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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 한 구석에 마련된 임시 장애인 관람구역 시야. ⓒ연합뉴스
얼마 전 프로축구 K리그와 관련해 씁쓸한 소식을 들었다. 내용인즉슨 이렇다. 수원FC를 상대로 한 울산의 원정 경기 전 울산 홍명보 감독은 경기장 한구석에 임시로 장애인 관람 구역이 마련된 걸 봤다. 그가 가리킨 곳엔 울산 원정 유니폼을 입은 한 관중이 앉아 있었는데 경기 시야가 전혀 확보되지 못했고, 경기장 구석에 붉은 띠로 장애인 관람 구역만 따로 설정해놨다.
수원FC 측 관계자는 원정 팬이 유니폼을 입고 응원할 상황이면, 홈 팬과 원정 팬 간 마찰 방지를 위해 “관중에게 원정팀 유니폼 벗고 응원하지 않으면서 장애인석 이용할 것인지, 아니면 별도 임시 공간을 이용할 건지 의사를 물은 후 관중 의사에 따라 안내했다고 설명했다. 수원종합운동장의 경우 원정 팬들을 위한 장애인석은 없었다. 물론 홈 팬 장애인석은 있었지만 말이다.
이와 관련해 홍 감독은 수원FC 측에 조치해달라고 했지만, 전혀 조치가 되고 있지 않다며, 장애인이라고 특별하게 해줄 필요는 없지만, 축구 경기력과 상관없이 장애인 인권 부분이 향상되고 있지 않기에, 인식이 좀 더 개선돼야 함을 피력하는 등 쓴소리를 냈다. 이후 결국 울산 측 요청으로 해당 관중은 관중석으로 옮겨 경기를 관전했단다. 수원 측에서 안내한 관중석 안 장소도 정식 장애인석은 아니라고 했지만 말이다.
임시 장애인 관람 구역을 실제 사진으로 봤는데, 전광판에 가려 축구 전체를 보는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다는 홍 감독의 지적은 일리 있다고 본다. 또한, 경기 도중 공이 운동장으로 날아가면 자칫 잘못해 휠체어를 이용하는 울산 팬이 축구공에 맞는 불상사도 발생할 확률이 상당히 농후한 등 안전한 축구 관람에도 위협이 되니 말이다.
경기 시야가 확보되는 곳에 휠체어를 이용하는 원정 팬 장애인석을 설치하면 되겠으나, 경기장과 수원시 측에선 장애인차별금지법의 ‘과도한 부담’이나 ‘현저히 곤란한 사정’이란 문구를 들먹이며, 설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경기를 보며 즐거움을 만끽하려는 장애인의 권리는 박탈되는 거다. 하지만 머리를 맞대면, 과도한 부담 아니게 장애인석 설치 방법도 분명 나올 거다.
이 일 발생 전 한국소비자원에서도 장애인석 관련해 조사했다. 조사에 따르면, 휠체어 사용 관람석의 경우 규격 기준(1석당 폭 0.9m, 깊이 1.3m 이상)보다 작은 경기장이 4개로 19.0%를 차지했단다. 또한, 관람석 앞의 건축물로 인한 시야 방해로 경기 관람에 지장이 있는 경기장은 5개나 됐단다. 이런 식이면, 폭이 1m 정도 되는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의 경우엔 자유로운 경기 관람이 어려울 정도다.
더군다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천박한 시기에 수원종합운동장이 지어졌으니 장애인석에 대한 세심한 생각은 아마도 없었을 게다. 물론, 지금은 홈 팬 장애인석이 마련됐다고 하나, 원정 팬 장애인석은 없으니, 이런 것만 봐도 경기를 보는 스포츠관람권의 주체로 장애인을 존중하지 않고 사실상 무시하는 경기장과 수원시 측의 민낮이 많이 느껴질 정도다. 유명인 홍명보 감독으로 인해 장애가 있는 팬이 관중석으로 갔으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말이다.
9년 전부터 전국 특수학교에 기증했지만 안전기준으로 인해 철거된 휠체어그네 모습 중 일부. ⓒKBS대전 뉴스 Youtube 동영상 캡처
또 이런 일이 있었다. 9년 전 성악가 조수미 씨는 전국의 특수학교에 장애인용 휠체어 그네를 기증했지만, 이 그네에 대해 학교에 안전기준이 없고, 인증되지 않은 휠체어그네 있으면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된다고 하니, 휠체어그네를 철거·처분했다. 7년 전에 세종시에 있는 특수학교인 ‘세종누리학교’도 조수미 씨로부터 ‘휠체어그네’등을 기증받아 보관하다, 학교에서 안전 인증을 받지 못하니, 설치 6개월 후 휠체어그네를 철거하다, 2019년 11월 처분했단다.
이를 뒤늦게 안 세종시의 최교진 현 교육감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조수미씨에게 사과하며, 안전기준 마련과 무장애 통합놀이터 조성 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단다. 이와 관련해 행정안전부에서 안전 인증을 받은 휠체어그네의 설치, 관리를 위한 안전기준안을 반영해 ‘어린이놀이시설의 시설기준 및 기술기준’ 개정을 준비 중이란다.
휠체어그네 및 무장애 놀이터에 대해 세종시 최교진 교육감이 성악가 조수미 씨,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최교진 교육감 페이스북
최 교육감이 그렇게 말하기 전, 무장애 통합놀이터 관련 설문 조사에서 약 98%가 그 놀이터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결과를 통해 장애아동의 놀 권리는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음을 2019년 오마이뉴스에서 지적했었다. 장애계에서도 장애인권리협약 2, 3차 민간보고서를 통해 놀이환경으로부터 심각하게 배제된 장애아동에 관해 기술했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도 장애아동의 놀 권리가 확실히 보장돼야 한다는 이야기는 있었다. 하지만 국가에서는 별로 관심 없었다.
장애계와 시민사회에서 장애아동의 놀 권리를 강조하는 것에 국가는 별로 관심 없다가, 세종시 교육감인 최 씨가 휠체어그네에 관련해 상의 없이 조수미 씨를 무시했다며 사과하고, 이후 행정안전부 장관 권한대행을 방문해 얘기하니 정부에서 이제야 관심을 보이며 휠체어그네 설치 안전기준안 반영을 하는 모양새다. 조수미란 유명인이 결국 장애아동의 놀 권리를 이슈화시킨 셈이니 다행이긴 하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렇게 장애아동의 놀 권리에 대해 장애인과 장애계, 시민사회가 줄기차게 9년 동안 요구해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단 걸 통해 장애아동을 포함한 장애인의 의사는 존중받지 못하고 배제됐음을 생각하면, 마음 한켠은 씁쓸하고 화난다. 사실은 휠체어그네, 무장애놀이터를 이용할 장애아동과 이들의 놀 권리를 주장한 장애계 등에게도 사과했어야 했지만, 아직 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최 교육감이 한 행동은 장애아동 등에겐 무례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장애 여부에 상관없이 동등한 사람이고 권리 주체란 건, 이 사회에선 고장난 라디오 같은 소리다. 장애인의 생각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면서 놀 권리와 스포츠관람 등에서도 여전히 사실상 장애인을 배제하는 관행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홍명보 감독이나 성악가 조수미씨와 같은 유명인이 있어야 겨우 해결하는 시늉을 취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니 그냥 헛웃음이 나온다. 하긴 시혜와 동정으로 대표되는 장애의 의료적 모델에 익숙하게 길들여진 우리 사회를 보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니 말이다.
같은 사람이지만, 비장애 중심의 사회환경이라, 장애인은 놀 권리와 스포츠관람 등에서도 존중받고 보장받기 위해 매일을 싸워야 하는 현실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만드는 사회는 분명 제대로 된 사회는 아닐 게다. 이제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함께 놀 권리와 스포츠관람권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장애의 의료적 모델을 폐기하고 인권적 모델로 전환하는 패러다임 전환의 길을 함께 모색해야 할 때다. 뿔난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국가와 지자체는 제대로 듣고 방안을 수립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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