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씨 종중에도 자랑스러운 문장이 있습니다
― 옥천전씨 사서종택(沙西宗宅)의 문장(紋章)을 바라보며 ―
유럽의 이름난 명문가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그 집안을 상징하는 문장(紋章, Heraldry)을 떠올립니다.
방패 위에 새겨진 문양 하나, 가문의 색깔 하나만 보아도 그 집안의 역사와 전통, 명예와 정신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오래된 유럽의 문장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 문양 속에 담긴 세월과 이야기에 경외심을 갖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그런 자랑스러운 전통이 있습니다.
바로 종가의 문장(紋章)입니다.
경상북도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종가의 역사와 가통을 현대인들에게 알리고, 종가를 하나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계승하기 위하여 종가별 문장과 인장을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되살리는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이 사업의 목적은 단순히 예쁜 상징 하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종가가 간직해 온 역사성·문화적 가치·가통을 하나의 시각적 상징으로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 옥천전씨 사서종택(沙西宗宅)도 당당히 하나의 문장을 갖게 되었습니다.
1. 사서종택의 문장에는 400년의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사서종택의 현조는 사서(沙西) 전식(全湜) 선생입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서공은 유성룡과 장현광의 문하에서 학문을 연마하였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왜적과 싸웠습니다. 이후 관직에 나아가 성균관전적, 예조좌랑과 정랑 등을 역임하였고, 울산판관으로 있을 때에는 백성들의 교화에도 힘썼습니다. 그러나 벼슬자리에만 머물렀던 분은 아니었습니다. 광해군의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벼슬을 단념한 뒤에는 정경세, 이준 등과 산수를 유람하며 학문과 삶을 닦았습니다. 사람들은 이들을 ‘상사의 삼로(商山의 三老)’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인조반정 이후 다시 조정에 나아갔고, 이괄의 난 때에는 국왕의 어가를 호종했습니다. 그리고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또다시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평생을 통하여 나라가 위태로울 때에는 몸을 일으켜 나라를 지키고, 세상이 어지러울 때에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으며, 평상시에는 학문과 절의를 지키며 살아간 선비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바라보는 사서종택의 문장은 단순한 그림이 아닙니다. 그 문장 뒤에는 사서공 전식 선생의 삶이 있고, 그 삶을 이어온 후손들의 시간이 있습니다.
2. 사서종택의 특별한 보물, ‘박쥐 모양의 문장’
사서종택 문장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박쥐 모양의 문양입니다. 보고서는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서(沙西) 공의 박쥐 모양의 문장이 전해져 내려온다.” 그리고 종가에는 이 문장과 함께 사서공의 인장도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더욱 뜻깊은 것은 이것이 누군가가 최근에 새로 만들어 낸 문양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형연구소의 연구진이 사서종택을 답사했을 때, 사서공이 보유했던 문장과 여러 인장 유물을 직접 확인하고 이를 문장 디자인의 소재로 삼았습니다. 연구진은 세 가지 안을 검토했습니다.
첫 번째는 사서공의 문장, 나머지는 답사에서 확인한 인장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선택된 것은 바로 사서공이 사용했던 문장이었습니다. 연구진은 이 문장이 사서종택에만 전해 내려온 귀중한 유물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원래의 모습을 최대한 살리고자 했습니다. 이후 문장의 색을 보다 선명한 밝은 붉은색으로 다듬어 오늘날 우리가 보는 사서종택의 문장으로 완성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줍니다.
사서종택의 문장은 새로 만든 로고가 아니라, 조상에게서 오늘의 우리에게까지 이어진 역사적 흔적을 현대의 모습으로 되살린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3. 문장 하나에 ‘가문의 기억’을 담다
경상북도의 종가 문장 사업은 유럽의 문장이나 일본의 가문(家紋)처럼, 한 집안이나 지역을 대표하는 시각적 상징을 현대적으로 되살리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연구진은 문장이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 그 집안의 역사와 품격을 전달하고 신뢰감을 주는 상징이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는 하나의 문화적 매개체로 문장을 바라보았습니다.이러한 생각에서 만들어진 사서종택의 문장은 오늘날 단순히 종택의 표지가 아닙니다. 그것은 전식 선생의 학문을 기억하고, 나라를 위해 의병을 일으켰던 뜻을 기억하고, 불의한 세상에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던 선비정신을 기억하고, 그 뜻을 오늘까지 이어온 후손을 기억하는 상징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문장을 볼 때마다 한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동시에 또 하나의 질문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4. 이제 사서종택의 문장은 ‘우리 모두의 문장’입니다
2018년 경상북도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형연구소가 추진한 5차 사업에서는 모두 20개 종가의 문장과 인장을 개발했습니다. 그 최종 결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상주 옥천전씨 사서종택의 문장과 인장입니다. 보고서의 최종 디자인에는 붉은색의 사서종택 문장과 함께 ‘사서’라는 인장이 나란히 제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20개 종가의 최종 문장을 한자리에 모은 자료에서도 사서종택의 문장이 하나의 독립된 상징으로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장은 휘장에도 적용되었습니다. 사서종택을 비롯한 여러 종가의 문장이 실제 휘장으로 제작되어, 종가의 상징이 생활 속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제 이 문장을 우리 종인들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5. 문장을 자랑한다는 것은 조상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뜻’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문장이 있다고 해서 그 집안이 명문가가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진정한 명문은 화려한 문양이나 오래된 족보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조상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 그 삶에서 무엇을 지켰는가, 그리고 후손들이 그 정신을 어떻게 이어가는가. 그것이 명문의 참된 모습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서종택의 문장은 우리에게 자랑스러운 유산입니다. 박쥐 모양으로 남아 있는 작은 문양 하나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사서공의 삶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학문을 배우고,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몸을 일으키고, 벼슬보다 자신의 뜻을 중히 여기고, 다시 나라가 어려워지면 의병을 일으켰던 한 선비의 삶. 그리고 그 삶을 기억하며 오늘까지 종가를 지켜온 선조와 후손들의 시간이 그 작은 문장 안에 함께 들어 있습니다.
6. 이제 우리도 이 문장을 가슴에 새겼으면 합니다
유럽의 명문가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장을 자랑스럽게 여기듯이, 우리도 우리 선조들이 남긴 문장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랑스럽게 여기면 좋겠습니다. 다만 그것은 “우리 집안이 훌륭하다”는 자랑이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 선조가 이렇게 살았으니 우리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자.” 라는 다짐이어야 할 것입니다. 사서종택의 붉은 문장을 바라보며 후손들이 이렇게 생각한다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나라를 걱정했던 마음을 잊지 말자. 배움을 소중히 여기자. 옳다고 믿는 것은 쉽게 굽히지 말자. 어려운 때일수록 책임을 피하지 말자. 그리고 조상에게서 받은 이름을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게 물려주자. 그것이 문장을 이어가는 진정한 의미일 것입니다.
맺으며
사서종택의 문장은 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400년의 역사와 한 선비의 삶, 그리고 수많은 후손들의 시간이 겹쳐져 있습니다. 한 집안의 문장이란 결국 과거를 기념하는 그림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세우는 약속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가 이 붉은 문장을 바라보며 조상들의 삶을 기억하고, 내일 우리의 후손들이 다시 이 문장을 바라보며 “우리 선조들도 이렇게 살아왔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사서종택의 문장은 하나의 그림을 넘어 옥천전씨의 살아 있는 정신이 될 것입니다.
沙西宗宅사서종택의 붉은 문장. 조상이 남긴 작은 문양 하나를 후손의 가슴에는 큰 자긍심으로 새깁시다. 그리고 그 자긍심이 오늘의 우리를 더 바르게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 2018년 경북 종가 문장, 인장
디자인 개발 5차 보고서
경북지역 20종가의 상징 시각화 및 디자인 적용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