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송(盤松)의 반盤은 소반의 뜻입니다. 나무의 생김새가 마치 쟁반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요. 주간이 없고 둥치 부위
에서 여러 개의 줄기가 자라서 우산 모양(반원형)을 보입니다.
달리 조선 다행 송, 천지 송, 만지송 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국내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반송이 모두 여섯 그루가 있습니다. 상주시 상현리 반송, 전북 무주 삼공리 반송, 구미 선산 독동리 반송, 경남 함양 목현리 구송, 영양군 석보면 답곡리 만지송, 그리고 문경시 농암면 화산리 반송 등 모두 여섯 그루 입니다. 특이하게도 이중 경북지역에만 4그루가 있는데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예로부터 문경과 예천, 울진 등지에는 좋은 소나무가 있어 국가에서 따로 관리한 지역들이 있었는데 그러한 이유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문경의 경우 동로면 황장산 소나무를 함부로 벌채하지 못하도록 조선시대에는 입산을 금하는 “봉산(奉山)”표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반송은 대개 키가 작지만 문경과 선산, 상주 상현리 반송은 큰 키를 자랑합니다. 서애 유성룡 선생도 하회마을 부용대 아래 옥연정사 마당에 반송 한그루 심었다 합니다.
그때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지 하나 잘려 나간 반송이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역사적으로 이외에도 반송과 관련되는 지명이나 詩에도 곧잘 등장하곤 합니다.이렇게 반송은 아름다운 모양새 때문에 옛날부터 선비들이 좋아했던가 봅니다.
문경 농암 화산리 반송은 198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높이가 무려 24m, 가슴높이 줄기 둘레가 5m이며, 가지는 동서로 19.9m, 남북으로 23.7m나 퍼져있답니다.
수령은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인근 상주 화서면 상현리 천연기념물 반송과 비슷한 규모로 보아 500년은 족히 넘어 보입니다. 밑에서 여섯 갈래로 갈라져서 자라기 때문에 육 소나무(六松)라고도 하지요.
택리지의 저자인 이중환 선생의 호가 "청화산인(靑華山人)" 입니다. 화산리 뒷산이 시루봉과 바로 청화산(靑華山, 970m)이지요. 이곳이 얼마나 살기 좋았으면 이곳의 지명을 따서“청화산인”이라고 했을까. 그때 그는 분명 젊고 잘생긴 화산리 반송을 만났을 것입니다. 이중환 선생도 화산리 반송을 보며 오랜 세월을 살 것으로 의심치 않았을 것입니다. 청화산 반대편인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에도 용 송이라 불리는 천연기념물 소나무가 있습니다. 청화산에는 일찍부터 좋은 소나무가 많이 자랐는가 봅니다.
문경시 가은읍 소양 서원에 배향된 가은 이심 선생(稼隱 李襑, 1598∼1657) 선생도 광해조에 세상이 크게 어지러운 것을 보고 몸을 깨끗이 하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청화산 아래 화산리 반송을 보며 기거했습니다. 그의 증손자인 식산 이만부(息山 李萬敷, 1664~1732) 선생도 증조부의 터전이었던 화산 아래에 거주한 적이 있었습니다. 500년을 지켜온 반송은 어쩌면 식산 선생과 그의 증조부 이심선생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농암 화산의 반송을 보러 가는 길은 결코 쉬이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농암면 소재지에서 대정 숲을 지나 쌍용계곡 방면으로 접어들어야 합니다. 약 1.5km를 달리면 느티나무 다섯 그루가 나옵니다. 반송을 보러가는 화산 초입에 오괴정
(五槐亭)이 서 있습니다. 도로가에 있다지만 오히려 발견하기가 쉽질 않습니다. 오괴정은 지역의 많은 제자를 길러낸 연암 홍최식(蓮菴 洪最植, 본관 남양, 1890~1971)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1964년에 제자 68명이 느티나무 다섯 그루가 있는 곳에 세웠다 합니다.
오괴정 뒷편에는 400년 이상의 보호수 느티나무가 마을 입구를 잘 지키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다시 2km 정도 들어가면 엄마 품처럼 포근한 화산리 반송이 지켜 서 있답니다. 500년의 겨울을 꿋꿋이 버텨온 화산리 반송을 만나보시길 권합니다.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