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한지[楚漢誌(漢高祖 列傳)] 2-112 (142 마지막회)
《여(呂) 황후와 척씨(戚氏) 부인 3》
여 태후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중문(中門)까지 마중을 나와 있다가, 조왕(趙王)을 부등켜 안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오오, 사랑하는 내 아들아 ! 네가 에미를 만나러 와 주니, 세상에 이런
기쁨이 어디 있겠느냐. 에미는 그동안 네가 무던히도 보고 싶었느니라. 어서 들어가자."
여의(如意)는 공포감에 전신이 떨려 왔지만, 이제 와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태후에게 큰절을 올렸다."어마마마 ! 소자는 멀리 한단에 떨어져 있는 관계로 자주 문안을
드리지 못하와 불효 막급하옵니다."태후는 손을 설레설레 흔들며 말한다.
"네가 효성이 아무리 극진하기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는 어쩔 수가 없는 일이 아니겠느냐.
우리는 그동안 너무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 그리운 정이 태산 같구나. 오늘은 피차간에 쌓이고
쌓였던 회포를 마음껏 풀어 보기로 하자."말만 들어사는 애정이 푹푹 쏟아지는 모정이었다.
여 태후는 그렇게 수다를 떨며 여의를 내전으로 데리고 들어서더니,
"여봐라 ! 오늘은 그립고 보고 싶던 내 아들이 멀리서 찾아왔으니, 잔치를 성대하게 베풀어야 하겠다.
우선 주안상을 빨리 올려라." 하고 궁녀들에게 명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주안상이 들어오자, 태후는 여의에게 손수 술을 따라 주며 말한다.
"오늘은 너를 하도 오랜만에 만났으니, 네 술잔만은 내가 따라 주야 하겠다. 어서 이 술잔을 받아라."
여 태후가 여의에게 따라 준 술은 한 모금만 마시면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짐독주>라는 무시무시한
독주였다.여의는 물론 그 술이 그렇게나 무서운 독주인 줄은 알 턱이 없었다. 그러나 암만해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술만은 마시지 않을 결심이었다.
그러나 태후가 내려 주는 술을 무작정 거부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
여의는 생각다 못해 손에 받아 든 술잔을 태후에게 받들어 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어마마마 앞에서 소자가 먼저 술을 드는 것은 예절에 어긋나는 일이옵니다. 이 술은 어마마마께서
먼저 드신 연후에, 소자에게 잔을 내려 주시옵소서. 그러면 소자가 기쁜 마음으로 받겠습니다."
여의는 독주가 아니라는 확증을 얻기 위해 그렇게 꾸며대었던 것이다.
그러자 태후는 소리를 크게 내어 웃으며 여의를 나무란다."네가 예절이 그렇게나 바른 줄은 미처
몰랐구나. 그러나 예절에도 경우에 따라 여러가지 방도가 있느니라. 너는 아직 나이가 어려
거기까지는 모르는 모양이로구나."여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태후에게 반문한다.
"예절에는 여러가지 방도가 있다는 것은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 소자가 아직 미거하여 예절을 잘 모르오니,
어마마마께서 자세하게 하교해 주시옵소서."태후는 여의의 어깨를 정답게 두드려 주면서 말한다.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하는 네 총명이 기특하기 이를 데 없구나. 너와 나는 모자지간이기는 하지만
오늘에 한해서만은 너는 주빈(主賓)이고, 나는 너를 대접하는 주인이 아니냐 ?
천리 타향에서 찾아온 귀빈을 제쳐 놓고 어찌 내가 먼저 술을 마실 수 있겠느냐. 그 대신 네가
술을 마시고 나거든, 그 술잔을 내게 돌려라. 네가 주는 술이라면 나도 기쁜 마음으로 마시리로다."
술을 먼저 마시고 난 뒤에 그 술잔을 자기한테 돌려 달라는 말에 여의는 한결 마음이 놓였다.
그 술이 독주가 아닌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었다.그리하여 여의는 마침내 술을 마시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면 소자가 이 술을 먼저 마시고 나서 어마마마께 새로 따라 올리겠습니다."
마침내 여의는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다.그러나 그 술은 얼마나 독한 술인지, 여의는 술을
두 모금 마시다 말고 별안간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방바닥에 쓰러져 버리는 것이었다.그리하여
연달아 몸부림을 치며 괴성을 지르는데, 그때 여의에 입에서는 이미 붉은 피가 연실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태후는 눈썹 한 번 까딱 하지 않고 이처럼 처참한 광경을 줄곧 회심의 미소로 바라보고 있었다.
여의는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미친 사람 처럼 방바닥을 구르고 기어 다니다가, 마침내는 고개를
푹 꺾으며 숨을 거둬 버렸다.여 태후는 여의의 광적인 발작에 이은 죽음을 확인하자 별안간 손뼉을 치며
자지러지게 웃었다."호호호, 내가 이제야 원수 하나만은 가까스로 처치해 버렸구나."
사람으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없는 악독한 말이었다.태후는 즉석에서 시종들을 불러 명한다.
"여봐라 ! 이 시체를 당장 끌어내어 후원 오동나무 밑에 뭍어버려라. 그리고 이 사실을 입 밖에 내는 자는
결코 살려두지 않을 것이니, 모두들 입을 조심하거라."달려온 시종들은 너무도 끔찍스러운 광경에
모두들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태후의 서슬이 워낙 푸른지라, 이런 사실을 누구도 감히 입 밖에도
내지 못했다.이리하여 어린 조왕 여의는 아무 죄도 없이, 단지 척비의 몸에서 태어난 죄로
여 태후의 손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마쳤던 것이다.
그러나 악독하고도 처절한 이런 범죄 사실이 과연 언제까지나 비밀이 보장될 것인가.
한편, 혜제가 새벽에 사냥을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와 보니, 여의가 대궐 안에 없지 않은가? 혜제는
깜짝 놀라 시종에게 물었다."조왕이 보이지 않으니 웬일이냐 ? 조왕은 어디 가셨느냐 ?"
"조왕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어떤 사람과 함께 나가셨사옵니다. 짐작컨데 조왕께서는 미양궁으로
태후마마를 뵈러 가신 것이 아닌가 싶사옵니다."혜제(惠帝)는 기절초풍할 듯이 놀랐다.
"뭐야 ? 조왕이 미양궁으로 태후를 뵈러 갔다고 ? 그게 틀림없는 사실이냐 ?"
"자세히는 알 길이 없사오나,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조왕께서는 태후를 모시고 술을 마시고
계셨다고 하옵니다.""뭣이 ? 조왕이 태후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구 ?"
혜제는 불길한 예감이 솟구쳐 올라, 여의를 구출하려고 부리나케 미양궁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미양궁에는 조왕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태후는 혜제가 나타난 것을 보고 천연스럽게 묻는다.
"주상은 무슨일로 이렇게 늦게 오셨소 ?"혜제는 문안도 생략한 채 다급하게 물었다.
"조왕이 이곳에 왔다고 들었는데, 조왕은 어디로 갔사옵니까 ? 저는 조왕을 데려 가려고 왔사옵니다."
혜제가 노골적으로 태후를 비난하는 어조로 물었다.그러자 태후는 별안간 얼굴에 노기를 띠며
황제를 나무란다."조왕을 데려가려고 왔다구요 ....? 흥 ! 조왕은 주상의 원수요. 그런 놈을 데려다가
어떡하겠다는 것이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혜제도 화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조왕이 나의 원수라뇨 ? 태후께서는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시옵니까 ? 조왕은 사랑하는 나의 아우입니다.
형제가 어떻게 원수가 될 수 있겠습니까 ?"
그 말을 들은 여 태후는 화가 동하며 거친 말을 쏟아내었다."주상은 내 말을 똑똑히 들어 보시오.
선제가 생존해 계실 때, 선제는 여의 모자를 편애한 나머지 태자를 내쫒고 그놈을 태자로
책봉하려고 하였소.그때에 장량 선생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놈이 천자가 되고, 주상과 나는 지금쯤은
죽거나 거지 신세가 되었을 것이오.그 같은 과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상은 그 원수놈을
결사적으로끼고 돌기에, 나는 그 꼴을 보다 못해 오늘은 그놈을 꾀어다가 독주를 먹여 죽여 버렸소."
"엣 ? 조왕을 독살시켰다구요 ?"혜제는 까무러칠 듯이 놀라다가, 이내 미친 사람처럼 태후에게
마구 떠들어댔다."여의를 독살하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오 ? 여의와 나는 한 핏줄을 이어받은
형제지간이 아니오 ? 형제간에 누가 천자가 되는 것이 무슨 상관이라는 말이오.
어마마마는 자식을 죽였으니, 이것은 천리(天理)에도 벗어나고 인도(人道)에도 벗어나는 짓이오."
이렇게 혜제가 광태(狂態)를 부리며 덤벼드는 바람에 여 태후는 아무런 대꾸도 못 하고 옆방으로
피해 버렸다.그러나 혜제에게 공격을 받고 보니, <그년 모자>에 대한 태후의 앙심은 더욱 끓어 올랐다.
(내 남편을 빼앗아간 원수의 자식을 죽인 것이 무엇이 나쁘단 말이냐 ! 오냐, 두고 보아라.
황제가 무슨 소리를 하든 간에 나는 <그년>까지 내 손으로 죽여 버리고야 말리라.)
워낙 심독한 여 태후인지라, 가슴속에 맺힌 원한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혜제가 광태를 부리고 돌아간 바로 그 다음날, 여 태후는 심복 부하인 여수를 불러 묻는다.
"영항(永巷)에 감금해 둔 <그년>은 아직도 살아 있느냐 ?"<그년>이란 척비(戚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예, 아직도 감금해 두고 있사옵니다.""음 .... 이번에는 그년을 죽여 버릴 차례다."
태후는 그렇게 말하며 새삼스러이 이를 바드득 갈았다.여수는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마마께서 분부만 내리시면 언제든지 죽여 버리겠사옵니다."태후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한다.
"그년을 아무렇게나 죽여서는 안 된다. 그년이 죽는 꼴을 내 눈으로 똑똑히 봐야 하겠으니,
내일 아침에는 그년을 이리로 끌어내어라.""분부대로 거행하겠사옵니다."
여수는 척비를 끌어오려고 영항으로 달려갔다. 영항에 갇혀 있는 척씨 부인의 몰골은 불쌍한 모습이었다.
지난 날 유방의 총애를 한몸에 받아 오던 때에는 시녀들이 300여 명이나 되었다.
그리하여 몸에는 언제나 비단옷을 감고, 꽃 피는 봄날과 달 뜨는 가을 저녁이면 많은 시녀들을
거느리고 은은한 풍악 소리를 들어 가며 어원(御苑)을 거닐며 인생의 즐거움을 일삼던 그녀였었다.
그러나 유방이 죽고 나자, 그녀는 움막 같은 영항에 그날로 감금되어 햇빛조차 구경하지 못하고,
주먹밥으로 간신히 목숨을 이어 가고 있었다.그러던 어느날 밤 한밤중에 심복으로 부리던 시녀 한 명이
비밀리에 그녀를 찾아와 다음과 같은 끔찍스러운 일을 귀띔해 주었다.
"조왕께서 그제 미양궁으로 끌려오신 이후로 영영 소식이 없사옵니다."
그 말을 들은 척씨 부인은 눈물이 하염없이 솟구쳐 올랐다.
(그렇다면 내 아들 여의는 필시 태후의 손에 죽었단 말이냐. 그렇다. 내 아들은 태후의 손에 분명히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이 원수를 살아서는 갚을 수 없겠지만 나는 죽어서라도 이 원수만은 반드시 갚고야 말겠다.)
큰 마누라와 작은 마누라의 관계 ...... 이것은 피차간에 타협할 수 없는 영원한 원수지간인 것이다.
여수가 태후의 명령으로 척씨 부인을 데리러 온 것은 바로 그 다음날 아침의 일이었다.
여수는 척비를 미양궁으로 끌고 가기는 하면서도, 내심으로는 그녀를 은근히 동정하였다.
그리하여,"부인은 지금 태후의 명령으로 미양궁으로 끌려가는 중이옵니다. 지금이라도 살고 싶으시면
태후에게 용서를 빌도록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오늘로서 죽음을 면하기가 어려울 것이오."
약자에 대한 일종의 감상적인 동정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악이 바칠 대로 받친 척비는 그 따위 싸구려 동정에는 상대 조차 않고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이윽고 척비가 미양궁 뜰 아래 꿇어 앉혀지자, 태후는 대청마루를 천천히 걸어 나오더니
아무 말도 아니 하고 척비를 조소의 눈으로 노려보기만 하였다.한쪽은 강자(强者)요 한쪽은 약자(弱者)
인지라, 두 사람의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쳤을 때에는 약자의 편에서 시선을 피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척비는 결코 그렇지가 않았다.그녀는 비록 뜰 아래 꿇어앉아 있기는 할망정,
얼굴을 똑바로 치켜들고 태후를 무섭게 쏘아보고 있었다.
태후는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동시에, 일종의 전율감조차 느껴져서 자기도 모르게 호통을 내질렀다.
"네 이년 ! 네년은 선제의 총애를 독점해 오는 동안에 황후인 나를 원수로 알았을 뿐만 아니라,
나의 아들을 태자 자리에서 쫒아 내고 네 아들을 태자로 삼으려고 했것다 ?
네년은 그런 죄로 오늘날 이꼴이 되었건만, 아직도 반성하는 빛을 찾을 길을 없구나 !"
그러자 척비는 살기가 등등하게 즉석에서 이렇게 반격하는 것이었다.
"질투로 환장해 버린 마귀 같은 늙은 년아 ! 너는 내 아들을 죽인 철천지한의 나의 원수로다.
내 비록 살아서는 원수를 갚을 수는 없겠지만, 저승을 가서 귀신이 되어서라도 이 원수는 잊지 않고
천 만배로 갚고야 말리라 ! "태후는 무서운 반항에 부딪치자 독기가 오를 대로 올랐다.
"이년아 ! 네가 발악을 한다고 네 년을 빨리 죽여 줄 줄 아느냐 ! 죽이기는 죽이되 두고두고 괴롭히다가
천천히 죽여 줄 테니 그리 알아라."그리고 그자리에서 형리(刑吏)를 불러, 다음과 같이 끔찍스러운
명령을 내리는 것이었다."여봐라 ! 저년의 손목과 발목을 죽지 않을 정도로 차례로 잘라서 두루뭉수리로
만들어 버려라. 귀도 베고, 눈알도 뽑아 내어 측간(厠間)에다 처넣어 인분(人糞)을 주어 먹게 하여라.
그래서 이제부터는 저년을 <인체(人彘:사람 돼지)>라고 부르도록 하여라 ! "
인체란 <사람 돼지>라는 뜻이다.여자들의 질투심과 증오심은 이렇게도 잔혹한 것이었던가 ?
씨앗이 아무리 밉기로서니, 사람을 이렇게까지 처참하게 만들 수가 있다는 말인가 ?
아무려나 척비는 손과 발이 차례로 모두 잘려 버린 채 돼지가 아닌 <인체(人彘)>의 신세가 되어
측간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목숨이 원수라고나 할까 ? 척비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조차 없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만 것이었다.
한편, 자비심이 남달리 많은 혜제는 조왕 여의가 살해되었음을 알고 나서부터는 정치에 뜻이 없어
날마다 술과 계집으로 고민을 달래고 있었다.(내가 나라를 아무리 잘 다스려 보고 싶어도,
어머니가 아들을 죽이는 이 판국에, 무슨 재주로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 있단 말인가. )
그렇게 생각한 혜제는 마침내 자포 자기의 타락 생활을 계속해 왔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혜제는 사냥을 하고 돌아오다가 우연하게도 척비가 갇혀 있는 변소간에 들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소변을 보려고 무심코 바지를 내리다가, 사람 같기도 하고 귀신 같기도 한 괴물이
변소안 아래에 갇혀 있는 것을 보고 기절 초풍을 할 듯이 놀라며 변소간을 뛰쳐나왔다.
그리하여 수행하던 시종들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측간속에 사람 같기도 하고 귀신 같기도 한 괴물이 갇혀 있는데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냐 ?"
시종들은 모두 거북한 표정을 지으며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한다.
"그것은 <인체>라고 부르는 것이옵니다."
"인체라니 도체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 "
"....."
시종들은 대답하기가 거북하여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두 입을 다물고 대답을 못하는 것이었다.
혜제는 그럴수록 수상스러워 마침내는 추상같은 호령을 내렸다.
"인체...라는 것이 무엇인지 사실대로 말하여라. 사실대로 말해주지 않으면 수하를 막론하고 참형에
처하리라 ! "이에 시종들은 몸을 떨어가며,"사람 같기도 하고 귀신 같기도 한 그 괴물은 선제께서
극진히 총애하시던 척비의 변신(變身)이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 대답에 혜제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다시 묻는다."척비께서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 괴물로
변신을 했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 연유를 분명하게 말해라."
시종들은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어, <척비는 태후에 의해 손과 발이 모두 잘리고 인체(사람돼지)가
되었다>는 사실을 낱낱이 품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혜제는 그 사실을 모두 듣자 통곡을 하면서 태후에게 달려가 무섭게 대들었다.
"어마마마는 선제를 도와 천하를 통일하셨거늘, 모름지기 인덕(人德)을 만인에게 베풀어야 옳을 일이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마마마는 척비에게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잔인 무도한 형벌을 내렸으니,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이오?사람에게 벌을 주려거든 무슨 벌을 주지 못해, 하필이면 이렇게도
잔인 무도한 짓을 했단 말이오. 나는 어머님의 자식임이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구려."
혜제가 미친 사람처럼 날뛰며 공박을 해 대는 바람에 태후는 변명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척비에 대한 태후의 증오심은 자꾸만 치열해 갔다.
혜제는 생모인 여 태후를 한바탕 닦아세우고 대궐로 돌아오자, 그날부터는 모든 정사(政事)를
승상에게 전임시켜 버리고, 자신은 주색에만 빠져들어 세상 만사를 잊으려는 듯이 지내게 되었다.
여 태후는 시간이 지나도 혜제가 정사를 돌보지 아니하고 주색에 빠져 지내기를 반복하자 마침내는
자기자신이 정권(政權)을 빼앗아 버리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오냐 ! 네가 에미를 배반하고 <그년>을
그렇게까지 두둔한다면, 이제는 네게서 정권도 빼앗아 와야 하겠다.)
태후는 아들조차 원수로 간주해 버리고, 그때부터는 여씨 일족을 벼슬자리에 등용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승상 소하는 전대(前代)부터의 명재상인지라, 태후의 일가 친척들을 좀체로 중용하려 하지 않았다.
"이 나라에는 선대부터의 유능한 공신들이 많사온데, 어떻게 그들을 제쳐놓고 아무런 공로도 없는
여씨들을 고관에 등용하옵니까 ?옛날부터 외척(外戚)이 득세를 하게 되면 나라가 망하는 법이옵니다."
소하가 여씨 일족을 등용하지 않으려는 대의 명분은 이같이 뚜렸하였다. 참으로 승상 소하는
명재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혜제가 즉위한 지 2년 후인 무신년(戊申年)가을에 승상 소하가 죽고 나자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
태후는 혜제가 정치에 무관심한 것을 기화로, 실질적인 황제의 대권(大權)을 몸소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자신의 일가 붙이인 여대(呂臺), 여산(呂産), 여록(呂綠), 여택(呂澤)등을 마구잡이로 고관에
등용하였다. 게다가 병권(兵權)조차 그들의 손에 맡겨 버렸다.
그로부터 5년 후에 혜제가 주색에 지쳐 손(孫)을 두지 않고 세상을 떠나 버리자, 여 태후는 혜제와
아무 관련도 없는 어린아이를 천자의 자리에 올려 앉히고, 자기자신이 <청정(聽政)>이라는 이름으로
대권을 완전히 장악해 버렸다.이렇게 유방이 천신 만고 끝에 이루어 놓은 통일천하는 10년을 채 못가서
유씨의 손에서 여씨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여 태후는 천하를 장악하고 나자, 여씨 일족을 불러 놓고 말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나의 뜻대로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처리해야 할 일이 하나 더 남아있다.
그것은 <인체>를 죽여 없애는 일이다.지금부터 이체를 이 자리에 끌어내다가, 사지(四肢)를 수레(車)에
매어, 그년을 네 조각으로 찢어 죽이도록 하라. 그래야만 나의 원한이 완전히 풀려 버릴 것이다."
이렇게 <인체>인 척비는 마침내 태후가 보는 눈앞에서 사지가 네 조각으로 찢어지는 처열한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여 태후는 척비를 죽이고 나서도 마음이 개운치 않았던지 원한의 눈물을 흘리며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씨부려대었다.
"네년을 죽였건만, 네년에게 빼앗겼던 나의 청춘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아~그것이 슬프구나 ...."
ㅡ 이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끝) ㅡ
뒷이야기
《여(呂)태후와 척(戚)부인》
초한지 뒷이야기 삼아 여후에 대한 자료를 올립니다.
**여후(呂后)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부인으로 중국 산동성(山東省) 단현(單縣)에서 출생하였다.성은 여(呂)씨이고
이름은 치(雉)이다.부친 여공(呂公)은 패현에서 유방과 친분을 맺었으며 그 인연으로 유방을 알게 되었다.
당시 말단 관직에 무명이던 유방(劉邦)과 결혼하여 중국 천하를 통일하는 평정사업(平定事業)을 도왔고,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세우는 데 내조하였다.
그녀는 무서울 정도의 야심과 독기가 있었던 여인이었다.
특히 항우의 포로가 되어서, 포박당해 있을 때도 "죽일 테면 죽여라. 너 따위는 내 남편의 상대가 안 된다"
라는 태도를 보여, 함께 포로가 된 "유방의 부모와 항우"를 황당하게 만들었을 정도로 담력이 출중하였다.
유방이 한량 시절에 사고를 쳐서 도망다닐 때 마다, 대신 형벌을 받고 옥살이를 했고, 유방이 거병해 곳곳
에서 전투를 치룰 때에도 그냥 담담히 자기 할 일을 하며 확실히 집안 내조를 하여, 결국 아버지 여공이
바란대로, 귀인(황후)의 자리에 이르렀다.
여후는 한나라를 세우는데 공헌하였던 한신(韓信)과 팽월(彭越) 같은 명신(名臣)을 제거하는데 앞장섰다.
여후의 이런 계략이 한나라가 안정적인 통치권을 유지하는데 기여하였다는 평가도 있다.
이후 한고조(유방)는 병이 들어 살날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대신들을 불러놓고 백마를 죽여 대신
들과 함께 그 피를 마시면서 이렇게 맹세하게 했다.
“유(劉)씨 성이 아닌 사람을 왕으로 세우지 않고, 공로가 없는 자에게는 작위를 주지 않는다. 이 맹약을
위반하는 자는 모두들 힘을 합쳐 없앤다.” 는 백마의 맹약(白馬之盟)을 하였다.
그리고 기원전 195년, 한고조 유방이 죽는다.
유방이 한고조가 된지 12년 만에 죽자 아들 혜제(惠帝)를 즉위시키고 실권을 자신이 잡았다.
실권을 잡자 한고조가 총애했던 후궁 척희(戚姬)를 죽였고 그아들인 유여의(劉如意)도 독약을 먹여 죽였다.
특히 여후는 유방의 총비(寵妃) 척부인(戚夫人)의 수족을 자르고 눈 귀 혀를 손상시킨채 변소에 가두어
人彘(인체:사람돼지)로 부르는 등 횡포를 자행하였는데, 이런 여후의 행동으로 폭정을 행한 3대 악녀중
하나로 평가된다. (한(漢)여태후, 당(唐)측천무후, 청(淸)서태후)
혜제(惠帝)가 여후의 악독함과 유방 한고조가 유언으로 까지 부탁했던 척씨(戚氏) 모자를 지켜주지 못한
자멸감에 주색을 일삼다가 23세의 나이로 죽자, 혜제(惠帝)의 후궁에서 출생한 여러 왕자들을 차례로 등극
시키면서 황제의 권한을 대행하였는데, 자신의 친족인 여씨 일족을 고위고관에 등용시켜 사실상의 여씨
정권을 수립하였다.
그리고 백마의 맹약으로써 유씨(劉氏)만을 한왕(漢王) 으로 책봉하라는 유방의 유훈(遺訓)을 어기고 동생
여산(呂産), 여록(呂祿)을 왕으로 책봉하였는데 이것이 유씨 옹호파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무섭지만 추진력 있는 여장부였는데, 죽기전에 갑자기 나타난 <투명한 푸른 개>가 여태후의 겨드랑이를
툭 치고 간 후로 병을 앓더니 죽었다.
"척부인의 아들 조왕 여의"의 귀신이 재앙을 내리는 것이라는 점괘가 나왔다고 한다.
이 기록은 야사가 아닌, 사마천이 지은 사기(史記)에 나오는 실제 기록이다.
여후가 죽자 곧 여씨 주멸(誅滅)사건이 일어났다. 여씨의 난이 일어났으나 미수에 그쳤으며, 그결과 여씨
정권은 붕괴하고 한고조의 차남 유항(劉恒)이 즉위하여 문제(文帝)가 되었다.
한편, 후한을 세운 광무제는 여태후의 시호를 박탈하고, 한문제의 어머니 박태후에게 원래 여태후의 시호
였던 <고황후>라는 시호를 올렸다.한나라는 전한(서한, 기원전 202년 ~ 8년)과 후한(동한, 25년 ~ 220년)
으로 나뉜다. 약 400년 지속하였으며, 중국의 역사상 가장 강대했던 시기 중의 하나이고,
오늘날에 중국의 약 92%를 차지하는 민족인 한족(漢族) 역시 이 왕조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 소중한 동우회 회원님들께 ♡
이제 초한지(楚漢誌):한고조열전(漢高祖列傳) 을 142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고르지 못한 배분에도 꾸짖지 않으시고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첫댓글 이준황님, 수고많았습니다.
매일 올려 주신 초한지는 흥미진진하고, 군더더기 없는 훌륭한 작품이었습니다.
열국지에 이은 초한지가 있어, 즐거웠답니다. 대단하신 작가님께도 감사드리며, 좋은 후속작을 고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