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라는 말은 최남선이 1914년 10월 ‘청춘’창간호에 실은 ‘어린이의 꿈’에 처음 등장한다. 늙은이와 젊은이처럼 ‘어린 사람’이란 뜻의 순우리말이다. 이전에는 소년ㆍ아동ㆍ동몽(童蒙) 등의 한자어가 주로 쓰였다. 또 아이는 자기 자식(자녀)을 낮춰 부르거나 아기를 일컫는 말이었다. 방정환은 어린이들도 하나의 인격체이므로 나이에 맞게 존중받는 이름을 붙여주자면서 ‘어리지만 엄연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어린이’라는 말을 널리 쓰자고 제안했다.
제1회 어린이날 기념식은 조선소년운동협회 주최로 1922년 5월 1일 서울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당 앞에서 열렸다. 이날 방정환이 만든 천도교소년회(1921년 5월 조직)는 시민들에게 「어린이날의 약속」이라는 2만여 장의 선전문을 배포하며 어린이날의 탄생을 알렸다.
“죄 없고 허물없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하늘나라! 그것은 우리의 어린이의 나라입니다(창간호 ‘처음에’의 일부).” 1923년 3월 20일 새 출발을 알린 우리나라 첫 순수 아동 한글 잡지 ‘어린이’는 환히 웃는 어린이 사진을 1면에 실었다. 방정환의 빛나는 성과 중 하나가 ‘어린이’를 펴낸 것이다. 이 잡지에는 윤극영과 이원수, 마해송 등의 동시와 동화가 실리면서 아동문학의 요람이자 효시가 됐다. 방정환도 이 잡지에 자신의 이름이 아닌 필명(예명)으로 글을 발표했다. 소파(小波), 북극성, 길동무, 깔깔박사, 몽중인 등이다. 소파를 우리말로 풀이하면 ‘작은 물결’이란 뜻이다.
방정환은 1923년 5월 1일 ‘어린이 해방 선언문’을 발표했다. 어린이 운동의 기초 조건을 밝힌 3가지 항목과 어른과 어린이에게 드리는 글로 구성돼 있다. 어린이 운동의 기초 조건으로는 어린이들에 대한 인격적 예우, 노동 금지, 배우고 놀기에 족한 시설 보장 등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리고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십시오. 어린이를 어른보다 더 높게 대하십시오. 어린이를 절대 윽박지르지 마십시오. 어린이의 생활을 항상 즐겁게 해주십시오. 어린이는 항상 칭찬해가며 기르십시오.' 등을 당부를 했다. 이 어린이 선언은 1924년 9월 국제연맹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채택한 아동권리선언(제네바선언)보다 1년 이상 앞선 것이다.
방정환 선생은 세상을 떠나던 날에도 아이들의 오늘과 미래를 염려했다고 한다. "이 나라 어린이를 위하여 좀 더 힘쓰지 못하고 가니 미안하다." 방정환 선생의 이러한 노력 덕에 매년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제정하고, 동시에 「어린이헌장」을 선포하였다.
소파 방정환은 1899년 11월 9일 서울 당주동에서 태어났다. 광화문광장 세종문화회관 뒤쪽에 ‘소파 방정환 선생 나신 곳’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서울 미동초등을 다녔다. 방정환은 일본 유학 도중 어린이 운동과 인권, 아동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다. 1920년엔 ‘어린이 노래: 불을 켜는 아이’를 잡지 ‘개벽 3호’에 발표해 어린이라는 말을 알렸다. 1922년 5월 1일 ‘어린이날’을 선포했고, 그해 7월 세계 명작 동화집‘사랑의 선물’을 우리말로 옮겨 펴냈다. 그가 세상에 남긴 유일한 책이다. 1931년 7월 23일 서른 셋의 삶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