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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함평에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 그래서 언젠가 한번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다. 올해에는 꼭 아들과 함평 나비축제에 가보고 싶었으나 결국 또 놓치고 말았다.
나비 축제가 시작된 지난 4월, 흥미로운 뉴스를 하나 접했다. 가보고 싶었던 함평에 대한 내용이어서 눈길이 갔다. 기사는 함평 엑스포공원에 가수 김흥국씨의 <호랑나비> 노래비가 세워졌다는 소식이었다.
호랑나비 노래비? 나비축제의 고장이니 나비 노래로 볼거리를 더하는 것인가 싶었다. 김흥국씨의 고향이 함평인지 궁금했으나 기사에는 그런 언급은 없었다.
보도를 보니 "가로 3.8m, 세로 2m, 높이 3.5m 규격의 이 노래비는 화강석, 상주석, 브론즈, 스테인리스 등의 다양한 재료와 색채를 사용한 것이 특징으로 현대적인 단순미와 세련된 조형미를 갖췄다"고 써 있었다. 말로 들어서는 도저히 감이 안올테니 일단 사진을 보자.
저 노래비 뉴스를 보면서 그 즈음 봤던 또다른 뉴스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함평의 또다른 명물인 황금박쥐를 형상화한 조형물을 새로 만들었다는 소식이었다. 함평에 사는 세계적 희귀동물 황금박쥐를 기념하는 황금박쥐생태관에 설치했다고 한다. 역시 일단 사진부터.
박쥐가 황금박쥐라 저 박쥐조형물도 진짜 황금이다. 함평군 보도자료에 따르면 저 조형물은 홍익대학교 디자인공학연구소에서 3년간에 걸쳐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보도자료에는 "함평군이 순금 162kg과 순은 281kg을 구입, 홍익대학교 디자인공학연구소에 제작을 의뢰한 뒤 박쥐의 생태 및 동서고금의 문헌, 문양, 의미 등의 학술연구를 거쳐 ‘함평천지 운기일주 대황금박쥐’ 작품을 제작한 것"이라고 써있다.
보도자료를 읽다보니 재미있는 대목이 있어 잠깐 더 소개한다. "특히 일부 군민들의 반대 여론에도 지난 2005년 1월 27억원을 들여 162kg의 순금을 구입해 국제 금 가격이 폭등해 현재 시가로 환산하면 60억 여원에 달해 앉아서 23억원 가량의 수익을 올린 셈이다."
우선 반대했던 주민들에게 군청이 자랑하는 듯해서 웃겼고, 그 다음으로는 돈 계산이 틀려서 웃겼다. 27억원에 구입해 60억원으로 올랐다면 수익은 33억원이어야 할텐데 공식 보도자료에 23억원으로 나와있었다. 뭐 무엇이든 좋다. 취지도 좋고, 그 담고자하는 내용도 다 좋다. 그럼에도 저 두가지 조형물을 보면서 느낀 것은 아쉬움 그 자체였다.
지금 대한민국의 지자체들은 심각한 도그마에 빠져 있다. 관광 수익 극대화를 위해서 무언가를 마구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다. 무조건 축제를 만들고, 무조건 조형물을 만들고, 무조건 심볼을 만들어 포장해댄다. 전주 한옥마을이 꼭 그런 사례다.
전주국제영화제 직전 전주 한옥마을을 찾았다. 솔직히 놀랍도록 짜증났다. 한옥마을 길바닥을 뜯어내고 돌장식으로 정신없게 치장하고 있었다. 경주 포석정처럼 물이 흐르는 홈이 파인 돌을 깔고, 밤에 조명등으로 되는 조형물을 달고, 포장재를 최대한 화려하게 꾸미고 있었다.
말이 좋아 화려하게, 솔직한 심정은 무지하게 촌스럽게 보였다. 그런 과도한 꾸미기가 한옥마을의 정취를 오히려 훼손하고 있었다.
그 결과는? 다른 도시에는 없는 한옥마을의 분위기가 어느 도시에나 있는 싸구려 관광지 분위기로 바뀔 뿐이다. 유치하고 요란뻑쩍지근한 유원지 풍 동네는 어디에나 있다. 지자체의 강박관념이 전주에만 있는 한옥마을을 모든 다른 도시의 쇼핑거리처럼, 카페촌처럼 만드는 것이다.
지자체로선 달리 말할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열심히 우리 고장의 간판 상품을 꾸몄다. 그런데 왜 당신은 무슨 자격으로 쉽게 폄하하는가"라고 말이다. 내 말은 바로 그래서 문제라는 것이다. 손을 댈수록 촌스러워지는 것이 있다. 그렇게 열심히 꾸몄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꾸민 한옥마을은 앞으로 찾아가고 싶지 않다. 그게 내 대답이다.
그럼 다시 함평의 저 아쉽기 짝이 없는 조형물들을 보자. 함평 나비축제는 올해로 벌써 10회째다. 올해는 특히 유료관람객이 사상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었다. 왜 나비축제는 이렇게 성공했을까? 나비축제는 그린-투어, 친환경 이미지같은 `손을 대지 않은 것'을 기대하게 하는 이벤트여서 성공한 지역축제다.
저 조형물들은 그런 나비축제의 컨셉에 맞아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반대처럼 보인다. 김흥국 호랑나비 노래비와 황금박쥐상은 다른 고장에도 널린 촌스런 조형물들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는 말이다. 황금박쥐 조형물을 보자. `이게 60억짜리 돈덩어리다'라는 가장 말초적인 노림수만 읽힌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황금박쥐라는 귀한 동물, 함평이란 고장, 깨긋한 환경에 대한 어떤 은유나 암시나 감동을 느끼지 못하겠다. 무조건 폼나야 된다는, 돈 들인 티를 내야 한다는 집요한 고집만 느껴진다.
김흥국 노래비는 또다른 이유에서 아쉬웠다.
나는 대중문화 연예인, 그리고 유행가를 뭐 그리 대단하다고 기념비까지 만드냐는 관점은 오히려 잘못이라고 본다. 요즘같은 시대 대중문화 스타나 애창가요 같은 콘텐츠는 오히려 훨씬 더 중요한 소재다. 그걸 잘 활용해서 특정 고장의 관광상품으로 만들고 심볼로 만드는 것은 오히려 더 많이 시도해볼 법한 일들이다.
그런데 과연 저 호랑나비 노래비는 함평의 관광 경쟁력을 높여줄만큼 매력적인가? 전혀 아닌 것 같다. 저런 `관급 조형물스러운' 형식의 노래비나 기념탑은 전국에 널렸다. 한가지 색다른 것만 있어도 몇시간씩 운전해서 놀러가는 시대다. 저 노래비는 과연 그 조형성이나 재미 자체로 사람들을 불러모을 수 있는 힘을 지녔는가?
저 크기의 조형물이면 거의 억대의 비용이 들었을 수도 있다. 비슷한 비용으로 훨씬 더 예술적으로, 아이디어의 기발함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수많은 조형물들이 떠올랐다. 내 눈에 저 노래비는 황금박쥐 이상으로 촌스럽다.
언제나 수도권보단 열악할 수 밖에 없는 지방자치단체들의 형편을 감안 못하고 잘난척하는 비평은 말라고 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말이 맞다고 해도 그런 점을 감안해서 놀러가주고 관광해주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30억원 가까운 돈이라면 금덩어리로 박쥐를 만드는 것말고도 다른 다양한 실험이 가능하다. 나비라는 확실한 아이템이 있고 예산을 쓸 확신이 있다면 비용을 떠나 기획만으로도 얼마든지 승부를 할 수 있다. 영국의 작은 해안 도시 모어캠이 그 좋은 사례다. 모어캠은 인구가 4만여명인 영국의 작은 지방도시다. 함평이 나비로 유명하다면 모어캠은 갈매기, 정확히는 제비갈매기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2000년을 맞이하면서 이 작은 소도시도 나름 새천년을 준비하기로 했다. 시의회는 작은 소도시 모어캠의 비전을 담으면서 사람들을 불러모을 수 있는 문화 프로젝트를 찾았다. 이 의뢰를 받은 디자인기업 와이낫어소시에이트가 내놓은 방안이 `글자들의 거리'(Flock Of Words)다.
글자들의 거리는 영국이 자랑하는 문인인 셰익스피어, 밀턴 같은 예술가들의 유명한 금언을 문자디자인(타이포그래피)으로 만들어 길 바닥에 설치한 것이다. 디자인을 활용한 공공예술로 작은 도시에 색다른 볼거리를 더한 것이다.
사람들은 갈매기의 춤만이 아니라 온갖 다양한 디자인의 글씨들이 새겨진 거리를 보기 위해 모어캠을 찾아오고 있다. 이 모어캠은 갈매기에 이은 글자들의 거리 프로젝트말고도 또다른 볼거리를 더했다. 유명한 영국 연예인을 활용한 것이다.
모어캠이 배출한 가장 유명한 대중문화인은 이름이 도시와 같은 `에릭 모어캠'이란 작고한 코미디언이다. 쉽게 말해 `영국의 이주일'이랄까.
모어캠에는 이 에릭 모어캠 추모공원이 있다. 글자들의 거리와 함께 모어캠의 주요한 관광 코스로 자리잡았을만큼 유명하다.
단순히 유명 코미디언에 대한 장소만 있다고 해서 공간이 사랑받게 되는 것은 아니다. 코미디언 모어캠에 맞게 유머러스한 동상으로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었기 때문에 모어캠 추모공원은 사랑받고 있다. 바로 이 조형물이다.
사람들은 이 재미있는 동상 옆에서 사진을 찍으며 이 곳을 기억에 남긴다. 코미디언 동상이 니 코믹하게 간 것이다. 그리 대단할 것 없는 동상이지만 그렇다고 저 정도로 유쾌한 동상은 실은 흔치 않다. 아주 약간 웃기고 재미날 뿐인데도 유명해진 것이다.
함평의 김흥국 노래비에 아쉬웠던 이유는 그 전형성, 곧 뻔함 때문이다. 김흥국이란 유쾌한 캐릭터, 나비라는 귀엽고 상큼한 소재라면 저 노래비보다 더 즐겁고 유쾌해서 사랑받는 조형물로 갈 수 있지 않았을까. 갈매기 못잖게 나비도 사랑스런 동물이고, 에릭 모어캠이 얼마나 웃겼는지 모르지만 우리의 김흥국씨 역시 널리 웃음주며 사랑받는 대중스타 아닌가.
이런 모든 것이 소중한 문화 콘텐츠이자 자산이다. 그걸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지자체들은 좀더 고민해야 한다. 모어캠 동상처럼 약간만 재미나면, 약간 더 생각하면 된다.
남들이 무턱대고 개발해 망가지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친환경 고장으로 남은 함평같은 곳은 더욱 고민에 고민을 해야 한다. 돈냄새 풍기는 조형물을 반대한 주민들에게 `결국 금 덩어리 사서 차익 남았잖느냐'고 보도자료에 쓰는 마음가짐부터 버려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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