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멀쩡한 노숙인을 환자로 둔갑시켜 입원시킨 강화도 베스트요양병원이 경찰에 적발됐다. 이 요양병원은 환자 1명당 100만 원이 넘는 정부의 요양급여를 부정으로 타내면서 15억 원에 이르는 건강보험 급여를 챙겼다. 잘 곳과 먹을 것을 제공한다는 꾐에 넘어간 노숙인들은 사실상 강제로 감금당한 채 지속적인 감시와 폭력에 노출됐다. 이번에 경찰에 적발된 요양병원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병원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부정수급으로 영리를 취해온 병원은 전국 20여 곳에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요양병원 소속의 노숙인 사냥꾼들이 최근 서울역 부근 단속이 강화되자 수원역 쪽으로 몰리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일주일에 담배 세 갑 준다고 하고, 한 달만 입원해 있으면 기초생활수급자 만들어 주겠다고 하면서 관심을 끈다. 실제로 만들어 준다. 의사가 근로능력 없다고 하는데 안 만들어 주겠나. 그리고 데려가서 술을 먹인다. 대부분 술에 취해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병원에 실려 온다.”
인천 강화도 베스트요양병원에서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원무과장으로 일했던 김 아무개 씨(42)는 대부분의 노숙인이 회유당해서 병원으로 흘러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수도권은 물론 지방 요양병원 소속의 ‘노숙인 사냥꾼’들은 병원에 입원시킬 노숙인을 찾기 위해 서울역과 영등포역으로 몰려든다. 이들은 최근 서울역 부근 단속이 강화되자 수원역 쪽으로 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모집된 노숙인들은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 병원 규칙에 의해 일주일동안 폐쇄병동에 감금된다. ‘일주일’은 요양급여를 청구하기 위해 꼭 채워야하는 기간이다. 김 씨는 “처음에 오면 일주일은 무조건 있겠다는 조건으로 서약서를 쓰고 온다. 술 깨고 나면 서명한 것도 기억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일주일 있다 개방병동으로 내려가면 담배도 피게 하고 술도 마시게 하지만 돌아가고 싶다고 하면 다시 폐쇄병동으로 들어가는 식이다.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
입원환자 1인당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지급하는 돈은 100만 원에서 180만 원. 하지만 병원은 거액의 건강보험 급여를 챙겨놓고도 환자에 대한 처우나 시설 관리에는 매우 소홀하다. 김 씨는 “병원 자체가 허가가 난 것이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방사선실이라고 해놓고 기계가 없는 그런 식이다. 약재실은 향정신성의약품도 많은데 문이 열려있는 경우가 많았다”며 “병원 스프링클러도 작동이 안돼서 수차례 수리하자고 건의했었지만 소용없었다. 식사 수준은 말할 것도 없다”고 털어놨다.
노숙인을 모집하고 있다고 알려진 병원들 명함.
병원이 서울역이나 영등포역 근처에 구급차까지 동원해 노숙인들을 끌어 모으는 이유는 건강보험공단에서 지급되는 요양급여 때문이다.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환자들이 적어지면 병원 영리 목적으로 노숙인들을 ‘알코올중독자’나 ‘정신병’으로 둔갑시켜 입원시키는 것. 이렇게 유인한 노숙자를 병원에 입원시키면 중증인 1급은 180만 원, 2급은 140만~160만 원 정도의 요양급여를 받을 수 있다.
이들 병원은 요양급여를 받기 위해 노숙자 외에도 지적장애인까지 끌어들이는 실정이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장애는 질병이 아님에도 요양급여를 타기 위해 병원에 지적장애인을 입원시키는 경우도 있었다”며 “병원에서 만난 2급 지적장애인은 몰래 퇴원할거라고 그랬지만 여전히 입원해 있다. 외부의 도움이 없는 한 이 사람들은 스스로 병원에서 탈출할 수 없는 상황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번에 적발된 베스트요양병원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 병원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실제로 전국의 20군데 이상의 요양병원이 이런 방식으로 노숙자를 모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스트 요양병원의 실소유주로 알려진 강화도의 H병원을 비롯해 경북 영덕의 J 병원, 경남 창원의 H병원 등이 가장 큰 규모로 노숙인 병원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서울에서 지방으로 유인된 노숙인은 막상 탈출에 성공해도 서울로 올라올 차비가 없어 지방에 있는 병원에 주저앉는 경우도 많다.
박영아 변호사는 “장기적 입원이 필요한 환자들을 돌보는 요양병원이 불법의 온상이 돼가고 있다. 국민의 세금이 엉뚱한 곳에 들어가고 있지만 보건복지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며 “보건복지부는 국민건강보험권에 따른 조사권한이 있다. 보건소에 조사를 의뢰했다하여 책임을 다한다고 볼 수 없다. 조속한 보건복지부의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구속된 병원장 알고보니
어! 그 의사가 그 의사였네
인천 강화경찰서는 지난 24일 인천 강화도베스트요양병원장 최 아무개 씨(63)와 김 아무개 사무국장(53) 등 2명을 의료법 위반과 감금치사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또 강화 군청 복지담당 공무원도 직무유기 등으로 불구속 입건했다.
해당병원은 회유와 협박 등으로 입원한 노숙인들이 퇴소를 요구하거나 반항하면 손발을 묶어 폐쇄병동에 감금시켰다. 심지어 격리실에서 50대 노숙인이 숨지기까지 했지만 병원은 사망신고는 물론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무연고 사망자로 화장한 뒤 은폐를 시도하기도 했다.
특히 구속된 이 병원 원장 최 씨는 과거 법무부 치료감호소 소장까지 역임했던 신경정신과 전문의 출신으로 과거 ‘여대생 공기총 살인사건’ 주범 윤길자 씨(68)의 정신감정을 담당했던 인물로 알려졌다. 당시 최 씨는 정신과 감정에서 ‘윤 씨가 우울증 등으로 인해 자살 가능성이 있어 수감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소견을 내 형집행정지를 돕기 위해 증상을 일부러 과장한 것 아니냐는 법정공방을 불러일으킨 인물이기도 하다.
최 씨는 지난해 5월 ‘페이닥터’로 병원에 들어왔다 올해 1월 병원을 임대식으로 인수해 실질적인 원장으로 병원을 운영했다. 최 씨는 실질적인 원장이 된 1월부터는 노숙인 모집부터 병원을 나가려는 노숙인을 안정실에 감금하는 것까지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장 최 씨와 함께 구속된 사무국장 김 씨는 노숙인 출신으로 노숙인을 실질적으로 관리감독하고 폭력을 행사했다.
인천 강화경찰서 관계자는 “원장 최 씨 등 2명은 보강수사 후 검찰로 송치할 예정”이라며 “전국적으로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는 병원이 많이 있다. 점차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