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5: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디모데후서 4: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존 헤론 선교사의 이야기입니다. 1856년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목사였던 아버지는 헤론이 14세 되던 해에 미국으로 이민 가서 살 곳을 두루 찾다가 남부 지방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헤론은 테네시 의과대학에 진학했는데, 개교 이래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졸업하기 직전에 학교로부터 교수가 되어줄 것을 요청받았지만 그는 이를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 이전부터 조선의 선교사가 될 것을 꿈꿨기 때문입니다. 의과대학 교수의 딸 깁슨과 결혼한 해인 1884년 봄에 최초의 장로교파 조선 선교사로 정식 임명을 받게 되었고, 선교 본부는 "아직 조선에서 드러내 놓고 복음을 전하기는 시기상조" 이므로 우선 일본에 가서 조선말을 배우다가 1885년 6월 21일에 입국하라고 했습니다. 헤론은 ‘광혜원’을 ‘제중원’으로 바꾸고 정릉 외국인 거주지에서 살지않고 가난한 동네로 이사를 갔습니다. 왜냐하면 왕실의 총애만 받으며 특권층에만 의료 혜택을 베풀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 병든 자들에게도 베풀고자 하는 생각이 간절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백성의 건강 상태는 매우 비참했습니다. 한 병원 보고서에 따르면 "조선 사람들의 절반은 천연두고 죽습니다." 라고 전제한 다음 "매독은 아주 흔한 병입니다. 회충 환자가 1년간 760건이나 됩니다. 돌싸움과 활쏘기를 하다가 다친 환자도 꽤 많습니다.
피부병과 무좀은 백성 거의 전부가 걸려 있습니다. 학질은 만병의 근원이 되어 있습니다. 각기나 디스토마 환자도 많습니다. 환자들에게 약을 주면 잘 먹긴 하는데 술을 많이 마시고 음식을 조심하지 않아서 아무리 수술을 잘해도 효과가 나지 않습니다.”
헤론은 병자를 돌보는 일 뿐 아니라 성서번역에도 눈부신 활동을 했습니다. 초대 선교사에게는 어떻게 하면 빨리 성경을 번역하느냐가 관건이었기 때문입니다. 헤론이 이룬 또 하나의 공헌은 한국성교서회를 창설한 일이었습니다. 교회 설립도 중요하지만 성서와 기독교 문서를 출판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 헤론은 기독교 문서 출판을 제일 먼저 제창한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한국성교서회가 창설된 것은 1890년 6월 25일, 헤론이 세상을 써나기 바로 한 달 전이었습니다.
죽기 며칠 전까지도 아픈 몸을 이끌고 6백여 리나 되는 먼 시골에 가서 병자를 치료해 주던 헤론은 전염성 이질에 걸려 앓다가 1890년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의 나이 33세, 한국에 온 지 불과 5년 만에 생긴 불행이었습니다. 헤론은 의사로서 선교사로서 강한 희생 정신과 사랑의 정신과 인술로 모든 어려운 의료 사업을 담당해 냈습니다. 절대로 불평하지 않았다.🌱
[디모데후서 4:11]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누가는 왜 사랑을 받았을까요?
‘빛을 주는 자’라는 뜻의 ‘누가’는 이방사람으로 이방인 최초의 교회가 세워진 안디옥에서 예수 믿고, 안디옥 교인이 되었습니다. 안디옥은 바울, 바나바가 목회하던 곳입니다. 거기서 바울과 바나바를 만나 새롭게 영혼이 거듭났습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의사는 안정된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는 직업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포기하고 바울과 함께 복음전파 일선에 나선 것입니다. 자연히 그는 바울과 제2차 전도여행에 동행하면서 바울의 지병을 담당한 의사이자 통역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바울의 연약함을 아시고, 곁에서 도울 수 있는 의사를 동역자로 허락하신 것입니다.
누가가 의사라는 사실은, 전문가로서 환자들의 상태에 대한 기록이나 예수님의 부활기록에서 확실한 역할을 한 것을 볼 때 알 수 있습니다. 육신은 물론 영혼의 질병까지 치료하던 사랑 받는 누가는 한마디로 의료선교의 효시였습니다.
누가는 의리가 있고 충성된 사람입니다. 누가는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때부터 마지막 로마에 투옥되기까지 바울과 함께 선교여행에 동참하였습니다.
바울이 로마황제의 재판을 기다리며 가이사랴 감옥에 갇혀있을 때 약 2년 동안 바울을 돌보며 같이 있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곁을 떠나갔지만 겸손하고 성실한 사람인 누가는 충성스럽게도 끝까지 남아 바울이 순교 당할 때까지 함께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인생의 황혼에 마지막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충성된 종 누가는 모범 청지기 상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청지기가 지녀야 할 인품과 기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누가는 인품에서도 좋은 믿음의 본을 보여준 사람입니다. 항상 말없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겸손히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초지일관 충성을 다했습니다.
특히 그는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으로서 유일하게 신약성경의 한 저자가 되었습니다. ‘누가복음’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방인으로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성경을 기록하게 되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가는 이방인들을 위한 복음서를 기록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을 위하여 기록한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고, 복음서를 기록했습니다.
누가는 자신의 재능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스스로가 굳센 믿음의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일터선교사로 전문인 선교사로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길 기도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존 헤론 선교사처럼 끝까지 신실하게 하나님 나라 확장으로 위해 충성된 삶을 살게 하소서.
누가처럼 의리가 있고 충실한 동역자로서, 성령이 충만하고 사명감이 투철한 사람, 복음전파의 사람,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사람,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