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환 시 김인순 낭독)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의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이 시는 가을이면 생각나는
청마 유치환님의 시입니다.
제가 즐겨 떠올리곤 하는 이미지이기도 하고요.
시가 꽤나 회화적이지요..
우체국 창밖의 에메랄드빛 하늘이며,
우체국 안에서 총총히 움직이는 사람들,
'한 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이라는 대사(?)까지..
마치 한편의 드라마 같기도 합니다.
이 시의 모티브가 된
이영도 시인과의 사랑은 너무도 유명합니다.
그것이 불륜이었는지,
플라토닉 러브였는지는 정히 알 수 없습니다만..
어찌되었건,
'詩란 미래 지향적인 언어이고,
실현 불가능한 이상을 쓰는 일' 이라면
이 시인들간의 사랑도
늘 슬프고 가난한 것은 아니었을까?...
짐작해 봅니다.
첫댓글 가을의초입에서 가슴이뭉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