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읽을 때 추천하는 음악 동영상:
https://youtu.be/qJ_hbBJQJqI
한정 피규어들을 10개씩이나 구매해서 꿀꿀했던 기분은 한껏 좋아졌다.
물론 피규어 10개가 들어있는 택배 상자는 특히나 크기가 엄청나게 커서 덩달아 그 크기보다 두 배, 아니 세 배는 더 좋아졌다.
아까까지 내린 비 때문에 잔뜩 고여있던 물웅덩이를 밟아서 흰색 운동화가 다 젖어버렸을 때도, 신호등에 맞춰서 건너다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차 덕분에 교복이 다 젖어 벼렸을 때도, 전혀 낮아지지 않던 기분은 집에 들어가자 깊고 깊은 땅속으로 푹 꺼져버렸다.
심지어 집에 도착하기 직전에 또다시 폭우가 내려서 물에 쫄딱 옷이 젖어버리고 말았는데도 말이다.
"한가영, 너 요새 학원 끝나고 어딜 싸돌아다니길래 이렇게 늦게 오냐? 벌써 저녁 12시가 넘었잖아."
"내 걱정 붙들어 매시고 보던 드라마나 마저 보시는 게 좋을 거 같네요, 엄마."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 반기는 것은 집에서 키우는 내 고양이 츄츄뿐이었다.
그마저도 잠시 다리를 쓰다듬고 다시 자기 원래 자리로 돌아간 거였지만, 그래도 집에서 날 반겨주는 유일한 녀석이다 보니 그나마 조금이라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신고 있던 흙탕물이 잔뜩 묻은 흰색 운동화 따위는 벗어던져 버리고, 힘겹게 택배를 들고 가 내 방에 들어가서 문을 잠구기 직전이었다.
그때 분명히 거실 소파에 앉아서 핸드폰으로 요즘 유행하는 게임을 하고 있었던 남동생이 벌떡 일어나서 내 방문을 손으로 잡았다.
중2이긴 해도 엄청 많이 자라서 그런 것인지 한 손으로 문을 잡았는데 내가 온 힘을 다해서 닫으려고 해도 잘 닫히지 않았다.
"어라? 누나 저 택배 뭐야? 그거 엄마가 며칠 전에 시키신 화장품 세트 온 거 같은데."
"그거 아니니깐 넌 상관 말고 당장 내 방에서 꺼지지그래?"
"엄마~누나가 며칠 전에 엄마가 시킨 택배 몰래 가져갔어!"
재수 없는 남동생은 기어코 내가 엄마의 택배가 아니라는 걸 뻔히 다 들었는데….
안 그래도 흙탕물에 젖은 교복은 시간이 지날수록 찝찝해서 바로 씻고 쉬고 싶었는데, 동생의 탁월한 개소리로 시간을 망쳐버렸다.
"뭐라고? 한가영, 너 이리 와서 앉자 봐. 어디서 엄마 물건을 슬쩍 하고 있어?"
"엄마 물건이 아니라 예린이 굿즈인데 잠깐 내가 맡아주기로 약속해서 그래. 알지도 못하면서 짜증부터 내지 말아줄래?"
"하, 그래서 지난번에 예린이네 엄마가 추천해준 청소년 수련 캠프에 억지로라도 집어넣었어야 했는데…."
"걱정하지 마셔, 그런 캠프 따위 내가 가겠어? 차라리 땡땡이를 치고 말지."
나는 동생이 잠시 문에서 손을 뗀 순간에 쾅 하는 큰 소리와 함께 문을 잠갔다.
어차피 밖에서 문을 강제로 열 방법도 없었고 그냥 이대로 문에 기대어서 잠시나마 쉬기 시작했다.
아까 들렀던 신비한 잡화점이라는 곳에서 시간과 물건에 쫓기는 바람에 정신을 못 차려서 몸에 쌓여있던 각종 피로를 몰랐던 것이지, 절대로 사라진 것은 아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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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엄마가 보는 드라마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후다닥 샤워를 끝내고 책상 앞에 앉은 나였다.
나가서 내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최애 간식 중 하나였던 스파클링을 가져왔다.
혹시나 모르는 마음에 남은 내 간식들은 내 방에 남겨두어서 천만다행이었지.
내 책상 위에는 한 컴퓨터가 있었는데, 내가 꾸준히 용돈을 모아와서 산 내 보물 1호였다.
비록 중고장터에서 사서 성능은 좀 떨어지는 편이었어도 이걸로 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긴 로딩 시간에 옆에 있던 스파클링 음료수 캔을 따서 꿀꺽꿀꺽 원샷을 하니, 아까 엄마와 엄마 아들한테 쌓인 스트레스와 피로가 탄산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휙 사라졌다.
"크으~내가 이 맛에 산다니깐! 어른들도 이래서 맥주를 마시는 건가?"
드디어 긴 로딩 시간을 끝내고 인터넷에 들어가 한 카페에 접속했다.
'가디언 테일즈 공식 카페'
바로 내가 좋아하는 게임 카페였다.
아직 자정이었지만 활발하게 활동하는 유저들도 많았다.
심지어 오늘 출석 보상을 받기 위한 것과 동시에 게시물을 올리는 열혈한 가테 팬들도 있었으니.
그리고 사실 나는 이 카페에서 한 거대한 종교 집단의 교주였다.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입 밖으로 지껄인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실제로 가능한 일이었다.
가람교교주이자 가람이는내꺼임 내꺼
이름에서 알다시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최애케는 가람이었다.
누구보다 더 부드러워 보이는 은빛 머리카락, 건장한 몸(물론 게임에서 방어력과 체력은 최악이었다), 여우 신선이라는 설정과 비빔밥처럼 버무려진 누구나 구원하려는 부드러운 마음까지….
비록 이런 면만 본다면 그냥 흔한 중2병이나 오타쿠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실제로 우리 가람님의 일러스트를 본다는 것만으로도 기쁜 것이었다.
실제로 연예인이든, 하나의 캐릭터든 사랑에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게 법칙이었다.
[오늘도 가람교 기도합시다]
[오늘도 저희에게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주신 가람님, 앞으로도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제게 주신 가람님께 가멘합시다, 가멘.]
글을 올리자마자 카페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댓글들이 우수수 달리기 시작했다.
[바리로 승리한다: 가람교는 아니지만, 저희 바리교에도!]
[가멘: @바리로 승리한다 홍보 금지입니다. 저~쪽 구석으로 가서 박혀 있으세요]
[바리로 승리한다: @가멘 ㅋ어디서 가람이 우리 바리님께 비비려 하는 겁니까?]
[페일12: 작가님, 빨리 팬픽을ㅠㅠ]
새벽이지만 벌써 댓글이 4개나 달렸다.
그중에 하나는…. 내 가테 팬픽을 좋아하시는 독자분이신데 정말로 고마운 분 중 하나였다.
심지어 이분과는 같이 톡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가람교교주이자 가람이는내꺼임 내꺼: @페일12 곧 휴재 끝나니깐 걱정할 건 하나도 없어요! 그만큼 퀄리티를 높이고 있었다고 보고 드립니다!]
이런 일상이 너무나도 행복해서 입꼬리가 저절로 히죽히죽 올라갔다.
"아, 그러고 보니깐 택배 상자 포장을 아직도 안 뜯었네?"
혹시나 몰라서 옷장 안에 넣어두었던 상자를 꺼내보자, 아쉽게도 겉 상자는 조금 찌그러져 있었다.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커터칼로 포장을 뜯어내자 안쪽 상자는 다행히 어디 하나 구겨지지 않...응?
"어, 어라라? 나 이거 지금 가챠 10뽑에 성공한 거야???"
분명히 내 눈인데도 믿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가테에서 했던 수많은 가챠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가람이 처음으로 나온 신케 출시 날에 결국 내 의지를 이겨내지 못하고 모아두었던 젬을 모조리 다 썼지만 가람님의 머리카락 한 올도 안 보였던 가챠…….
분명히 27000잼을 모아두었다가 한 번에 전부 영뽑에 올인했는데 흰박은 하나도 못 얻었던 가챠….
천천히 이 택배 상자 안에 유일하게 들어있는 흰색 상자를 뽑아 그 영롱한 자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제발....제발 가람님...!'
아까 아파트 앞에 있던 화분에서 기어 다니던 달팽이가 더 빠른 속도로 상자를 열 수 있었을 것이다.
아주 간절하고 애타는 마음으로 흰색 박스를 열어보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벌써 신작도 3화입니다!
올린 글들은 전부 네웹에서 '그날의 이야기'라고 검색해주시면 되고요, 중2가 쓰는 것이기에 퀄리티가 많이 낮다는 점 참고해주세요!
또 가영이가 올린 글에 댓글을 단 닉네임들은 모두 제가 생각해냈으니, 혹시나 닉네임이 같다면 죄송해요...(상상력의 한계)
오늘도 글을 읽으셨다면 짧더라도 댓글 한 줄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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