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 연재
오늘부터 '수호지'를 연재하겠습니다.많은 애독 바랍니다.
★ 수호지(水湖志) - 1
제1장 백팔마왕
제1편 홍태위 1-1
옛 중국 땅에 당(唐) 나라가 멸망하자 15개국 황제들이50여년 동안 피비린내 나는
패권다툼을 벌인 끝에 송(宋)나라가 천하를 통일했다.이후 제3대 진종(眞宗) 황제까지는
송의 전성기라고 할 만큼나라가 중흥을 거듭하는 태평세월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 인종(仁宗) 황제부터 송나라는 점차 어둡고불길한 먹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큰 재난은 괴질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괴질은 오늘 날의 장티푸스에 해당하는 전염병으로 당시는염병(染病)이라고 불렀다.
염병은 점차 수도인 동경성까지 번져 민간인과군사들까지 마구 쓰러뜨렸다.
한번 창궐한 전염병은 멈추지 않았다.황제는 제사를 지내는 한편 신하 홍태위를
신주 땅귀계현(貴溪縣)으로 보내 천사(天師)를 찾아가전염병 퇴치방법을 알아오도록 했다.
신주 땅에 도착한 홍태위는 천사를 만날 수가 없었다.진인에게 다그치고 사정을 하니,
“태위 어른께서 목욕재계하시고, 조서를 갖추어 산에올라 절을 하고, 정중하게 청하시면
혹 만나주실 지도 모르겠습니다.”홍태위는 다음날 목욕을 한 다음 새 옷으로 갈아입고,
황제의 친서를 싸서 등에 메고 산에 올랐다.
산꼭대기를 바라보니 험악한 산은 안개가 자욱하여 끝이안 보였고 앞길을 가렸다.
홍태위는 정신을 가다듬고 한 손으로 칡덩굴을 잡고, 한 손으로는향로를 든 채 땀을 뻘뻘 흘리며
계곡을 더듬더듬 기어 올라갔다.바로 그때 계곡에서 큰 범 한 마리가 나타났다.
홍태위는 그 자리서 넋을 잃었다.범은 홍태위를 노려보다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요란하게
울부짖다가웬일인지 이내 사라져 버렸다.
홍태위는 떨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하면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다시 이상한 바람이 세차게 불면서 홍태위 앞에 굵은흰 뱀 한 마리가 나타났다.
깜짝 놀란 그가 뒤로 넘어지자 뱀은 순식간에 홍태위 앞에 몸을 사렸다.
두 눈에서는 금빛 광채가 타는 듯 번쩍거렸다.큰 혀를 날름거리던 뱀은 마침내 홍태위의얼굴에
독기를 훅 내뿜었다.홍태위가 몸을 늘어뜨리고 꼼짝 못 하고 있을 때뱀은 한참을 노려보다가
머리를 돌려 산 아래로 사라져 버렸다.홍태위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일어섰다.
바로 그때 우거진 소나무 건너편에서 가냘픈피리소리가 들려왔다.
한 소년이 황소 위에 걸터앉아 쇠 피리를 불면서산모퉁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눈이 맑고 이는 백옥같이 희었으며, 어디를 봐도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해맑고 깨끗한 모습이었다.
홍태위는 소년에게 말을 건넸다.“아이야, 너는 어디서 오는 게냐?”
아이는 불던 피리를 잠시 멈추더니 한바탕 깔깔웃고 나서 피리로 태위를 가리키며 말한다.
“천사님을 찾아오셨군요.
천사님께서는 이미 다 아시고 학을 타고 구름 속으로 떠난 지 오래되셨습니다.
태위께서는지금 천사님의 암자에 가봐야 소용없습니다. 게다가이 산에는 독충과 맹수들이
우글거려 위험해요.”하고 동자는 다시 피리를 불면서 사라져 갔다.태위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래도 저 동자 놈이 심상치 않다. 아마 천사님께서그렇게 말하라고 시킨 모양이구나.
하지만 여기까지 애써 왔는데 천사를 못 만나고그냥 갈 수는 없다. 내가 기어코 올라가리라.’
그러나 홍태위는 두어 걸음을 걷다 생각을 달리했다.‘에라 모르겠다, 아까도 두 번이나
죽을 뻔했는데,목숨이 아깝거든 내려가는 게 상책이다.’그런데 정작 산을 내려가니 진인이
엉뚱한 말을 하는 것이었다.
- 2회에 계속 -
★ 수호지(水湖志) - 2
제1장 백팔마왕
제1편 홍태위 1-2
“저런! 바로 그 동자가 천사님입니다. 그분이 바로 도통조사(道通祖師)님이라고요.
하지만 너무 걱정 마십시오. 천사님께서 이미 아셨으니 태위께서 동경에 돌아가시면
천사님은 이미 제사를 마치고 돌아가셨을 것입니다.
”홍태위는 그 말을 듣고 겨우 마음을 놓았다.
그다음 날 진인을 비롯한 도사들이 태위를 안내하여 절의경내를 구경시켜 주었다.
홍태위는 삼청전을 비롯한 아름다운 사찰 건축물들의호화로움에 새삼 감탄했다.
특별한 곳은 월랑(月廊) 밖에 있는 한 채의 외딴 전각이었다.
그 건물은 호초를 빻아 섞은 칠로 담을 채색하고, 문은 큰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문 사이에는 십여 장의 봉인이 붙어 있고, 처마에는 주홍칠을 한 현판이 걸려 있는데,
금문자(金文字)로 ‘복마지전(伏魔之殿)’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 집은 무엇인가?”“여기는 천사님의 선조께서 마왕을 잡아 놓은 곳입니다.”
“그렇다면 웬 봉인을 문마다 붙여 놓았느냐?”“선조이신 당나라 때 동현국사(洞玄國師)께서
여기에 마왕을 잡아 감금하셨는데, 그 후로는 천사님이 바뀔 때마다 한 번씩 봉인을
더 붙였습니다. 함부로 열어서 마왕이 나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섭니다.
자물쇠에 구리를 녹여 부었기 때문에 열 수도 없지요. 제가 이 산의 주지가 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이렇게 가까이 와 본 적도 처음입니다.”태위가 듣고 보니 신기한 이야기였다.
불현듯 호기심이 일어났다.‘내 한 번 열어 보리라.’홍태위가 진인에게 말했다.
“문을 열어라. 마왕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이나 해야겠다.”진인은 완강히 거절했다.
태위는 언성을 높여 진인에게 호령했으나 진인과 도사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태위는 더욱 노기를 띠고 호령했다.진인과 도사들은 태위의 권세가 우선 눈에 보이지 않는
마왕보다 두려워 화공들을 불러 봉인을 뜯게 하고 철퇴로 큰 자물쇠를 깨뜨렸다.
태위는 횃불을 들고 안을 자세히 살펴보니 한가운데 높이 오륙 척쯤 되는 비석 하나가
우뚝 서 있을 뿐이었다.비석에 새긴 글자를 보니 글은 가득 쓰여 있는데, 전혀 알아볼 수 없는
글이었다.비석 뒤에는 ‘우홍이개(遇洪而開)’라 쓰여 있었다.
그 말은 곧 ‘홍가 성을 가진 사람을 만나 열 수 있다’는 뜻이다.
곧 천강성의 별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가 온 것과송나라에 충신이 나타나는데,
그 일의 발단은 홍 씨가 된다는 뜻이었다.홍태위는 그 글을 읽고 크게 기뻤다.
“이 글을 봐라. 틀림없이 홍 씨인 나에게 열어보라는 뜻이아니냐! 어서 비석을 치우고
밑을 파라.”진인은 기겁하고 말렸으나 태위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인부들을 불러 비석을 치우고 석귀(石龜)를파헤친 지 반나절이나 되어서야
아주 큰 푸른 반석 하나가 나타났다.반석을 치우자 그 밑에 큰 굴이 나타났다.
깊이가 만 길은 되는 듯싶었다.잠시 후 그 굴에서 아주 커다란 굉음이 들려왔는데,
마치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천둥소리였다.
그러다 굉음이 멈추면서 한 가닥의 검은 기운이구멍에서 치올라 전각의 천정을 꿰뚫었다.
검은 구름이 하늘 높이 솟아올라 무수한금빛을 띄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모두 크게 놀라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홍태위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진인을 붙잡고 물었다.“달아난 게 마왕이 틀림없소?”“그런 것 같습니다.
그 옛날 선조께서 말씀하시기를이 전각에는 36원의 천강성과 72좌(座)의 지살성(地煞星),
말하자면 108 마왕(百八魔王)을 잡아다가 전각에 가둔 것인데,만일 그것들이 세상을
떠돌게 되면 반드시 많은 사람들을 해치게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태위께서 이 무서운
마왕들을 세상에 풀어놓은 셈입니다.”
홍태위는 식은땀이 나고 덜컥 겁이 나 황급히짐을 꾸려 동경으로 떠났다.
진인과 도사들은 비석을 세우고 전각을 수리했다.
홍태위는 동경으로 돌아오면서 시종들에게 입단속을 단단히 시켰다.
황제께서 아시면 무슨 벌을 내릴지 두려웠다.
동경성에 도착하니 천사는 7일간의 제사를 마치고전염병을 다스린 후 용봉산으로
학을 타고 돌아 간 후였다.황제는 태위의 노고를 치하했다.
인종 황제가 재위한 후 죽고 그 후로 영종, 신종, 철종이계속 황제로 오르면서 천하는
태평성대가 계속되었다.다만, 홍태위에 의해서 풀려난 백팔마왕들이 앞으로
어떤 풍파를 일으킬지가 걱정이었다.
- 3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