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평등을 위한 수단 가치이며 정권이 권력으로 평등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념주의 정치가가 있었다면 민주주의에 역행했기 때문에 심판을 받아야 한다.
정의는 공정성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믿는 지도자는 마라톤 경기의 출발선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골인선의 심판을 허위로 조작할 수 없다는 엄연한 규범은
지켜야 한다. 기회의 균등성과 결과의 공정한 평가는 사회생활의 기본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정의관이 있다. 정의를 가장해 사회적 공익성을 훼손하거나
억제하는 평등 위주의 정의관은 정의의 가치를 파괴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공익성에는 두 가지 성역이 있다. 다른 사람의 인격이나 인생을 헐뜯거나 파국으로
몰아넣는 일이다. 그리고 소수집단의 정의관에 붙잡혀 다수인과 사회의 선한 질서를
해치는 행위다.
우리는 어떠했는가. 과거 이념 정권의 강경파들은 권력으로 평등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질서 파괴의 정의관을 갖고 있었다. 현정부는 최소한 공정한 사회를 위한
정의의 책임을 지켜야 한다.
그것이 정의 사회 구축의 기초 작업이다. 그 후에 자유민주주의가 성숙하게 되면
정의는 공익을 위하고 자유와 공존할 수 있는 창조적 기여를 동반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동참하게 된다. 정의의 궁극적인 가치는 인간적 삶의 가치를 위하기 때문이다.
민주국가의 큰 나무에는 정의로운 평등과 창의적 자유가 함께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런 나무를 우리는 휴머니즘(인간애)의 나무로 키워가는 것이다.
- 김형석 교수 저, "백년의 지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