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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일침368] 귀순병과 유명 탈북자들의 불행 | |||
기사입력: 2017/11/28 [10:2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11월 17일 밤 한 미국인이 미국 샌디에이고 벌판에서 불에 타죽었다 한다. 총격사건들도 하도 많이 일어나 무덤덤해질 지경인 미국에서 사람 하나 죽은 게 별 거 아니지만, 며칠 뒤 AP통신, 데일리메일, 샌디에이고 유니온-트리뷴 등 언론사들이 그 사건을 보도했고 한국언론들도 다투어 전했다. 사망자 아이잘론 곰즈의 특이한 경력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곰즈는 2010년 1월 중국을 거쳐 조선(북한)에 무단입국했다가 체포돼 8년 노동교화형과 벌금을 선고받았다가 7개월 만인 8월 평양을 방문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구조로 미국에 돌아갔다. 미국에 돌아가서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살았다는 곰주의 죽음이 사고사인지 아니면 자살인지 현지 경찰은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한다. 영원한 의문사로 남을 수도 있는데, 골수반북들이 아예 “북한의 테러공격”이라고 단언해도 이상하지 않겠다.
7년 전 곰즈를 소재로 “새록새록 단상”을 둬 편 발표했던 필자는 보도를 접한 다음 며칠 동안 속이 허전했다. 둬 시간 품을 들여 글을 썼으니 그는 필자의 인생에서 잠시 같이 갔던 셈인데 고작 38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니까 자신의 인생 한 부분이 무의미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짧은 글들이나 썼던 필자도 상당한 충격을 받았거늘 곰즈 구출에 시간과 정력을 기울였던 사람들 특히 카터 전 대통령은 얼마나 허전할까?
1991년 걸프전 전야에 서양 기자들이 이라크에서 어린애를 트렁크에 넣어서 바그다드 공항을 빠져나와 탈출시킨 사건이 굉장히 크게 보도되었다. 지금 자료를 찾지 못해 확실한 내용을 전하지 못한다만, 여러 해 지나 신문에서 자라난 여자애가 영국에서던가 차사고로 죽었다는 기사를 보고 구출에 가담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허전하겠느냐면서 생각을 굴렸던 기억은 난다. 중동의 전쟁터에서는 죽음을 피했으나 서방세계의 거리에서 삶을 마쳤구나. 도대체 어느 편이 더 위험하냐?
11월 13일 오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총격을 받으면서 남으로 귀순하여 여러 날 수많은 기사들과 쟁론들을 만들어낸 오모 씨가 차차 건강을 되찾는다 한다. 인터넷에는 축복하는 댓글들이 많은데 “헬조선”으로 온 걸 환영한다는 등 비꼬는 댓글들도 있었다.
반도의 수십 년 역사를 살펴보면 지금까지 “귀순자”, “탈북자”, “새터민”이 3만 명 정도라고 하는데, 어떤 이유로든 북에서 남으로 간 사람들 가운데서 처음부터 조용했던 사람들은 그런대로 안정된 삶을 사는 모양이나, 소문을 굉장히 냈던 사람들은 행복한 경우가 적다. 1960년대의 최대귀순사건을 만들어냈던 이수근은 한국을 벗어났다가 잡혀와 “이중간첩”으로 몰려 사형장에서 죽었고 여러 해 지나서야 누명을 벗었다. 1980년대에 “따뜻한 나라”로 가고 싶어서 북을 떠났던 김만철 씨 일가는 한국 당국이 전력을 기울여 설득작전을 펼쳐서 입국시켰는데, 정착생활과정에서 경제사기를 당한 일이 뒤늦게 알려졌다. 그보다 앞서 1983년 미그 19전투기를 몰고 월남하여 굉장한 귀순사건주인공으로 되면서 백만 인파가 몰린 반공대회에서 인기를 한껏 올렸던 이웅평 씨는 거액의 상금을 받았고 결혼도 했으며 한국군 공군에서 대령으로까지 진급하는 등 화려한 생활을 했으나 사실은 항상 북의 습격을 경계하면서 긴장하며 살았고 간암에 시달리던 끝에 2002년 48살 미만으로 생을 마쳤다. 그의 선배 격인 박순국 전 인민군 소좌 또한 1970년에 비행기를 몰고 한국의 백사장에 불시착해 크게 소문냈다가 결혼하고 공군에서 진급했으나 귀순 6년 만에 암으로 사망했다 한다.
21세기에도 소문자자했던 탈북자들이 결말이 시원치 않은 사례들이 생겨났다. 2008년 “노크귀순” 주인공 전 인민군 15사단 중위 이철호 씨는 방송에 출연해 한결 유명해졌었다. 그 후 가정을 이루고 아이도 낳았지만 탈북자단체를 거쳐 취직한 직장에 적응하지 못해 곧 해고되었고 벨기에 이민을 떠났다가 사기를 당해 재산을 죄다 잃었으며 아내와의 관계도 나빠졌다 한다. 이혼소송 중이던 2014년 이 씨는 경기 평택의 집에서 아내와 재결합을 요구하며 다투다가 상대방의 목을 졸랐는데, 질식해 숨진 줄 알았던 여인이 의식을 되찾으면서 살인미수 혐의로 2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이 씨보다 앞서 남과 북을 들락날락하여 줄기차게 소문을 냈던 유태준 씨가 한동안 잠잠하다가 지난 8월 1일 나주의 한 정신병원을 탈출하여 경찰수배를 끌어냈고 숱한 기사들과 추측들을 낳더니 78일 만인 10월 18일 인천에서 검거되었는데, 한 달이 지나도록 새로운 소식은 없다. 구치소나 교도소로 가든지 다시 정신병원에 갇히든지 유 씨가 행복과는 담을 쌓게 되었다.
지난 주말 일반병실로 옮겨져 건강은 빠른 속도로 회복한다는 오 씨가 얼굴과 이름이 지금까지는 보호를 받는데, 한국기자들이 달라붙으면 밝히기가 어렵지 않다. “나무는 조용히 보내려건만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树欲静而风不止)”는 말처럼 그처럼 소문낸 사람이 조용히 보내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달려드는 카메라와 달라붙는 기자들이 뒤로 날아오던 총알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다. 몇 십 년 생활이 몇 분 정도의 “필사탈출”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겠다. 아무쪼록 이국종 의사를 비롯한 의료팀이 허전해 지지 말기를 바란다. 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6848§ion=sc51§io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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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树欲静而风不止)”...나무는 조용히 있고 싶는데....바람이 불어 흔들리게 하는구나.....
근사한 표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