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따스하게 목자되어 주시는 것, 특히 우리들의 삶의 자리와 인류 역사의 현장들 속에서 바로 그 하나님으로 인한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 가들, 게다가 날마다 순간마다 사나운 짐승들을 물리쳐 주시는 그 손의 지팡이와 막대기들 등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심지어는 상상하는 것보다도 더 실질적이고 생생하며 강력한 인도와 책임져 주심들, 응답하심과 예비하심들 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정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바로 그와 같은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위해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전부터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경험케 하시고, 세상 끝 날까지, 아니 영원에 이르기까지 성취해 나가심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러한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일반 은총이든지 특별 은총이든지 간에 어쨌든 모든 하늘의 힘과 역사들을 위해, 특히 믿음으로 인한 값없는 은혜와 공짜와 같은 선물인 역사들을 위해 구주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이신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것이며..
그 속에는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구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시기 전에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던 다윗 뿐 아니라 그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 대략 2000년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는 동일하게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 또한 포함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무엇보다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정말 하나하나 모두 다 누리고 경험하며 나타나고 성취되어 지게 하시는 것이기에 실질적으로 우리들이 삶의 자리와 현장들에서 순간순간마다 실제로 맛보게 되는 역사들은 생각 이상, 상상 이상으로 생생하고 강렬하며 풍성한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조금만 통찰해 봐도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다윗이 고백한 하나님의 목자되어 주심과 바로 그 하나님으로 인한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 가와 같은 은혜들을 위시한 모든 역사들은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들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아무나에게, 아무 때에나, 특히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무조건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 가에 거하는 듯할 수는 없고, 오히려 자칫 그 반대 비슷하게 될 수도 있고 얼마든지 크고 작은 전쟁 같은 상황들도 있게 될 수 있는 것으로 실상 아래 본문과 같이 고백하고 찬미했던 다윗만 하더라도 그가 그 누구보다 치열하며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던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이었을 때는 사무엘하 8장 6절에서 “다윗이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것에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 가 이상의 상황들이 계속되었지만..
반대로 한 때 그러한 다윗이 늘 깨어 있지 못했을 때는, 곧 순간순간 오늘날 우리들 식으로 치면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으며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으면서 죄악들이 아닌 말씀의 신앙으로 몸부림치지 못함으로 인해 간음 및 살인 교사와 유사한 죄악을 범했을 때는 그러한 죄악들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죄악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기에 그 죄악들의 모양과 정도와 강도들에 따라, 또한 하나님 아버지의 시간과 계획과 섭리에 따라 사무엘하 13장에 보면 그의 배다른 자녀들 사이에 강간과 살인이 있게 되는 등 마치 가정이 전쟁에 휩싸이게 된 듯 했고, 뿐만 아니라 사무엘하 15장 14절에서 “다윗이 예루살렘에 함께 있는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중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두렵건대 그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 우리를 해하고 칼날로 성읍을 칠까 하노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것에서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것이듯이 심지어는 그 아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반란으로 쫓기게 되었던 것이며, 게다가 그러한 반란이 평정된 뒤에도 연이어 베냐민 지파인 세바의 반란도 있게 되는 등 온 나라가 전쟁들에 휩싸이게 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와 실상들은 조금이라도 어렵거나 복잡할 수 없는 것으로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야 말로 근본적으로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기 때문이고,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께서도 본질적으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분이기 때문인 것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모든 실제와 경험들이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신 것이고, 근원적인 면으로는 그렇듯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신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와 같이 죄악들로 인한 하나님으로부터의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등과 같은 징계들의 차원이 아닌 의로운 시련들, 치열한 믿음의 몸부림들 가운데에서의 전쟁 같은 상황들도 당연히 적잖이 있을 수 있는 것으로 그러한 상황인 것이라면..
그때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계획들, 연단과 준비들을 위한 특별한 시간으로 그 자신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특히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그러한 아픔들이나 고난들과는 비교도 못할 역사와 영광들, 머지않아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복과 열매들이 반드시 예비된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편23:1~2)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3년 12월 13일(수)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