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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아이 성 전투
수 8:1-9
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의 백성과 그의 성읍과 그의 땅을 다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2 너는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거기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가지라 너는 아이 성 뒤에 복병을 둘지니라 하시니
3 이에 여호수아가 일어나서 군사와 함께 아이로 올라가려 하여 용사 삼만 명을 뽑아 밤에 보내며
4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성읍 뒤로 가서 성읍을 향하여 매복하되 그 성읍에서 너무 멀리 하지 말고 다 스스로 준비하라
5 나와 나를 따르는 모든 백성은 다 성읍으로 가까이 가리니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에게로 쳐 올라올 것이라 그리 할 때에 우리가 그들 앞에서 도망하면
6 그들이 나와서 우리를 추격하며 이르기를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도망한다 하고 우리의 유인을 받아 그 성읍에서 멀리 떠날 것이라 우리가 그들 앞에서 도망하거든
7 너희는 매복한 곳에서 일어나 그 성읍을 점령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너희 손에 주시리라
8 너희가 그 성읍을 취하거든 그것을 불살라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였느니라 하고
9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매복할 곳으로 가서 아이 서쪽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하였고 여호수아는 그 밤에 백성 가운데에서 잤더라
수 8:1-9 / [다시 전쟁을 시작하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 말아라. 놀라지 말아라. 부하들을 모두 다 이끌고 아이성으로 올라가라. 쳐들어가라. 내가 이미 그 땅을 네게 주었노라. 아이 왕과 그 성과 백성을 모두 다 네 손에 붙였다. 2) 아이를 쳐라. 그 왕을 쓰러뜨려라. 여리고를 점령하듯 아이도 점령하여라. 이변만은 아이성에서 노획한 물건들과 가축 떼를 너희 것으로 삼아라. 너희가 차지하여도 상관없다. 너희는 성의 뒤쪽에 숨어 있다가 아이성을 공격하여라.' 3) 여호수아가 부하들을 모조리 이끌고 아이성으로 올라가려고 준비하였다. 우선 전사 3만명을 뽑아 그들을 밤에 올려 보내면서 4) 말하였다. `너희는 성의 뒤쪽으로 가거라. 그곳에서 성으로 쳐들어갈 기회만 엿보고 있어라. 그곳에 숨어 있으란 말이다. 성벽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는 말아라. 언제 공격시간이 될지 모르니 정신 바짝 차리고 준비하고 있어라. 5) 우리는 모두 성읍 앞쪽으로 쳐들어갈 생각이다. 그러면 지난번처럼 아이 사람들이 성문을 열고 우리가 있는 쪽으로 쳐내려올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들에게 쫓기는 체하면서 도망칠 것이다. 6) 그 사람들은 우리 속셈도 모르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난번처럼 힘도 못쓰고 도망친다고 하면서 의기양양하게 성문에서 멀리까지 우리를 쫓아올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아이 사람들을 유인하여 멀리까지 가거든 7) 너희는 매복하고 있던 곳에서 재빨리 일어나 성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 아이를 짐령하여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성읍을 이미 우리 손안에 넘겨 주셨다. 8) 너희가 그 성안으로 쳐들어가 점령하거든 여호와께서 이르신 말씀대로 성을 모조라 불살라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너희에게 분명히 이렇게 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9) 여호수아가 매복병들을 내보냈다. 그들은 아이성 서쪽으로 가서 매복하였다. 그곳은 벧엘과 아이 사이에 있었다. 여호수아는 그날 밤 백성들 틈에서 잠을 잤다.
본문은 아이 성 전투에서 패배한 이스라엘이 드디어 아이 성 전투에서 승리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승리의 비결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과 전략에 있고, 그 약속과 전략에 순종하는 여호수아의 모습에 있습니다.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1-2) 아이 성에서의 패배는 이스라엘이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아간의 범죄로 인한 패배는 이스라엘을 좌절하게 만들었고, 여호수아의 지도력에도 큰 타격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낙심하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1) 하나님은 실패한 자들을 그냥 두지 않으시고, 다시 힘을 주십니다. 실패로 인한 상처와 아픔을 싸매 주시며 여호수아가 다시 출발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십니다.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1) 이 명령은 7장 3절에서 여호수아가 정탐을 보낸 사람들의 보고와 전혀 다른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진 모든 군사력을 동원해서 아이 성을 최선을 다해 공격하라고 명령하십니다. 1절 하반절에 "그의 땅을 다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라는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넘겨 주겠다 약속하셨기에 전쟁은 이미 승리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군사를 다 거느리고"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도우심이 있다고 해서 우리의 최선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에 여호수아가 일어나서(3-9) 여호수아는 아이 성을 공격하라는 지시를 받습니다. 아이 성 뒤에 매복할 삼만 명의 용사를 뽑아 밤에 보낼 것을 말씀하십니다(3). 또한 성에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말라 하시고, 다 스스로 준비하고 있으라 말씀하십니다(4). 매복하고 있는 삼만 명의 군사들이 빠르게 나와서 아이 성을 점령하려면 3-4절의 말씀처럼 준비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승리의 약속을 받았지만 철저하게 싸울 준비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어도 우리의 준비와 노력이 없으면 약속하신 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7장에서의 패배는 이스라엘의 교만으로 방심했다가 당한 패배였습니다. 7장에서의 패배로부터 교훈을 얻은 여호수아는 이번에는 철저하게 준비합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군사들에게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라"라고 말하며 순종할 것을 명령합니다(8). 낙심해 있던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 힘을 얻고 자신을 따르는 군사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그대로 전하며 그들에게 승리에 대한 확신을 주고, 주신 말씀대로 순종하게 합니다. 이것이 지도자의 역할입니다. 여호수아는 지도자로서 점점 성장하고 있습니다.
적용: 당신 삶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다고 확신하기에 오히려 나태하게 살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여호와 하나님 그리고 성자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이 우리 각자에게 일일이 오셔서 함께 동행하시고 사역하신다는 신앙은 유일하게 기독교에서만 볼 수 있는 신앙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신뢰하며 오늘에 맡겨진 일을 충실히 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설 교 >
다시 일어납시다
여호수아 8:1-9 / 박조준 목사
여러분께서 기도하여 주셔서 이번 미국에서 성회를 은혜 중에 마치고 무사히 귀국하여 사랑하는 여러분을 만나게 되니 그저 감사한 것밖에는 없습니다.
이번 성회도 승리 적으로 마쳤고 세계지도력개발원의 교역자 세미나도 퍽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미국 캘리포니아 주 정부에 세계지도력개발원(Global Christian Leadership Institute)을 비영리법인으로 등록을 마치고 앞으로 본격적으로 사역해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위해서 계속 기도로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땅임에도 불구하고 그 땅을 차지하기까지는 여러 가지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도 그렇습니다. 예수 믿어 죄사함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그때부터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범사에 순풍에 돛단배처럼 그저 형통하는 줄로만 생각하고 그렇게 기대하기가 쉬운데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이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데 여러 가지 난관에 직면했던 것처럼 우리도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민족이 처음으로 직면한 난관인 요단강을 어떻게 건넜습니까?
여호수아는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습니다. 다른 말로 부지런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부지런한 사람에게 축복하십니다. 그런데 사람은 본능적으로 부지런하기보다는 게으르기가 쉽습니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기보다는 늦게 일어나는 것이 쉽습니다. 산에 오르는 것보다는 내려가지가 쉽습니다. 공부하는 것보다 안 하는 것이 쉽습니다. 그런데 약속의 땅을 차지하려면 요단강을 건너야 하는데 게으르면 안됩니다. 부지런해야 합니다. 지난날에 우리는 일하지 않고, 땀흘리지 않고, 먹는 것을 복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일하지 않고 먹고사는 사람이 양반이고, 일해서 먹고사는 사람을 상민이라 했습니다. 더구나 군정 30여년을 지내면서 한탕주의가 생기게 되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풍조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돈을 벌어도 벼락부자가 되고, 벼슬을 해도 벼락감투를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벼락맞을 생각입니다. 일하지 않고, 땀흘리지 않고 먹는 사람을 불한당(不汗黨)이라 합니다. 도둑놈입니다. 하나님은 도둑놈을 키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말 풍성한 삶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풍성한 삶은 수고를 통해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려는 우리의 노력과 도전을 통해서만 이 신앙의 풍성한 삶의 의미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 약속의 땅은 전력투구의 정신을 가지고 용기와 정성과 노력으로 얻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뜻이 있는 곳에는 길이 있습니다.
길이 잇는 곳에는 빛이 있습니다. 빛이 있는 곳에는 행복이 있습니다. 옛글에도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이란 말이 있습니다. 뜻이 간절하면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과 길이 생깁니다. 성공에는 끈기가 필요하고 승리에는 인내가 요구됩니다. 훌륭한 일이 결코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7전8기의 눈물 나는 노력 끝에 성공과 승리의 영광스러운 월계관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 가지 난관을 앞에 두고 이것을 극복해야만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귀한 교훈이 되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지런하면 앞서가고 게으르면 뒤서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상징하는 언약궤가 앞에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 앞서 인도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약궤가 뒤에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 뒤에서 우리를 호위하신다'고 믿었습니다. 언약궤가 그들 가운데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신다'고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언약궤를 보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이스라엘백성은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길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두려움의 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앞서 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려운 길을 걷게 하십니까? 우리를 강하게 훈련시키시기 위해서입니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버립니다. 수고하여 얻은 것일수록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은 버리기도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나 수비고 평탄한 길로만 인도하시지 않으십니다. 쉽고 평탄한 것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는 때로는 거칠고 괴롭고 험한 길이지만 망하지 않고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도와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는 스스로 성결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요단강을 바라보며 어떻게 건널 수 있을까? 그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너희가 성결해서 내가 쓸 수 있나 생각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면 지팡이로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이 요단강을 건너게 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큰 그릇, 비싼 그릇이 문제가 아니라 깨끗한 그릇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의 손에 들리면 못하실 일이 없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 제사장들에게 '요단에 들어서라' 명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요단강물에 들어섰습니다. 그러자마자 요단강물이 쫙 갈라졌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문제가 해결되면 믿겠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믿으면 해결된다"고 하십니다. 아직도 해결의 전망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도 우리 앞에는 어두운 구름이 덮여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행진은 계속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고 요단강물에 우리의 발을 담급시다. 우리의 발이 잠기자마자 볼 것입니다. 주님이 내 길을 열어주시는 것을 볼 것입니다.
적으로 요단강을 건넜더니 여리고성이 우뚝 서서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여리고성을 점령했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은 손가락하나 건드리지 않고 여리고성을 점령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잇습니까? 우리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하신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 삶의 초점을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옮겨야 합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세상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사람을 바라보면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두려워할 필요도 실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여리고 성을 돌면서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여리고성 함락 작전에서 사람이 말할 수 있는 자유라 잠시 보류시켰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만일에 그들에게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했다면 분명히 무리 중에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그들의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었으면 그 말에 동요되어 행진을 포기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침묵을 명하셨습니다.
사실 우리는 조용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고, 은혜를 방은 중에 능력을 얻습니다. 마음이 들떠서 흥분하면 성공하지 못합니다. 조용해야 바로 생각할 수 있고 힘을 얻을 수 있고 내 의무를 바로 깨달아서 그것을 바로 실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기적이 일어나는데 필요한 것은 인간의 순종입니다. 나아만 장군의 순종은 문둥병이 낫게 했습니다. 가나 혼인집 하인들의 순종은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했습니다. 베드로의 순종은 깊은데 그물을 던져 많은 고기를 낚게 했습니다. 온전한 순종은 기적을 불러일으킵니다. 어느 성경학자의 말대로 '한번의 순종이 상황을 바꾸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온전한 순종은 반드시 상황을 바꿉니다."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성을 여러 번 돌게 하셨습니까? 자기 백성의 온전한 순종을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순종은 한 수레의 두 바퀴와 같습니다. 끝까지 순종하여 열세바퀴를 돌고 함성을 질렀더니 여리고 성이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성이 아이라는 성인데 여호수아는 사람들을 보내서 알아보았더니 여기고 성에 비하면 아주 작은 성이고 다 가서 고생할 것 없고 2,3천명만 보내면 아주 간단히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의 말만 듣고 3천명의 군사를 올려 보냈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아이성 사람들이 다 일어나 결사적으로 대항하는데 쫓겨 도망하다가 서른 여섯 명이 죽고 돌아온 사람들은 마음이 녹아 물처럼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옷을 찢고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너무 슬픕니다. 우리로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이제 아모리 사람에게 멸망시키려 하십니까? 이럴 바에는 차라리 요단 저편에 있는 것이 좋을 뻔했습니다. 이 주변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들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이 땅에서 우리 이름이 끊어지면 하나님의 이름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엎디어 기도만 하지 말고 일어나라. 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패전원인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이성 전투에서 어떻게 그처럼 비참하게 패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여리고성에서 승리한 후 자만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슨 교훈을 줍니까? 우리가 축복을 받았을 때 우리가 은혜를 충만히 받았을 때 우리가 성공했을 때, 그 순간이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위기가 될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과의 전투에서 어떻게 했습니까? 아침 일찍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만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성 전투에서는 여리고성 전투 때처럼 아침 일찍 일어났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도 없습니다.
자만심이 초래한 무서운 오해를 보세요. 그들은 자기 힘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랬고,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불가능하던 일이 성취되는 것을 자기들의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그들은 착각했습니다. 여리고성을 자기들의 힘으로 무너뜨린 것을 생각했습니다.
승리 다음에 오는 자만심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 자만심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이 자만심은 그들을 넘어지게 했습니다.
그리고 공동체 의식의 부족입니다. 하나님은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 전리품에 손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간 이란이 욕심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금과 은을 보자 탐심이 가득해서 눈이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손대지 말아야 할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을 자기 것으로 훔쳤습니다. 이것은 누구도 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엄청났습니다. 그 한사람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패한 것입니다.
만일에 아간이 자기의 행동이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 대해서 생각을 했었다면 그 결과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나 한사람쯤이야'하는 생각으로 나 혼자 은밀히 취한 행동이 혼자만의 행동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아간을 아골 골짜기에서 돌무더기를 쌓아 처치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죄를 제거하고 나니까 다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후에 오래지 않아 이스라엘은 아이성을 무난히 점령했습니다.
그래서 호세아 2장 15절에 보면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겠다"고 했습니다. 죄를 온전히 회개하고 제해버리는 골짜기가 없이 우리 앞에 소망은 없습니다. 이것은 민족의 장래만 그런 것이 아니고 개인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골 골짜기는 괴로움의 골짜기입니다. 험하고 위험합니다. 요단 평지에서 가나안땅으로 올라가려하면 반드시 이 골짜기를 지나가야만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천성을 향하여 가는 길에도 아골 골짜기가 있습니다. 어둡고, 음침하고, 불안하고, 위험한 골짜기를 지날 때가 있습니다. 아골 골짜기에 들어서면 우리는 앞을 내다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이러한 깊은 골짜기에도 위는 열려 있습니다. 위에는 푸른 하늘이 있습니다. 위에는 밝은 태양이 있습니다. 위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골 골짜기를 걸을 때는 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지난 9월 11일 미국에서는 상상도 예측도 못했던 테러사건으로 많은 인명이 피해를 입었고, 재산의 손실을 보았고, 체면이 상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대통령 부시는 당장 전국에 기도의 날을 선포하고 시편 23편을 인용하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받을 것을 두려워 아니함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사니이다"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위급한 때 119를 돌립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911을 돌립니다. 이번 사건이 9월 11일에 일어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온 미 국민이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을 찾을 911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눈으로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의지하며, 간절히 하나님을 찾으며 기도하는 가운데 위에서 내리시는 새힘을 얻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이 골짜기가 아무리 험하고 어둡지 마는 소망의 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God Bless America!
역대하 7장 14절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며,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낮아 질대로 낮아졌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실패한 이스라엘 민족이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까? 오늘 주신 말씀은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전의 드라마를 생성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번 실패했다고 해서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에서 있어서 아간 이라는 한 사람의 범죄는 민족적인 커다란 비극이었음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비극은 치료될 수 없는 비극은 아니었습니다. 패배의 원인이었던 아간 이란 사람이 제거되자마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이루시기 원하셨던 역사를 다시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시 그 백성을 향해 말씀을 계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그 백성에게 승리를 보장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그 백성에 위로와 회복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구약의 요나서를 보면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선지자이지만 하나님의 명령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고행하는 것도 싫었고 민족적인 감정이 좋지 않은 니느웨로 가기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니느웨와는 반대방향인 다시스로 도망했습니다. 그러다가 큰 어려움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면 결국 다른 사람들까지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것입니다.
개인이나 민족이 범죄 하므로 인해서 고난이 있을 때 그 죄를 깨닫고 회개하기 전에는 아무리 다른 방면으로 인간의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 요나는 바다에 던짐을 당했고,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예비해 두셨다가 요나를 삼켰고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했습니다. 이때 요나를 삼킨 큰 물고기는 요나를 육지에 토해 내게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니까 " 하나님의 말씀이 두 번째 요나에게 임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잘못했을 때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면 하나님이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옛글에도 '인유무과'라고 했습니다. 사람으로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실패를 깨닫고 회개하여 바로 서면 하나님은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아마 이 세상에서 아브라함 링컨처럼 실패를 많이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거듭되는 실패를 통해서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는 실패 속에서 교훈을 얻어 더 커다란 시도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실패할 때 마귀는 내게 찾아와서 '이제는 끝장났다. 포기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실패할 때 하나님은 내게 찾아오셔서 '이 실패의 경험을 가지고 더 큰 일에 도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귀의 말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이성에서의 비참할 정도의 패전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 앞에서 그 패전의 원인을 발견하고, 그 범죄를 제거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시 함께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도 다시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는 전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군대를 다 이끌고 올라가서 싸우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이스라엘 군대가 전투를 치르지 않고도 아이성을 정복하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승리가 최선을 다하고, 전력을 기울일 때에만 주어진다는 사실을 심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번 911 미국의 테러 사태로 미국이 잃은 것도 많습니다. 세계무역센타빌딩에서 이른 아침부터 회의하던 미국의 최고 두뇌가 희생된 것은 건물의 붕괴손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일로 인해 느슨해있던 미국이 긴장되고 온 국민이 하나로 뭉친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어제의 승리가 오늘의 승리가 되기 위해서는 어제의 승리를 위해서 전력을 기울였던 것처럼 오늘의 승리를 위해서도 전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내 삶은 내가 제일 잘 압니다. 나에게 주어진 과제를 위해 얼마나 힘을 쏟았는지 내가 잘 압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십니다. 우리에게 얼마의 능력이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능력을 가지고 전력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승리를 위해서 다시 일어나 전력투구의 정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다시 일어나려면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야 합니다.
여리고성의 전투와 아이성의 전투는 전략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오늘의 전투를 위해서는 오늘의 전략이 필요합니다. 오늘의 양식을 위해서는 오늘의 만나가 필요합니다. 오늘의 승리를 위해서는 오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어제의 전략 어제의 방법이 오늘의 전략 오늘의 방법이 될 수는 없습니다. 어제의 은혜를 가지고 오늘을 살 수 없습니다. 오늘의 승리를 위해서, 오늘의 은혜를 위해서, 오늘의 축복을 위해서, 오늘의 양식을 위해서, 오늘의 열매를 위해서 오늘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이성 전투에서 실패하고 나서 주님의 말씀을 기다렸고 하나님은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승리의 지침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 말씀대로 행했을 때 그들은 승리 했습니다. 그들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번영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실패를 통해 교훈 받아 다시 일어선 것처럼 우리 모두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납시다. 일곱 번 넘어졌지만 여덟 번 일어서면 됩니다. "우리가 넘어지나 아주 넘어지지 아니함은 여호와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신다"고 했습니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여호수아 8:1-7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수 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십니다.
여호수아 6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을 정복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7장에 보면, 이스라엘은 아이 성에서 참패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실패했습니다.
왜 실패했습니까? 하나님의 편에서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수한 것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실패한 원인이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께 바친 물건을 아간이 숨겼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죄가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둘째, 여리고 성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 것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만하여 아이 성을 우습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리고 성은 매우 큰 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 성은 여리고 성과 비교하면 작은 성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이 성을 우습게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 인해 여리고 성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들의 힘으로 승리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 주위를 돌았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이 승리한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승리한 것처럼 기고만장했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쉽게 자만합니다. 자만하면 방심합니다.
성공한 이후가 매우 위험합니다. 성공하면 눈이 어두워집니다. 판단력이 흐려집니다. 하나님을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성공하면 자신이 하나님이 됩니다. 이처럼 성공의 후유증은 매우 심각합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아이 성에서 참패했습니다. 그리고 절망에 빠졌습니다. 여호수아는 낙심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장군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참패했으니 여호수아는 난감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성공한 후에 실패했을 때, 충격이 매우 큽니다. 아이 성에서 실패한 후, 여호수아는 낙심했습니다.
아이 성에서의 참패로 인해 의기소침한 여호수아를 하나님께서 격려하셨습니다. 본문 여호수아 8장 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의 백성과 그의 성읍과 그의 땅을 다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다시 기회를 주셨습니다.
다시 시작하려고 할 때, 가장 큰 장애물은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 1장 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거듭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큰 장벽과 같습니다. 무서운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아이 성에서의 실패로 인해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실패한 경험은 큰 충격을 줍니다. 마음에 상처를 남깁니다.
실패한 경험으로 인해 사람들은 머뭇거립니다. 실패를 경험한 사람은 다시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성공한 사람은 성공한 것으로 인해 기고만장할 수 있습니다. 반면 실패한 사람은 실패한 것으로 인해 의기소침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공한 사람은 성공한 이후에 기고만장해지지 않도록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실패한 사람은 의기소침하지 않도록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그런데 실패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한 번 실패한 후 마음을 잘 다스리면 한 번 실패한 것이 양약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실패한 것을 거듭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신이 실패한 원인을 생각합니다. 자신을 원망합니다. 다른 사람을 원망합니다. 환경을 탓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자신이 실패한 것을 잊지 못합니다.
그러나 실패는 하나의 경험에 불과합니다. 실패가 끝은 아닙니다. 실패는 우리가 살면서 겪는 수많은 사건 중 하나입니다.
한 가지 일에 실패한 것이지, 인생 전체가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실패의 기억은 빨리 잊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 많습니다. 실패를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저도 실패를 많이 했습니다.
실패한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실패를 많이 한 사람은 그만큼 많은 것을 배운 것입니다.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 성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실패를 통해 실상, 실체가 드러납니다. 실상, 실체가 드러남으로 더 큰 실패를 막을 수 있습니다. 실패를 통해 연약함이 드러납니다. 실패하지 않으면, 연약하다는 것을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실패의 유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 성에서 실패함으로 이스라엘 공동체가 허약하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아이 성에서의 실패는 유익한 경험이었습니다.
본문 여호수아 8장 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를 딛고 다시 시작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실패한 사람에게 ‘끝’이라고 낙인을 찍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실패한 사람을 일으키셔서 다시 시작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전과 같은 길을 걸으면 안 됩니다.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계획을 수정해야 합니다. 삶의 태도가 달라져야 합니다.
아이 성 전투는 여리고 성을 정복했던 것과 매우 다릅니다. 그러므로 고정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사고가 경직되어있는 사람은 새로운 싸움을 할 수 없습니다. 여리고 성을 정복한 것은 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 성을 정복하려면 구체적인 전술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싸움의 지휘관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계획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에 관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쟁마다 다른 계획과 전략을 가지고 계십니다. 모든 일 속에는 하나님의 계획과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의 지혜를 의존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치유하실 때,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마 9:6)”고 말씀하시자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사람을 치유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병환자의 몸에 손을 대시고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마 8:3)”고 말씀하시자 그의 나병이 깨끗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에게 안수하심으로 치유하셨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에게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요 9:7)”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산에서 기도하시는 동안 한 사람이 귀신 들린 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셔서 그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이때 제자들은 예수님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막 9:26)”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 9:29)”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건마다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몇 가지 틀을 가지고 하나님을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이전에 하나님께서 이런 방법으로 역사하셨으니 이번에도 같은 방법으로 역사하실 것이라 추측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보다 풍성한 방법으로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틀 안에 하나님을 가두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평면으로만 읽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야기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보려면, 성경을 평면으로 읽으면 안 됩니다.
성경을 입체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입체적으로 읽는 것이 성경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읽는 것입니다.
고정관념은 위험합니다. 결론을 가지고 대하면 안 됩니다. 몇 가지 틀을 가지고 하나님의 역사를 거부하거나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 순간 하나님의 아이디어, 하나님의 계획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오늘날 세계적인 최첨단 기업이 많습니다. 탁월한 전략이 있습니다. 전 세계의 사람을 놀라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견줄 수 없습니다. 창조의 원형은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탁월한 것을 시도한다 해도 창조가 아닙니다. 모방입니다.
전도서에서 솔로몬은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전 1:9)”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만든 것은 거기서 거기입니다. 새 것인 줄 알았는데, 새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내어놓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새로우십니다. 하나님을 기대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대적의 허를 찌르는 전략을 내놓으십니다.
삶이 지루하십니까? 하나님께 기도하세요.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실 것입니다.
성경 안에 최첨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행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삶이 새로워지려면,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깊어지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감을 부어주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영감을 부어주시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온갖 묘수를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길을 내십니다. 하나님이 바로 길이 되십니다.
이전에 썼던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면 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순결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지혜로워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멍청해서는 안 됩니다. 무미건조하거나 무기력해서는 안 됩니다.
능력이 많고 순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순결을 잃은 능력은 최악입니다. 순결함이 없는 능력은 독입니다.
순결과 지혜가 다 있어야 합니다. 하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순결하면서 지혜로워야 합니다. 세상을 압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악한 일이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간교합니다. 한순간에 눈앞에서 별일이 다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로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순결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지혜와 간교함을 능가하는 지혜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변함없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에 따라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셔서 상대방이 가름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성경 속에는 전쟁 이야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전쟁의 최고 지휘관이십니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이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다윗은 항상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다윗은 “올라가리이까”, “어디로 가리이까”, “치리이까”라고 하나님께 늘 물었습니다.
그는 왕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최고의 지휘관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물으면 실패하지 않기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께 항상 물었습니다.
최고의 전략과 전술은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역할 때,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할 때, 실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빌리면, 우리의 삶이 달라집니다. 모든 면에서 성장합니다.
기업인 워렌 버핏(Warren Buffett)과 점심을 먹으려면 경쟁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점심을 먹으면, 점심 한 끼에 수백만 불을 지불합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워렌 버핏에게 한 수만 배워도 삶이 엄청나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워렌 버핏의 말 한 마디를 들으려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과 비슷한 사람과 경쟁합니다. 경쟁자와 실력이 비슷하다는 것은 실패와 성공의 가능성을 다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날은 무한경쟁시대입니다. 피를 말리는 경쟁이 계속됩니다. 왜 사람들은 경쟁에서 벗어나지 못합니까. 다른 세계를 본 적 없기 때문입니다.
소설가 리처드 바크(Richard Bach)가 쓴 〈갈매기의 꿈(Jonathan Livingston Seagull)〉에 보면, 갈매기들은 쓰레기장을 뒤지며 먹을 것을 찾습니다. 먹거리를 가지고 서로 싸웁니다.
그들은 날개를 가지고 있었지만, 높이 날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 대신 아침부터 저녁까지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해 전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에서의 승리를 잊어야 합니다. 아이 성에서의 실패도 잊어야 합니다.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한 것을 우려먹으려고 합니다.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마귀는 이러한 사람의 실체를 압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리고 성에서의 전략과 전술을 잊어야 합니다. 아이 성은 또 다른 성입니다. 새로운 전략이 필요합니다.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이 성 정복을 위한 전략과 전술을 정확하고 상세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지시하셨습니다.
본문 여호수아 8장 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너는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거기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가지라 너는 아이 성 뒤에 복병을 둘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적의 규모와 전력,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시고 구체적으로 지시하셨습니다.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와는 전혀 다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지휘하시는 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최고의 지휘관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도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목자가 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르는 사람이 최상의 능력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결정하고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전문가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순간 자만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의 식견과 경험이 오판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전문가이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미래를 알지 못합니다.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세상이 복잡해졌습니다. 무슨 일이든 답이 하나가 아닙니다. 모든 문제가 얽혀 있습니다.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세상에서 누구를 의지해야 합니까?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이 성 뒤에서 매복하도록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지시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이 성 사람들의 전술을 들여다보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적의 마음을 훤히 다 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이 성 사람들이 어디로 나아갈지 미리 아시고 그곳을 매복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에 민감해야 합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큰 일에 이르기까지 매사에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야 합니다.
영적인 것뿐만 아니라 생활의 모든 일까지도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에는 하나님의 지시를 잘 따랐습니다. 여리고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수 6:3)”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했습니다. 엿새 동안 여리고 성 주위를 하루에 한 번씩 돌았습니다. 일곱째 날에는 일곱 번 돌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하게 순종했습니다. 절대적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이 성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여호수아 8장 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의 백성과 그의 성읍과 그의 땅을 다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군사를 다 거느리고 올라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함께 나가 싸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여호수아 8장 3절에 보면, “이에 여호수아가 일어나서 군사와 함께 아이로 올라가려 하여 용사 삼만 명을 뽑아 밤에 보내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용사 3만 명을 뽑아 매복시켰습니다.
여호수아 8장 12절에 보면, “그가 약 오천 명을 택하여 성읍 서쪽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시키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러 곳으로 나눠서 봉쇄했습니다.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와는 전혀 다른 복잡한 전술을 사용했습니다.
아이 성을 정복하는 것은 실전입니다. 이론만으로는 정복할 수 없습니다. 잘 준비해서 전쟁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실력을 쌓지 않고 대충 넘어가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은혜롭게 하자고 할 때가 많습니다. 대충 하려는 것을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은혜롭게 한다는 말을 오용해서는 안 됩니다. 매사에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매사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합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만 구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기도하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물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대충 일해서는 안 됩니다.
먼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크리스천 기업이 다른 회사보다 탁월한 제품을 만들려면 더 많이 노력해야 합니다. 남들보다 덜 자고 남들보다 더 많이 노력해야 합니다.
어려운 시기라고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모두 어려운 이때를 기회로 만들어 비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나 실패했을 때, 우리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실패를 감추려 하거나 변명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콤플렉스가 생깁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있는 콤플렉스를 감추려고 많은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실패한 것으로 인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얼마든지 재기할 수 있습니다.
실패했다는 것은 시도해보았다는 의미입니다. 진짜 실패는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는 것입니다. 실패하는 것이 두려워 시도하지 않는다면 삶이 초라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시작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타율이 높은 야구선수는 타석에서 방망이를 많이 휘두릅니다. 방망이를 많이 휘둘러야 홈런을 칠 확률이 높아집니다.
만약 타석에서 ‘제대로 휘둘러야지.’라고 생각할 뿐, 방망이를 제대로 휘두르지 않는다면, 삼진아웃을 당할 수 있습니다.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는데, 홈런을 칠 수 있겠습니까.
글을 많이 쓴 작가가 탁월한 작품을 쓸 수 있습니다. 글을 많이 쓰다 보면,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글을 적게 쓴 사람보다는 뛰어난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실패하는 것은 좋은 자산이 됩니다. 문제가 있고 한계를 경험하지만, 계속해서 도전하다 보면, 벽이 무너지는 때가 있습니다. 빛이 비치는 때가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이전보다 나아졌다는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노력하지 않으면 실력을 유지하기도 어렵습니다.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고 만족하는 순간, 인생에서 쉰내가 날 수 있습니다.
리더십의 대가 존 맥스웰 (John C. Maxwell) 목사는 ‘종착역 질환’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종착역 질환을 겪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종착역 질환에 걸릴 수 있습니다. 물론 젊은 사람 중에도 배우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생의 결론을 내리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크고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의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를 위한 새로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전에는 어둠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삶에 빛이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셨습니다. 새로운 삶의 목적을 설정하셨습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에 보면,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원하십니다.
꽃봉오리가 터지지 않고 시든다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인생의 꽃을 피우는 시기를 가리켜 ‘인생의 전성기’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인생의 꽃을 활짝 피워야 합니다.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인생의 꽃을 피운다는 것이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성공이라고 여기는 것과 세상 사람들이 성공이라고 여기는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살게 하신 삶을 사는 것이 성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살게 하시는 곳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성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하나님의 땅으로 바꾸어놓으시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셨습니다.
죄악으로 가득한 가나안 땅을 하나님의 땅으로 바꾸시려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노예로 살았습니다. 열심히 벽돌을 만들었지만, 그들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살지 못했습니다. 인생의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살았습니다.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광야에서의 삶은 애굽에서의 삶이 연장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이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몸에 익어버렸습니다.
원망하는 것은 무언가를, 누군가를 탓하는 것입니다. 실패한 사람들은 원망을 잘 합니다. 탓한다고 해서 인생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탓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탓하는 사람은 자신이 희생당한다는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있습니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눈이 덮인 언 땅에서 새순이 돋아나는 것을 초고속카메라로 촬영한 것을 보았습니다. 경이로웠습니다. 생명의 힘이 느껴졌습니다.
우리 안에는 예수의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삶은 치열합니다. 만만한 것이 없습니다. 경쟁은 치열합니다. 세상은 갈수록 빡빡해집니다. 저절로 되는 것이 하나 없습니다.
삶은 전쟁과 같습니다. 교회도 전쟁 속에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내면을 잘 훈련하지 않으면, 자신을 지키기 어렵습니다. 장애물이 곳곳에 있습니다. 파도가 없는 바다가 없습니다. 바람은 예고 없이 불어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이 성에서의 실패를 딛고 승리했습니다. 승리하면 이전에 실패한 것이 추억이 됩니다.
실패는 패배한 것이 아닙니다. 반복해서 실패하지 않으면 됩니다. 승리를 경험하지 못하면 실패는 인생에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현실은 매우 어렵습니다. 절망적인 일이 많은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침체되는 것이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는 전전긍긍해서는 안 됩니다. 패배 의식에 빠져서는 됩니다. 실패를 딛고 승리를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승리하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길을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신실하게 인도하십니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동역하시기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겁먹지 마세요. 적극적으로 사세요. 세상 속으로 침투하세요.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수 1:5~6)”고 말씀하셨습니다.
엉거주춤하지 마세요. 뒤로 물러나지 마세요. 그리스도인은 말씀대로 행동해야 합니다. 뛰어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홀로 싸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일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믿음의 눈으로 뜨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창조적인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 전진하세요. 믿음으로 정복하세요.
그 땅으로 가라
수 8:1-9
출애굽 2세대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결코 인간의 나라를 만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이 주인"이라는 증거와 표시를 받습니다. 요단강 기적을 표시하는 돌탑이 그러했고, 무너진 여리고성이 그러했습니다. 아간의 범죄로 인해 생긴 돌무더기도 그 증거 중에 하나였습니다. 하나님이 나라의 주인이시니 먼저 가서 역사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하나님을 따라가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하나님은 아이성을 향해서 먼저 어떻게 나아갈지를 말씀해주십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왕이요 전쟁터의 장군이 되어주시는 줄 믿습니다." 1-2절입니다.
1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의 백성과 그의 성읍과 그의 땅을 다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2너는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거기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가지라 너는 아이 성 뒤에 복병을 둘지니라 하시니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처음에 하신 약속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고 말씀해주십니다. 1장에서 이 말씀을 나눌 때에도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은 두렵고 놀랄만한 일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그 길은 마냥 편안한 길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우리가 벌여놓은 죄와 악과의 갈등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에게는 아간의 죄로 일어난 두렵고 놀랄만한 일이 생기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고 말이죠. 하나님이 그 고비고비마다 또 지혜를 주시고 용기를 주시기 때문이지요. 여호수아가 아이성에 패배하여 놀라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간의 범죄를 지적하여 알려주셨고, 또 그 것을 해결할 방법까지 알려주시면서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10절)고 말씀하셨던 겁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고비와 역경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비참함으로 들어가기 보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무엇인가? 주님, 지혜와 용기를 주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호수아는 이 고비를 향해 다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이성을 향한 전략과 승리의 약속을 주십니다. 요단강을 건너게 하셨고 여리고성을 갈라주신 그 여호와께서 아이성을 약속해주십니다.
이번에 하나님께서는 여리고와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성의 사람들을 진멸하여 심판하라고 하십니다. 그들의 문화와 가치, 세계관은 비인격적이었고 악했으며 선한 것이 나올 수 없기에 심판을 명하십니다. 신명기 20장에서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게 할까 함"이라고 하시며 아이성을 향해 "진멸의 심판"을 명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은 여리고성과 같이 진멸시키되, 거기서 물건과 가축은" 이스라엘이 가지게끔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제외한 나머지 에덴동산의 모든 것을 주신 것과 같이 이스라엘에게도 하나님의 것인 여리고성을 제외한 모든 것을 이스라엘에게 "스스로 마음껏 가지게끔"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가진 이스라엘이 통치하게끔 말이죠. 그래서 이스라엘은 여리고의 것을 취해서는 안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필요를 아시고 쓸 것을 아시는 분임을 광야에서 그들은 보고 배웠습니다. 여리고 성 후에 주실텐데 아간은 자신의 눈 앞의 욕심과 정욕에 하나님과 이스라엘 이웃에게 눈을 감아버린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인생에서 자유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마음껏 판단하고 말하고 세계를 펼쳐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시간과 공간, 선택, 의지, 감정, 이성, 가정, 국가, 사회, 더 나아가 우리를 통해 만들어가시는 천국, 영적세계, 믿음의 기적들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더 하나님의 것을 지켜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이제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아이성 정복을 위해 실행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전략대로 여호수아는 명령합니다 3-6절입니다.
3이에 여호수아가 일어나서 군사와 함께 아이로 올라가려 하여 용사 삼만 명을 뽑아 밤에 보내며4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성읍뒤로 가서 성읍을 향하여 매복하되 그 성읍에서 너무 멀리 하지 말고 다 스스로 준비하라5나와 나를 따르는 모든 백성은 다 성읍으로 가까이 가리니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에게로 쳐 올라올 것이라 그리 할 때에 우리가 그들 앞에서 도망하면6그들이 나와서 우리를 추격하며 이르기를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도망한다 하고 우리의 유인을 받아 그 성읍에서 멀리 떠날 것이라 우리가 그들 앞에서 도망하거든7너희는 매복한 곳에서 일어나 그 성읍을 점령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너희 손에 주시리라
유인책 작전을 씁니다. 첫 전투에서 승리하여 도취되어 있는 아이성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두 번째 전투를 쉽게 생각할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여호수아는 자신이 앞장서서 아이성 정면으로 나아가고 3만명을 따로 준비해 아이성 뒤에 매복을 시킵니다. 그래서 아이성 군사들이 여호수아에게 나아와 쫓아올 때, 3만명의 매복병들이 성을 차지하자는 전략이었죠.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도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이렇게 도우십니다. 우리가 문제를 가지고 또는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의 자리로 또는 묵상의 자리로 나아올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심령에 생각을 주시고 아이디어를 주시고 용기를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역경이 생길 때마다 두려워하며 놀란마음으로 계속 지낼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도해주시는 길을 간청해야 합니다. 나의 힘으로는 스스로 이 길을 걸어나갈 수 없음을 고백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와 힘을 바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8-9절로 마무리하겠습니다.
8너희가 그 성읍을 취하거든 그것을 불살라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였느니라 하고9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매복할 곳으로 가서 아이 서쪽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하였고 여호수아는 그 밤에 백성 가운데에서 잤더라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아직 아이성 패배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계속해서 승승장구하던 그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아이성 패배는 그들에게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패배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와 자신의 솔직한 심정들을 털어놓았습니다. 포기하고 싶었던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에게 더 깊은 수렁의 마음으로 가지 말고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용기를 주시며 일어나라고 하셨고, 지혜를 주시며 "전쟁 전략"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에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이 전쟁터에서 "잠자리에 들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서를 읽다보면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이 인생 도저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묻어두고 가는 것이지요. 그럴 때마다 묻어두었던 그 문제가 다시금 우리를 괴롭히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그 때 그 때마다 가장 적절한 지혜와 용기를 주시는 하나님, 문제를 후환이 없도록 완벽하게 해결해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지혜와 용기의 하나님과 함께 풍성한 하루를 살아내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