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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씨는 귀가한 후에도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는데, 축축 처지는 기분이 들면서 몸을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씻어야 한다는 생각만 간절할 뿐, 일어설 수가 없었다. 뒤늦게 식당 정리를 마치고 들어온 아내의 성화에 겨우 얼굴만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피곤했는지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오전 2시경 소변이 마려워 눈을 떴다. 하지만 몸을 꼼짝할 수가 없었다. 특히 몸 왼쪽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한쪽 마비가 온 것이었다. 깜짝 놀란 아내가 119에 전화를 걸었다. 고려대 구로병원으로 가는 응급차에서 아내는 펑펑 울었다. 권 씨는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두려웠던 시간이었다”고 했다.
응급실에서 병명이 확인됐다. 뇌경색이었다. 권 씨를 시술한 김치경 고려대 구로병원 신경과 교수는 “당시 바로 조치하지 않았다면 평생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더 심한 경우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일단 대뇌로 가는 오른쪽 경동맥이 심하게 좁아져 있었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대뇌동맥에서 약 3mm 크기의 혈전이 발견됐다. 혈전은 대뇌동맥 절반 정도를 막고 있었다. 김 교수는 우선 스텐트를 설치해 경동맥 협착을 해결했다. 이어 대뇌동맥을 따라 들어가면서 혈전을 제거했다.
야간에 이런 응급 시술을 하려면 최소한 서너 시간이 소요된다. 시술에 투입될 의료진이 모두 모이는 데만 꽤 많이 걸린다. 권 씨는 운이 좋았다. 김 교수팀이 막 다른 환자 시술을 끝낸 시점에 응급실에 갔던 것. 덕분에 곧바로 시술을 시작할 수 있었고 2시간 이내에 끝낼 수 있었다.
● “고혈압이 뇌경색 유발했을 것” 진단
권 씨가 일할 때 몸 한쪽이 마비된 거나 복시가 나타난 것은 뇌혈관이 막히면서 나타난 증세였다. 반면 통증이나 어지러움증 같은 증세는 나타나지 않았다. 김 교수는 “작은 뇌혈관이 막히면 증세가 나타났다가 사라질 수도 있어 자칫 환자가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병원에 가야 할지, 안 가도 될지 환자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김 교수는 “얼굴 마비, 팔다리 마비, 언어 장애 등 세 가지 증세에서 한 가지만 나타나더라도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시기를 놓쳐 뇌혈관이 터지는 뇌출혈이 발생하면 의식을 잃거나 호흡 곤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혹은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권 씨는 어쩌다 뇌경색에 걸리게 된 걸까. 그는 술을 마시지도, 담배를 피우지도 않았다. 갈빗집을 운영하지만 기름진 음식을 별로 먹지도 않았다. 젊었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산악자전거와 테니스는 10년 넘게 지속할 정도였다. 친구들 사이에서 권 씨는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게다가 가족 중에 뇌경색 환자도 없었다. 친구들도 권 씨가 쓰러지자 ‘불가사의’라 했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원인이 보인다. 권 씨는 고혈압 환자였다. 중증까지는 아니지만 5년 넘게 고혈압 약을 먹고 있었다. 권 씨는 또, 급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일을 진행할 때는 빨리 끝내야 마음이 놓인다. 김 교수는 “이 두 가지 요소가 뇌경색을 유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실제로 고혈압은 당뇨, 고지혈증과 함께 뇌경색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이 병들로 인해 동맥경화증이 발생하고, 그 결과 혈류가 막히는 것이다. 조급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권 씨 성격은 직접적으로 뇌경색을 유발하지는 않았지만 혈압을 높이는 데 간접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 6개월간 힘겨운 병원 재활치료
막힌 혈관을 뚫었다고 해서 건강한 몸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다. 후유증을 피할 수 없다. 김 교수는 “뇌 손상이 발생한 부위는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 주변 기능을 강화해 보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깨나 무릎 등 근골격계 통증 같은 후유증도 극복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시술 후 최소 3개월, 길게는 6개월 이상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한다. 권 씨도 마찬가지였다. 왼쪽 팔을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다. 등 뒤로 팔을 들어 올릴 수도 없었다. 왼쪽 다리에도 힘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매주 2회 병원을 찾았다. 팔을 비틀고 동작 범위를 넓히는 재활치료는 뭐라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 통증이 너무 심해 눈물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래도 포기할 마음은 없었다. 권 씨는 “평생 열심히 일해 이제 살 만해졌는데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빨리 회복해서 삶을 즐기고 싶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6개월 재활치료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그전보다 훨씬 팔과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불편했다. 김 교수는 “병원 재활치료는 여기까지다. 다음은 환자의 몫”이라고 말했다. 환자가 스스로 재활훈련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몸 상태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권 씨의 경우 팔다리에 힘이 덜 느껴졌지만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식당 일을 다시 할 정도로 건강해진 것은 아니었다. 다리에 힘이 없어서 걸을 때마다 발이 바깥쪽으로 돌아 나가려 했다. 팔에는 꽤 힘이 들어갔지만 그나마 세수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약간이라도 무게가 있는 물건은 들 수 없었다. 권 씨는 이를 악물고 자신만의 재활훈련에 돌입했다.
● 3년 만의 업무 복귀, 달라진 삶
병원 재활치료를 받는 중에도 야외에서 걷기를 했다. 2020년 들어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 한 해 동안 눈만 뜨면 동네 안양천 공원으로 갔다. 매일 2시간씩, 1만5000보 정도를 걸었다. 처음에는 느리게 걷다가 점차 속도를 올렸다. 옷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1년 동안 그렇게 걸었더니 체력이 좀 붙었다. 하지만 근력은 전과 같지 않았다. 2021년, 운동 장소를 헬스클럽으로 바꿨다. 한쪽 마비 후유증 때문에 벤치프레스를 해도 역기가 왼쪽으로 기울었다. 권 씨는 전문 트레이너에게 주 3회, 40분씩 어깨, 가슴, 등, 다리를 비롯해 모든 부위 근육을 키우는 교육을 받았다. 트레이너와의 교육시간이 끝나면 추가로 1시간 동안 근력 운동을 복습했다. 이와 별도로 1시간씩 트레드밀 위에서 걸었다.
2022년에도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이어 갔다. 3년 동안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운동에 매진했다. 마침내 팔과 다리에 힘이 붙었다. 권 씨는 “3년째가 되니까 힘이 떨어지거나 약한 마비 같은 증세가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몸이 좋아지자 다시 식당에 나갔다. 3년 만의 출근이었다. 권 씨는 “손님을 다시 볼 수 있고,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고 했다.
이제 즐기자고 마음먹었다. 옛 골프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도 끼워 달라고 했다. 그 후로 지금까지 골프를 자주 즐긴다. 물론 골프장에서도 카트를 타지 않고 내내 걷는다. 이 경우 1만6000보를 걷게 된다.
요즘에도 권 씨는 주 5일 이상 헬스클럽에서 2시간씩 운동한다. 이제 운동을 적당히 해도 되지 않을까. 권 씨는 “아니다”라고 힘줘 말했다. 가끔 여행을 가서 운동을 못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다시 팔과 다리에서 힘이 쭉 빠진다는 것이다. 권 씨는 “재활훈련은 끝났지만, 평생 운동을 해야 뇌경색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사실 지금도 약간 후유증이 남아 있다. 마비됐던 왼쪽 팔 힘이 여전히 약한 것. 김 교수는 “100% 회복하는 경우는 솔직히 드물다. 마비 증세가 없고, 80% 이상의 힘을 되찾았다면 상당히 좋은 결과”라고 평가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첫댓글 출석합니다
잘읽고 갑니다
역시운동이답이네요
네
자주 들러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