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로 때문에
요12:1-11
2026년 9월 4일(금)
기동찬
1.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2.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3.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4.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7.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8.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9.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10.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11.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게 됨에 감사합니다.
11.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하나님, 나사로의 죽음은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일로 인하여 그의 집에서는 잔치가 열렸습니다. 유대인들은 “주님만 보기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9절). 나사로의 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나사로의 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봤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메시아임을 믿게 되었습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 주님께서는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요1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의 죽음과 다시 살아남을 통해 친히 메시아임을 많은 이들에게 밝혀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주님은 죽었던 나사로를 살리신 생명의 주권자요, 부활의 주님이요, 생명의 주인이심을 선포합니다.
죽었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일로 인해서, 동생 마리아는 주님의 그 크신 은혜가 너무나도 고맙고 감사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가장 귀한 향유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헌신했습니다. 나사로의 죽음이라는 슬픔과 고난이 있었기 때문에 마리아는 엄청난 감격과 진정한 헌신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사로의 죽음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고, 많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주님이 메시아임을 알게 하고 믿게 하셨습니다. 살며 사역하다 보면, 분명히 응답받고 실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있지만, 시간이 조금만 흐르고 나면, 그 역시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되는 경우를 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라고 하신 말씀은 진리임을 선포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개인적으로 경험하지 못했던 가룟 유다는 마리아의 헌신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4.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마리아의 헌신을 보고 가룟유다는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라고 주님께 헌신하는 마리아를 비난했습니다. 영적으로 무지한 가룟 유다는 주님께 대한 헌신과 허비를 구분할 줄 모르는 무지한 자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머리가 나빠서가 아닙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요, 탐욕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는 생명의 주권자 되시는 주님을 곁에 두고도 주님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마리아에게 있어서 주님을 향한 사랑이란 그 어떤 돈의 액수로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다의 눈에는 마리아의 헌신이 “300데나리온(노동자 1년 치 임금)의 재정적 손실”이자 “허비”로만 보였던 것입니다. 영적인 안목이 열리지 않아 무지하게 되면 주님을 향한 순수한 마리아의 헌신을 허비로 오해하는 것을 봅니다.
실제로, 가룟 유다는 가난한 자들을 생각해서 한 말이 아닙니다. 위선과 탐욕을 숨긴 채, “가난한 자”들이라고 하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워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성경은 그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6절)고 밝히고 있습니다.
가룟유다는 ‘구제’라는 명분을 핑계 삼아 자신이 훔치고자 하는 탐욕과 위선을 기가 막히게 숨겼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그가 말로는 구제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있지만, 실상은 사리사욕의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다 아시고 계십니다.
헌신하는 마리아를 무안하게 한 가룟 유다를 향하여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8절). 주님은 마리아가 자신의 장례를 준비하는 영적인 때를 분별했음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했던 가룟 유다는 마리아의 ‘헌신’을 ‘허비’라고 폄하는 하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마리아의 태도와 가룟 유다의 태도를 통해서 제 자신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가룟 유다와 같은 모습이 제 안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지 않기를 원합니다. 만일에, 있다면 다 제거 해 주시옵소서.
주님, 나사로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주님을 메시아로 믿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내시는 신실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마리아는 주님으로부터 놀라운 은혜를 덧 입고 자신의 향유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부어 드리며 헌신하는 것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영적으로 무지하여 주님을 향한 마리아의 헌신을 ‘허비’로 생각하는 가룟 유다와 같은 어리석음이 제 안에 있지 않게 하옵소서. 뿐만 아니라, 비굴한 가룟 유다처럼 거룩한 명분 뒤에 나의 탐욕과 위선을 숨기는 미련한 자도 되지 않게 하옵소서.
탐욕에 저의 눈이 가려지지 않게 하옵소서. 생명의 주인 되이신 주님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주님을 따라가는 참된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어떤 순간에도 제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지 않게 하옵소서. 나사로와 같이 사나 죽으나 주님을 전하는 제 삶이되길 소망합니다. 성령님 도와 주시옵소서.
이 하루도 주님의 손에 올려드리며
제 삶의 주인 되시는 예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Declaration
나사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그 크신 은혜에 북받치는 감사와 감격으로, 마리아는 모든 위선과 탐욕을 버리고 주님께 온전한 헌신을 드렸음을 선포합니다.
Because of Lazarus, many people came to believe in Jesus as the Messiah. Filled with overwhelming gratitude and emotion for the Lord’s immense grace, I declare that Mary cast aside all hypocrisy and greed to offer her complete devotion to the Lord.
첫댓글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