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화북1동 4684-2번지(원두길34)
시대 ; 조선후기(18세기)
재질: 응회암
높이: 약 52cm
원명선원의 석조여래좌상은 조선 후기(18세기)에 제작된 불상으로, 현재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2008년 12월 2일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불상의 특징
이 불상은 전체적으로 몸체보다 머리가 크게 표현된 좌상(앉은 불상) 형태이다. 머리에는 작은 나발(소라 모양 머리칼)이 촘촘히 표현되어 있으며, 반달형과 원통형의 계주(髻珠)가 있다. 얼굴은 둥글고 볼이 풍만하며, 반쯤 감긴 눈과 엷은 미소 때문에 부드럽고 안정적인 인상을 준다. 법의(가사)는 양 어깨를 모두 덮는 통견식이며, 무릎 아래로 퍼지는 옷주름 표현이 비교적 정돈되어 있다. 현재는 불상을 받치던 대좌가 남아 있지 않고, 바닥에는 복장물(불상 내부에 넣는 봉안물)을 넣었던 복장공 흔적이 남아 있다.
조선 후기 불상은 대부분 목조(木造)인데, 이 불상은 석조(石造)라는 점이 특징이다. 제주 지역에 전래된 불교조각 가운데 조선 후기 석불 사례가 많지 않기 때문에, 지역 불교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특히 얼굴 표현과 법의 주름, 안정된 자세 등이 18세기 불상 양식을 잘 보여준다고 한다.
제주에서 흔한 현무암은 구멍이 많고 단단하여 조각이 어렵고 세밀한 불상 제작에 부적합하기 때문에, 조선 후기 제주 석불 상당수는 육지에서 완성 불상을 들여온 사례가 많다. 또한 얼굴 표현, 통견 법의, 부채꼴 옷주름 등은 18세기 조선후기 불상 양식과 연결되며, 특히 전라도·충청도 계통 불상 양식과 유사하다는 견해가 지역 연구자들 사이에서 언급되지만 “어느 사찰에서 조성했다”거나 “어느 승장(僧匠)이 만들었다”는 복장 발원문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ChatGPT)
제주 지역은 역사적으로 억불 정책과 지리적 고립 등으로 인해 옛 불상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편이다. 원명선원 석조여래좌상은 조선시대 제주 불교의 맥을 보여주는 몇 안 되는 소중한 유물로, 당시 지역 장인들의 조각 기법과 신앙 형태를 파악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Gemini)
대좌는 유실됐지만 대좌 밑면에 가로 8.5㎝, 세로 6.5㎝, 깊이 19.5㎝ 크기의 사각형 복장공이 남아있으나 아쉽게도 복장물 역시 유실됐다. 복장공 주변에 개금불사시 한지를 붙였던 3~4군데 흔적이 보이며, 마지막 불사시 복장물을 넣고 다라니경을 붙였던 흔적이 남아 있다.(제주불교신문 2008.11.06.)
《작성 2026.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