죽고 싶다'고 한다는 것이다. 20대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도 너도나도 60까지 살기 싫다. 그 전에 자살하고 싶다고 하는 것을 보고 충격 받았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언론의 책임이 자유로울까.”
자극적 보도 지양하고, '자살' 대신 '사망' 표현 쓰기를
김 기자는 자살보도를 안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자살보도가 일회적인 선정성을 이용한 온라인성 기사이기 때문이다. 표현에 대한 당부도 이어졌다. '극단적 선택'은 자살보도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단어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은 자살이 '선택지'라는 느낌을 줄 수 있다. 2018년 개정된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은 '극단적 선택' 대신 '사망' 표현을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 자살보도 권고기준 3.0 사진=한국기자협회
“지난달 장 �p 고다르 감독이 자살했을 때 언론은 그가 사망했다는 '사실'과 그의 '업적'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그가 택한 조력자살도 일종의 자살인데 왜 자살했는지 등 기존의 자극적인 보도와 달랐다. 그 기사들을 보고 자살은 이 정도로 처리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살에 서사를 넣고 싶으면 개인이 아닌 사회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자극적인 것을 좇을 필요가 없다.”
김 기자는 인터뷰 말미에 내가 이런 얘기를 할만한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자신도 여러 번 실수를 했고 아직 완벽한 기사를 쓰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실제 기자들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인터뷰에 응했다고 말했다.
“이런 주제로 고민하고 있는 기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기사 작성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상처를 줄지 기자들 스스로 고민하는 것이다. 자살 경고문을 기사 하단에 싣는 것만으로 '윤리기준 충족했다'고 자족하는 건 정말 아닌 것 같다. 자살보도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정말 어마어마하다. 스스로 고민하고 정화해야 기자를 향한 신뢰가 돌아오지 않을까.”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