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창녀와 그리스도의 신부
요한계시록 17장 1절에 보면 "또 일곱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많은 물' 위에 큰 음며가 앉아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물이란 요한계시록 17장 5절에 따르면 이방세계를 말합니다.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백성이란 모든 종류의 사람의 개념입니다. 무리란 모든 족속의 개념입니다. 열국은 모든 나라의 개념입니다.
방언이란 모든 언어의 개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모든 종류의 사람들과 족속과 나라와 언어를
총칭하는 세계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세계 위에 사단의 모든 권세를 가진 창녀가 앉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살고 있는 세상의 실상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거대한 창녀가 내뿜는 모든 오물들을 현대인들은 먹어야 하며,
그녀가 거칠게 호흡하는 모든 공기를 마셔야 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창녀의 세계라고 할 만큼 세속화 되어있고 타락했습니다.
여러분 주위를 잠깐 생각해 보십시오. 신문, 소설, 텔레비젼, 비디오등, 어디 하나 창녀들이
찍은 '성의 도장'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물건의 모양에 성이 표현되어야 하고
모든 느낌이 성적인 쾌락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큰 창녀가 깔고 앉아 있는
이 사회는 성욕사회요, 성이 상품화 되는 사회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며칠 전에 연세대학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일부 학생들이 대학로 한복판에
성의 정치학을 내세우는 온갖 종류의 성에 관한 서적과 포스터와 조각물을 전시하고 성에 관한
질문 조사를 한다는 미명 아래 동성애의 미학을 내세우는 운동을 하는 보았습니다.
지나가는 학생들은 목을 길게 빼고 열심히 그들이 빽빽히 써놓은 소보자를 읽는 모습을 보고
이미 우리 사회도 음란한 창녀들이 날개치며 뻔뻔하게 활보하는 사회가 되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영화의 주제는 호스티스 이야기가 많습니다. 소설의 경우도 온통 성이 주제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텔레비전의 드라마 주제도 불륜이 대부분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비정상으로 살아가는 것이 정상으로 생각될 정도로 착각을 일으키게 합니다.
창녀란 성을 팔아 돈을 버는 직업입니다. 그들의 목적은 돈입니다.
돈만 벌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창녀들 주변에는 언제나 폭력의 세력들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얼마든지 중, 고등학생이라도 납치할 수 있고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도 납치할 수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부녀자도 납치하여 창녀촌에 팔아 넘기기도 합니다.
창녀의 세계란 정치와 권력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7장 2절이 보면 땅의 모든 왕들이
이 창녀와 간음을 하고 땅에 거하는 모든 백성들은 그 음행의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들은 바다에서 나오는 정치권력의 짐승을 타고 있고 땅에서 나오는 종교문화의 짐승을 타고서
오늘 우리 사회를 활보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이 거대한 창녀의 출현은 우리 사회를 걷잡을 수 없는 사치와
쾌락과 폭력과 마약의 사회로 만들어갑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주목하고 경계해야 하는 추악한 창녀들의 모습과 활동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이 창녀는 멸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활동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도시의 창녀들은 멸망하게 됩니까? 그것은 순결한 신부의 출현입니다.
신부가 나타나면 창녀는 울며 통곡하며 떠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뻔뻔스런 창녀요, 활개치고
방자하게 떠드는 창녀라 할지라도 신부가 나타나면 그는 소리없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창녀는 다른 방법으로는 떠나지 않습니다. 어떤 외부의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습니다. 어떤 협상이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가 떠나는 오직 한 가지 이유는 순결한 신부의 출현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창녀들이 판치는 세상을 이기는 유일한 하나님의 세력은
오로지 순결한 신부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6장 18절에서 베드로에게 말슴하실 때,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사단의 세력도 순결한 교회를 이길 수 없습니다.
신부인 교회는 광야같은 세상에 살면서 신랑이신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공동체입니다.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기다리는 신부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 7~8절에서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우리는 시온산에 서 계시는 어린양을 봅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십사만 사천명을 봅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들리는 천사들과 네 생물들과 장로들과 인맞은 십사만 사천명의 노래를 듣게 됩니다.
창녀들과 짐승들이 판을 치는 광야같은 이 세상에서 신랑을 기다리는 교회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첫째도 순결이요, 둘째도 순결이요, 셋째도 순결입니다.
순결한 신부만이 더러운 창녀를 이겨 낼 수 있습니다. 거룩한 사람만이 죄와 사단의 모든 세력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세상에서 영향력과 능력을 상실한 이유가 어디 있다고 생각하십니끼?
교회의 수가 적거나 교인의 수가 적기 때문이 아닙니다. 교회나 교인이 불결하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것입니다.
창녀와 짐승을 이길 능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힘은 어린양에게 있습니다.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순결과 거룩입니다.
첫째, 영적인 순결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신앙의 순결입니다.
우리는 복음에 대해서 순수한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둘째, 도덕적 순결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생활의 순결입니다. 윤리적이어야 합니다.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진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해야 합니다.
셋째, 육체적 순결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성적인 순결입니다.
청소년들은 순결을 결혼하기 전까지 지켜야 합니다.
한 사람들은 자신의 아내와 그리고 남편에게 육체적 순결릉 지켜야 합니다.
이것만이 세상의 창녀와 짐승들을 이길 수 있는 비밀입니다.
하용조 / 빛과 소금 편집인, 온누리교회 담임목사
자료/ 빛과 소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