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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楚漢誌(漢高祖 列傳)] 2-111 (141)
《여(呂) 황후와 척씨(戚氏) 부인 2》
그 말을 듣자 주창이 조왕에게 다시 아뢴다.
"신은 태후의 손에 죽지는 않을 것이오니, 신에 대한 걱정은 조금도 하지 마시옵소서.
다만 신에게는 걱정스러운 일이 하나 있사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신이 없는 동안에 누가 대왕을 보필해 드릴까 하는 것이옵니다."
여의(如意)는 그 말을 듣고 가볍게 웃으며 말한다.
"나는 여기서 편히 앉아 있는 몸인데, 무슨 그런 걱정까지 하십니까 ?"
그러나 주창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진지한 얼굴로 말한다.
"이번 일을 그처럼 안일하게 생각 하셨다가는 큰일 나시옵니다.
신이 이곳을 떠나게 되면, 태후는 대왕을 장안으로 불러 올리려고 또다시 사신을 보내 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대왕께서는 어떤 경우에도 장안으로 가셔서는 아니 되시옵니다. 그 점만은 거듭 명심해 주소서."
"알겠습니다. 경은 빨리 돌아오셔서, 나를 끝까지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주창은 조왕과 눈물로 작별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자 아우 주선(周宣)을 불러 부탁을 한다.
"나는 번항이 도착하는 대로 그와 함께 장안으로 떠나게 될 것이다.그래서 내가 한단을 떠나기 전에.
황제께 올릴 비밀 표문(表文)을 써 줄테니, 너는 나보다 장안으로 먼저 달려가 표문을 황제께 빨리
올리도록 하거라. 그래야만 조왕의 일이 잘 되어갈 것이다."
그러면서 주창이 혜제에게 표문을 올렸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였다.
<....선제(先帝)께서는 태후가 여의 공자를 해칠 뜻을 품고 있음을 진작부터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런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시려고 여의 공자를 머나먼 조왕으로 보내셨던 것이옵니다.
그리고 신에게는 <여의(如意) 공자를 최선을 다해 도와주라>는 특별 분부가 계셨기 때문에,
신은 오늘날까지 전력을 기울여 조왕을 보필해 왔사옵니다.그러나 선제께서 돌아가시자
사정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태후께서는 사신을 한단으로 보내어 조왕을 장안으로 빨리 올라오라고
성화같이 재촉하고 계시니,그렇게 되면 어떤 참변이 일어날지 전혀 예측하기가 어려운 형편입니다.
그리하여 신이 조왕의 장안 행(行)을 결사적으로 막아오고 있던 중에 이제는 신 마저도 장안으로 불러
올리셨으니,신이 이곳 한단을 떠나고 난 뒤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폐하께서는 옛날부터 동기간인 여의 공자를 각별히 사랑하시는 줄로 알고 있사와
크게 걱정 되는 바는 없사오나,태후마마께서는 폐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사오니, 신이 한단을 떠나게 되더라도. 폐하께서는 조왕의 신변에 아무런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도록 각별히 도와주시옵기를 간곡히 부탁 드리옵니다.
신하 주창 올림>
새로 등극한 혜제(惠帝)와 여의(如意)는 비록 이복 형제이지만 혜제가 여의를 무척 사랑하는 줄로
알고 있었기에, 주창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이런 표문을 비밀리에 혜제에게 손수 써 올린 것이었다.
이렇게 주창은 혜제에게 예방선을 쳐놓고 나서, 곧 도착한 번항과 함께 장안으로 길을 떠나게 되었다.
그런데 주창이 동관(潼關)이라는 곳에 도착을 하고 보니, 그곳에는 관영 장군이 혜제의 명을 받고
주창을 마중 나와 있었다.관영과 주창은 막역한 친구사이라, 주창은 크게 반가워하며 관영에게 묻는다.
"아니, 자네는 내가 어떻게 오는 줄을 알고 여기에 나와 있는가 ?"
그러자 관영은 번항을 들으라는 듯이, 주창에게 손짓을 해보이며 큰소리로 말하는 것이 아닌가 ?
"태후마마께서 사신을 보내어 조왕을 상경토록 부르셨음에도 불구하고 자네가 번번히 앞에 나서서
방해를 놓았다면서 ?주상께서는 그 말을 들으시고 크게 노하시면서, 자네를 당장 체포해 오라고 하셨네.
그러니 자네는 두말 말고 나와 함께 폐하한테로 가세."그리고 번항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은 주상의 명령대로 내가 책임지고 체포해 갈 테니, 자네는 태후궁으로 가서 태후마마에게
사실대로 여쭙게."관영은 번항을 보내고 나서 주창에게 다시 말한다.
"주상께서 자네가 올린 표문을 보시고 크게 걱정을 하시면서, 자네를 태후 앞으로 보내지 말고 어전으로
직접 데려 오라고 하셨네.
그 때문에 내가 마중을 나왔으니, 자네는 주상을 만나 뵙거든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도록 하게."
이윽고 주창이 입궐하자, 혜제는 무척 반가워하면서 말한다.
"내 아우 여의 때문에 경이 많은 애를 써 오셔서 고맙기 한량없소이다.
문중에 불상사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니, 내 아우 여의는 내가 온갖 힘을 다해 보호해 주도록 하겠소.
그러나 태후께서는 경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기시는 모양이니, 무슨 일로 노여워 하시는지 태후를 이 자리에
모셔다가 이유를 묻도록 하겠소."이윽고 여 태후가 들어와 상좌에 앉자, 혜제는 머리를 조아리며 묻는다.
"태후께서는 한단에 있는 조왕에게 장안으로 올라오라고 하셨는데 어린 조왕을 무슨 용무로 부르셨사옵니까 ?"
태후는 주창을 증오의 눈으로 노려보다가 혜제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조왕의 생모인 척녀가 지난번에 병석에 누워 있으면서 아들을 꼭 한 번 보고 싶다고 하기에,
내가 조왕을 불러 올리려고 했던 것이오.그러나 주창이란 저자가 그때마다 조왕의 상경을 훼방한다기에
나는 저놈의 행실이 너무나도 괘씸하여 번항을 보내 저놈을 붙잡아 오라고 했던 것이오."
태후로서는 주창을 죽이기 위해 장안으로 불렀다고는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혜제는 태후의 속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시치미를 떼고 이렇게 말했다.
"선제께서 여의를 조왕으로 보내실 때에 주창을 보필자로 따라 보내시면서, 설사 조정에서 조서가
내려가더라도 조왕은 임지를 떠나지 말도록 분부가 계셨던 줄로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므로 조왕을 장안으로 올려 보내지 않은 것은 선제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을 뿐이지, 태후마마의
명령을 거역한 죄는 아닌 줄로 아뢰옵니다. 그러하니 그 일은 특별히 용서해 주시옵소서."
그러나 태후는 혜제가 두둔할수록 주창이 더욱 미웠다. 태후는 주창을 잡아오는 길로 곧장 죽여 버릴 결심 이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황제가 중간에서 주창을 두둔하고 나서는 바람에, 태후는 입장이 매우 난처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설 수는 없는 일이기에, 이제는 생트집을 잡고 늘어진다."주창은 잘 듣거라. 조왕과 나는
모자지간(母子之間)이 아니냐. 그런데 그대가 중간에 나서서 조왕과 나와의 모자지정을 갈라놓았다.
그런 나쁜 짓을 한 그대를 조나라에 다시 보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그대는 앞으로는 장안에만 머물러 있도록 하라. 나의 명령을 또다시 거역했다가는 결탄코 용서하지
않으리로다."태후는 주창을 장안에 억류시켜 놓고, 그 사이에 조왕을 불러 올려 죽여 버릴 계획이었던 것이다.
"....."주창(周昌)은 머리를 수그린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태후가 돌아가 버리자, 황제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주창에게 말한다.
"경도 잘 알고 계시다시피, 태후는 조왕 모자를 어떡하든지 죽여 없애려고 하고 계시오. 지난번에도 경이
중간에서 조왕을 상경하지 못하도록 막지 않았던들 조왕은 이미 태후의 손에 죽고 말았을 것이오.
그러니까 태후는 경에게 원한을 품고 한단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오. 이것 참, 일이 매우
딱하게 되었구려.그렇다고 태후의 명을 거역하고 경이 한단(邯鄲)으로 돌아가버리면, 그때에는 조왕 모자의
장래가 점점 나빠질 것이오.아무튼 경은 당분간 나와 함께 있으면서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기로 합시다."
주창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이번 일에 대해서는 성상께서 특별히 도와주지 않으시면 황실에 처참한 참극이 벌어질 것이옵니다.
신이 죽는 것은 조금도 두렵지 아니하오나, 신이 한단(邯鄲)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어린 조왕을 누가
도와드릴 것이옵니까.
보나마나 태후는 제가 없는 틈을 타서 한단으로 사신을 다시 보내 조왕을 반드시 불러 올릴 것이옵니다.
그렇게 조왕께서 멋모르고 장안으로 올라오시는 날이면, 그날로 참변을 당하시게 될 것이옵니다.
그러하니 주상께서는 그런 참변이 일어나지 않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주시옵소서."
황제는 생각할수록 골머리가 아팠다.
"만약 조왕이 태후의 부르심을 받고 멋모르고 상경하게 되면, 어떤 방법으로 참변을 막을 수 있겠소 ?"
주창은 눈을 감고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들며 이렇게 말했다.
"만약 조왕께서 멋모르고 상경하시게 되면, 매우 외람된 말씀이오나 주상께서 패상(覇上)까지 몸소 마중을
나가 주시옵소서.그리하여 조왕을 그 길로 대궐로 모시고 오시옵소서. 조왕을 참극에서 구할 수 있는 길은
오직 그 길이 있을 뿐이옵니다."혜제(惠帝)는 주창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경의 의견은 참으로 묘안이시오. 조왕이 언제 누구의 꾐을 받아 상경하게 되지 모르니까, 몇 사람의 장수를
장안에 이르는 길목에 배치시켜 조왕이 상경하거든 우리가 먼저 알아내도록 합시다."
혜제는 즉석에서 장륭, 이보, 축통 등 대장들을 한산에서 오는 대로(大路)를 검색하게 하고 기퉁, 유범두 장군
으로 하여금은 한단에서 오는 소로(小路)를 지키게 하였다.
황제는 이처럼 전력을 기울여 황실의 참극을 막아내기 위하여 애를 썼던 것이다.
한편, 태후는 태후궁으로 돌아오자 심이기와 여수 등 두 심복 부하를 불러 명한다.
"주창이란 놈은 한단(邯鄲)에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려 놓았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여의를 장안으로 불러 올릴 수 있겠느냐. 좋은 의견이 있거든 말해 보아라."
심이기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한다."주창과 척비의 이름으로 조왕에게 <빨리 상경하라>는 거짓 편지를
보내도록 하시옵소서. 그와 같은 편지를 보내시면, 조왕은 틀림없이 상경할 것이옵니다."
태후는 그 말을 옳게 여겨, 즉시 조왕에게 주창과 척비의 이름으로 두 통의 편지를 동시에 보냈다.
한편, 조왕 여의는 주창이 장안에서 빨리 돌아오기를 고대하고 있는 중인데, 하루는 근시(近侍)가
두 통의 편지를 가지고 들어와 이렇게 아뢰는 것이었다."장안에서 사신이 두 통의 편지를 가지고 왔사온데,
한 통은 대왕모 마마께서 보내신 친서이옵고, 다른 한 통은 주창 대부께서 보내신 친서이옵니다."
조왕은 그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며 두 통의 편지를 즉석에서 읽어 보았다.
생모가 보낸 편지에는,
<.... 나는 병이 위독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 형편이로다.
죽기 전에 네 얼굴을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구나. 에미의 마지막 소원이니 너는 하루속히 서궁으로 돌아와
이 에미를 만나다오.>하는 사연이 씌어 있었고, 대부 주창(周昌)의 편지에는,
<대왕모 마마의 신병이 이렇게나 위독하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지금 형편으로는 언제 돌아가시게 될지 모를 형편이오니, 대왕께서는 제만사(除萬事)하시고 빨리
상경하시와 최후의 효공(孝供)을 드리도록 하시옵소서.
신은 대왕께서 속히 상경하시기를 학수 고대하고 있겠습니다.>하는 사연이 씌어 있는 것이었다.
어린 조왕은 두 통의 편지를 읽어 보고 울음을 터뜨리며 말한다.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빨리 상경해야 하겠으니, 길을 떠날 준비를 급히 차리시오."
그러자 중신들이 입을 모아 떠나기를 만류하였다. 그러나 조왕은 누구의 만류도 듣지 않고 그날로
장안으로 향했다.한편, 여 태후는 조왕이 거짓편지를 받아 보고 장안을 향하여 한단(邯鄲)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자 크게 기뻐하며 심복 부하들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조왕이 상경하는 사실을 황제가 알게 되면 반드시 대궐로 데려가려고 할 것이니, 그렇게 못 하도록
사람을 놓아 조왕을 반드시 나한테로 데리고 오너라."
태후는 이번 기회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조왕을 기어코 죽여버릴 계획이었다.
그리하여 여 태후는 많은 역사(力士)들을 동원하여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조왕을 강제로라도 납치해 오게
했던 것이다.그러나 실제의 사정은 그렇지가 못했다.
조왕이 회경(懷慶)이라는 곳에 도착하자 대장 장릉, 이보, 축통 등이 조왕에게 큰절을 올리며 말한다.
"황명을 받잡고 신 등은 대왕을 영접하러 나왔사옵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그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이틀 후에 조왕(趙王)이 패상(覇上)에 도착했을 때에는, 황제가 친히 마중을 나와 반갑게 맞아 주며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었다."현제(賢弟)는 무슨 일로 이렇게 갑자기 상경하는가 ?"
조왕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한다."태후께서 상경하라는 분부가 여러 차례 계셨을 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병중에 계신 어마마마와 주창 대부께서도 급히 상경하라는 편지를 주셨기에 급히 상경하는 중이옵니다."
황제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내가 직접 마중을 나오지 않았더라면 큰일날 뻔했구나.
그런 거짓 편지를 받고 함부로 나다니다가는 신변에 참화(慘禍)가 일어 날 것이니, 현제는
아무도 만나지 말고 금후에는 대궐에서 나와 함께 기거하기로 하자."황제가 이렇게 말을 하며
조왕을 대궐로 직접 데리고 가는 바람에 태후가 보낸 역사들은 조왕을 납치해 갈 수가 없었다.
태후는 납치에 실패했다는 보고를 받자 또다시 이를 갈며 심복 부하들에게 새로운 명령을 내린다.
"황제가 제아무리 조왕과 숙식을 같이 하기로, 조왕을 납치해 올 기회가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너희들은 궁중의 동태를 엄히 감시하고 있다가, 기회가 있는 대로 조왕을 나한테 잡아오도록 하여라."
한편, 주창은 조왕을 비밀리에 만나 자기 이름으로 보낸 편지는 거짓 편지였음을 알려 주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태후를 만나지 말 것을 누누이 경고하였다.
조왕은 그제서야 태후가 무서운 흉계를 꾸미고 있음을 알고 몸을 떨었다.
그리하여 그때부터는 황제의 곁을 잠시도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여 태후는 그럴수록 분노와 감정이
치밀어 올라, 그때부터는 대궐의 궁녀들을 매수하여 조왕의 일거 일동을 상세하게 보고하게 하였다.
황제는 성품이 온후한데다가 정의감이 누구보다도 강한 편이어서 조왕을 죽여 없애려는 태후의 흉계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겨 왔었다.더구나 그는 선제(先帝)로부터 <너는 어린 동생인 조왕의 신변에
불행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잘 보살펴 주라>는 유언까지 듣지 않았던가 ?
그러나 황제는 성품이 워낙 내성적이어서 태후의 흉계를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못하고, 조왕의 신변을
보호하는 소극적인 방도만을 써 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느 가을날이었다. 황제는 조왕과 함께 사냥을 가기로 약속한 일이 있었다.그날이 오자, 황제는
새벽같이사냥 준비를 갖추고 나왔으나, 조왕은 그날따라 몸이 불편하여 사냥을 같이 갈 수가 없었다.
황제는 매우 섭섭하게 여기며 말한다."그러면 오늘은 나만 다녀올 테니 현제는 편히 쉬고 있으라."
황제가 조왕을 혼자 남겨 두고 사냥을 나가 버리자, 궁녀들은 그러한 사실을 즉각 태후에게 알렸다.
그러자 태후는 환관 한 사람을 보내 조왕을 이런 말로 꾀어 오게 하였다.
"소인은 척후(戚后)마마께서 보내신 환관이옵니다. 척후마마께서는 대왕이 상경하신 지 10여 일이
지나도록 한 번도 찾아오시지 않으시므로 몹시 섭섭하게 생각하고 계시옵니다.
마마의 소원이 그러하오니, 대왕께서는 오늘은 척후마마를 꼭 찾아 뵙도록 하시옵소서. 마마께서는
대왕의 내림을 무척 기다리고 계시옵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 환관은 여 태후가 조왕을 꾀어 가기 위해 보낸 사람이었다.
그런줄 모르는 조왕은 그러잖아도 생모가 보고 싶어 미칠 것만 같던 판이었다.
그러나 근본을 모르는 사람의 말을 함부로 믿을 수가 없어서, 즉석에서 이렇게 물어 보았다.
"그대의 말은 잘 알겠네. 그런데 그대는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심부름을 왔는가 ?"
문제의 환관은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 아뢴다."소인은 선제를 옛날부터 오랫동안 모셔왔을 뿐만 아니라
척후마마께도 총애를 받아오고 있는 장록(張祿)이라는 환관 이옵니다.
선제께서 돌아가신 뒤에는 줄곧 서궁(西宮)에서 척후마마의 심부름을 돕고 있는 몸이옵니다."
"아 그래 ? 나의 어머님을 그처럼 도와 드리고 있다니 고마운 일이네그려. 지금 어머님의 병환은 어떠하신가 ?"
"병환은 별로 대단치는 아니하시옵니다만, 대왕마마를 만나고 싶으셔서 날마다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계시는
형편 이시옵니다."조왕은 그 말을 듣고 나자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려가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어머님을 만나 뵈러 가야 하겠네. 어머님이 계신 곳으로 지금 당장 나를 인도하게."
이리하여 조왕은 마침내 여 태후의 독수(毒手)에 걸려들고 말았다.
이윽고 조왕(趙王)이 장록에게 인도 받아 온 곳은 서궁(西宮)이 아니라, 여 태후가 거처하는 미앙궁(未央宮)
이었다. 조왕은 그제서야 심상치 않은 낌새를 알아 채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도망이라도 치려고 하였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2-112편 (마지막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