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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막여부(知子莫如父)
알 지 · 아들 자 · 말 막 · 같을 여 · 아버지 부 |
[뜻]
자식을 아는 데는 부모만한 사람이 없다. 자식에 대해서는 부모가 가장 잘 아는 법이라는 말이다.
[출전]
한비자(韓非子)는 《한비자 〈십과(十過)〉》에서 군주의 열 가지 허물을 이야기했는데, 그 중 여덟 번째 허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덟 번째는 과오를 저지르고도 충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독단적으로 자신의 뜻을 행하는 것으로, 이는 숭고한 명성을 잃고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시작이다.(八曰, 過而不聽於忠臣, 而獨行其意, 則滅高名, 爲人笑之始也.)」
그리고 이 여덟 번째 과오에 대한 예로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관중(管仲)의 권고를 듣지 않은 이야기를 들었다.
「무엇을 이르러 잘못이 있으면서도 충신의 권고를 듣지 않는다고 하는가? 옛날 제나라 환공은 아홉 차례나 제후들과 회동하고 천하를 바로잡아 춘추오패의 장이 되었는데 이는 관중이 그를 보좌한 덕분이었다. 관중이 늙어 더 이상 국사를 볼 수가 없게 되어 집에서 양병을 하며 쉬었다. 환공이 집에까지 찾아가 물었다. “중부(仲父)께서 집에서 양병을 하고 계신데 불행히도 이 병에서 일어나지 못한다면 정치를 누구에게 맡겨야 합니까?” 관중이 말했다. “신은 늙었으니 묻지 않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만 신은 신하를 알아보는 것은 임금보다 나은 사람이 없고, 자식을 알아보는 데에는 아비보다 나은 사람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폐하께서 마음으로 헤아려 결정하십시오.”
환공이 물었다. “포숙아(鮑叔牙)가 어떻습니까?” 관중이 대답했다. “안 됩니다. 포숙아의 됨됨이는 강경하고 고집스러우며 흉폭합니다. 강경하면 백성들을 심하게 다룰 수 있고, 고집스러우면 민심을 얻을 수 없습니다. 흉폭하면 아랫사람들을 쓸 수가 없습니다. 그 마음에 두려운 것이 없으니 패자를 보좌할 그릇이 아닙니다.” 환공이 물었다. “수조(竪刁)는 어떻습니까?” 관중이 대답했다. “안 됩니다. 인정 중에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만한 것이 없습니다. 왕께서 질투를 잘하고 여색을 좋아하시는데, 수조는 자신을 거세하고 내궁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몸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군주를 사랑하겠습니까.” 환공이 물었다. “그렇다면 위(衛)나라 공자 개방(開方)은 어떻습니까?” 관중이 답했다. “안 됩니다. 제나라와 위나라는 불과 열흘의 거리입니다. 개방이 왕을 모시면서 왕의 뜻에 영합하기 위해 15년 동안이나 부모를 뵈러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인지상정이 아닙니다. 부모에게 충성하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군주에게 충성과 사랑을 바치겠습니까.” 환공이 물었다. “그렇다면 역아(易牙)는 어떻습니까?” 관중이 대답했다. “안 됩니다. 역아는 왕을 위해 식사를 관리하는데, 왕께서 오직 인육만을 먹어 보지 못했다고 하자 역아가 자기 아들의 머리를 삶아 올렸던 것을 왕께서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인정 중에 자식을 사랑하는 것만한 것이 없습니다. 이제 그가 자기 아들을 요리로 만들어 왕께 바쳤는데, 자기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왕을 사랑하겠습니까.”
환공이 물었다. “그렇다면 누가 좋겠습니까?” 관중이 대답했다. “습붕(隰朋)이 괜찮습니다. 그의 됨됨이는 마음은 강하고 행위는 청렴결백하며, 욕심이 없고 신의가 있습니다. 마음이 강하면 군신들의 사표가 될 수 있으며, 행위가 청렴결백하면 대임을 맡을 수 있습니다. 욕심이 없으면 백성들을 다스릴 수 있으며, 신의가 있으면 인접국과 친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패왕의 보좌가 될 그릇입니다. 왕께서는 그를 중용하십시오.” 제환공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일 년 뒤에 관중이 죽었다. 환공은 습붕을 등용하지 않고 수조를 중용했다. 수조가 집정한 지 3년째 되던 해, 환공은 남쪽의 당부(堂阜)에 유력(遊歷)했다. 수조는 그 틈을 타 역아와 공자 개방, 그리고 대신들을 거느리고 모반을 일으켰다. 환공은 목마르고 굶주린 상태에서 남문의 침실, 즉 공족들이 지키는 방에서 죽었다. 환공이 죽은 지 3개월이 지나도록 시신을 수습하지 않아 시체에 벌레가 생겨 문밖까지 기어 나왔다. 환공의 군대가 천하를 횡행하고 환공은 오패의 장이 되었지만, 마지막에는 신하에게 시해를 당하고 숭고한 명성마저 잃고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는데, 이는 무엇 때문인가? 바로 관중의 말을 듣지 않은 과실이다. 그러므로 과오를 저지르고도 충신의 권고를 듣지 않고 독단적으로 자기의 뜻을 행하는 것은 숭고한 명성을 잃고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시작인 것이다.(奚謂過而不聽於忠臣. 昔者齊桓公九合諸候, 一匡天下, 爲五伯長, 管仲佐之. 管仲老, 不能用事, 休居於家. 桓公從而問之曰, 仲父家居有病, 卽不幸而不起此病, 政安遷之. 管仲曰, 臣老矣, 不可問也. 雖然, 臣聞之知臣莫若君, 知子莫若父. 君其試以心決之. 君曰, 鮑叔牙何如. 管仲曰, 不可. 鮑叔牙爲人, 剛愎而上悍. 剛則犯民以暴, 愎則不得民心, 悍則下不爲用. 其心不懼, 非霸者之佐也. 公曰, 然則竪刁何如. 管仲曰, 不可. 夫人之情莫不愛其身, 公妒而好內, 竪刁自獖以爲內治, 其身不愛, 又安能愛君. 公曰, 然則衛公子開方何如. 管仲曰, 不可. 齊衛之間不過十日之行, 開方爲事君, 欲適君之故, 十五年不歸見其父母, 此非人情也. 其父母之不親也, 又能親君乎. 公曰, 然則易牙何如. 管仲曰, 不可. 夫易牙爲君主味, 君之所未嘗食唯人肉耳, 易牙蒸其子首而進之, 君所知也. 人之情莫不愛其子, 今蒸其子以爲膳於君, 其子弗愛, 又安能愛君乎. 公曰, 然則孰可. 管仲曰, 隰朋可. 其爲人也, 堅中而廉外, 少欲而多信. 夫堅中, 則足以爲表, 廉外, 則可以大任. 少欲則能臨其衆, 多信則能親鄰國. 此霸者之佐也, 君其用之. 君曰, 諾. 居一年餘, 管仲死. 君遂不用隰朋而與竪刁. 刁莅事三年, 桓公南遊堂阜. 竪刁率易牙, 衛公子開方及大臣爲亂. 桓公渴餒而死南門之寢, 公守之室. 身死三月不收, 蟲出於戶. 故桓公之兵橫行天下, 爲五伯長, 卒見弑於其臣, 而滅高名, 爲天下笑者, 何也. 不用管仲之過也. 故曰, 過而不聽於忠臣, 獨行其意, 則滅其高名, 爲人笑之始也.)」
‘지자막여부’의 대표적인 이야기는 다음의 전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도주공(陶朱公)이 도(陶)에 있을 때 막내아들을 낳았다. 막내아들이 장성하여 장년의 나이가 되었을 때, 도주공의 둘째 아들이 살인을 해서 초(楚)나라의 감옥에 갇혔다. 도주공은 “사람을 죽였으니 사형이 마땅하지만, 천금을 가진 부자의 아들은 저잣거리에서 죽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라고 말하며 황금 천 일(鎰, 2만 4천 냥)을 갈색 기물에 넣어 소가 끄는 수레에 실은 다음 막내아들을 보내려고 했다. 도주공의 큰아들이 자기가 가겠다고 고집했지만 도주공이 듣지 않자 큰아들이 “집안에 큰아들이 있는 것은 집안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동생이 죄를 지었는데 저를 보내지 않고 막내를 보내시는 것은 저를 무능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자살을 하려고 했다. 그러자 도주공의 아내가 아들 편을 들어 말했다. “막내아들을 보낸다고 둘째가 살아온다는 보장도 없는데, 이제 큰아들이 먼저 헛된 죽음을 하면 어떻게 합니까?” 도주공은 할 수 없이 큰아들을 보내기로 하면서, 편지를 한 통 써 이전에 친하게 지냈던 장생(莊生)에게 전해 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도착하면 천금을 장생의 집에 두고 그가 시키는 대로 따라라. 절대 그와 맞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큰아들은 떠나면서 개인적으로도 수백 금을 가져갔다. 초나라에 도착해 보니 장생의 집이 성곽에서 가까운 풀이 무성한 곳에 있는데, 집 문 앞에 이르러 보니 집안이 아주 빈한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서신과 천금을 바쳤다. 장생이 말했다. “여기에 머물지 말고 최대로 빨리 돌아가시게. 그리고 동생이 풀려나도 그 이유를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하네.” 큰아들은 장생의 집에서 떠나 장생과 상의하지도 않고 초나라에 머물며 개인적으로 지니고 간 돈을 초나라의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는 귀인에게 바쳤다. 장생은 비록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골목 안에서 살고 있었지만 청렴하고 정직해 명성이 전국에 알려져 있었으며, 초왕 이하 모든 사람들이 스승으로 존경했다. 그는 도주공이 바친 돈을 받고 싶어서 받은 게 아니라 일이 이루어진 후에 다시 돌려주어 신의를 표하려고 했었다. 그래서 돈을 받자 그의 부인에게 말했다. “이것은 도주공의 돈인데 마치 병이 있으면 오랫동안 머무를 수 없는 것과 같이 후에 돌려줘야 할 것이니 손대지 마시오.” 도주공의 큰아들은 장생의 뜻을 알지 못하고 돈을 장생에게 주어 봐야 별로 큰 효과가 없을 것으로만 생각했다.
장생이 기회를 엿보아 입궁하여 초왕을 알현하며 어떤 별자리가 어디에 있는데 이것은 초나라에 해로운 징조라고 말했다. 초왕은 평소에 장생을 신뢰했으므로 물었다. “그럼 지금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장생이 대답했다. “은덕을 베풀면 해를 면할 수 있습니다.” “말씀하지 않아도 행하겠습니다.” 초왕은 사자를 보내 삼전(三錢)의 관아를 봉하도록 했다. 초나라의 귀인이 기뻐하며 이 사실을 도주공의 큰아들에게 알려주며 말했다. “초왕이 죄인을 대대적으로 사면하려고 합니다.” 큰아들이 물었다. “어떻게 아셨소?” “초왕이 죄인을 사면할 때마다 삼전의 관아를 봉하는데, 어제 저녁에 초왕이 사자를 보내 삼전의 관아를 봉했습니다.” 큰아들은 초왕이 사면을 내리면 동생은 당연히 석방되는 것인데 천금을 공연히 장생에게 주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고 다시 장생을 찾아갔다. 장생이 놀라 물었다. “어째서 아직도 돌아가지 않았는가?” “아직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당초 동생의 문제로 어르신을 찾아뵈었는데, 동생 문제는 초왕이 사면을 결정하였으니 자연스레 사면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어르신께 인사를 드리고 가려고 한 것입니다.” 장생은 큰아들의 뜻이 돈을 찾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했다. “직접 방에 들어가 돈을 가져가시게.” 큰아들은 방에 들어가 돈을 가지고 가면서 기뻐했다.
장생은 큰아들에게 농락을 당하자 심히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다시 입궁하여 초왕을 알현하고 말했다. “제가 며칠 전에 한 별자리 이야기에 대해 왕께서는 덕을 닦는 방법으로 보답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내가 밖에 나가 보니 사람들이 모두 도 땅의 부자 주공의 아들이 사람을 죽여 초나라에 갇혔는데 그의 집안사람이 많은 돈을 가지고 왕의 부하를 매수하였기 때문에 왕의 대사면은 초나라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서가 아니라 주공의 아들을 죄에서 벗어나게 해 주기 위해서였다고들 말합니다.” 초왕은 대로하여 “내가 비록 덕은 없지만 무엇 때문에 주공의 아들로 인하여 은혜를 베풀겠소?”라고 말하고 주공의 아들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다음 날 사면령을 내렸다. 큰아들은 동생의 시신을 가지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도착하자 어머니와 동네 사람들이 모두 슬퍼하는데 주공만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 녀석이 동생을 죽일 줄 알고 있었다. 그 녀석이 동생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차마 재물을 버리지 못해서이다. 그 녀석은 어릴 때부터 나와 함께하면서 내가 살기 위해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재물을 포기하는 일을 절대로 못 한다. 하지만 막내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내가 아주 부유한 것을 보면서 자랐으며, 견고한 수레를 타고 명마를 타며 항상 밖에 나가 사냥을 했으며, 재산이 어디에서 생기는지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재산을 가볍게 버리고도 아까워하지 않을 수 있다. 내가 막내아들을 보내려고 했던 것은 막내는 재물을 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큰아들은 재물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은 동생을 죽게 만든 것이다. 이치가 그러하니 슬퍼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녀석이 시신을 가지고 돌아올 것을 밤낮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사기(史記) 〈월왕구천세가(越王勾踐世家)〉》에 나온다.
‘지자막여부’의 또 하나의 대표적인 이야기는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명장 조사(趙奢)와 그의 아들 조괄(趙括)의 이야기이다. 조괄은 소년 시절부터 병법을 배워 군사에 관한 이야기를 잘했다. 천하에 병법가로서는 자기를 당할 사람이 없다고 자부했다. 일찍이 그의 아버지 조사도 함께 병법을 토론했을 때 조괄을 당해 내지 못했다. 그러나 조사는 아들을 칭찬한 적이 없었다. 조괄의 어머니가 그 까닭을 묻자, 조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걱정을 하였다. “전쟁이란 죽음의 땅이다. 그런데 괄은 그것을 가볍게 말한다. 조나라가 괄을 장군에 임명하는 일이 없다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그 애가 장군이 되면 조나라 군대를 망칠 자는 조괄이 될 것이다.” 조괄은 아버지 조사가 우려한 대로 결국 장평(長平)의 전투에서 조나라의 40만 대군을 몰살당하게 만들고 자신도 전사하고 말았다.(▶ 교주고슬(膠柱鼓瑟), 병사지야(兵死地也), 지상담병(紙上談兵) 참조)
[용례]
학교교육도 중요하지만 가정교육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특히 아들의 진로에 대한 교육은 아버지의 의견을 듣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지자막여부’이기 때문이다.
[글]
김성일(金聖日)은 문학박사. 전라북도 도청에서 국제정책전문위원으로서 중국과의 국제교류 업무를 담당하는 한편, 단국대학교, 전남대학교,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백석대학교 등에서 중국어문학을 가르쳤다..펼쳐보기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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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노가리 님 감사합니다 ^*^
감사 합니다 샬롬 !!
즐거운 월요일 맛과 멋 향기로 보람 되시고...
늘 웃는 삶 행복 하시고 편안 하시며 항상 건강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