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간화기(間花期)
나는 틈이 나면 산과 들로 자주 나가기에 제철에 피는 야생화들을 감상할 기회가 많다. 평일엔 학교로 출근해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고, 주말이나 방학이면 학교로 등교(?)해 자연에서 한 수 배운다. 후자의 학교는 산과 들이다. 교직과 학업을 병행하는 이중 신분으로 지내온다. 나는 가르치는 일보다 배우는 일이 쉽고 더 즐거웠다. 이제 그 중 하나는 내려놓을 때가 가까워진다.
지난겨울 몹시 추웠을 때도 진례 송정 들녘에서 자주색 광대나물꽃을 보았다. 대산 들녘을 무념무상 걷다가 풋고추를 키우는 비닐하우스 곁에서 노랗게 핀 꽃다지도 만났다. 봄이 오던 길목에 유등 배수장 근처에서는 냉이를 캐다보니 그 냉이에서 핀 좁쌀부스러기 같이 작은 꽃도 보았다. 이러다 이른 봄이 되자 수목에선 여기저기 매실나무에서 매화꽃이 피어 향기가 번져났다.
내가 근무하는 교정 뒤뜰은 매실나무를 비롯해 산수유나무와 살구나무와 모과나무 등이 여러 그루다. 벚꽃이 피면 장관이지만 봄날 이런 유실수들에서 꽃이 피면 교정은 가히 꽃 대궐을 이룬다. 수목만이 아니다. 지표에서도 수선화와 가는잎할미꽃을 비롯해 정해진 순서 따라 갖가지 꽃이 피고지질 반복했다. 점점이 핀 민들레는 개체 수가 워낙 많아 지상으로 별이 떨어진 것 같았다.
주중 근무 중 수업이 빈 시간 뒤뜰로 내려가 봄날에 피는 꽃을 완상하다가 주말이면 산으로 들어 제철에 피는 야생화들을 감상했다. 의림사 계곡으로 들어 가랑잎을 비집고 핀 노루귀, 바람꽃, 얼레지 등을 완상했다. 감재를 넘어 여항산 둘레 길을 걸으면서는 노랑제비꽃과 산괴불주머니꽃과 각시붓꽃들도 보았다. 이런 꽃들은 내가 생활 속에서 남겨가는 글들의 좋은 소재가 되었다.
주말에 보고 온 꽃들만이 아니라 주중 교정에 피는 꽃들도 내 손끝에서 한 편의 글로 탄생하기 일쑤다. 그때마다 폰 카메라도 찍어둔 사진과 함께 내가 적은 글들을 지인에게 메일로 보내고 동료들에겐 실시간 메신저로 날린다. 내가 속한 문학 동인 카페는 아예 내 이름으로 된 글방이 있어 그곳도 채워두면 다녀가는 이들이 있다. 한 후배는 자기 블로그에 내 글방을 만들어 놓았다.
주중은 개미 쳇바퀴 돌 듯 틀에 박힌 동선이지만 주말이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럴 듯한 자리로 초대받지는 못해도 내 발로 스스로 찾아갈 곳은 많다. 봄 한 철은 들꽃 완상이 끝나면 취를 비롯한 산나물 채집으로 바쁜 하루를 보낸다. 우리 집에서 일용하는 찬거리로 넘쳐 이웃이나 지인들에게 안겨주면 등에 진 배낭이 가벼웠다. 이러다 어느 결에 봄날이 가고 성큼 여름이 다가왔다.
엊그제는 현충일이었다. 첫새벽 창원중앙역으로 나가 마산역에서 동대구로 올라가는 무궁화호를 타고 한림정역으로 나갔다. 들녘을 지나 배수장에서 술뫼생태공원을 따라 걸었더니 개망초꽃이 지천으로 피어났다. 전원생활을 하는 지인을 만나 제철 산딸기를 맛보고 유등 강둑으로 걸었다. 유청 강가 대밭에서 죽순이 솟아나 있어 상당량 꺾어 집 근처에서 몇몇 지인들과 나눔을 하였다.
현충일 이튿날 고교생들은 수능 모의평가와 전국연합고사였다. 고사 감독을 한 일과 중 오후에 틈을 내었다. 출근 때 집에서 가져간 간편복을 갈아입고 내가 청소지도를 맡은 뒤뜰 급식소와 별탑원 주변 봉숭아 꽃밭을 돌보았다. 작년에 교문 근처 배움터 지킴이가 가꾸던 봉숭아 싹을 분양받아 가꾼 자리다. 올봄에 봉숭아 새싹이 돋을 때 두 차례 김을 매고 간격이 알맞게 옮겨 심었다.
작년 가을에 씨앗이 떨어져 싹이 돋고 듬성한 곳은 옮겨심기를 해두었다. 야간 당직자가 휴일이면 소일거리로 예초기로 정원의 풀을 말끔히 잘라버리곤 해서 그분이 잡초를 자르기 전 봉숭아 새싹 주변 잡초를 뽑아 표식을 드러내야 했다. 초여름이 되니 봉숭아 싹은 제법 자랐고 두어 시간 걸려 주변 풀들은 모두 뽑았다. 늦여름에 필 봉숭아꽃이 기대가 된다. 지금은 간화기(間花期)였다. 18.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