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치킨 한 마리를 해치웠는데 또 피자가 당기는 황당한 시추에이션. 정녕 난 답 없는 다이어터일까? 코치 D가 전한다. 당신의 잘못만은 아니라고. 계속 식욕을 돋우는 '자극 유발자' 음식 탓이 크다고.
음식이 잘못했네"왜 나는 식탐을 멈출 수 없을까?" 오늘도 망연자실, 텅 빈 과자 봉지를 바라보며 스스로 질책한다.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한두 조각 맛만 보고 끝내야지' 하고 뜯었던 과자 봉지는 왜 바닥을 보게 만드는 걸까? 많은 다이어터들은 이같은 현상을 의지박약, 자제력 부족이라며 자책한다. 그러나 전적으로 당신 책임만은 아니다. 일단 먹기 시작한 이상 끝을 보게 만드는 음식에도 책임이 있다! 본디 음식이란 먹으면 먹을수록 배가 불러야 정상이다. 그러나 몇몇 특정한 음식들은 니요(Neyo)의 유명한 노래, 클로저(Closer)의 '먹으면 먹을수록 더 먹고 싶어지는(The More You Get, The More You Want)'이라는 가사처럼 신비한 체험을 선사한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충분한 양을 섭취했는데도 탐욕스럽게 음식을 뱃속으로 밀어 넣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음식을 영양학자들은 자극성이 큰 음식 또는 공격적인(Aggressive) 음식이라 표현한다. 여기까지는 곰곰이 생각해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식욕을 멈출 구체적인 방법을 알 수 없다. 그래서 알아보았다. 대체 어떤 종류의 음식들이, 왜 우리를 폭식과 탐식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는지.
자극적인 음식을 찾아서우리가 먹는 음식은 3대 다량 영양소(탄수화물, 단백질, 지방)로 이뤄져 있다. 이를 주재료 삼아 여기에 다양한 조미료와 조리법이 조합돼 하나의 '요리'가 만들어진다. 사실 3대 영양소 자체는 자극성이 그다지 크지 않아 제아무리 많이 먹고 싶어도 계속 먹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살이 찌는 음식이라면 3대 영양소 중에서 칼로리가 가장 높은 지방. 그러나 순수하게 지방만 먹어서 살을 찌우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지방의 대표 선수인 '식용유'를 생각해 보자. 식용유는 주로 식물의 씨앗이나 열매에서 기름만 짜낸 순수한 지방 덩어리다. 이걸 컵에 따라 꿀꺽꿀꺽 마시며 '맛있다'고 느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또 순수한 단백질 덩어리인 '닭 가슴살'이 맛없는 다이어트 식품의 대명사인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다. 아무런 양념도 하지 않은 삶은 닭 가슴살은 많이 먹고 싶어도 입에 물려 더 이상 들어가지 않는다. 탄수화물도 마찬가지다. 건강한 브런치의 상징인 베이글은 발효 과정에서 물과 효모종 외에는 아무것도 섞지 않은 순수한 탄수화물 덩어리다. 음, 베이글이라면, 삶은 닭 가슴살과는 조금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과연 그럴까? 크림치즈도, 잼도, 아메리카노도 곁들이지 않고 생수와 베이글만 무한 리필되는 브런치 카페가 있다면, 과연 몇 조각이나 먹고 나올 수 있을까? 아무리 허기지더라도 그다지 유쾌한 식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처럼 조리 과정이 단순하고 첨가물이 거의 없는 순수한 3대 영양소 덩어리는 자극성이 크지 않아 과식 자체가 원천봉쇄된다.
자극의 정체'요리'라기보다 '재료'에 가까운 순수한 3대 영양소 덩어리는 맛이 없어서 무한정 먹기 어렵다. 재료에 맛을 더해야 비로소 요리가 되고, 자꾸만 그쪽으로 가는 손길을 멈출 수 없게 된다. 우리의 미각을 자극하는 맛 가운데 양대 산맥은 '짠맛'과 '단맛'이다. 짠맛의 근간인 소금(나트륨)과 단맛의 근간인 설탕(당분)에는 공통점이 있다.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필수 요소지만, 자연 상태에선 구하기 어려운 희귀 성분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짠맛과 단맛을 '맛있다'고 느끼는 이유에 대한 힌트를 여기서 얻을 수 있다. 몸에 꼭 필요한 성분인데 자주 접할 수 없으니 기회가 닿을 때마다 최대한 많이 먹어두도록 우리 입맛이 진화해 온 것이다. 그리고 히든 카드로, 소금과 설탕에 비견될 '역사적으로 희귀했지만 현대에 들어서 넘쳐나게 된 물질'이 또 있다. 바로 지방이다. 다이어트는 지방과의 전쟁이지만, 인류의 역사는 지방을 얻기 위한 전쟁이었다. 우리는 지방질이 풍부한 음식을 부드럽고 풍미가 좋다고 느끼도록 진화됐다.
그러나 무조건 짜거나 달아서 식욕이 폭주하는 건 아니다. 사람의 입맛도 일종의 안전장치를 갖고 있다. 식품공학자들이 지복점(至福點 Bliss Point)이라 부르는 한도가 입맛에도 존재한다. 일정 수준까지는 염도가 올라갈수록, 당도가 올라갈수록 더 맛있다고 느끼다가 지나치게 짜거나 달면 오히려 역겹고 물려서 맛이 없다고 느껴진다. 간을 잘못 맞추면 짜다 못해 쓴맛이 나는 국처럼 우리는 무한정 짜게 먹거나 달게 먹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현대의 가공식품회사들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두 가지 이상의 맛을 조합하면 지복점을 느끼는 우리의 미각 한도가 점점 올라가 버린다는 것이다! 수입 과자들의 라벨을 유심히 살펴보자. 단맛을 내는 초콜릿 종류나 쿠키들은 이상하게도 '나트륨' 함량이 꽤 높다. 바로 그것이다. 더 많은 설탕, 더 많은 소금을 먹어 식욕의 한계를 부숴버리기 위한 자극 이상의 자극, 초자극을 만들어내기 위한 조합인 것이다. 나트륨, 설탕, 지방의 콤비네이션을 잘 살펴보면 '멈출 수 없는 식욕'의 정체가 비로소 서서히 베일을 벗는다.
맛을 첨가하면 자극성은 커진다결국 우리를 절제할 수 없게 만드는 자극적인 맛의 핵심은 다음 세 가지 성분의 조합으로 결정된다. 설탕, 소금, 지방. 불행히도 이 셋은 모두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설탕은 식욕을 자극하고 살이 찌기 쉬운 체내 환경(고인슐린 상태)을 조성할뿐더러 그 자체로도 살을 찌우는 물질이다. 지방은 3대 영양소 가운데 가장 높은 칼로리를 보유하고 있으며 설탕, 나트륨과 조합했을 때 가장 파괴적인 시너지 효과를 내는 잠재력이 있다. 그 자체로는 살이 찌지 않지만 설탕과 사이 좋게 밀어주고 끌어주며 과식을 부채질하는 소금의 존재감도 크다. 이들을 넣어 요리에 맛을 더할수록 음식의 자극성은 강해진다. 요리에 다양한 재료가 첨가될수록, 조리에 동원되는 요리법(썰기, 다지기, 굽기, 삶기, 찌기, 지지기, 튀기기 등)이 복잡할수록 맛은 풍부해지고 식욕을 자극하는 지복점은 높아진다.
즉, 먹을수록 음식을 더욱 갈망하게 되는 것이다. 식용유 자체는 맛이 없지만 식용유에 달걀, 소금, 과즙 등을 첨가(조미료와 재료를 추가)하고 거품을 내서(조리법 추가) 탄생되는 '마요네즈'는 감칠맛 나는 훌륭한 드레싱 재료다. 우리가 한번 입에 대기 시작하면 끝장을 보기 전까지 멈출 수 없는 자극적인 음식들의 면면을 이와 같은 맛과 재료의 조합으로 하나하나 풀이할 수 있다. 토마토 자체는 자극성이 큰 식품이 아니지만 으깨고 다진 뒤 설탕과 소금을 첨가해 끓여 만든 케첩은 자극 유발자가 된다. 이 케첩의 영원한 단짝, 감자튀김 얘기도 해볼까? 원재료인 감자는 순수한 탄수화물 덩어리다. 그런데 이걸 튀겨(기름 첨가) 시즈닝을 뿌리고(나트륨 첨가) 케첩에 찍어서(당분 첨가) 먹는다. 자극성이 큰 음식 재료인 세 가지가 모두 사용된 것이다. 단순히 삶은 감자와 패스트푸드점의 프렌치프라이 혹은 감자칩 사이에는 세 단계의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하는 셈이다. 주재료만 감자일 뿐 완전히 다른, 이미 감자로 볼 수 없는 요리다. 먹을수록 더 먹고 싶어지는 각종 가공식품과 자극성 식품 혹은 주전부리들은 예외 없이 이 도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몇 가지 간단한 예시를 더 들어보자.
초콜릿카카오 덩어리(지방)에 설탕(당분)을 더한다. 밀크 초콜릿의 경우 우유(동물성 지방+단백질)를 첨가해 더 윤택한 풍미와 자극을 준다.
도넛밀가루(탄수화물)를 튀겨 트랜스지방을 추가하고 슈거 파우더나 글레이즈(당분)를 추가한다.
밥텅 빈 밥상에 밥 한 공기만 있으면 식욕이 떨어진다. 바꿔 말해 흰 쌀밥은 무한한 맛을 그릴 수 있는 텅 빈 도화지와 같다. 여기에 밥 도둑인 간장게장(나트륨)을 퍼부어 주면 두세 공기도 게눈 감추듯 해치울 수 있다. 명절 후에 남은 음식으로 비빔밥을 만들면 꼭 계획했던 것보다 더 많이 먹게 되는 현상도 이로써 설명할 수 있다. 살을 찌우는 밥의 최종 진화형은 오므라이스 볶음밥이라 할 수 있다. 밥에 기름을 둘러 볶고, '빨간 설탕' 케첩을 더해주니 이야말로 식욕을 자극하는 3대장(소금, 설탕, 기름)이 모두 모인 최종병기와 같다.
양념 치킨순수한 닭은 단백질과 지방 덩어리지만, 여기에 염지액(나트륨)으로 맛을 더하고 탄수화물로 코팅한 뒤(튀김옷) 기름에 튀기는 조리법을 추가한다. 마무리로 들어가는 치킨 양념의 주원료는 물엿과 케첩, 고추장 등이니 이야말로 설탕과 나트륨, 트랜스지방을 겹겹이 두른 '쾌락의 요리'가 아닌가! 허니 버터 브레드 '허니+버터+브레드'에서 허니와 버터를 덜어낸 순수한 식빵 한 덩어리는 그저 베이글의 사촌에 불과하다. 그러나 거기에 지방인 버터를 더해서 굽고(가염 버터를 사용했다면 더더욱), 설탕과 지방의 복합체인 휘핑 크림을 얹고 그 위에 다시 시럽까지 뿌렸으니, 허니 버터 브레드의 진짜 이름은 '빵+설탕+설탕+기름+기름'이라고 해도 딱히 반박할 말이 없으리라. 이처럼 조합이 복잡해지면 지복점이 올라가고 우리의 식욕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폭주 열차를 타는 것과 같다.
'자극적인 가공식품'이라는 표현에 담긴 진짜 의미지금까지 '자극성이 큰 음식' '가공이 많이 된 식품'이라는 표현을 예사로 써왔지만 거기에 담긴 구체적인 의미까지는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분명히 알 수 있으리라. 자극성이 큰 음식이란 단순히 맵고 짠 음식이 아니라 진화의 산물로 우리 머릿속에 있는 쾌락중추를 폭주시키는 음식이라는 의미다! 가공이 많이 됐다는 건 그저 인스턴트식품이란 게 아니다. 요리의 힘으로 우리에게 더 큰 쾌락을 주는 음식이라는 뜻이다. 이런 음식들은 먹을수록 더 큰 갈망을 선사해 주기 때문에 다이어트와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음식 앞에서 당신이 자제력을 잃은 이유는 단순 의지박약 때문은 아니다. 거부할 수 없는 유혹에 넘어간 것일 뿐. 지금까지 식욕을 통제할 수 없어 고역을 치렀다면 무작정 자책하기보다 앞서 살펴본 방식대로 우리를 둘러싼 음식의 자극성을 먼저 살펴보길. 그리고 보다 자극이 덜하고 단순한 조합이 뭔지 찾아보자. 물론 자극적인 음식에 이미 길들여진 노예(?)인 우리들이 영원히 그런 음식들을 멀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크다. 직접 요리한 음식이나 가공이 간단한 음식이 식욕을 '덜' 자극한다는 정보를 아는 것만으로도 다이어트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쉽고 빠르게 자극적인 맛을 전달하기 위해 값싼 재료들을 조합한 음식들을 덜 먹도록 노력해 보자. 자연 상태에 가까울수록 맛은 덜하지만 영양은 훨씬 더 많다는 사실도 명심하도록.
writer 남세희 editor 김미구 design 하주희