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서풍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부는 띠 모양의 기류를 일컫는 말이고, 일기예보 때 자주 들어온 말이다.
그런데 일본 원전 사고 이후 이 말은 무지, 무책임, 말 뒤집기를 상징하는 말처럼 되어버렸다.
일본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대지진과 쓰나미, 이후 후쿠시마 원전 방사성 물질의 검은 공포가 지구를 덮었을 때, 한국 정부와 일부 전문가 집단은 ‘편서풍’이라는 주술을 되뇌었다.
기상청은
“편서풍 때문에 방사성 물질의 한반도 직접 유입 가능성은 없다”
고 했고, 방사성 물질이 편서풍을 타고 지구를 한 바퀴 돌아 한반도에 오는 데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그 과정에서 방사능 농도도 엷어져 걱정할 게 없다고 했다.
그런 단정적인 예측을 하던 시기, 외국의 대기관측소에서는 한반도에 방사성 물질이 유입될 가능성을 예측했다. 바로 확인되었다.
한반도 곳곳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자 ‘편서풍’ 주술은 사라지고 ‘북극풍’ ‘남동풍’도 가능하다는 말 뒤집기가 나왔다.
논쟁은 현재의 방사성 물질 수준이 인체에 유해한가 쪽으로 옮아갔고 그런 가운데 ‘색깔론’까지 나왔다.
보수당 원내대표는
“불안감을 조성하는 불순세력이 있다”
고 했고, 수구언론은
“공포가 과장된 것은 일부 좌파 단체들의 근거 없는 주장이 영향을 미쳤다”
고 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성 물질이 모두 통제되는 안전한 상태라면 지금의 방사성 물질 수준을 가지고 공포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을 터다.
그러나 사고 등급을 체르노빌과 같은 최악의 7등급으로 격상한 데서 보듯 일본 방사능 문제는 여전히 위기이고,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더욱이 유럽 나라들에서는 한국 여행 자제까지 권고하고 있는 터다.
당연히 최악의 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정부의 당연한 책무다.
‘편서풍’류의 주술이나 색깔론 등으로 지금을 모면하려 하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후쿠시마에서 보듯 원전은 ‘가장 값싸고 안전한 전력’이기는커녕 자연재해나 테러, 전쟁 발발 때는 대재앙의 대량살상무기가 될 수도 있다. 한반도에서 평화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새삼 깨닫게 해준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원전은 미사일 공격에도 끄떡없다는 식으로 호도하는 것은 또 다른 ‘편서풍’ 주술에 지나지 않는다.
보수 정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가운데는 이런 ‘편서풍’류의 무지, 무책임, 말 바꾸기, 오만이 적지 않다.
엉터리 번역으로 나라 망신을 시킨 한-EU FTA 협정문 사태를 보면 보수 정권은 참으로 무능한 아마추어 정권밖에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행정도시·신공항·과학비즈니스벨트 등의 말 뒤집기에서는 얼마나 국민을 우습게 알면 저렇게도 쉽게 말을 뒤집을까 싶다.
선거 때 표를 더 얻기 위해 그랬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살인적인 등록금으로 엄청난 빚을 떠안게 된 대학생들이 속절없이 목숨을 던지는데도 ‘반값 등록금은 내가 한 대선공약이 아니다’라는 태도에서는 무능과 무책임, 말장난의 극치를 본다.
유서 대신 로또 2장을 남긴 채 이 세상을 하직한 어느 대학생의 죽음 앞에서도 겸허한 반성조차 없다.
대학이 미치고 세상이 어지러울 수 있을까.
카이스트의 반인간적인 교육상을 접하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성적에 따라 차별적으로 내는 징벌적인 등록금 제도, 전 과목 영어강의라는 단세포적 발상이 어떻게 대학이라는 이름의 집단에서 가능한지.
인간의 체온, 꿈 그런 것은 사라지고, 효율과 성과, 이를 위한 냉혹한 무한경쟁과 승자독식, 물신주의 그런 것들이 이명박 정권 아래서 4대강 토목공사처럼 더욱 기승을 부린다.
지금 윤석열은 진보 정부에서 단절된 원전을 다시 시작하려 하고 있다.
진보 정부 시절의 원전 관계자들을 검찰로 소환하면서 또 무슨 짓을 벌이려고 하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