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무릇 글을 풀어내는 것을 어떤 이들은 소소한 일이어서
꼭 관심을 둘 필요까지는 없다고 하지만
성현들의 하신 말씀이 ‘글 뜻을 알지 못하고서
정밀하고 자세한 내용을 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라고 하였다.
지금 사서오경(四書五經)의 구결(口訣, 한문의 한 구절 끝에 다는 토)과
뒤침(번역)은 경이 정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경의 학문이 정밀하고 해박함은 세상에 드문 일이다.
사서와 오경(五經)의 구결과 뒤침을 경이 모두 자상하게 정해 놓았으니,
하나의 국(局)을 설치할 만하다.“
▲ 《선조실록》 8권, 선조 7년(1574년) 10월 10일 기록 원문
위는 《선조실록》 8권, 선조 7년(1574년) 10월 10일에 있는 기록입니다.
선조는 임진왜란 때의 임금으로서 너무 많은 오명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의 행적을 더듬어보면 다시 평가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선조가 한문의 권위가 절대적이던 시절,
지식은 모든 사람이 나눠야 한다는 생각에
위처럼 경서를 우리말로 뒤치는 일을 추진한 것입니다.
특히 선조가 경서를 우리말로 뒤치는 일을 한 것은 무엇보다도
세종이 만든 훈민정음의 격을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지요.
이한우가 펴낸 《조선사 진검승부》에서 지은이는
”선조가 사서오경을 훈민정음으로 언해 하려 했다는 것은
훈민정음을 학문 언어로 격상시켰다는 뜻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전 이탈리아에서는 지식인들이 라틴어만 썼지만,
단테가 <토박이말을 드높임>이라는 논설을 쓰고,
이탈리아말로 위대한 서사시 <신곡>을 지어 발표한 뒤로는
라틴어가 아닌 쉬운 이탈리아말로 학문하는 세상이 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선조가 그런 꿈을 꾸었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