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소개
이별과 외로움이라는 무익한 수난
그 수난을 겪은 사람들의 속내를 쓰다
프랑스의 문제적 작가 아니 에르노가 1991년 발표한 『단순한 열정』은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의 사랑을 다루며 그 서술의 사실성과 선정성 탓에 출간 당시 평단과 독자층에 큰 충격을 안겨준 작품이다. 임상적 해부에 버금가는 철저하게 객관화된 시선으로 ‘나’라는 작가 개인의 열정이 아닌 일반적이고도 보편적인 열정을 분석한 반(反)감정소설로, “이별과 외로움이라는 무익한 수난”을 겪은 모든 사람들의 속내를 대변한다. 2001년 국내에 처음 소개되어 꾸준히 사랑받아온 작품으로, 이번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에 새롭게 속하며 이재룡 문학평론가이자 숭실대 불문과 교수의 해설이 더해져 르노도상,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프랑수아 모리아크상 등을 수상하고 생존 작가로는 최초로 갈리마르 총서에 편입된 아니 에르노만의 독보적인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도 더할 수 있게 되었다.
👩🏫 저자 소개
아니 에르노
1940년 9월 1일 프랑스 릴본에서 태어나 노르망디 이브토에서 성장했다. 프랑스 작가이자 문학교수이다. 루앙 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한 뒤 중등학교 교사, 대학 교원 등의 자리를 거쳐 문학 교수 자격을 획득했다. 자전적 요소가 강한 그녀의 작품들은 사회학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유년 시절과 청소년기를 노르망디의 소읍 이브토Yvetot에서 보냈고, 노동자에서 소상인이 된 부모를 둔 소박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루앙 대학교를 졸업, 초등학교 교사로 시작하여, 정식 교원, 문학 교수 자격을 획득했다. 20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사회에서 금기시 되어온 주제들을 드러내는 '칼 같은 글쓰기'로 이를 해방하려 노력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1974년, 자전적인 소설 『빈 장롱Les Armoires vides』으로 등단했고, 1984년, 역시 자전적인 요소가 강한 『남자의 자리La place』로 르노도상을 수상했다. 2008년, 전후부터 오늘날까지의 현대사를 대형 프레스코화로 완성한 『세월들』로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프랑수아 모리아크상, 프랑스어상, 텔레그람 독자상을 수상했다. 2011년, 자신의 출생 이전에, 여섯 살의 나이로 사망한 누이에게 보내는 편지인 『다른 딸L'autre fille』을 선보였고, 같은 해에 12개의 자전 소설과, 사진, 미발표 일기 등을 수록한 선집 『삶을 쓰다Ecrire la vie』를 갈리마르 Quarto 총서에서 선보였다. 생존하는 작가가 이 총서에 편입되기는 그녀가 처음이다. 2003년 자신의 이름을 딴 아니 에르노 문학상이 탄생했다. 2020년 『삶을 쓰다』에 실렸던 글들을 추려서 재수록한 『카사노바 호텔』을 발표했다.
데뷔 시절부터 아니 에르노는 노르망디의 소읍 이브토의 카페-식료품점이었던 자신의 유년 시절로 구성된 자전적 소재에 몰두하기 위해 모든 픽션을 포기했다. 역사적 경험과 개인적 체험을 혼합한 그녀의 작품들은 부모의 신분 상승(『남자의 자리』, 『부끄러움』), 자신의 결혼(『얼어붙은 여자』), 성과 사랑(『단순한 열정』, 『탐닉』), 주변 환경(『밖으로부터의 일기』, 『바깥세상』), 낙태(『사건』), 어머니의 치매와 죽음(『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한 여자』), 심지어 혹은 자신의 유방암 투병(『사진의 사용』, 마르크 마리 공저)을 소재로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해부하였다.
그녀는 “판단, 은유, 소설적 비유가 배제된” 중성적인 글쓰기를 주장하면서 “표현된 사실들의 가치를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는 객관적인” 문체를 구사, “역사적 사실이나 문헌과 동일한 가치로 남아 있기를” 소망한다. 에르노에게는 “자아에 내재된 시적이고 문학적인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의 글쓰기는 “문학적, 사회적 위계를 전복하려는 의도에서 출발, 문학과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는 대상들 ― 슈퍼마켓, 지하철 등 ― 에 대해, 이것보다 고상한 대상들 ― 기억의 메커니즘, 시간의 감각 등 ― 을 서술하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그 둘을 결합하여” 글을 쓴다. “내게 중요한 것은, 나와 나를 둘러싼 사람들을 생각할 때 썼던 그 단어들을 되찾는 일이다.”
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개인의 기억 속에서 집단의 기억을 복원”하려는 사회학적 방법론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개인성의 함정”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노력의 산물인 그녀의 작품은 자전의 새로운 정의를 부여했다. “내면적인 것은 여전히, 그리고 항상 사회적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순수한 자아에 타인들, 법,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로써 아니 에르노는 사회학자의 방법론을 채택, 자신을 집단적 표본과 특성을 체득한 한 체험자의 총합으로 간주한다.
“나는 나를 특수한 존재로서, 절대적으로 특수한 존재라는 의미에서 나 자신을 생각한 적이 거의 없다. 나는 나를 사회적, 역사적, 성적 경험과 판단의 총합, 언어의 총합, 또한 세계(과거와 현재)와 끊임없이 대화하는, 그리하여 이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하나의 특수한 주관성을 형성하게 된 총합으로 간주한다. 나는 나의 주관성을 보다 일반적이고 집단적인 메커니즘과 현상을 되살리고 그것을 밝히기 위해 사용한다.
” 그녀에 따르면 사회학적 방법은 전통적으로 자전적인 ‘나’를 넓힐 수 있는 방법이다. “내가 사용하는 나는 비인격적 형태를 띄고 있다. 성별도 애매하고, 종종 나의 말이기보다는 타인의 말일 수도 있는, 전체적으로 다인격적 형태이다. 그것은 나를 픽션화하는 수단이 아닌, 내 체험 속에서 현실의 지표들을 파악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로써 그녀의 작품은 자신의 궤적의 “사회적 이종교배”(소상인의 딸에서 학생, 교수, 이어 작가가 된)와 그에 따르는 사회학적 메커니즘을 다루고 있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사망을 접하고 [르몽드]지에 애도의 헌사문 「부르디외, 회한」을 기고하면서 사회학적 방법론과 자신의 작품 사이의 유대감을 밝혔고, 부르디외의 글이 그녀에게 “자유와, 세계 펼에서의 실천이성과 동의어”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 책 속으로
우리가 지금까지 몇 번이나 사랑을 나누었는지 헤아려보았다. 사랑을 할 때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우리 관계에 보태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동시에 쾌락의 행위와 몸짓이 더해지는 만큼 확실히 우리는 서로 조금씩 멀어져가고 있었다. 우리는 욕망이라는 자산을 서서히 탕진하고 있었다. 육체적인 강렬함 속에서 얻은 것은 시간의 질서 속에 사라져갔다. --- p.17
요즈음 나는 내가 매우 소설적인 형태의 열정을 지닌 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걸 어떤 형식으로 써야 할지 잘 알 수가 없다. 증언의 형식으로 쓸 것인지 아니면 여성잡지에서 흔히 보듯 고백 수기의 형태로 쓸 것인지, 아니면 선언문이나 보고서 또는 해설서의 모양새를 한 꾸밈없는 소설을 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남녀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그 사람이 11월 11일에 다녀갔다”라거나“그리고 몇 주가 흘렀다”하는 식으로 정확한 날짜를 밝히는 연대기적인 서술 방식으로 글을 쓰고 싶지도 않다(그런 것들은 절반가량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 관계에서 그런 시간적인 개념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그저 존재 혹은 부재만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언제나’와‘어느 날’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하면서 열정의 기호들을 모으고 있었다. 그 기호들을 한데 모으면 나의 열정을 좀더 사실적으로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을 열거하거나 묘사하는 방식으로 쓰인 글에는 모순도 혼돈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글은 순간순간 겪은 것들을 음미하는 방식이 아니라, 어떤 일을 겪고 나서 그것들을 돌이켜보며 남들이 나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방식인 것이다. --- pp.25-26
그 사람이 그럴 만한‘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지금은 그 모든 일들이 다른 여자가 겪은 일인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사람 덕분에 나는 남들과 나를 구분시켜주는 어떤 한계 가까이에, 어쩌면 그 한계를 뛰어넘는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나는 내 온몸으로 남들과는 다르게 시간을 헤아리며 살았다.
나는 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숭고하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욕망, 위엄 따위는 없는 부재,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면 무분별하다고 생각했을 신념과 행동,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스스럼없이 행했다.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세상과 더욱 굳게 맺어주었다.
--- pp.65-66
🖋 출판사 서평
출신 성분과 고향을 버리고
딴 세계에 유배된 망명객이 쓰는 삶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규정하는 프랑스의 문제적 작가로, 사회·역사·문학과 개인 간의 관계를 예리한 감각으로 관찰하며 가공도 은유도 없는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이룩해온 아니 에르노는 2011년 선집 『삶을 쓰다』로 생존 작가로는 최초로 갈리마르 총서에 편입되는 기록을 세웠다. 선집의 제목이 암시하듯, 그녀의 작품에 대해 말하려면 그 삶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아니 에르노의 글은 노년기에 한 생애를 총체적으로 회고하는 한 편의 자서전이 아니라 삶의 전환점마다 과거가 현재의 글이 되고 그 글이 다시 미래의 씨가 되어 삶을 규정하는 현재 진행형의 자서전인 까닭이다.
아니 에르노는 1940년 9월 1일 프랑스 노르망디의 소도시에서 카페 겸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소상인의 딸로 태어났다. 가난한 농부에서 공장 노동자로, 이어 가까스로 자영업자로 신분이동에 성공한 아버지와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억척어멈으로 살아온 어머니, 그들의 하나뿐인 딸로 구성된 가정이었다. 부엌에서 몸을 씻고 취객의 저속한 농담을 감수하며 마당 구석의 변소를 사용하고 다락방에서 추위에 떨며 자야 했던 작가는 사립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동급생 부모들의 생활 방식과 자기 부모의 투박한 일상을 비교하게 되면서 부모와 심리적 단절을 결심하고 자신의 열등감을 우수한 학업성적으로 보상하려 한다. 이후 대학에 진학하고 중산층 엘리트 남편과 결혼하고 문학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하게 되면서 부모의 세계와는 멀어지게 된다.
이렇게 빈곤층 출신의 여자가 성장하고 사랑하고 결혼하는 과정에서 겪은 모멸감과 소외의식은 『빈 장롱』,『그들이 했던 말, 혹은 하지 않았던 말』, 그리고 『얼어붙은 여자』 등 초기작에서 소설 형식을 빌려 자유분방한 언어로 표현된다. 이후 1984년에 발표해 르노도상을 받은『자리』로 작가는 글쓰기 태도에 중요한 변곡점을 형성하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소설을 쓰려다 중간에 포기하고 결국 사실에 근거한 진솔한 감정을 담담하게 서술하는 쪽을 택하게 된다. 이를 기점으로 아니 에르노의 글은 평범한 독자의 눈에도 금세 파악되는 개성을 확보하게 된다. 비교적 짧은 분량의 글, 문단 사이의 여백, 그리고 단숨에 독자의 관심을 끄는 첫 대목, 담담한 문체, 그리고 오로지 사실만을 기록하고자 애쓰며 기억의 확실성을 저울질하는 자기성찰, 그리고 자신의 글의 장르적 정체성─내가 쓰는 글이 과연 문학일까─등에 관한 대목이 거의 전작에서 되풀이된다.
임상적 해부에 버금가는 칼 같은 글쓰기로
치명적인 열정을 진단하다
1991년 아니 에르노는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의 사랑을 다룬 『단순한 열정』을 발표한다. 유명 작가이자 문학교수의 불륜이라는 선정성과 그 서술의 사실성 탓에 출간 당시 평단과 독자층에 큰 충격을 안겨 그해 최고의 베스트셀러 화제작이 된다. 그리고 6년 뒤, 『단순한 열정』을 계기로 연인 사이가 된 서른세 살 연하의 필립 빌랭이 자신의 첫 작품으로 『단순한 열정』의 서술방식을 차용해 아니 에르노와의 사랑을 다룬 『포옹』을 발표하게 되면서 다시 화제가 된다. “올여름 나는 처음으로 텔레비전에서 포르노 영화를 보았다”라는 문장으로 글을 열어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라는 고백이 등장하는 이 작품에 대한 이러한 반응을 예견한 아니 에르노는 작품 속에서 이렇게 서술했다.
이런 이야기들을 숨김없이 털어놓는 것을 나는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글이 쓰이는 때와 그것을 나 혼자서 읽는 때,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을 읽는 때는 이미 시간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테고, 어쩌면 남들에게 이 글이 읽힐 기회가 절대로 오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남들이 읽게 되기 전에 내가 사고로 죽을 수도 있고, 전쟁이나 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런 시간상의 차이 때문에 나는 마음놓고 솔직하게 이 글을 쓸 수가 있다. (...)
(그러므로 자기가 겪은 일을 글로 쓰는 사람을 노출증 환자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노출증이란 같은 시간대에 남들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하는 병적인 욕망이니까.)
『단순한 열정』은 글쓰기의 소재와 방식, 기억과 기록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기존 작품과의 연장선상에 위치하며, 임상적 해부에 버금가는 철저하게 객관화된 시선으로 ‘나’라는 작가 개인의 열정이 아닌 일반적이고도 보편적인 열정을 분석한 반(反)감정소설에 속한다. 아니 에르노는 발표할 작품을 쓰는 동시에 ‘내면일기’라 명명된 검열과 변형으로부터 자유로운 내면적 글쓰기를 병행해왔는데, 『단순한 열정』의 내면일기는 10년 후 『탐닉』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하게 된다. 이러한 글쓰기 방식을 통해 작가는 ‘나’를 화자인 동시에 보편적인 개인으로, 이야기 자체로, 분석의 대상으로 철저하게 객관화하여 글쓰기가 생산한 진실을 마주보는 방편으로 삼았다.
이별과 외로움이라는 무익한 수난
그 수난을 겪은 사람들의 속내를 쓰다
어릴 적 술에 취한 노동자들 틈에서 자랐어도 입신양명해 중산층 엘리트 계급에 안착해 출신 성분과 고향을 버린 작가였다. 하지만 이 사랑에 빠진 후로는 클래식 대신 대중가요를 듣는다. 대중가요는 사랑에 빠진 작가에게‘생활의 일부’이자 ‘(내가) 사는 방식을 정당화’시켜주는 수단이 된다. 또 사랑하는 남자에게 언제나 색다른 멋진 모습만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으로 옷, 귀고리, 스타킹 등을 산다. 남자는 고작 오 분쯤 시선을 줄 테지만 그녀에게는 똑같은 옷을 입고 그 사람 앞에 나선다는 일이 마치 ‘그 사람과의 만남을 일종의 완벽한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소홀히 하는 일’처럼 생각된다. 여성잡지를 펴서 제일 먼저 운세란을 읽고 서점에 들러 베스트셀러를 읽으며 공부도 한다. 이러한 태도를 특정 개인만의 열정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순한 열정』은 2001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후 꾸준히 인기를 누려온 작품이다. 이번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에 속하게 되면서는 이재룡 문학평론가이자 숭실대 불문과 교수의 해설이 더해져 작품과 작가의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를 더할 수 있게 되었다. 이재룡 교수는 ‘작가’,‘ 글쓰기’라는 단순한 용어만을 고집하며, 이미 정해진 장르 구분을 무색하게 만드는 개성적 글쓰기의 가능성을 연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프랑스어에서‘passion’은 남녀 간의 절절한 애정이란 뜻에서 우리말로‘열정’이라 번역하지만 이것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겪은‘고통’을 지칭하기도 한다. 대학 시절 아니 에르노가 읽었던 사르트르의 용어를 빌리자면 우리의 삶은‘무익한 수난’이다. 작가는 사르트르의 용어에서 형용사만 바꿔 그녀가 겪은 한 시절의 체험을‘단순한 수난’으로 명명했으리라. (...) 가난이야 동정과 연대감을 기대할 수 있지만 한 개인이 겪는 차마 고백할 수 없는 이별과 외로움은 그야말로 무익한 수난이다. 그 수난을 겪었던 사람들의 속내를 절절히 형상화한『단순한 열정』은 이전 작품과의 단절, 배신이라고 단죄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