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826) - 장기기증에 관하여
어느덧 봄을 재촉하는 2월에 접어들었다. 봄소식을 알리는 입춘이 내일, 코로나로 위축된 모두들 건강하고 행복한 봄맞이하시라.
봄맞이 나온 오리들
얼마 전 미국에 거주하는 친구로부터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받았다. ‘지난 11일, 신장 기증을 받아 이식수술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여러 벗들의 기도, 염려에 감사드립니다. 회복되는 대로 자유로운 생활을 하게 돼서 기대가 큽니다. 3개월 동안 약 복용과 음식에 주의하라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조심하고 있습니다.’ 여러 해 동안 투석치료를 받으며 어려움을 꿋꿋이 견뎌온 친구에게 보낸 글, ‘큰일을 잘 치르셨군요. 속히 회복되어 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시기 기원합니다.’
지난주 이발관에서 머리 손질할 때 들은 종사원의 하소연, ‘얼마 전 미국에 거주하는 어머니(90세)의 언니가 돌아가셨는데 이에 충격을 받은 어머니께서 장기 기증을 하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식들로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워 고민입니다.’ 함부로 논평하기 어려운 문제, 나이 지긋한 어른께서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것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하였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신지.
이에 화답하듯 어제(2월 1일) 동아일보는 특별취재팀을 구성하여 사랑하는 가족과의 영원한 작별 앞에서 생명을 선물한 사람들, 그리고 그를 통해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간 100일간의 기록(환생: 삶을 나눈 사람들)을 ‘영원한 작별 앞에서 환생을 선물하다’라는 표제기사로 다루었다. 그 첫 번째 이야기, 한 외과의사가 밝힌 ‘생명을 나눠주고 떠난 동생’편을 간추려 소개한다.
생명을 나눠주고 떠난 동생
평범한 금요일이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오전 8시. 평소처럼 경남 양산부산대병원으로 출근했다. 오전에 잡혀있던 수술은 한 건. 순조롭게 마무리했다. 그때 걸려온 전화. “저, 같이 일하는 사람인데요. 현승 씨가 너무 다쳐서 의식이 없어요. 여기 해운대백병원 응급실이에요. 빨리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손현승, M(남성), 39y(39세).’ 동생이 누운 철제 침대에 걸린 카드 속 이름이 낯설었다. 신경외과 의사가 상황을 설명했다. “두개골 하부가 골절돼 지혈이 안 돼요. 혈관이 완전히 망가져서 출혈 지점을 찾는 게 어려울 정도예요.” 순간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단어. ‘뇌사(腦死).’ 설마. 아닐 거야.
동생은 회사에서 디자인을 한다고 했다. 중소 규모의 현수막 업체들은 제작만 해선 보수가 변변치 않다. 설치까지 해줘야 일종의 수고비를 받는 모양이었다. 사고가 벌어진 그날, 동생은 부산 00호텔의 4층 연회장에 가로 7m짜리 현수막을 걸러나갔다. 어렵사리 일이 끝났다 싶었던 순간. 기우뚱하며 쓰러진 6m 높이의 리프트에서 머리부터 바닥으로 떨어졌다.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아들을 보며 어머니는 가슴을 치고 또 쳤다. 아들과 열 발짝쯤 떨어진 보호자대기실의 차가운 바닥에 의료품 상자를 깔고 누워 밤을 지새웠다. 푸른빛 호스들이 달린 동생의 손. 어머니는 그 손을 부여잡고 얼굴을 비볐다. 하지만 동생 얼굴은 고요했다. 어떤 미동도 없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하나뿐인 내 동생은 뇌사였다. 뇌의 모든 부분이 완전히 죽은 상태로 심장만 뛰고 있다. 회복될 가능성 또한 제로다. 뇌사 상태에선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그 상태로 서서히 심장을 비롯한 장기가 꺼져가는 걸 지켜보다 이별을 맞는 것. 다른 하나는 뇌는 죽었지만 아직 살아있는 장기로 다른 사람을 살리는 것, 장기기증이다. 나는 명색이 흉부외과 의사이자 폐 이식 전문의였다. 전국 곳곳에서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잘 알았다. 이식을 받지 못해 생을 마감하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도.
뇌사 추정 환자가 장기기증을 하려면 절차를 밟아야 한다. 1, 2차 뇌파 검사에서 아무 반응이 없음을 확인한다. 뇌사판정위원회가 열리고 뇌사를 인정받는다. 그 순간, 환자의 심장이 뛰고 있어도 법적으론 사망으로 선고된다.
“동생의 장기를 기증하면 어떻겠습니까. 일부나마 어딘가에서 살아가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평생 조선소 밥을 먹은 아버지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나도 추락사고 당한 사람 중에 옳게 돌아온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너도 의사고 하니···. 다른 사람 살리는 게 맞겠제?” 어머니는 펄펄 뛰었다. 갈수록 변해가는 동생의 모습. 어머니도 점점 무너져갔다. 이제는 보내줘야 했다.
11월 11일. 사고 발생 열흘이 넘어가고 있었다. 의료진이 중환자실로 들어와 뇌사 판정 검사를 시작했다. 양쪽 눈꺼풀을 차례로 벌려 동공에 작은 불빛을 비췄다. 반응이 없었다. 다음으로 귀 쪽에 가느다란 관을 갖다 대고 차가운 물을 쏘았다. 역시 반응이 없었다. 차트에 ‘뇌사 확인’이란 네 글자가 적혔다. 수술 직전, 가족에겐 잠깐의 시간이 주어진다. 떠나는 이를 마지막으로 만나는 순간. 어머니는 오열했다. 아무 말 없던 아버지의 두 눈에선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아들의 발을 어루만지고 반쯤 뜬 눈을 감겨준 건 아버지였다.
오후 4시 10분. 이제 떠날 시간이다. 동생이 중환자실 침대에서 이동식 베드로 옮겨졌다. 동생의 장기 적출 수술을 진행하는 의료진이 수술 진행상황을 메신저로 알려줬다. ‘심장에 보존액 들어갔다. 6시 27분이다.’ 동생이 이 세상을 완전히 떠난 시간. 동생의 심장은 이제 평생을 머물던 몸을 빠져나간다. 다른 이의 품으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11월 10일, 부산에서 손현승 씨의 어머니가 아들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마음먹었던 날. 그날 저녁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KONOS·코노스) 상황실 직원들은 대형 모니터를 바라보며 전국 병원에 긴급 전화를 돌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보건복지부 소속인 코노스는 365일 24시간 당직 체제다. 국내 모든 장기기증 데이터를 관리한다. 이를 바탕으로 ‘이식인(장기 이식을 받는 사람)’을 결정하고, 이식 전 과정을 감독하기도 한다. 전국 어딘가에서 뇌사 환자의 장기기증이 결정되면 즉시 코노스에 보고된다. 이후 전국의 장기 이식 대기자의 생체 정보와 기증인 조건을 대조해 수혜자를 결정해야 한다. 총 4만3182명(2020년 말 기준) 중에서.
“일단 혈액형이 같아야 하고요. 그 외에도 백혈구 항원이 동일한지, 조직 검사 결과가 일치하는지, 대기 기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또 얼마나 위급한지 등을 따집니다. 질병관리청 시스템에 대기 점수가 다 있어요. 수혜자 순위는 점수를 기준으로 결정되죠. 어느 누구도 미리 알 수도, 바꿀 수도 없어요.”
현승 씨의 장기를 받을 최종 수혜자 결정은 꼬박 하룻밤이 걸렸다. 다음 날인 11일 아침에야 확정됐다. 심장 이식 대기자는 서울 A병원에, 신장 이식 대기자는 부산의 B병원에 있었다. 나머지 신장 하나는 입원 중인 병원 대기자에게 이식될 예정이었다. 기증인이 있는 병원에 신장 하나를 우선 할당하는 원칙에 따랐다. 이날 코노스에서 장기 이식이 가능하단 통보를 받은 A병원 의료진은 고심에 빠졌다. 서울과 부산 간 항공 스케줄과 기차시간표를 계속해서 들여다봤다. 심장은 몸 밖으로 나오면 버틸 수 있는 시간이 4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A병원에 입원해 있던 심부전증 환자 채현수(가명) 씨. 그는 복잡한 심정이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심장이 자신에게 온다. “너무너무 고맙지요. 말로 다 할 수 없이 감사하고, 그리고 죄송합니다. 한편으로는 막상 정해지고 나니 갑자기 겁도 나네요. 혹시 뭐가 잘못되진 않을지···.”
의료진은 이동 방법을 놓고 거듭거듭 검토했다. 항공편과 기차는 물론 역에서 병원까지는 어떻게 이동할지도 체크했다. 수술 시간은 다음 날 오후 5시. 심장은 6시 반 정도면 적출된다. 심장이 살아있는 오후 10시 반 전에, 병원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현승 씨의 수술이 예정돼 있던 12일 오전 10시. A 병원의 흉부외과 의료진 3명은 현승 씨의 심장을 담아올 푸른색 아이스박스를 들고 출발했다. 김포공항에서 김해공항을 거쳐 부산대병원에 도착한 수술 팀은 부산대병원 및 신장을 가져갈 부산 B병원 의료진과 수술실에서 현승 씨를 맞을 준비를 했다.
오후 4시 20분. 현승 씨가 누운 침대가 수술실 안으로 들어왔다. A병원 흉부외과 의료진이 제일 먼저 수술대 앞에 섰다. 적출하는 장기는 순서가 있다. 몸에서 떼어졌을 때 손상이 빨리 되는 장기부터 비교적 오래 버틸 수 있는 장기 순. 통상 심장은 4시간, 폐는 6시간, 간은 12시간, 췌장은 14시간, 신장은 24시간을 버틴다. 기증인과 수혜자, 기증인 가족과 수혜자 가족 그들 모두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오후 6시 50분, 마침내 A병원 의료진이 아이스박스를 들고 수술실을 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빨리! 빨리!” 이들은 마치 100m를 전력 질주하듯 병원 복도를 뛰어 앰뷸런스에 올라탔다.
부산대병원을 출발한 앰뷸런스는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리며 오후 7시 10분 부산역에 도착했다. 오후 7시 반 고속열차를 타고 부산역을 출발한 의료진은 오후 10시 6분 수서역에 닿았다. 또다시 전력 질주. 역 앞에서 기다리던 A병원 앰뷸런스는 의료진을 태우고 10분 만에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로비로 뛰어 들어간 의료진은 중환자실 문을 통해 수술실로 사라졌다. 현승 씨로부터 심장을 적출한 지 3시간 58분 만이었다.
다음 날 오전 3시. A병원은 5시간 반 만에 현승 씨의 심장을 현수 씨의 가슴에 연결하는 데 성공했다. 오전 7시 반 현수 씨가 드디어 힘겹게 눈을 떴다. 부산에서 현승 씨의 신장을 이식받은 환자들도 무사히 깨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현승 씨와 세 사람이, 함께 환생(還生)한 순간이었다.
첫댓글 눈물겹네요. 서로 협력하여 몇 사람을 살리는 좋은 일을 하신 기증자와 가족들, 의료진들에게 머리가 숙여집니다.
인간으로서 가장 숭고한 사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