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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2. 9. 큐티
여호수아 7:19 ~ 26
아간의 범죄로 만들어진 아골 골짜기
관찰 :
1) 내 아들아 청하노니
- 19절a.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아간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청하노니” => 하나님에 의해서 제비가 뽑힌 아간에 대해서 여호수아는 “내 아들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네 이놈~” 이렇게 다그쳐도 부족함이 없을텐데 여호수아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아간을 향하여 “내 아들아~”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아간에 대해서 정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아간이 죄를 자백하고 그로 인해서 하나님의 저주가 이스라엘에게 임한 것을 피하는 것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아간이 자신의 죄를 부정하게 되면 그 죄악은 단지 아간에게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에게 임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 19절b.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 그 앞에 자복하고 네가 행한 일을 내게 알게 하라 그 일을 내게 숨기지 말라 하니” => 여호수아는 아간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자복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간이 자신의 죄를 숨기고 밝히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간은 이제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자신의 죄를 계속 가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죽임을 당하는 길을 택할 것인가? 자신의 죄를 계속 부인하면 이스라엘 전체가 저주를 받을 것이고, 자신이 죄를 자백하면 자신이 죽임을 당하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길을 택할 것인가? 아간은 여기서 자신의 죄악을 인정하고 밝혀야 했습니다.
2) 아간의 자백
- 20절. “아간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참으로 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이러이러하게 행하였나이다” => 아간은 이제 자신의 목숨을 건 자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으로 자신은 죽게 된다는 것을 아간도 알았습니다. 이 자백을 한다고 해서 자신이 죽음을 면하지는 못할 것임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자백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는 자세한 정황을 자백하고 있습니다. 아간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했음을 분명히 자백했습니다.
- 21절.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그 무게가 오십 세겔 되는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가졌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하더라” => 아간이 훔친 물건들은 적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 '시날'은 '두강 사이의 땅'이란 뜻입니다. 두 강은 곧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말합니다. 따라서 '시날' 땅은, 과거 니므롯 왕국이 세워지기도 했으며, 바벨탑이 건축되려고도 했던 '바벨론' 지역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간이 훔친 '아름다운 외투'는 갖가지 무늬가 아름답게 수놓아진 외투는 값지고 귀할 뿐 아니라, 당시 예술적인 가치가 높았던 바벨론산 외투를 가리킵니다. 당시 이 바벨론산 외투는 왕족이나 방백들, 또는 큰 부자들만이 입을 수 있었던 귀한 것으로 매우 값진 교역 품목이었습니다. '세겔'은 무게를 축정하는 히브리인들의 기본 단위로 1세겔은 대략 11.4g 가량이었습니다. 따라서 아간이 훔친 금은의 중량은 은이 약 2.28kg, 금이 약 0.57kg이었습니다. 사실 전쟁에서 전리품으로 얻은 것으로 이 정도는 그렇게 큰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간은 이러한 물건들을 보는 순간 견물생심(見物生心), 욕심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아까웠습니다. 이것을 다 태우고, 하나님의 성전에 대단히 많은 재물이 쌓이고 있는데, 이 정도쯤은 자신이 가져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정도는 하나님도 눈 감아 주시겠지’, 혹은 ‘그 정도는 하나님도 모르실 거야’ 하는 생각이 아간의 마음과 생각을 덮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성 전쟁에서 패배한 것도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제비 뽑기가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죄악이 이렇게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악이 드러나야 하는 상황에서 아간은 솔직하게 자신의 죄악을 자백하게 되었습니다.
3) 긴급하게 일처리 하는 여호수아
- 22절 ~ 23절. “이에 여호수아가 사자들을 보내매 그의 장막에 달려가 본즉 물건이 그의 장막 안에 감추어져 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는지라 그들이 그것을 장막 가운데서 취하여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가지고 오매 그들이 그것을 여호와 앞에 쏟아 놓으니라” => 여호수아는 아간의 자백을 듣자마자 사자들을 아간의 장막으로 보내 그가 훔치고 숨긴 물건들을 모두 발견하고 가져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 쏟아 놓았습니다. 이것의 소유가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처리를 빨리 해야 하나님의 저주가 빨리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도 이렇게 신속하게 일처리를 하게 만든 이유였을 것입니다.
4) 아골 골짜기의 슬픔
- 24절.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과 더불어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고 그 은과 그 외투와 그 금덩이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딸들과 그의 소들과 그의 나귀들과 그의 양들과 그의 장막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 여호수아는 아간 뿐만이 아니라 그의 아들들, 딸들, 그의 모든 소유를 다 처형했습니다. 신 24:16에는 아비의 죄를 그 자식에게 전가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본문을 통해서 볼 때, 아간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아간의 가족들이 모두 알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비 아간의 죄를 함께 숨기고 함께 범죄에 동참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것을 취했기에 이것은 단순한 도적질 정도의 문제가 될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요단 동편에서 요단강을 건너오기 직전에도 하나님이 성결을 요구하셨고, 요단을 건너 와서도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을 지키며 성결의식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여리고성을 칠 때도 먼저 성결할 것을 명하셨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친 아간과 그의 가족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 여호수아는 단호하게 처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골 골짜기’는 여리고 근방에 있는 골짜기로 나중에 유다와 베냐민 자파의 지경이 됩니다(15:7). '아골'(עָכֹֽור)은 '괴롭다', '슬프다'란 뜻의 동사 '아칼'(עָכַר)에서 파생된 명사로, 곧 '괴로움', '슬픔', '고통'이란 뜻입니다. 따라서 '아골 골짜기'란 '괴로움의 골짜기' 또는 '고통의 골짜기'란 뜻입니다. 이곳이 아골골짜기가 되는 것은 25절로부터 발생하게 됩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간의 죄와 그에 해당하는 무서운 형벌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후세에 경고로 삼기 위해 명명한 명칭이었습니다. 아골 골짜기는 이후로 '심판'과 '고통' 및 '저주'를 상징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후일 선지자들의 시대에는 종말론적으로 이스라엘의 '치유'와 '회복'을 상징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사 65:10; 호 2:15). 여호수아는 아간의 처형 장소로 이스라엘 진영에서 아간과 아간에게 속한 모든 이들을 끌고 바깥으로 나갔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처형을 한 것이 아니라 진영 바깥으로 굳이 끌고 나간 이유는 가증한 죄를 저지른 범죄자의 피로 인해 이스라엘 진영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고자 한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언약 공동체를 부패시킨 암적 요인을 '멀리 그리고 단호히' 제거시켜 이스라엘 진영을 거룩히 보존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 25절. “여호수아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오늘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물건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 여호수아는 아간에 대해서 “내 아들아~‘라고 불렀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공동체로서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함께 목숨을 걸고 가나안 정복전쟁을 치루고 있는 하나님의 성전(聖戰)을 치루고 있는 전우애적인 표현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 아간과 아간의 자녀들을 죽여야만 하는 여호수아도 그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통스러웠고, 또 그 가족을 몰살시켜야 하는 동족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도 이 일은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성결을 회복해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나안 정복전쟁이 이어질 수 있는 것이었기에 정말로 눈물을 머금고 고통속에서 아간과 그 가족들을 돌로 쳐 죽여야 했던 것입니다. 돌로 쳐 죽이는 형벌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장 극악한 죄에 대해 시행하던 일종의 공개 처형법이었습니다. 이 형벌은 우상 숭배자(레 20:2~5), 신성 모독자(레 24:15, 16), 부모에게 대적하는 패륜아(신 21:18-21), 안식일을 범한 자(민 15:32~36)등에 적용되었습니다. 이 처형법의 시행 목적은 첫째, 그 범죄에 대하여 경각심을 일깨워 주고, 둘째, 공동체의 연대 책임 의식을 강화시켜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신약에서도 행 5:1~11에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하나님께 바쳐야 할 땅을 판 값의 일부를 감추었다가 베드로에게 발각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임을 당하는 것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새로운 국가 또는 새로운 교회의 시작에 있어서 언약 백성의 성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구약과 신약에서 동일하게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 26절. “그 위에 돌 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의 맹렬한 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 아골 골짜기에 돌무더기를 크게 쌓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돌을 쌓으므로 후손들에게 교훈을 주고자 한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하나님의 분노는 그쳐지게 되었고, 이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승리가 아닌 성결을 통하여 거룩을 받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승리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가르침 :
1)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성결을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아간이 범죄했지만,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자신과 자신에게 속한 아들들과 딸들과 모든 소유물이 죽임을 당하고, 불태워짐을 당하는 것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죄악이 제거되었습니다. 이 과정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니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간의 범죄와 그 범죄가 다루어지는 모든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형태로 존재해야 하는 지를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주시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2) 승리는 이스라엘이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과 싸워서 승리했다고 그것이 이스라엘이 이룬 것이 아닌 것입니다. 여리고성의 전투와 아이성의 전투는 바로 그러한 이스라엘의 전쟁의 성격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직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복종하는 것이었습니다. 아간이 범죄했으나 자신의 목숨을 드리는 자백과 자신과 아들들과 딸들이 모두 동족들에 의해 돌에 맞아 죽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성결이 먼저입니다. 교회가 돌려드려야 하는 하나님의 영광도 교세가 커지고, 많은 성도가 모이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십니다. 그것으로 교회의 지도자가 자신의 범죄를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 결코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3)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자신의 동족인 아간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돌로 쳐 죽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슬픔이 아골 골짜기라는 이름에 새겨졌습니다. 다시는 그렇게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돌로 무더기를 쌓아 올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다짐은 슬프게도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적용 :
1) 내가 하나님께 올려드릴 영광은 사역을 잘 감당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의 성결을 원하십니다. 내가 하나님과 온전히 거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언제나 성결이 우선입니다. 나의 마음과 생각이 깨끗하여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고서는 이 세상에서 거룩해질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은혜이고, 이것이 바로 주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선순환이 되는 것입니다.
2) 아간은 범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족들에 의해 돌로 맞아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으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저주는 멈추게 되었습니다. 아간이 죄를 저지른 것은 어찌 보면 탐심이 발생한 이유이기에 이렇게 까지 심각하게 처리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도, 이스라엘도, 심지어 아간 자신도 이 일에 대해서 이스라엘로부터 완전히 끊어지고, 돌에 맞아 죽는 것을 당연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슬픈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심각성입니다. 죄는 잘라내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입니다. 죄는 필연적으로 아골 골짜기를 생각나게 해야 합니다. 아간은 그렇게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의 영혼을 하나님이 어찌 하셨겠습니까? 이렇게 죄를 자백하고 회개한 자의 영혼을 하나님이 버리셨겠습니까? 이 땅에서 범죄하고 이스라엘이 저주 가운데 거하게 하는 것보다 자신이 죄를 자백하여 죽음으로 하나님의 저주를 벗어나게 하는 것이 합당한 연고가 되는 것이라는 것을 아간은 여호수아를 통해 알았습니다. 오늘날도 이러한 프로세스는 동일합니다. 교회 공동체 내의 범죄에 대해서 분명하게 드러내고 그 대가를 치르게 해야 교회 공동체가 성결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치리가 없는 교회는 참된 교회의 역할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무조건 용서만 해 주는 것이 교회의 교회됨이 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3)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어지러운 정치 상황을 주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시길 간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