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 필수인 AI시대, ‘수포자’ 양산하는 수학교육
인류 문명의 진보에는 수학의 힘이 컸다. 산수와 대수학 덕분에 상업이 발달했고, 삼각함수로 선박의 정확한 위치를 측정해 대항해 시대를 열었으며, 미적분으로 우주선의 정확한 궤도를 계산해 냄으로써 태양계 너머로 나아갈 수 있었다. 요즘 대세인 인공지능(AI)은 시작과 끝이 수학이다.
▷AI는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를 ‘학습’해 정답일 확률이 가장 높은 답을 ‘추론’하는데 이 모든 과정에 다양한 수학 개념이 활용된다. 기계학습에 사용되는 텍스트 소리 영상 등 데이터는 컴퓨터가 알아듣도록 ‘벡터’로 표현되고, 이들이 수많은 ‘행렬’ 곱셈을 거치면 최종적으로 확률 함수를 이용해 추론해 낸다. 이러한 학습을 무한대로 반복하며 오차를 최소화하는 과정엔 ‘미분’이 사용된다. 2000년 넘는 수학의 역사가 없었다면 AI도 없었다.
▷AI 경쟁이 치열한 시대에 학생들의 수학 실력이 뒷걸음치고 있다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결과는 우려스럽다. 지난해 세계 81개국 15세(중3∼고1) 학생들의 수학, 읽기, 과학 분야 성취도를 평가한 결과 한국 학생들의 수학 평균이 527점으로 22년 전보다 20점 떨어졌고 순위는 3위에서 5위로 내려갔다. 여학생은 22년간 7점, 남학생은 29점 하락했다. 특히 다른 나라보다 학생들 간 점수 차가 컸다. 이른바 수학을 포기한 ‘수포자’가 많다는 뜻이다.
▷수학 성적의 하향세는 학습량 감소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 초중고교의 수학 수업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보다 크게 모자란다. 중학교 3학년의 경우 연간 수학 시간이 93시간으로 OECD 평균의 76%밖에 안 된다(2019년 기준). AI에 필수적인 ‘행렬’도 너무 어렵다는 지적에 따라 2011년 이후 고교 수학에서 빠졌다가 2025년부터 다시 넣기로 했다. 수포자가 늘어날까 봐 학습량을 줄였는데 수포자는 늘고 상위권 실력까지 떨어졌다. 올해 서울대 기초 수학시험에서는 이공계 신입생 10명 중 4명이 1학년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인 학력 미달 성적을 받았다.
▷요즘 유튜브에는 수학이 싫어 문과를 택했다가 AI를 계기로 뒤늦게 코딩과 함께 행렬 미분 함수 벡터 확률 공부에 빠져든 사람들의 경험담이 올라온다. 이들은 “예전엔 영어를 잘하면 취업에 유리했듯 이제는 수학적 언어가 중요하다”고 한다. 영국이 수학 의무 교육 기한을 16세에서 18세로 늘리기로 한 이유이기도 하다. 국가와 개인의 경쟁력을 위해 수포자만 양산하는 수학 교육을 이대로 둘 수는 없다. 제한된 시간에 정답을 찾아내는 ‘수능 수학’이 아니라 논리적 사고력과 창의력으로 질문하는 힘을 키우는 진짜 수학을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이진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