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노무현 대통령 부부가 공인이 아니라고?
명예훼손이라며 징역형 선고한 판사의 황당 주장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이 10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1심 재판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에 대해 정 의원은 “다분히 감정 섞인 판단”이라며 즉각 항소의 뜻을 밝혔고, 국민의힘에서는 “이같은 논리라면 야당발 가짜뉴스는 모두 징역형”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박병곤 판사는 사자(死者) 명예훼손 및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정 의원에 대해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검찰이 구형한 벌금 500만원보다 훨씬 무거운 실형을 선고한 것이다.
더구나 지난해 검찰이 약식 기소한 사건을 판사가 정식 재판에 회부해 징역형을 선고했다. 명예훼손 사건은 유죄라고 해도 벌금형을 선고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례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대로 형이 확정되면 정 의원은 의원직을 잃게 되고 피선거권이 5년간 제한된다.
정 의원은 지난 2017년 9월 페이스북에 ‘노 전 대통령 부부가 부부싸움 끝에 아내 권양숙 여사는 가출을 했고, 노 전 대통령은 혼자 남아 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명박 정부의 보복으로 노 전 대통령이 죽게 됐다’는 취지의 주장을 해자 이에 반박하는 글을 올린 것이다. 이후 정 의원은 페이스북 글을 지우고 사과 글을 올렸다.
이에 대해 박 판사는 “정 의원의 글 내용은 거짓이고, 그 글 내용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도 없다”면서 “글 내용은 악의적이거나 매우 경솔한 공격에 해당하고, 맥락이나 상황을 고려했을 때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당시 노 전 대통령 부부는 공적(公的) 인물이라고 보기 어려웠고, 정 의원의 글 내용은 공적 관심사나 정부 정책 결정과 관련된 사항도 아니었다”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재판부가 거짓이라고 판단한 부분은 ‘부부싸움’ 또는 ‘권양숙 여사의 가출’ 여부일 것이다. 그런데 부부싸움 및 권 여사의 가출이 거짓이라 해도,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자살’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게다가 정치적 공방 가운데 나온 발언인데다, 정 의원은 해당 글을 삭제하고 사과의 글을 올리기까지 했다. 이 정도 사안에 벌금도 아닌 징역형을 선고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을 넘어 판사의 정치적 편향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다른 판결과 비교해도 그렇다.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한동훈 장관이 과거 노무현재단 계좌를 불법 추적했다”는 허위 사실을 주장해 기소됐지만 1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유시민의 허위 사실 유포로 한동훈 당시 검사장은 4번이나 좌천되고 2번 압수수색을 당하는 수난을 겪었지만 벌금형에 그쳤다. 비슷한 의혹을 제기한 황희석씨도 1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더 황당한 것은 박 판사가 “노 전 대통령 부부는 공적 인물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한 부분이다. 대통령은 전직이든 현직이든 가장 공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인물이다. 게다가 뇌물 혐의로 수사를 받던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은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시간이 흘렀다고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인 대통령 부부를 공적인 인물로 보지 말라는 판단은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사자 명예훼손 사건에서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사례와 비교해도 그렇다. 2006년 방영된 KBS의 한 드라마가 이 전 대통령을 여운형 암살 배후로 묘사한 것에 대해 유촉 측은 드라마 제작진을 고소했는데, 대법원은 “역사적 인물을 모델로 한 드라마가 허위 사실을 적시했는지는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국민의힘은 이번 판결에 대해 “다분히 정치적인 판결”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강민국 수석대변인은 10일 논평에서 “이같은 논리로 따지면 그동안 막말과 명예훼손을 일삼아 온 민주당은 더한 철퇴가 내려져야 마땅하지 않은가”라며 “당장 김건희 여사를 명예훼손한 장경태 민주당 의원에게도 똑같은 판결을 내릴 자신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1년 남은 선거에 공천받으려는 정치적 의도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이라며 “6년이나 끌어오다가 총선을 앞둔 시점에 내려진 이번 선고를 보더라도, '판결의 정치화'를 여실히 보여준 셈”이라고 비판했다.
판사 출신인 전주혜 원내대변인도 논평에서 “정 의원 발언은 노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인터뷰 기사와 각종 전언 등을 토대로 ‘정치보복 때문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의견을 제시했을 뿐”이라며 “법원이 정치권의 진실 공방을 앞뒤 다 자르고, 단편적인 부분만 가지고 판단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어, 판결에 공감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더욱이 이 사건은 검찰이 약식기소하며 벌금형을 구형할 정도로 경미한 사건이었다. 법원이 지나치게 높은 형을 선고한 것”이라며 “오늘과 같은 잣대라면 청담동 술자리 가짜뉴스, 양평 고속도로 가짜뉴스, 사드·후쿠시마 괴담 등 야당발 가짜뉴스는 모두 징역형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