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경상북도 지방을 다녀온 이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은 '먹을만한 음식없다'는 것이지만 이 지역 출신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너른 평야보다는 척박한 산간이 많은 지역 특성상. 푸짐하기로 유명한 남도 밥상만큼 여러 찬은 없다. 하지만 불리한 환경조건 속에서 나름대로 훌륭한 음식문화를 발전시켜왔다는 것. 매주마다 전국 여러 지역을 다녀야 하는 여행 기자가 오랫동안 경북음식을 겪어본 결과. 과연 일리있는 말이다. 영남 음식이란 나름대로 훌륭한 맛을 지니고 있었다.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주변의 이들도 몇년 쯤 다니다보면 오해를 풀고 영남 음식의 맛을 느끼기 시작한다.
영남(여기선 경상북도를 말함)의 음식에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경북 지방은 우선 지역적으로 동해안권과 산간내륙권으로 나뉜다. 갯벌은 없지만 깊은 바다로부터 대게와 각종 싱싱한 해산물이 넘쳐나는 동해안권은 말할 것도 없다. 그저 재료의 맛을 제대로 살려내면 그만이다. 시원하게 끓여내는 물곰(곰치)국이나 매운탕 등 국물요리도 맛있다. 문제는 내륙이다. 경북 내륙의 맛은 우선 거친 지형과 더운 기후 때문에 독특한 특성을 갖게 됐다. 동해안에서 잡힌 해산물이 백두대간을 넘으면서 또 다른 '숙성의 맛'으로 재탄생했다. 안동 간고등어와 영천 돔배기(상어). 포항 과메기. 말린 양미리 등이 그것이다. 또 겨울에 고립되기 쉬운 내륙 산간에선 '보존식'인 장아찌 종류가 발달하기 마련이다. 꽈리고추와 콩잎김치 등이 대표적 지역 장아찌다. 더운 여름을 이겨내기 위해 맵고 짠 양념을 즐겨먹게 된 것도 영향을 줬다. 또 한가지 경북의 맛을 결정하는 요소는 바로 뿌리깊은 유교문화다. 돔배기나 말린 고래고기가 영남 내륙까지 두루두루 퍼진 것도 바로 제삿상에 올리기 위해서였다. 부유하다 할지라도 동네사람 보기 미안해서 맘껏 음식을 먹을 수 없었던 양반가에서 제사를 지내는 척. 차려 먹었던 안동 헛제삿밥은 바로 유교 문화에 의해 탄생한 음식이다.
경상북도의 중심지인 대구는 조선말부터 번성했던 대도시로. 화교 등 여러 문화가 모여 다양한 식문화가 형성된 곳이다. 유명한 막창을 비롯해 납작만두. 선지 따로국밥(소피국밥). 찜갈비 등이 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두 수의 한우를 키우는 경주는 당연히 불고기가 발달했다.
누구나 자기 집 음식이 입맛에 들어맞기 마련이다. 시큼한 요구르트와 느끼한 양고기 국물이 비록 여행객들의 입맛에는 맞지않는다고는 하지만. 집떠나온 몽골인들은 그리워하며 만들어 먹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입안을 돌아다니는 미끌미끌한 치감과 고약한 냄새가 나는 낫토 역시 일본인들은 사랑하고. 비린내 물씬 나는 청어도 네덜란드인들에게는 고소한 고향 음식일 뿐이다. 선입견의 동굴을 뛰쳐나와 경북 음식에 도전하다 보면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안동은 의외로 고유의 먹거리가 무궁무진한 맛의 고장이다. 흔히들 전라도 음식에 비해 경상도 음식은 짜고 맵기만 하여 한 수 아래로 치는데, 안동은 경상도 치고는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음식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헛제사밥은 그 유래가 제사 음식이기 때문에, 음복상에서의 모습 그대로이다. 제사에 사용되는, 각종 나물(고사리,도라지,무,콩나물,시금치,가지,토란 등) 한 대접과 각종 전(煎,명태전,두부전 등)과 적(炙,어물과 육류를 꼬지에 끼워 익혀낸 산적)이 한 접시 나온다. 또 탕(湯-주로 쇠고기에 무와 두부가 들어간 육탕)과 깨소금 간장 종지 그리고 밥 한 그릇이 나온다.
이렇게 설명하니 무슨 비빔밥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혹자는 경상도식 비빔밥이라고 하면 알아듣기 편하고, 종교적·문화적 이질감이 없어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헛제사밥은 헛투로 만든 제사 음식이다. 악의 없는 거짓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적·문화적 이질감이 없이 편하게 유교식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각종 나물이 곁들여져 있는 산나물 한 사발과 어물과 육류를 싸리로 만든 꽂이에 끼워 익혀낸 산적이 나온다. 또 고기와 무를 넣어 만든 탕국이 나오는데 맛이 깔끔하고 담백하며, 짜거나 맵지 않아 외국인에게도 인기가 높다. 지방에 따라 제사음식도 조금씩 다른데 특히 상어와 고등어로 만드는 산적은 약간 삭힌 듯한 것이 내륙지방 특유의 맛을 낸다.
헛제사밥의 가장 중요한 설명은 먹는 법이다. 고추장을 넣지 않고, 깨소금 간장으로 간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제사밥이니까 당연히 그러해야하고 제 맛이 난다. 특히 상어와 고등어, 쇠고기 산적이 별미이며, 오래 끓인 탕은 맛이 담백하고 깊어 제사 음식의 고유한 맛을 느끼게 해준다.
제사가 끝나면 참석하였던 사람들이 둘러앉아 제상에 올랐던 음식을 나누어 먹는데 이를 음복(飮福)이라 하고 음복상에 비빔밥처럼 나오는 것을 제사밥이라 하는데 조상에게 제사지내지 않고 상위에 올려진 까닭에 헛제사밥이란 이름이 나오게 되었다.
헛제사밥은 제사상의 음복을 축소한 것으로 유교(儒敎)의 고장 안동의 고유한 음식문화를 잘 보여주는 향토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