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옥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2022. 11. 2. 수)
(마태 5,1-12ㄴ)
누군가는 분명히 죽은 다음에 천국으로 직행할 것입니다.
반대로, 죽은 다음에 곧바로
지옥으로 떨어지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천국으로 직행하기에는 자격이 좀 부족하고,
그렇다고 지옥으로 직행할 정도로 악한 것도 아니어서,
천국도 아니고 지옥도 아닌 곳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곳이 바로 연옥입니다.
<우리는 연옥이 있다고 믿지만,
사실 우리에게는 꼭 있어야만 하는 곳입니다.>
회개가 부족하거나 보속이 부족한 사람들은
연옥에 가서 회개와 보속을 완전히 마친 다음에
천국으로 옮겨갈 것입니다.
따라서 연옥은 ‘하느님의 자비의 장소’이고, ‘은총의 장소’입니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들이 많은 사람들을 하느님께서 버리지 않으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기회를 주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연옥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에 있는 장소가 아니라,
천국의 바로 옆에 있는 부속실, 또는 대기실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옥은 끝까지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구원받기를 거부하는 것이고,
천국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거부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스스로 지옥을 선택해서 그쪽으로 가는 사람들입니다.
지옥에 간 다음에 후회하고 절망하겠지만,
스스로 선택한 일이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습니다.
자신의 어리석음과 고집을 자책할 뿐입니다.>
연옥이 존재한다는 믿음의 근거는 마카베오기 하권에 있습니다.
“그가 전사자들이 부활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면,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쓸모없고 어리석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건하게 잠든 이들에게는
훌륭한 상이 마련되어 있다고 내다보았으니,
참으로 거룩하고 경건한 생각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죽은 이들을 위하여 속죄를 한 것은
그들이 죄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었다(2마카 12,44-45).”
예수님의 다음 말씀도 연옥 존재의 근거로 삼을 수 있습니다.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마태 5,25-26; 루카 12,58-59).”
여기서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은
“보속을 완전히 마치기 전에는”입니다.
<이 말씀을 반대로 생각하면, 마지막 한 닢까지 갚으면,
즉 보속을 완전히 마치면 그 감옥에서(연옥에서) 나오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 감옥에서 나오면 천국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요한 사도의 편지에도 연옥을 암시하는 말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 그것이 죽을죄가 아니면,
그를 위하여 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이는 죽을죄가 아닌 죄를 짓는 이들에게 해당됩니다.
죽을죄가 있는데, 그러한 죄 때문에 간구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불의는 죄입니다.
그러나 죽을죄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1요한 5,16-17).”
<이 말은 살아 있는 사람들과 이미 죽은 사람들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죽을죄’는, 예수님께서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다고 선언하신
‘성령을 모독하는 죄’로서(마르 3,29)
회개하기를 거부하고 용서와 구원을 받기를 거부하는 죄로 해석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스스로 거부해서
자기 발로 지옥으로 간 사람들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죄 속에서 죽었더라도, 조금이라도 회개했거나 회개하려고 했다면,
연옥이라는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연옥은 대단히 고통스러운 곳이라고 합니다.
벌을 받는 곳이 아니라 보속을 하는 곳인데도,
그 보속이 그렇게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들, 실수들, 부족했던 일들에 관한 기억들이 모두
세세하게 되살아나고, 그런 기억에서 비롯된 부끄러움과 뉘우침으로
몸부림치게 되고, 자신이 해를 끼친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용서를 구하는 마음, 그리고 빤히 보이는 천국의 행복 속으로
얼른 들어가고 싶은 갈망 등 때문에,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겪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즉 “지금 빨리 회개하여라.” 라고 강조하신 것은,
연옥의 고통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를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치는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는 모두
‘연옥 영혼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가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그 영혼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서,
또 보속과 보속 기간을 줄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연옥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고,
나 자신의 공덕을 쌓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옥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연옥은 신앙생활의 목적지가 아닙니다.
천국만이 우리의 목적지입니다.
그렇지만 누구라도, 어쩌다가 발을 헛디뎌서
연옥으로 미끄러져 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 회개하고 지금 보속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 송영진 신부님 -
첫댓글 예수님께서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즉 “지금 빨리 회개하여라.” 라고 강조하신 것은,
연옥의 고통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를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그 영혼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서,
또 보속과 보속 기간을 줄여주기 위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