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중고등학교 수학여행 시절에 잠시 들렀던 화엄사의 기억…..
그리고 30여년 동안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 지리산
4~5년 전 부터 H2O 전통이
되어버린 지리산 무박종주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버리고 마음을 굳게 먹고 작년 이맘 때 지리산 등정의 좋은 기회를 갖고자 하였는데 메르스 한파를
견더내지 못하고 기회를 다음으로....
그리고 지난 5월! 올해도 어김없이 지리산 무박종주 모집공고가 떴을 때, 지난해와도 사뭇 다른
나의 모습을 보왔다. 불편한 곳이 많아진 나의 몸, 그 핑게로 하염없이 추락되어 가고 있는 운동 시간들…….
그런데 마음은
이미 지리산을 향하고 있었다. 차편을 알아보고 팬션을 예약하고,
D-Day에 맞춰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혼자 갈 수 없기에 아들을 설득해서 한 달
전부터 금요일 저녁 원미산 야간 산행을 하였고, 때때로 베르네천과 부천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에서 체력을
보완하였다.
늘 아들에게 했던 말이 ‘끝까지
간다. 포기하지 않으려면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해야한다.’라고
말해 왔는데, 2주 전에 했던 족구 이후로 왼쪽 무릎과 허리, 그 사이에 근육의 염좌로 인하여 동네 병원, 한의원을 들락거리면서
오히려 아들에게 내가 했던 말을 듣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함이 날자가 다가올수록 엄습해왔다.
드디어
그 날이 왔다.
휴가를 내고 오전엔 등산과 숙박에 필요한 물품을 구매를 하고, 학교간
아들의 짐까지 챙기고, 마음을 다 잡기 위해서 머리도 깎았다. 학교에
돌아온 아들과 간단하게 저녁 식사를 하고, 시간이 있으니 머리를 깎게 했다. 아들 등산 배낭은 직접 물건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본인이 짐을 꾸리게 했다.
이제
출발이다.
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24시 출발이지만, 혹시 모를 사태를 감안하여 집에서 8시에 나왔다.
아내와 딸과 작별 인사를 하고 까치울역으로 gogo~
건대역에서 2호선 환승하고 강변역 도착시간은 21시30분!!
우선, 예매한 표를 찾고 탑승위치(34번)를 확인하고 터미널을 빠져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식사를 하고 다음날 아침에 먹을 김밥을 준비했다. 몽구스버거 등에서
주먹밥을 사려했는데, 근처에서 발견할 수가 없었다. 다시
터미널에 돌아오니 22시10분!!!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서 근처 꽃빙수에서 커피랑 빙수로 시간을 보냈다.
무료한 시간이
지나고 23시40분 경이 되자 탑승위치로 이동했다. 많은 차량들이 운행을 마치고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지리산행’만 계속 연착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좁은 통로에서 웅성웅성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지리산행의 95%는 등산객이었다. 드디어 지리산행
차량이 24시 10분에
23시 40분행 도착, 24시20분에 23시50분 24시 행이 동시에 들어왔다.
내가
탈 차량을 찾아 아래에 배낭을 싣고, 아들과 나는 물과 수면안대만을 챙겨서 자리에 올랐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인원 확인 후 바로 출발!!
늦은 시간이라 바로 소등이 되었고, 주변에서 약간의 대화도 잠시 “ 잠 좀 잡시다”하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버스는 고요한 정적과 차량
밖에서 들어오는 불빛과 소음을 제외하고는 목적지마다 기사 분의 안내멘트는 잠자는 우리에게는 자장가로 들렸다.
마지막 종착지인
백무동 도착시간은 3시50분!!!
생각보다 버스가 빨리 도착했다. 연속해서 버스가 들어왔고, 대부분 일행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오늘 일정에 대한 설명과 각자 빈자리를 찾아서 새벽 식사를 했다.
나는
아들과 서두르지 않았고 매점에서 컵라면을 사다가 매점내 빈자리가 생겨 미리 사 온 김밥과 함께 라면을 먹었다.
약간의
휴식을 취하고 장비를 점검하고 렌턴과 장갑, 바람막이 등 등산 준비 완료!!!
05:00~10:00
[백무동에서 세석까지]
6.5km
그 많던 사람들이
없었다
벌써 어두움은 장막속으로 사라졌다.
오늘의 계획은 백무동.(4).세석.(3).장터목.(1.5).천왕봉.(1).장터목.(2.5).백무동으로
오는 코스로 약 20km 12시간 완주 계획을 세웠다.
아들과
함께 처음에는 해드렌턴과 휴대용 렌턴을 들고 산행을 했는데, 세석과 장터목 갈림길에 다다르니 어둠이
바래고 동이 터 옴을 느낄 수 있었다. 몸의 반응이 늦는 건지 아들녀석이 자꾸만 쉬었다 가자고 한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강청천 계곡물 소리도 천천히 흘러 몸도 마음도
한껏 여유를 부리며 올라 갔다. 백무동에서 세석은 주코스가 아닌 듯 우리가 워낙 천천히 올라가 뒤에서
우리를 추월했던 사람들은 3팀에 불과 했고, 하산했던 팀들도 5팀 정도였다. 세석 가까이 오니 비가 한두 방울 내리기 시작했다.
10:00~13:00
[세석에서 장터목까지]
3.5km
세석에는
야외에 휴식하고 식사하는 곳이 있었다.
사전에 대피소 판매 물품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 생라면만 팔고 뜨거운
물도 컵라면도 없는 현실이 암울했다. 아침에 남은 김밥을 먹으려고, 아들
베낭을 열어보니…. 허걱
올라오는 길에 베낭을 베개 삼아 등받이로 하다보니 김밥이 뭉게지고, 터지고
심지어는 은박지/검은 봉지에서 뛰쳐나온 녀석들은 옷에 까지 본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들은
초쿄파이랑 찰떡파이, 김밥 몇 개를 먹고, 난 방울토마토랑
에너지바 등을 먹었다.
20분 정도 머무르고 장터목을 향해 가려고 하는데, 비가 점점 굵어 졌다.
미리 준비한 우의를 입고 출발!!!
가는
길에는 30초에 한 명 정도 사람과 마주쳤다. 미처 우의를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도
꽤 있었다. 계속 비의 양이 많아지고, 아들의 바지도 비에 젖여서 자꾸만 걸음이 더뎌진다.
생각해보니 허리띠가 없는 걸 알았다. 몸에 잘 맞아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내 허리띠를 아들 허리에 매어 주었다.
13:00~14:40
[장터목에서 천왕봉정상]
1.7km
장터목대피소에는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고기 지글거리는 소리, 술 먹는 어르신들, 김이 모락모락나는 라면국물….
그림의 떡이었다. 아들과 나는 영양갱과 에너지바에 체력을 의존하고
있었다.
결국 아들이 생라면이라도 먹고 싶다며 대피소에서 생라면을 사다가 스프를 뿌려가며
비에 젖은 몸을 달래고 있었다.
밖을
보니 비는 더욱더 세차고 바람은 매서웠다. 올라오는 길에 힘들어하는 아들에게
이만하면 최선을 다했고, 시간도 예상보다 많이 늦었으니 하산하면 어떨까하는
꺼내기로 생각하고 장터목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장터목에서 나오기 전에 아들에게 ‘아쉽지만 날씨도 시간도 정상을
가기에는 무리이니
하산하자고 했는데…..’ 아들 왈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천왕봉까지 가요’하는 말이 아닌가!!?
지금껏 오기전까지 포기하면 안된다고 강조를 누누히 했던 내가 아닌가….
물론 날씨가 이럴 줄은 몰랐지만…
화장실에서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 아들의 비옷이 헤져서 새로 구입해 입고, 신발
등 장비를 단단히 하고 빗속을 뚫고 정상으로 전진~~
정말
미친 날씨였다. 비와 바람을 이렇게 자연상태로 맞아보긴 초등학교 철없을 때 말고는 없었던 거 같다. 하늘의 구름이 수시로 바뀌고, 순간순간 앞에 풍경이 바뀌면서 내가
가는 길이 정상으로 가고 있는지.. 비에 젖은 손은 강풍에 한 겨울처럼 시리고…
사람들은 줄어드는데, 이러다가 집에는 갈 수 있으려나… 별의별 생각들이 다 들었다.
아들은 ‘아빠 같이가’ 나는
‘더 늦으면 어둡기 전에 못 내려간다’ 하고 계속 속도를
냈다.
근데 이녀석 되돌아가자는 이야기는 절대 안하네
정상에
왔다. 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10명에서 15명 정도 정상에서 기쁨의 증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두 사진을
찍으려고 가방 깊숙이 보관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아!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카메라가 인식하지 못했다. 과거에도 이런 일이 몇번 있었기에
AS 받을 때 기억으로 초기화를 하려는데 도무지 되지가 않았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비는 오고 바람을 불고... 결국은 하산할 수 밖에 없었다.
14:40~15:40
[천왕봉에서 장터목까지]
1.7km
다시 장터목에
오니 그 많던 사람들이 다들 어디로 갔지….
15:40~19:00
[장터목에서 백무동까지]
5.8km
이제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언제 해가 떨어질 지 모르지만 초행길이고 아무도 하산하지 않는 산을 아들과
내려가야 한다. 그래서 아들에게 절대로 쉬면 안된다고 다짐을 받았다. 서서히라도
걸어야 갈 수 있다. 100M 걷다가 1분 이상 쉬다 보면 1시간 이상 쉬는 것이 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중간에 밤이 되고, 밤이 되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걸
계속 강조했다.
처음에는
길이 완만했다. 500M마다 푯말이 있었는데, 12~15분
정도 걸렸다.
이 정도 속도면 6시 30분
경에 도착하겠구나 하는 희망이 생겼다. 그런데 백무동 3km 지점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였다. 길이 온통 돌 밭이었다. 더구나 비에 젖은 돌은 미끄러웠다.
아직도 비가 간간히 내려 비옷도 벚지 못하고, 군데군데 반달곰 출현지역이라고
주의 푯말들이
보이고, 장터목에서 1km 지점까지는
대피소에 가려고 올라오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아들과 나만 3시간 동안 3~4번만 잠깐 쉬고 내려왔다.
먹은 게 쵸콜렛, 에너지바, 영양갱 위주로 먹어서 그런지 속이 안 좋았다.
다행히 동서울에서 갤포스를 샀던게 큰 도움이 되었고, 작년에 지리산
무박종주는 가지 못했지만
준비물 등을 준비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무릎, 허리, 허벅지
등의 통증이 있었는데
진통제와 근육이완제를 적절히 먹었던 게 끝까지 완주하는데 큰 역할을 한 거 같다.
아들과의
지리산 동행
뜻하지 않는 날씨와 먹거리에 대한 충분한 준비 부족으로 힘은 들었지만, 서로를
믿고
의지하면서 긍정적인 마인드와 할 수 있다는 믿음만 있다면 없던 힘도 생긴다는 걸 알았다.
끝으로,
지리산 동행은 같이 안했지만, 지리산 종주를 하신 h2o 회원분들의 환영과 격려로 하룻밤을 무사히 보내고 집에 귀가할 수 있었습니다.
첫댓글 우와~!!! 감동~!!!
이런게 딸만 있는 내가 모르는 아들 키우는 맛일까?? ㅊㅋㅊㅋ..^^
부러워라 아들 하구 같이....
아들이 아빨 잘 못 만나 고생을 엄청 했구랴. 셈 나는 부자일세, 듬직한 녀석... ^^*
아드님이 대견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번 지리산 등정이 큰 힘이 될껍니다. 큰 박수 보냅니다.
아들과 즐거운 지리산 산행을하셨네요. 수고했습니다.
아~이~쿠 ~
좋은경험 했네요 ~
뜻하지 않은 깜짝 만남에 반가웠구요 ~
고생 했어요 ~
부자의 지리산 등정,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네요. 행복한 고생!입니다.
순둥순둥한 단우가 그렇게 의지가 강한 줄 몰랐네요 모루님의 지리산 우중산행기 속에 아들에 대한 대견스러움이 가득 묻어나네요.
최고로 멋진 아빠와 아들입니다~ 수고하셨어요..
가끔 산에 쫒아와 장난치고 하던 일이 엊그제같은데 벌써 듬직하게 한 몫하다니 대견스럽습니다.
아들과 종주는 자주오는 기회가 아닌데 날씨가 쪼금 심술부렸내요~ ㅎㅎ 아드님이 대견하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