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역사소설^태종•이방원:⤵
태종•이방원 171편: 단기로 개성을 떠나는 세자
(가슴에 뜨거움을 전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세자 양녕은 경덕궁을 나섰다. 말 그대로 단기(單騎)였다. 시종하나 없고 호위하는 군사 하나 없었다. 세자가 정문을 지나건만 대문을 시위하는 갑사들의 고개가 뻣뻣했다. 소 닭 보듯 세자에 대한 예가 없었다. 궁을 나선 세자 양녕은 십자로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동쪽으로 방향을 잡았었다. 장패문을 통과하면 지름길이지만 숭인문을 지나고 싶었다.
한양에서 올 때는 수십 명을 거느리고 왔지만 돌아갈 때는 혼자였다. 하지만 세자 양녕은 외롭지 않았다. 지나는 백성들이 세자의 행색이 초라하다고 수군대도 개의치 않았다. 채찍을 가하지 않고 말이 가는대로 두었다. 달리는 것이 아니라 뚜벅뚜벅 걸었다. 얼마가지 않아 사천(蛇川) 상류 개울에 걸친 선지교가 나왔다. 오늘날 선죽교다. 숭인문에 올라섰다. 숭인문은 개성의 동대문이다. 발아래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개성은 양녕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다. 세자 양녕은 다시는 못 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송악산 역시 세자의 신분으로 다시는 못 볼 것만 같은 생각이 밀려왔다.
"잘있거라 송악산아." 말에 올라 자꾸만 뒤돌아 봤다. 송악산이 눈에 밟혔다. 길을 재촉했다. 호위하는 군사 하나 없다. 홀홀단신이었다. 가는 도중 객관에 들어도 반겨주는 이 없을 것이다. 해가 저물기 전에 한양에 들어가야 한다. 진봉산을 뒤로 하고 얼마가지 않아 매추포였다. 이제 반식경만 가면 임진강이었다. 이윽고 임진 나루에 도착했다. 세자 양녕은 말에서 내렸다. 견마잡이도 없었다. 스스로 말을 끌고 뱃전으로 향했다. 먼발치에서 철릭을 번쩍거리는 도승관이 지켜 보고 있었다. 환도를 찬 군사들이 서성거리지만 누구하나 가까이 다가와 머리를 조아리지 않았다.
세자 양녕이 개성을 떠나던 그 순간 태종은 병조에 엄명을 내렸다. "도승관은 세자에게 편의를 제공하지 말라. 유도(留都)한 병조진무소(兵曹鎭撫所)는 세자가 세자전에 들어가
지 못하도록 하라." 도승관(渡丞官)에게 왕명이 즉각 하달된 것이다. 한양에 있는 병조진무소는 세자전을 숙위하는 숙위사(宿衛司)에 명하여 세자의 입궁을 제지하라는 명이었다.
세자 양녕이 거룻배에 올랐다. 모두들 하나같이 힐끔거리며 쳐다봤다. 장사꾼 같지도 않고 사대부집 자제 같지도 않은 행색이 시선을 끌었다. 비록 세자의 관모와 요대는 하지 않았지만 범상치 않은 풍모가 풍겼다. 허나, 단기(單騎)다. 고을 사또의 아들이라도 혼자 갈리가 없다. 세자 양녕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의 모습이 아리송하다는 표정이었다.
태종•이방원^다음 제172편~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