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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힐링 기행
2015. 1. 29(목) ~ 2. 1(일)
제1일 - 1.29(목) - 게스트 하우스 바람정원 카페
김포공항에서 아시아나 항공기로 2시에 출발하여 제주공항에 3시에 도착하였다.
공항에 나서니 부슬비가 내리고 빗속에 줄지어 늘어선 야자수들이 남국의 정취로 반가웠다.
렌트카로 현대미술관과 예술인 마을로 가는데 비안개로 시야가 좋지 않아 바다도 흐릿하게 보이고
가로수 밑에 마른 갈색 풀들이 가로수의 푸름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제주시는 육지의 대도시와 다른 바 없었으나 도심을 벗어나니 차량들도 분비지 않아 차는 막힘없이
시원스럽게 달려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현대미술박물관에 오니 주차된 차가 서너 대 보이고 사람들도 별로 없어 한산하였다.
입구에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람의 설치작품이 있는데 아래로 길고 큰 손이 손바닥을 벌리고 있는
형상이 퍽 인상적이었다. 먼저 돈부터 내라는 것인지 아니면 환영한다는 뜻인지 잘 알 수 없다고
이야기하며 웃었다.
김흥수 화백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주로 여성들로 아마도 제주여성들의 강인한 모습을 담은
것 같았다. 홀 밖으로 나오니 짐승들의 특이한 조각 작품들이 있었다. 맹수 상에는 무서운 얼굴 대신
아름다운 장미꽃을 조각해 놓았고, 두 마리 짐승이 한 몸을 이루고 있어 머리는 보이지 않고 몸통만
길고 다리는 여덟이 아니라 넷이다.
이 짐승들의 조각을 보노라니 성경 말씀에 사자가 어린 짐승들과 어울리고 어린애가 독사와 함께
논다는 내용이 떠올랐다. 그리고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입술만 크게 조각해 놓은 것이다.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입의 역할을 상기해 보라는 것 같기도 했다.
입은 생명이 드나드는 길목이란 생각이 들었다. 창세기에는 하느님이 흙의 먼지로 당신의 모상으로
인간을 빚으시고 입에 숨을 불어 넣으니 생명을 가진 인간이 탄생하게 되었다.
우리 인간은 하느님이 주신 숨으로 살다 죽으면 그 숨이 하느님께로 되돌아가 하느님과 더불어 영생을
하게 되는 것이리라.
사람은 입으로 소통하고 입으로 영양분을 섭취해 살아가니, 입은 바로 생명이 드나드는 출구로 이 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을 것 같다. 이런 뜻에서 작가는 입만 확대해서 조각해 놓은 것은 아닌지?
별로 많지 않은 작품들을 감사하고 게스트 하우스인 숙소 '바람의 정원'으로 왔다.
숙소는 제주도 서쪽 끝인 한경면 신창리 바닷가에 있었다. 게스트 하우스는 제주의 전통 가옥들이
돌담으로 이웃과 경계를 이루고 있고, 가까이에는 풍차가 여럿이 돌아가는 풍경이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다.
짐을 풀고 게스트 하우스에 딸려 있는 카페에 들어가니 잔잔한 음악이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카페에는 통나무를 넣어 불을 때는 화덕의 불기운이 온기를 주어 안온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카페 공간은 넓지 않았으나 서가가 있고 여행책자를 비롯해 마음의 양식이 될 만한 좋은 책들과
종이로 만들어 놓은 로봇이 눈길을 끈다.
아담하고 아늑한 공간에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리듬은 평화로운 분위기 만들어 쉼터로서 너무 좋았다.
빙빙 여유 있게 도는 풍차를 보면서 한 편으로는 방파제에 부딪치는 파도의 포말을 보노라면 모든
잡념이 사라진다. 카페로 들어오는 길에는 꽃들이 피어 있어 정서적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어떤 이는 카페에 앉아 창밖을 하염없이 쳐다보기도 한단다.
'바람의 정원'은 바람과 바다와 풍차가 어우러져 제주 특유이 분위기를 드러내는 공간이다.
다시 찾아가고 싶은 게스트 하우스 '바람의 정원' 카페를 잊지 못할 것 같다.
저녁은 주인이 소개 준 '느영나영' 이란 식당에 가서 해산물이 아닌 호주산 불고기와 갈비탕을 먹었다.
'느영나영'이란 '너하고 나하고'란 제주도 사투리이다. 제주도 방언에는 종성에 'ㅇ' 이 들어가는 말이 많다.
할망- 할머니, 하르방- 할아버지, 어멍- 어머니, 아방- 아버지, 오라방- 오빠, 아주망- 아주머니,
바당-바다, 가시낭- 가시나무, 볼레낭-보리수, 엉-바위, 놀멍- 놀다가, 쉬멍-쉬다가, 걸으멍-걷다가,
와랑와랑-이글이글, 마농- 마늘.
이렇게 'ㅇ'받침이 많은 까닭은 거친 비바람과 때로 태풍을 견디어 내고 물질의 고된 삶에도 불구하고
원만한 인격을 만들어온 제주인의 성격을 드러낸 것은 아닌지. 또한 바람과 파도 소리에도 잘 전달되는
'ㅇ' 받침의 어휘를 사용하여 소통을 원활히 하려 한데서 생긴 현상은 아닌지.
만상이 깊이 잠든 밤에 둔탁하면서도 거센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 이러한 소리가 제주의 자연을 다듬고
여성들의 정서를 강인하게 만든 원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다 잠들었다.
제2일 - 1월 30일(금) - 올레길 제7코스
오늘은 올레길을 걷기로 해서 아침 일찍 식사를 간단히 하고 숙소에서 8시50분에 나와 올레길 제7코스의
출발점인 외돌개로 차를 몰았다. 잘 포장된 도로에는 차들이 거의 다니고 있지 않아 우리가 마치 도로를
전세 낸듯한 기분이 들었다. 너른 평야에 드문드문 나타나는 오름을 보자 막내 손녀는 차창 밖의 풍경이
마치 동양화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
아직 겨울인데 밭에 파릇한 작물이 여기저기 있어 자세히 보니 마늘이었다. 아직 1월인데 마늘이 이렇게
많이 자라다니 놀라웠다. 충청도에는 얼지 않도록 마늘을 볏짚이나 비닐을 덮어 놓아 아직 겨울잠을 자고
있다. 이곳 남쪽에는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아서 마늘뿐만 아니라 배추와 같은 작물들도 자란다고 한다.
멀리 수평선이 하늘과 맞다 있는 모습을 보니 지구가 둥글다는 느낌이 났다. 가끔 낮은 아파들이 정겹게
보였다. 더 이상 고층 아파들이 들어서지 않고 자연 친화적인 제주 특유의 낮은 돌담 주택들이 들어서기를
기원해 보았다.
제7코스 올레길에 들어서니 올레꾼들이 꽤 많았다. 올레길 코스는 외돌개에서 원평 마을까지 13.8km로
4~ 5시간 걸린다.
7코스는 올레길 중 가장 풍광이 아름답다고 한다. 이는 폭풍의 언덕의 까마득한 벼랑 밑의 검푸른 바다에
외돌개가 기개 좋게 서 있는 모습을 조망하고 확 트인 푸른 바다와 길가에 피어 있는 동백꽃, 유채꽃, 수선화 등
다양한 야생화를 감상하며 걸을 수 있기 때문인가 보다. 외돌개란 홀로 서 있기 때문인데 옛날에는 외로웠을지
모르나 지금은 조금도 외롭지 않을 것 같다. 외돌개를 옹위하듯 절벽이 보호하고 해안가에는 쭉쭉 뻗은 해송들이
굽어보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은 수많은 관광객들의 찬사를 받으며 푸른 바다와 높은 절벽과 주위 풍광과 어울려
있어 제주 올레길에서 백미는 단연 외돌개이다.
외돌개는 올레꾼들의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니라 외로운 사람들도 외돌개로부터 큰 위안을 받으니 외돌개는
힐러(healer)가 아닌가! 외돌개는 한자로 독립암(獨立岩)으로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79호로 지정되어 있다.
외돌개는 화산 폭발로 분출되었다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바위기둥으로 높이는 20여m, 둘레는 7~10m라 한다.
이 코스에는 카페를 비롯해 멋진 게스트 하우스들이 있어 들어가 쉬면서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듣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바닷길에서 벗어나니 아담한 집들이 있는 마을을 지나 큰길에 나오니 학교가 있고 이 학교를
끼고 다시 바닷길로 들어서 걸으면 속골 우체통이 있는 곳에 오게 된다.
여기에는 시계가 있는데 11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대략 9시 50분경에 출발했으니 1시간 20분 걸은 셈이다.
이곳에는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냇물이 있고 우측으로 쭉쭉 길게 뻗은 야자수들이 우거져 있어 남국의 풍경이
신기하였다. 몽돌해변을 걷기도 하고 좁은 진흙길도 걸으며 한참을 가니 법환 포구에 이르렀다.
법환 포구에서 갈치 졸임과 고등어구이로 맛있게 점을 먹었다. 포구에 '최영장군 승전비'가 있었다.
안내문에는 1374년 고려공민왕 때 제주를 100년간 지배한 원나라 목호 세력의 침입을 법환 포구에서 평정한
최영장군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한참 가다보니 바다로 흘러드는 개울이 나타나고 앞에 작은 섬이 있는데 푯말에 '썩은 섬'이라 쓰여 있어
의아했다. 푯말에는 '썩은 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기록이 없어 궁금했다.
'썩은 섬'에는 하루 두 번씩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다고 한다. 마침 썰물 때라 길이 열려 있었다.
이 바닷길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니 애들이 힘들다고 하여 잠시 쉬었다. 집 앞뜰에 하얀 꽃이 있어 보았더니
뜻밖에도 목화 한 그루에 하얀 목화 꽃송이가 피어 있었다. 애들이 하얀 목화꽃을 신기하게 여기며 만져보았다.
아직 봄도 오지 않았는데 목화밭도 아닌 집 뜰에 어떻게 목화가 자라 꽃까지 피었을까 참으로 신기했다.
우리는 좀 쉬고 다시 계속 걸어 강정에 이르렀다. 강정에는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수없이 흉물스럽게 걸려 있어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에 먹칠을 해 놓아 기분이 언짢았다.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사는 꽤 많이 진척되어 있는 것 같았다. 왜 평화로운 곳에 극한적인 갈등이
있게 되었을까?
우리는 반도 국가로 해군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일본은 우경화로 군비
증강에 열을 올리고 있고 언제 그들과 마찰이 있을지 모르는데 일본과 가까운 제주에 해군기지는 꼭
필요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반대에도 자연파괴라는 명분이 있겠지만 나로서는 얼른 납득이 되지 않았다.
강정포구 쉼터에서 애들은 컵라면을 시켜 먹고 나는 커피를 마시며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인은 경기도 파주에서 살다 제주도에서 일하다 눌러 앉게 되었다고 한다. 그분의 말로는 해군기지가
들어서면서 주변의 땅값이 많이 올랐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 땅을 많이 가진 분들은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것을 찬성하고 강정포구와 떨어져 있고 땅을 별로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반대한다고 한다.
일부 제주민은 자신들의 잇속 여하에 따라 찬반이 엇갈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강정포구의 쉼터에서 애들이 힘들어해서 여기까지만 걷기로 했다. 종점인 월평마을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아쉬운 대로 포기하고 차로 애들이 좋아하는 초코렛 박물관으로 갔다.
초콜릿 박물관은 코코아 열매로 초콜릿을 제조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체험학습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우리는 너무 늦게 가서 애들은 체험학습을 하지 못하였다.
초콜릿으로 만든 다양한 모양의 상품을 구경하고 초콜릿을 사가지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오니 삼겹살을 구워 주어 맛있게 포식하였다. 식사 후 푹 쉴 겸 산방산 탄산 온천에 가서
찜질하고 목욕하며 피로를 풀고 숙면하였다.
제3일- 1월 31일(토) - 한라산 사려니 숲길
아침 식사를 하고 9시 30분에 숙소를 나서 약 1시간 달려 한라산 '사려니 숲길'에 도착하였다.
한라산 오르는 주변에는 하얀 눈이 내려 겨울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남제주에는 봄이더니
이곳에 오니 겨울로 계절이 바뀌었다. 사려니 숲길에 가까워지면서 짙푸른 가로수도 마른
나뭇가지에도 눈꽃이 환상적이었다. 우리는 너나할 것 없이 탄성을 질렀다.
사려니 숲길은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되었으며, 비자림로에서 물찻오름을 거쳐
약 15km의 숲길로 해발 500~600m의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이다.
이곳은 천연림과 인공림이 어우러진 신성한 생명의 공간이자 자연생태문화를 체험하는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사려니 숲길을 걸으면 숲에서 피톤치드(phytoncide) 음이온이 나와 공기를 정화하고
살균작용은 물론 스트레스를 완화시켜 우울증이나 불면증을 개선해 준다니 신심 건강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많은 사람들이 이 숲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뽀도독 뽀도독 눈길을 걸으며 심호흡을 길게 해보니 가슴이 시원해진다. 하얀 눈에 짐승의 발자국을
보고 손녀는 신기하다는 듯이 이것이 무슨 짐승의 발자국이냐고 묻는다. 아마도 노루의 흔적이리라.
숲에서 까마귀들이 까악까악 소리가 들려 반가웠다.
숲길을 걷고 돌아오는 길에 한라산에 하얀 구름 아래로 흰 눈이 빛나고 있어 더욱 멋진 풍경에 차를
잠시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점심때가 되어 '피자 굽는 돌하루방'이란 곳을 찾아가 모두들 맛있게 먹었다. 사람들이 많아 잠시
기다렸다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한 뼘 정도의 나무판에 여섯 종류의 피자를 얹어놓았는데 치즈가
듬뿍 들어 있어 훨씬 맛이 뛰어났다.
피자집을 나와서 '오솔록'에 들어서니 사람들로 붐비고 아이스크림을 사려는 사람들의 긴 줄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도 줄에 서서 기다리다 입에 살살 녹는 녹차 아이스크림을 사서 모두 맛있게 먹었다.
우리는 발길을 돌려 '레오나도르 다 빈치 박물관'으로 갔다. 여기에서는 해설자가 있어 다빈치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 이름에 '다'는 from에 해당하고 '빈치'는 지방이라 한다.
그래서 이름이 빈치에서 태어난 레오나도르라는 것이다. 이 박물관에는 레오나도르가 발명한 각종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레오나도르는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을 그린 화가이면서 의학자요 과학자였다.
자동차, 배, 비행기의 원리를 발명했을 뿐만 아니라 평화주의자이기도 해서 적의 침입을 막는 무기도
발명했다고 한다. 학생들은 레오나도르의 발명품을 여기서 만들어 보는 체험할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 모슬포 항에 들러 방어회를 떠다 싱싱한 회도 즐겼다.
그리고 호주와의 축구 결승전도 보았는데 아쉽게도 2대 1로 패했으나 잘 싸웠다.
오늘도 이렇게 즐겁고 보람되게 하루 여행을 마감했다.
제4일- 2월 1일(일) 귀로
아침 9시 비행기라 일찍 일어나 공항으로 갔다. 주로 걷는 여행을 해서인지 애들은 힘들다고 한다.
어른들은 올레길과 한라산 둘레길 사려니 숲길을 걸으며 힐링을 해서 좋았다고 하며 오름을 오르지
못하고 가는 것이 아쉽다며 다음에는 꼭 오름에 오르기로 했다.
'산티아고의 순례길' 기행문을 읽고 산티아고에는 가지 못해도 제주도 올레길을 걷고 싶다고 했더니
애들도 방학이라 제주도에 가자고 하여 따라 나섰다. 올레길을 한 코스만 걸었지만 다음 기회에 모두
걷고 싶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제주에 가서 올레길을 걸으며 힐링하고 싶다.
제주의 올레길을 만들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뜻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주차간산씩으로 관광하는 것보다 간센다리- 천천히 걷는 걸음-로 천천히 걸으면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자연의 풍요로움과 신비를 감상하며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